[게이트 오브 서울 65화]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그만큼… 천국에 대한 믿음이 강했고, 그것을….”
박선우가 예배당 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마치 예배당 밖의 괴물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천사라고 생각했겠죠.”
아니면 천사라고 생각하고 싶었거나.
힘없는 목소리가 말끝에 따라붙었다.
‘독실한 믿음이 목숨을 옭아맨 것이군.’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잘 알고 있던 석민으로선 씁쓸한 이야기였다.
박선우의 마음속에서 ‘천사’가 아니라고 낙인이 찍힌, 밖의 그것은 아마도 천사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교주의 말처럼 강림했다가 감염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기괴한 상태였으나, 또 아니라고 하기엔 반짝이는 흉갑이나 창, 성스러워 보이는 새하얀 날개가 모순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여러 가지 추측들을 애써 억눌렀다.
적어도 지금처럼 애매한 상황에서 쉽게 입에 담을 말들은 아니었고, ‘천사’라는 존재가 감염도 될 수 있다는 말을, ‘신실한’ 신자의 앞에서 담을 순 없었다.
“저게 진짜 천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멀리서 저걸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믿게 될 것 같군.”
석민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죽어있든 뭐든 간에 저런 형상을 가진 감염자나 괴물은 처음 보았다.
어떤 존재든, 어쨌거나 조만간 그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석민은 자신의 눈앞에 헌팅 트로피창이 새로 생겨난 것이 신경 쓰였다.
그 창을 열면, 벽만 있는 빈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엔 방패모양의 나무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석민은, 유럽에서 자신이 사냥한 동물들의 머리를 잘라 박제해서 걸어놓는 사냥풍습이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시발, 저 괴물을 잡으면, 그 괴물의 대가리가 저기 걸린다는 건가?’
게다가 한 개가 아니었다. 저런 게 몇 개 더 있다는 소리였다.
석민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가정이었고,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의 의사와 다르게 일은 진행되어 갈 것이다.
석민은 한숨을 내쉬며, 아영에게 말했던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
시간이 흘러, 혼자 작게 훌쩍이던 박선우는 잠들었고, 석민은 가만히 촛불의 불꽃을 바라보며 사념에 빠졌다.
그렇게 3시간쯤 지났을 무렵, 무음으로 두었던 핸드폰의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석민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생각보다 일찍 왔군. 아주 빨라. 좋아.”
-기다리는 것이 너무 지루했고, 추워서요.
아영이 말했다.
-바람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사거리 반대편 상가 2층에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로비 안에서 예배당 입구만 보고 있어요. 마치 석상 같습니다.
그 말에 석민은 소름이 끼쳤다.
-군에서 운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UAV 몇 개가 지나갔었는데, 다행히 우릴 보진 못했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서 조심해야 할 겁니다.
“오케이, 자리 잡았다니 알겠어.”
석민의 말에, 잠깐 잠들었던 박선우가 선잠에서 깨어났다.
“내 말 잘 들어.”
석민이 말했다.
“문밖에 그것이 가만히 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더군. 아마 우리가 나올 때까지 버틸 생각인가 봐.”
그 말에 박선우의 얼굴도 석민처럼 창백해졌다.
“문을 열려고 하는 기미라도 보이면 바로 돌격해오겠군요. 어쩌실 생각입니까?”
“글쎄, 잘 모르겠어.”
아영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돌려 달라 부탁한 뒤, 만들어 둔 특제 폭탄을 던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아영이 자리 잡은 곳이 100미터도 채 안 될 만큼 가깝다는 것이 떠올랐다.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순간, 아영이 바로 위험해진다.
석민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듣고 있나?”
-네, 듣고 있습니다.
“시간을 잠깐 끌 만한 게 있을까? 소리에 민감하게 구는 놈이니, 우리가 문을 잠깐 여는 수간이면 되는데.”
-가능합니다.
아영의 말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선우에게 눈짓을 보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하지. 준비.”
박선우도 자신의 소총을 장전했고, 석민은 특제 폭탄의 안전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고.”
석민의 목소리에 맞춰 예배당 문밖에서 쾅! 소리가 났다. 아영이 신호에 따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섬광탄을 던진 것이다.
바람 덕분에 제법 멀리 날아간 섬광탄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갑작스런 큰 소리에 괴물이 고개를 돌리더니 재빠르게 소리가 난 곳으로 움직였다.
아영은 때를 놓치지 않고 수류탄의 안전클립을 제거하여 연속으로 2발을 던졌다. 수류탄은 정확하게 괴물의 머리 위에 터졌다.
폭발의 충격과 파편이 괴물을 뒤덮으면서, 괴물의 비명소리가 주변건물을 뒤흔들 만큼 크게 울려 퍼졌다.
“밀어!”
아영이 괴물의 눈을 돌리는 사이, 석민과 박선우는 그랜드피아노를 밀어 옆으로 치우고는 의자들을 대충 헤쳐 문을 열었다.
겨우 3시가 되었을 뿐인데, 밖은 벌써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석민은 어디론가 창을 던지려 하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아영의 정보에 의하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했는데, 그것은 정확히 아영이 있는 방향으로 창을 조준하더니 그대로 던졌다.
그리고는 문을 연 소리를 들었는지, 그것은 석민과 박선우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석민은 특제 폭탄의 안전핀을 뽑아 투포환을 던지듯이 괴물에게 던졌다.
“죽어라!”
자신이 생각해도 무슨 삼류 악당이 할 만한 대사였으나, 박선우에게 괴물의 주의가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럴 때 말재주가 없다는 게 조금 안타까웠으나, 지금으로서는 생각나는 대로 뭐라도 소리 질러야 했다.
폭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그것의 날개에 부딪혀 떨어졌고, 그 순간 폭발했다.
수류탄보다 더 큰 화염의 폭풍이 주변을 휩쓸었고,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면서 하얀 연기가 솟았다.
더 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가자.”
석민은 조잡하게 임시로 만든 창을 고쳐 잡고 앞으로 뛰었다.
그 사이 측면으로 빠져 죽은 이선재의 시체에서 탄약을 확보한 박선우는 사격준비를 마치고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렸다.
곧 불길과 연기가 사라지면서 검게 탄 괴물의 모습이 보였으나,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괴물의 생명력에 놀라움을 넘어 지긋지긋함이 몰려올 정도였다.
까맣게 탔어도 여전히 흰 날개는 상처 하나 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박선우는 괴물에게 사격을 가했다. 연사로 사격을 하다가,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을 깨닫고는 약점으로 보이는 부위를 단발로 노리기 시작했다.
석민은 방풍 성냥으로 화염병에 불을 붙인 후 바로 던졌다.
괴물의 몸에 부딪혀 깨진 화염병은 곧 큰 불길로 변했다. 남은 손과 날개가 불을 끄기 위한 몸짓을 보였다.
날갯짓 한 번에 불이 순식간에 꺼져갔다.
마법 같은 모습에 박선우가 놀라 쳐다보면서 순간적으로 사격이 멈췄다.
“계속 쏴! 계속!”
석민이 박선우에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정신 차린 박선우는 자동적으로 사격을 시작했다.
계속되는 총격에 괴물은 날개로 자신의 몸을 방어했다. 석민은 낮게 혀를 차며, 쇄골에 뻗어 나온 머리를 보았다.
수없는 공격에도 그 머리만은 이상하게 멀쩡했다.
아영이 의심할 만했다.
괴물은 이제 창이 없었기에, 전에 비하면 공격력은 훨씬 줄어든 셈이었다.
괴물은 날개로 몸을 감쌌음에도, 온갖 사격과 폭발 때문에 결국 양 무릎이 부서졌다.
남은 것은 오른쪽의 2개짜리 손이었다.
아직 좀 높은 위치이긴 했으나, 무릎이 부서지면서 높이가 낮아진 덕분에, 자신이 급조한 창이 닿을 것 같았다.
괴물이 정신을 못 차리고 비명을 지르며 날개로 몸을 감싸기 급급할 때, 석민은 총검술 하는 것처럼 창을 꽉 쥐고 달려들었다.
석민이 달려들자, 박선우는 사격을 멈추었다.
그 사이, 몸을 움츠려 아슬아슬하게 괴물의 창을 피했던 아영도 창가에서 저격총을 거치한 채 대기 중이었다.
석민의 발소리를 들은, 괴물의 머리 두 개가 석민을 향해 돌려졌다.
창끝을 곧추세워 쇄골에 붙은 기생머리를 노리며 찔렀으나, 괴물의 긴 팔이 석민을 향해 뻗어왔다.
석민은 몸을 숙여 피하면서, 창으로 괴물의 팔을 피하고자 했으나, 그보다 먼저 총성이 울렸다.
아영이 괴물의 팔을 저격한 것이다.
석민은 그대로 기생머리에 창을 찔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은 팔이 창대를 붙잡았지만, 대검의 칼날이 괴물의 손을 베고 지나가, 쇠파이프가 그 머리를 파고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코가 없어지고 구멍만 남은 곳으로 칼날이 깊숙하게 박혔다.
석민은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박혀있는 칼날 그대로, 창대를 비틀었다.
끼에에엑-
기괴한 비명을 내지른 기생머리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반 이상 깨진 본체머리가 삐걱거리듯 움직이며 입을 쩍 벌렸다.
그 목구성 안쪽에서 무언가 희미한 빛이 뿜어졌다.
저걸 맞으면 죽는다.
석민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젠장….”
석민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을 후회할 때, 괴물의 날개가 석민을 덮쳤다.
그리곤 그것은 작은 오른팔로 창대를 뽑아냈다.
“읏, 머리를 쏴! 본체 머리를 쏴!”
석민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폐차에 머리를 먼저 부딪친 바람에 시야가 흔들리고, 소리가 울렸으나, 쓰고 있던 헬멧 덕분에 머리가 박살나는 일은 면했다.
석민의 소릴 들은 아영이 괴물의 머리를 노리고 쐈으나, 날개에 총알이 막혀버렸다.
이쯤 되니 박선우에겐 남아있는 탄환도 없었다.
‘이 이상은 안 돼.’
아영은 저격총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소총을 들고서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제 양 무릎이 박살나고, 오른쪽 작은 팔과 본체 머리만 남은 괴물은 누가 공격하든, 자신의 기생머리를 죽인 석민에게만 달려들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주제에 움직임이 매우 빨랐다.
이제 석민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단검과 화염병뿐이었다.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괴물의 목구멍에서 희미하게 뿜어지던 빛을 떠올리며, 괴물을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뭐, 뭐하시는 것?!”
그것을 보고 놀란 박선우와 아영이 동시에 소리쳤다.
괴물은 석민이 급조해서 만든 창을 그를 향해 찔러왔다. 석민은 자신이 부딪혔던 폐차 지붕을 밟고 뛰어 그대로 화염병을 던졌다.
던지는 소릴 들은 괴물이 날개로 화염병을 쳐냈다.
그 순간, 석민은 또 빛을 뿜어내기 위해 입을 벌리는 괴물을 향해 단검을 뻗었다.
목구멍 끝에 찔러 넣기 위해서였다.
체중과 팔심을 모두 실은 일격이었다.
그 공격에 괴물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몸만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것이 마치 죽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느껴졌다.
석민은 단검을 놓고서 더 깊숙이 팔을 집어넣었다.
정확하게 목구멍은 아니었다. 목구멍과 비슷했다.
이윽고 그의 손에 무언가 돌덩이 같은 것이 잡혔다.
주변에 마치 넝쿨이라도 뒤덮인 듯, 잔뜩 얽어진 신경들로 잘 올라오지 않았으나, 석민의 팔심이 더 강했다.
힘을 주어 뽑아 올리자, 다이아몬드 같이 보이는 얼굴만 한 보석이 뽑혀 나왔다.
사방이 어두운데도 찬란하게 빛이 났다.
그 모습이 이상하면서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버림받은 오르바’를 처치하셨습니다.]
[헌팅 트로피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그제야 석민은 괴물에게서 떨어져 바닥에 몸을 뉘었다. 안심해서 그런지, 엄청난 고통과 피곤이 몸에 밀려왔다.
뒤로 넘어간 괴물의 몸은 새하얗게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회색빛으로 변한 깃털들만이 바람에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