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64화]
-좋아, 알았어. 언제까지 와 줄 수 있나? 전에 진 빚이 있지? 되도록 빨리 와 줬으면 좋겠는데. 보수? 물론이지.
“제가 가진 무기로도 잡기가 매우 힘듭니다. 총알이 흉갑을 뚫지 못 해요. 카빈 소총이 있기는 하지만, 장담할 순 없네요. 탄약지원도 무리입니다. 다만 나와서 공격을 할 때, 지원 사격은 해드릴 수 있어요.”
-4시간? 좋아 되도록 빨리 오라고. 오늘 중에 바로 처리해야겠어.
“아, 잠시 만요! 4시간 동안 대기하라는 거잖아요? 추운데….”
서로 엇갈린 대화로 연기하면서, 그들은 정보를 교환했다.
-더 빨리 올 수 있으면 좋겠지. 집이 하남지역이었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일을 마무리 했으면 좋겠군.
아영은 석민이 총알이 없다고 하면서도 오늘 중으로 그것을 잡겠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됐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2시가 되지 않았다.
‘조금 조급하게 구는 거 같은데.’
그녀는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석민에게 나름의 생각이 있을 테니, 알아서 하라고 그에게 맡기기로 했다.
***
“이선재 시체 위치가 어디인지 기억하나?”
석민의 물음이 박선우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억합니다.”
마치 토하기 직전의 사람인 것처럼, 그의 표정이 좋지 못했기에 그는 얼른 말을 이었다.
“내가 유인할 테니, 너는 탄약들을 확보해서 지원사격을 해주었으면 해.”
“혼자서 유인하시겠다고요? 무기도 없잖아요?”
박선우의 말에 석민은 피식 웃으면서 잡동사니를 가리켰다.
“없으니 만들어야지. 나도 그리 오랜 못 끄니까, 최대한 빨리 탄약들을 확보하라고.”
석민은 그리 말하며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쌓여있던 물건들 속에서 스티로폼으로 된 아이스박스와 석유가 든 통, 라이터 기름, 부탄가스와 빈 병이나 보온병, 테이프 등을 찾아서 꺼내 놓았다.
‘C4가 한 개만 있었어도!’
석민은 아쉬워하면서도 움직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불이 붙으면 바람이나 물에도 불이 잘 안 꺼지는 방풍 성냥을 찾고서 잡동사니 뒤지는 것을 멈추었다.
석민은 보온병을 들었다.
입구 지름이 커서, 연막탄이 그대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안에다가 스티로폼을 단검으로 잘게 잘라 넣은 후, 휘발유가 든 캔을 찾았다. 그 순간, 박선우의 손이 불쑥 나타났다.
그의 손엔 휘발유가 든 캔이 들려 있었다.
“네이팜 폭탄인가요? 네이팜 폭탄은 스티로폼을 넣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잘 알고 있네.”
석민은 그리 대답하면서도 받아서 스티로폼에 휘발유를 부었다. 붇자마자 스티로폼이 녹아들어갔고, 석민은 그곳에 새로운 스티로폼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것을 돕기 위해 박선우도 스티로폼을 잘게 부셔서 같이 넣어 주었다.
“그건 맞아. 이건 네이팜이 아니지. 다만, 이렇게 하면 걸쭉하게 되니까, 상대방에게 묻기만 해도 불끄기가 힘들어져. 일반 휘발유만 넣으면 기름이 불붙은 채 흘러내리니까.”
그는 자신에게 남은 7.62mm 탄약을 꺼내서 탄두를 빼낸 뒤, 화약을 모았다. 그리곤 연막탄의 뇌관도 돌려서 뽑았다.
그는 적당히 작은 용기를 찾아서 모았던 화약을 모두 넣었다. 속이 비어버린 작은 화장품 병이었는데, 지금은 강력한 대용뇌관이 되어 줄 것이다.
“대충 다 되었네.”
그는 박선우의 도움을 받아 테이프로 전부 감았다.
다음으로 그는 작은 유리병에 휘발유를 넣고 설탕이나 고무조각을 넣었다.
액화 스티로폼과 부탄가스, 백린연막을 테이프로 통째로 묶어 섞은 특제 폭탄 1개와, 화염병 2개가 만들어졌다.
“정말로 탄약은 1발도 없어도 됩니까?”
박선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뭐, 그 괴물한테는 총이 그렇게 통하는 건 아니니까. 다른 걸 그럼 좀 더 준비해볼까? 탄환이 좀 부족한데.”
그는 특제 폭탄을 옆에 두고, 화염병들은 군장의 파우치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옷걸이용으로 쓰는 기다란 철봉을 발견하고는, 뜯어내서 들어보았다.
“칼 있지?”
“네.”
박선우는 자신의 품속에서 칼을 꺼냈다.
“이것 좀 실례하지.”
석민은 그것의 손잡이를 철봉 안쪽에 넣어보았다. 철봉 구멍이 작아 손잡이가 빡빡하게 들어가긴 했지만, 창 대용으로 쓰기엔 헐거운 것보단 나았다.
석민은 있는 힘껏 쑤셔 넣었다. 확인 차, 다 넣은 뒤 빼보려 했으나, 제법 단단히 들어간 칼은 빠지지 않았다.
길이 2미터짜리 단창이 만들어졌다.
“겨우 그런 것으로?”
박선우는 석민이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없는 것보다는 났겠지. 사태 초기엔 이런 것도 정말 유용했어. 총검술 하듯이 쓰면 돼. 그럼, 준비는 대충 끝난 것 같군.”
석민은 단창을 몇 번 휘둘러보며 말했다.
괴물이 쓰는 창이 얼마나 단단할지 모르겠으나, 쇠로 만든 봉이 창대로 되어 있으니 쉽게 구부러지거나 망가지진 않을 것이라 판단됐다.
“아까 말한 대로, 네가 총으로 놈의 신경을 죄다 잡아놓는 사이, 나는 폭탄과 화염병으로 녀석을 공격하도록 하지. 내 친구가 서울에 도착하면 지원사격을 해줄 거야.”
그는 이 창으로 두 번째 머리, 기생해 있는 머리를 찌를 생각이었다.
이미 만신창이인 괴물의 상태를 생각해보면, 주의만 잘 끈다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영은 이 부정확한 정보를 너무 맹신하지 말라고 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 정보 말고는 매달릴 구석이 없었다.
오랫동안 등을 굽히고 작업해서 그런지, 허리가 뻐근하게 땅겨오는 느낌을 받으며, 석민은 예배당 의자에 드러누웠다.
“내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그의 말에 박선우는 조금 주저하다가 석민을 따라 편히 앉았다.
예배당 안은 금세 침묵이 감돌았다.
석민은 눈을 감고 있다가 무언가 대화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딱히 자신이 남을 잘 챙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지금에선 박선우가 제정신을 붙잡고 있지 않는다면 자신 또한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마땅한 대화 주제를 생각해내지 못한 석민은, 그나마 둘 사이에 알고 있던 공통의 인물에 대해서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선재가, 친구였지?”
“그렇습니다.”
석민의 물음에 대답하는 박선우의 목소리가 매우 침울해졌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으나, 중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였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같이 고생을 하던 친구였지요.”
그는 따로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천천히 이야기를 해나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사태 때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은 없었다.
박선우와 이선재 또한 그러했다.
집이 괴수의 침입에 완전히 박살났고, 친인척들의 연락은 안 되는 상황에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처지인 이선재를 만난 박선우는 같이 유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굶거나 떠돌아다닌 것이 2년이었다.
극도의 혼란에 빠진 국가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감염자들의 전염경로는 물론, 그것이 바이러스인지, 세균에 의한 감염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전국으로 퍼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국민들을 외부로 탈출하지 못 하도록 막는 게 그들이 취한 행동의 전부였다.
서울과 경기지역민에겐 지옥이었으나, 그땐 나름 현명한 선택이었고, 전국으로 감염이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이들은 많았다.
약간의 도움이나 원조가 오긴 했으나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 속에서 어린 두 사람이 떠돌아다니다 마주친 것이 바로 교단이었다.
“교단에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얻었습니다.”
박선우의 눈이 예배당을 넘어 어딘가를 쳐다보는 듯했다.
“우리는 교리에 따라 생활하고, 교단을 위해 일했죠. 이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요.”
‘천국의 문 교단은 저 망할 태풍 같은 것이 천의 문이라 주장한다고 듣긴 했는데….’
석민은 그의 눈이 어딜 향하는지 알 것 같았다.
교단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은 세뇌에 가까워 보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더더욱 그러했고.
‘오히려 저렇게 절박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교단이 잘못된 것이겠지.’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해성사 중인 박선우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원래의 목적은 드래곤하트가 아니라, 그 문으로 다가갈 길을 찾는 것이 목표였던 거군?”
“…네, 맞습니다.”
이쯤 되니, 박선우도 석민이 그 정도는 추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태풍의 눈이라 부르지만, 우리들은 ‘문’이라고 부르죠. 저희가 알기론 왕십리역 쪽 상공에 있습니다. 여기서 차를 타고 간다면, 길이 안 막힌다면….”
라고 말하더니, 박선우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젠 길이 막힐 일이 없겠죠. 라며.
“지금이라면 고작 20분 남짓 안 걸리는 곳인데….”
그는 원한에 사무친 어조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같이 천국으로 당도했다면….”
그가 거의 울려고 하자, 석민은 짜증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그만, 애도는 나중에 살아나간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그만하지. 괜히 사기만 떨어진다고.”
그 말에 박선우는 험상궂게 인상을 쓰며 울음을 참으려 했으나, 결국 몇 방울 흐르는 눈물을 막진 못했다.
석민은 못 본 척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 천사에 대해 이야기해 봐. 처음에 그걸 보고 혼이 나간 것을 보니, 천사라는 게 진짜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의 교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천사께서 강림하여 자신에게 권능을 내려주셨다고. 그래서 사람들을 이끌어 문을 열게 인도하라고 하셨다고. 저는 천사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교주님이 가지신 권능은 진짭니다.”
‘천사를 보지 못했다’는 말에 박선우도 밖의 저것을 천사로 보진 않는 것 같았다.
그 점은 다행이었으나, 교단, 그리고 나아가 천사의 존재나 권능에 대한 박선우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석민은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받은 사명, ‘거짓된 전령’이 혹시 천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결국 교주가 보았다는 그 천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군.”
석민의 말에 박선우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입만 열었다 닫았다. 그 사이, 석민은 자신의 생각에 빠졌다.
‘만약에 그게 정말 천사가 아니라면, 그게 거짓된 전령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석민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박선우는 고개를 내리 깐 채,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이선재에 대해 말을 이었다.
“…선재는 저보다도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실제론 박선우보다 이선재가 더 신실한 신도는 아니었으나, 이미 죽은 이선재는 박선우의 머릿속에서 미화되어 가는 듯했다.
“비참해진 현실은 모두를 힘들게 했지만, 그 친구는 특히 더 많이 힘들어했지요. 그 친구는 제법 부유한 집에서 풍족하게 자랐으니까요. 그 후의 가난과 배고픔이 더 힘들게 다가왔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