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62화]
‘저것이… 천사라고?’
놀란 그는 속으로 그리 반문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천사와 너무나도 다른, 흉측한 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저것이 천사가 맞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감염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내려놓고 있던 총을 저도 모르게 잡았다.
‘진정, 저 흉측한 것이 신의 사자란 말인가?’
그의 신실하고 맹목적인 믿음의 한구석에 의심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박선우가 놀라고 있는 동안, 이선재는 반대로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교리에 등장했던 천사가 진짜 강림할 수 있다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지라, 처음 본 모습에 무한한 영광을 느끼며 종교적인 카타르시스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에겐 신의 사자의 겉모습은 중요치 않았다.
아무리 흉측한들, 어쨌든 날개를 달고 있지 않은가?
방금 전의 공격은 불신자인 석민을 공격하기 위함이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선재의 흠모하는 눈길이 천사의 날개를 훑었다.
본체는 비록 흉측했으나, 날개만큼은 비단결같이 고운 데다가, 이 어두운 구렁텅이 속에서 홀로 밝게 빛이 나는 것처럼 환했다.
몸을 돌린 ‘천사’가 두 장의 커다란 날개를 펼쳤다.
족히 50미터는 넘을 것 같은 크기였다. 바람에 부대끼며 새하얀 깃털들이 흩날렸다.
이선재의 손가락이 석민이 서 있는 방향을 향해 뻗어왔다.
“아아, 저는 불신자인 저자와 다르게 절대로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총을 내려두고 그는 천천히 그것에게 걸어갔다.
“형제님! 멈추십시오!”
이선재의 목소리에 반응한 그 괴물이 이선재가 있는 방향으로 창을 겨누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선재는 몽롱한 얼굴로 그것 앞으로 걸어 나갔다.
“부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드디어 때가 된 것입니까?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까?”
그는 헬멧을 벗고, 발라크라바도 빼서 바닥으로 던졌다.
그는 환희에 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힘든 시련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힘든 고통을 받았나이다. 우리의 영혼을 거둬 천국으로,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신의 품에, 낙원에서 영원히 편히 쉬게 해주….”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천사의 창에 복부가 꿰뚫린 이선재의 얼굴이 희열에서 점점 경악과 고통으로 물들어갔다.
“구워ㄴ… 은… 아, 으…….”
믿음에서 해방된 그의 몸부림은 처절했다. 그러나 2미터가 넘는 창날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그것은 창의 끝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완전히 관통된 이선재의 청규(淸竅)2)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아, 으……. 으아악!”
믿음을 배신당한 자의 마지막 저항이 시작됐다. 그러나 거대한 고통과 비통함에 단발마의 비명만이 남기질 못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과 머리가 축 늘어져 바람에 흔들렸다.
검붉은 피가 창대를 따라 흘러내렸다.
“이런, 이럴 수는….”
박선우는 놀라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괴물이 창을 좌에서 우로 크게 휘두르자, 이선재의 시체가 힘없이 창에 부대끼더니, 빠져나와 감염자들의 시체 사이로 내던져졌다.
석민은 섬광탄과 수류탄을 꺼내 들고 안전핀을 뽑았다.
“도망쳐!”
석민은 외치면서 섬광탄과 수류탄을 괴물에게 던졌다.
석민이 고개를 돌리자, 멍하니 서 있는 박선우가 보였다. 결국 석민은 방향을 돌려 박선우의 허리를 붙잡고 바닥을 굴렀다.
방금 전까지 박선우의 신체가 있던 곳에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창날이 지나갔다.
“끼에에에엑!”
섬광탄과 수류탄이 터지면서 직격으로 맞은 괴물이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신체 곳곳이 파편을 맞고서 너덜거렸으나,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섬광탄으로 귀가 먹었을 것이라 판단한 석민은 박선우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예배당으로 뛰어, 이 새끼야.”
그는 박선우를 앞장세운 채 연사로 총을 쐈다.
괴물은 계속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양옆으로 펼쳐졌던 날개가 크게 접히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석민은 연사로 빈 탄창을 빠르게 갈며 쉼 없이 쐈다. 그때, 날개에 맞은 총알이 관통되지 않은 채 탄두가 후드득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저게 뭐야?”
다시 동나버린 탄환에 석민이 당황하며 새 탄창으로 갈려는 순간, 괴물의 날개가 펼쳐지는 것 같더니, 어느새 창날이 석민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런 젠….”
그 순간, 총성과 함께 괴물의 흉갑에 탄환이 박혔다. 그 충격으로 몇 발자국 뒤로 밀려난 덕분에 석민은 자신의 왼쪽에서부터 휘둘러지는 창날을 피할 수 있었다.
기괴하고 음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괴물 본체가 아닌 기생하는 듯 보이는 괴물의 또 다른 대가리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석민은 뒤로 물러서 탄창을 갈아 끼웠다.
방금 전의 사격은 아영의 솜씨가 분명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박선우가 자신의 소총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것이 다시 날개를 오므려 몸을 방어했다.
7.62mm의 강력한 나토탄인데도 저 ‘천사’에겐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했다.
석민 날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그것의 발을 노리며 총을 쏴댔는데, 괴물은 그것을 눈치 챘는지 몸을 숙여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깃털인데 총알을 막아낸다고?’
저걸 처리 못 하면 자신이 죽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수류탄! 수류탄을 던져!”
석민은 괴물과 거리를 띄우면서 박선우에게 소리쳤다.
섬광탄에 귀가 먹었던 박선우는 애매한 표정을 짓다가, 입 모양으로 대충 알아들었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투척무기들을 던져댔다.
그중에는 연막탄도 있었다.
백린 연막탄이라 효과는 있겠지만, 연막의 범위 안에는 석민,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선우는 진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일단 가진 걸 무작정 다 던진 것이다.
“야, 이 등신아!”
석민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연막을 피하기 위해 급히 움직였다.
“체인지!”
그 사이, 장전을 마친 박선우가 소리치며 사격을 가했다. 총신이 순식간에 달아오르고 하얀 수증기가 만들어졌다.
석민은 그를 노려보며, 연막탄 한 개를 제외한 나머지 투척무기들을 던졌다.
2개의 비명소리가 합창하듯 울렸고, 연막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 사이 석민이 던진 수류탄과 섬광탄이 다시 폭발했다.
괴성은 폭발 소리에 묻혔다.
석민은 먹먹해지는 귀를 애써 참으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순식간에 가지고 있던 탄환 대부분이 사용되었다. 남은 거라곤 고작 탄창 3개, 60발이 전부였다.
“해치운 건가요?”
조심스럽게 박선우가 입을 연 그 순간, 연기 속에서 두 장의 커다란 날개가 펴지더니, 날갯짓을 시작했다.
백린 연막탄 연기가 날갯짓에 따라 박선우와 석민을 향해 날아오자, 기겁한 그들은 몸을 돌려 연기의 반대편으로 뛰었다.
그들은 숨을 참으며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연기가 빠르게 흩어져, 건물 안까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연기가 사라지고 등장한 괴물의 모습은 백린탄에 몸이 타들어 가고, 수류탄의 폭풍과 화염, 파편을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멀쩡하게 서 있었다.
건재하다기보다는 죽은 시체가 서 있는 듯 보였다.
날갯짓 한 번에 왼쪽 날개가 썩은 나무처럼 우드득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왼쪽 팔도 완전 너덜너덜한 상태였으나, 오른쪽 2개의 팔은 창을 꽉 쥐고 있었으며, 흰 골격이 드러난 두 다리 역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괴물은 마치 마지막 힘을 짜내듯,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석민과 박선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그것의 다리를 노리고 사격을 가했다.
뼈가 드러난 다리가 총탄에 맞아 박살나면서 달려오던 괴물이 앞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오른쪽 날개가 앞으로 접히면서 석민과 박선우가 쏘는 총탄들을 막아냈다.
다리가 부러져 쓰러진 채로도 기어서 다가오는 그것을 보며 공포에 질린 그들은 있는 대로 쏴댔다.
마지막 탄창에 있던 탄환들이 빠르게 소비되고, 노리쇠가 후퇴고정이 되었음에도 석민은 알아채지 못한 채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탄약, 탄약!”
그 말에 박선우는 자신의 여분 탄창을 던졌다. 공중에서 그것을 낚아챈 석민은 탄창 멈치를 눌러, 빈 탄창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노리쇠 멈치를 눌러 노리쇠를 전지시켰다.
그러나 괴물이 한 발 더 빨랐다.
날개를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자, 사격으로는 막기 벅찬 것이었다. 그들은 몸을 돌려 예배당 안으로 달려가 문을 닫으려 했다.
그때, 문틈 사이로 창날이 파고들었다.
“이런 세상에!”
“밀어! 힘껏 밀어!”
석민은 비집고 들어오려는 괴물의 머리를 노리고 총을 쐈다.
두개골 위쪽이 박살났건만, 여전히 죽지 않은 채 괴성을 질러댔다.
검게 쪼그라든 혀와 더러운 이빨을 1미터도 안 떨어진 거리에서 실시간 감상 중이었다. 심지어 썩은 내는 덤이었다.
기겁한 두 사람은 온몸으로 밀며 문을 닫았고, 재빠르게 잠금장치를 걸었다.
문이 눈에 보일 정도로 요동쳤다.
몇 번 더 충격을 받으면 박살 날 것 같았다.
문을 지탱하던 경첩들이 망가지면서 끔찍한 쇳소리를 만들어냈다.
“비켜!”
석민은 박선우가 예배당의 기다란 의자들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단숨에 의자 두 개를 문가에 기울여 놓았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문을 두 번째로 벌어진 충격을 버텼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무언가 더 무거운 것이 필요했다.
석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연단 좌측에 있는 그랜드피아노였다.
“막고 있어 봐!”
“무엇을 하려고….”
박선우가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문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석민은 짐승 같은 속도로 달려가 그랜드피아노를 잡아 밀기 시작했다.
예배당 특성상, 기다란 의자와 좁은 통로들 때문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피아노를 밀어 옮기는 게 쉽진 않았다. 의자들까지 딸려 밀려왔기에 더 힘들었다. 아마 스탯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워놓았던 의자 끝에 그랜드피아노가 닿자, 피아노를 그대로 잡아 올려 수직으로 세워서 밀었다.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자 피아노의 다리가 부러지면서 몸체가 바닥에 부딪혔고, 속의 현들이 망가지면서 불규칙한 소리들을 쏟아냈다.
거의 500kg쯤 나가는 거대한 피아노가 문을 가로막았다.
여전히 문이 충격이 가해졌으나, 흔들림은 잦아들었다.
석민과 박선우는 불안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문을 막았다고는 하나, 이미 경첩들이 망가지고 손상된 문이 언제 박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밖에서 총성이 울리는가 싶더니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영인가?’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석민의 안전이 확인되자, 아영은 자신의 저격총으로 괴물을 조준했다.
계속해서 문을 노리고 몸을 부딪치는 괴물이 언제 문을 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괴물의 주의를 끌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면 대단히 위험한 짓이었지만, 상대는 머리도 깨진데다가, 한쪽 다리도 부서진 상태였다. 어느 정도 승산은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