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61화 (61/226)

[게이트 오브 서울 61화]

“가죽도 제대로 가르질 못했네? 칼질 안 해봤어?”

“그게, 이건 처음이라서요.”

“아니, 드래곤하트를 모으려고 온 애들이 그걸 못 해?”

석민의 당황한 목소리에 박선우와 이선재가 서로 변명을 늘어놨다.

생각을 해보니 이들은 애초에 서울에 처음 온 자들이었다.

교단에서 그렇게 훈련을 했음에도, 막상 드래곤하트 채취하는 법조차 모르다니.

석민은 골이 아파왔다.

‘준비성이 너무 없잖아.’

그는 그리 생각하면서 직접 채취하기 위해 팔뚝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일단 가까이 와봐.”

봐야 나중엔 니들이 하지.

석민은 한숨처럼 중얼거리며 직접 시험을 보이기 시작했다.

석민의 단검 끝이 비늘 아래를 겨누었다.

“드레이크들을 비롯해 괴수들은 대부분 이 비늘 아래쪽이 약점이야.”

그는 비늘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찔러 넣었다.

마치 생굴을 따듯이 찔러 넣고 비틀자 저쩍- 소리와 함께 비늘이 위로 벗겨졌다.

“이놈들은 대형 파충류처럼 생겼지만, 비늘은 천산갑의 그것과 가까워.”

비늘이 위로 벗겨지자 하얀 근막같이 얇은 지방과 붉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놈들은 지방이 별로 없어서 바로 근육이 드러난다.”

앙상하게 마른 놈들이라, 그 뒤로 살을 가르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살을 가르면 나머진 쉬워. 그냥 고기 자른다 생각하면 돼.”

비늘에 막히지 않으니까 쉽지.

석민은 땀이 코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팔이 들어갈 수 있게 살을 가른 후, 팔을 집어넣었다.

“갈비뼈 사이가 넓기 때문에, 팔은 충분히 들어가. 드래곤하트의 위치는 사람의 심장이 있는 곳과 같지.”

그는 이리저리 손을 휘젓다가 무언가 보석처럼 단단한 것이 잡히자, 단번에 그것을 잡아당겼다.

긴 타원형에 연분홍빛을 띠는 거대한 보석이 그의 손에 잡혀 나왔다.

의외로 손과 팔엔 피가 묻어나오지 않았다.

본래 드레이크들은 피가 많은 편이 아닌데다가, 죽은 지 하루가 지났고, 산화된 숯처럼 하얗게 바스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감탄 어린 탄성이 나왔다.

“자, 봤지? 따라 해 봐.”

“네.”

“예.”

그들이 드레이크 시체 앞에 자리 잡기 시작하자 석민은 예배당에서 발견했던 물티슈를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용케도 처음치고 제법 그럴싸하게 했네.’

팔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기와 닿은 불순물들이 얼어 바스라 졌다.

석민은 팔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유독 서울이 고요했다.

평소 배경음처럼 따라붙던 괴수들의 포효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심지어 바람이 부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석민은 이상함에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석민은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그때 석민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 건물 외벽에 매달려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무언가였다. 마치 화석처럼 잔뜩 굳은 회색빛의 외견을 띠고 있었다.

석민은 건물의 파편이나 일부라 생각하고 지나쳤으나, 그것은 석민과 그 일행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가 움직이고 있었다.

석민이 주변을 다 살펴 갈 때쯤, 작업을 마친 박선우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모습에, 석민의 시선도 절로 칼을 향했다.

군용대검처럼 도신이 검게 칠해져 있는 단검은 찌르기 매우 좋아 보였다. 날도 별로 상해있지 않았고, 칼날도 잘 갈려있어서, 그에 비하니 자신의 군용대검이 매우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석민은 빠르게 눈을 돌리고는 자신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할 말을 찾아 입을 열었다.

“드래곤하트에 교회에서 발견한 귀금속들이면 꽤나 횡재한 것이군.”

석민의 말에 박선우가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드래곤하트로 가득 찬 봉지를 바라보았다.

“네, 교단에서도 많이 기뻐하겠지요.”

“그럼, 이제 다시 움직여 볼까.”

그들은 통을 고쳐 잡고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아파트 단지로 걸어갔다.

그들은 여전히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

‘왜 아직 발견을 못 한 거야?’

그것을 지켜보던 아영은 속이 탈 지경이 되었다.

그녀가 있는 아파트 건물에 그 무언가가 ‘입주’했다. 그것이 언제부터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초로 그 존재를 인식한 것은 그녀가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위층에 있는 그것의 불규칙한 거친 숨소리가 아영이 있는 곳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어떤 존재인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지만, 대단히 위험한 놈이란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집 안에 있던 손거울을 이용해 녀석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정확하게 그것을 확인했을 땐 소스라치게 놀라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것은 석민과 일행이 있던 교회 방향을 향해 비통한 울음소리를 뿜어내더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교회만을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소리만으로도 들킬 것이라고 그녀의 본능이 말했기에, 그녀는 속이 타들어 가면서도 조용히 상황만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석민의 일행이 아파트 단지로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 있으면 잘 보일 텐데.’

결국 조급함에 참다못한 아영은 휴대폰을 꺼내 무음기능을 설정한 후, 최대한 그것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라이트 어플로 빛을 만들어 석민 쪽으로 조준하여 손가락으로 가렸다가 보이게 하는 것을 반복하여 반짝반짝거리게 만들었다.

이게 현재로서는 최대한 석민의 눈에 띄게 할 수 있는, 자신의 최선이었다.

하늘 가득한 구름 덕분에 날씨는 항상 어둑했기 때문에 이목을 끌 순 있을 것이다.

아영은 등 뒤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최대한 기척을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민감한 그것이라면 느낄지도 모른다.

다행히 석민은 알아챘는지 발걸음을 멈칫거리더니, 아영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 순간, 창문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영은 급히 몸을 숙여 숨겼다.

그녀는 창가에 비치는 모습에 얼른 입을 막았다.

아까도 보았지만, 그것의 모습은 너무나도 흉측했다. 그녀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비명을 삼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다행스레 그것은 아영의 인기척을 정확하게 감지하진 못했는지,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으려 했다.

썩어문드러진 코가 아영이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가고, 이젠 뻥-뚫린 새까만 구멍 하나만이 보였다.

몇 번 더 창가를 왔다 갔다 하며 냄새를 맡고 살펴보는 듯 하던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했는지, 머리를 도로 밖으로 꺼낸 뒤 아파트 외벽을 타고 어디론가 기어갔다.

아영은 숨도 최대한 쉬지 않으며 가만히 있었다.

꿈에서라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끔찍한 형상이었다. 심지어 그것의 코에서 숨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썩은 내가 진동했다.

그것은 감염자들과 같이 살아있는 시체처럼 보였다.

그녀는 얼른 석민 일행이 그것을 발견하길 바랐다.

***

“음? 뭐지?”

석민은 아파트 단지에서 가늘게 뻗어오는 빛을 보고 처음엔 스코프의 렌즈가 반사된 것이라 생각했다. 아영이 자신의 일행을 관찰하느라 생긴 반사광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몇 년째 암흑과도 같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곳이었다. 반사광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빛이 나오는 곳을 보았다.

반사광이 아니라, 라이트 불빛이었다.

‘근데 뭐하러….’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높아지고, 그제야 아파트에 매달린 그것을 발견했다.

“오, 시발… 저게… 뭐야? 아니! 시발, 저게 뭐야?”

석민은 아파트 외벽에 붙어있는 그 기괴한 생물체에 얼이 빠졌다. 석민의 외침에 따라 시선을 올리던 박선우와 이선재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3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으며, 인간의 형상을 하고서, 한 쌍의 흰 날개를 등에 달고 있었다.

그러나 석민은 그것이 절대 천사일 거라 생각지 않았다.

그것은 밑단이 다 해진, 마치 옛 그리스 사람이 입을 법한 옷을 입고 가슴엔 은색 흉갑을 차고 있었고, 손에는 10미터 정도 되는 긴 창을 쥐고 있었다.

복장만 보면 마치 천사 같으나, 그것의 피부는 감염자처럼 바싹 말라서 잿빛을 띠고 있었으며, 머리 하나와 팔다리가 한 쌍씩 더 붙어있었다.

천사의 몸에서 오른쪽 쇄골 방향으로 감염자의 형상과도 같은 머리가, 오른쪽 겨드랑이와 왼쪽 가슴에 팔이 하나씩 더, 양다리는 천사의 배 위에 흉갑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인간의 모습인데도 너무나 기괴하였다.

그것은 고개와 몸이 따로 움직였다. 그것은 불빛을 눈치 채고 아파트 창가를 살피는 듯했다.

“천사이신가! 천사께서 강림하신 거야!”

“오오!”

석민이 위협을 느끼며 총을 들어 그것을 조준하는 사이, 박선우와 이선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니들은 저게 천사로 보여?!”

그들의 시야론 그것이 자세히 보이지 않으니, 멀리서 천사의 날개만 우선적으로 보고 그러는 듯했다.

그 순간, 석민의 눈앞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버림받은 오르바’와 조우했습니다.]

[새로운 기능, ‘헌팅 트로피’가 생성되었습니다.]

그 순간, 아영의 눈앞에도 새로운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버림받은 오르바’를 처치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그들의 소리를 들었는지, 그 ‘천사’가 고개를 돌렸다.

석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자시고가 없었다. 텅 빈 눈구멍으로 정확히 자신들을 쳐다본 그것은 이미 임전태세였다.

석민은 근처 폐차로 가서 몸을 은폐하고 총을 조준했다.

거리는 대충 200미터.

그는 바로 방아쇠를 당기고 싶었으나, 그랬을 시 박선우와 이선재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됐다.

그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는 그들을 보았다.

“진짜, 계신 거였어.”

박선우는 아예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저것의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천사’의 실존 증거물로 남겨두는 것이 분명했다.

“이 멍청한 것들아!”

석민은 어이가 없어서 소리치고 말았다.

“망원경으로 저거 면상을 보라고, 니들 눈엔 저게 천사로 보이냐!?”

하지만, 그들은 자기 기도에 빠져 석민의 말은 전혀 듣지 않았다.

결국 석민은 그들을 설득하길 포기하고 자신의 조준경에 배율을 올려 그것을 조준했다.

그것은 창을 고쳐 잡고는 이내 돌격 자세를 취한 뒤 발돋움을 하더니,

“피해!”

석민이 소리치며 사격을 가했다.

갑자기 울리는 총성에 기도에 빠져있던 박선우와 이선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창을 들고서 찌를 듯이 날아오는 ‘천사’의 모습에 당황하는 듯했다.

“신이시여!”

그딴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도망이나 가!!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는 연사를 갈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천사는 총을 맞았음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계속 사격을 가한 덕분인지, 천사의 창이 박선우를 꿰뚫지 못하고 빗겨 바닥에 꽂혔다.

“신의 전령이여!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

그것을 본 박선우가 놀라 소리쳤다.

“우리는 신의 종이자, 신도입니다. 부디….”

박선우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드디어 그것의 상태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