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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60화 (60/226)

[게이트 오브 서울 60화]

폐허 위에 있는 뒤틀린 천사

그날 밤, 일찍 잠에 든 석민은 꿈을 꾸었다.

사태가 벌어지기 전 서울.

봄이 찾아와 햇볕은 따스했으나, 아직 겨울의 찬 공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어느 날.

그는 어느 호텔의 로비 밖에 서 있었다.

호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로수에는 벚꽃 나무들로 가득했고, 봄바람에 흔들리는 벚꽃이 잎을 흩날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평소라면 근처에 오지도 않을 곳을, 봄철에만 시즌으로 열리는 딸기 뷔페를 위해 온 참이었다.

어제저녁부터 이 뷔페를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던 터라 살살 아파오는 배를 매만지며,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떨어지는 벚꽃 잎을 눈으로 쫓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왼팔을 끌어안았다.

“오빠, 나 기다렸어?”

석민이 시선을 돌렸으나, 동생의 정수리와 그녀가 입은 교복만 보였다.

키가 자신보다 한참 작은 그녀는, 자신의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아니야, 오래 안 기다렸어.”

그날은 동생의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이었다.

동생의 팔을 풀지 않은 채, 그들은 로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진 로비와 고급스러운 바닥을 살피며 뷔페가 열리기로 예정된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석민은 꿈임을 인지하고 동생의 얼굴을 보고자 노력했으나, 꿈속의 그는 로비만을 둘러볼 뿐이었다.

“여기 얼마나 비싼 거야? 우리가 와도 되는 곳이야?”

“얼마 안 해. 이벤트 중이라 가격이 싼데다가, 할인쿠폰 받아서 산 거야.”

어디선가 새큼한 딸기향이 퍼진다 싶었을 때, 그랜드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로비였기에 그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신과 이 장소가 벽으로 가로막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석민은 여동생과 단둘이 살았고, 집안 형편이 넉넉했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가 미묘한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사이, 뷔페 입장시간이 되었다. 제각기 서 있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뷔페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너 딸기 좋아하잖아. 본전은 뽑아야 한다?”

“아, 알아. 안다고.”

다이어트에 한참 민감한 나이대인 만큼, 여동생은 많이 먹지 않는 편이었다.

“최대한 배차는 걸로 먹고!”

“알았으니까 그만해. 사람들이 듣겠어. 쪽팔리잖아.”

동생은 고개를 휙 돌리면서 신경질적으로 팔짱을 풀고는, 잔뜩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면의 자아가 동생의 이름을 부르라고 소리쳤다.

‘불러! 말하라고! 제발! 그래!’

“…현정아.”

얼굴이 상기되고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단말마였다.

“왜?”

겨우 동생을 불렀으나, 그녀는 여전히 삐진 채,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다.

숱 많은 단발머리의 작은 머리가 돌려져 있으니, 그리움과 애틋함에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졌다.

“여기 오니까 좋아?”

“그럼.”

여전히 동생의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상기된 귓바퀴를 보며 그녀의 기분이 매우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그의 팔을 감싸며 신이나 발을 동동 굴리기까지 했다.

평소 기분 좋을 때, 자신에게만 보이는 아양이었다.

“얼마나 좋아?”

“아주 많이!”

형제나 자매, 혹은 남매들끼리 사이가 안 좋다고들 하지만, 자신과 동생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사이가 틀어진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아까처럼 작은 토라짐 정도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맞벌이였기 때문에 자신이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가며 거의 키우다시피 돌본 동생이었다.

이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나, 1학년이었나.

‘벌써 이렇게 컸구나.’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느끼면서도, 잘 자란 동생의 모습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진짜 눈물이라도 흘리듯 심장이 뻐근했다.

“잠깐 오빠 좀 봐봐.”

“왜에?”

마치 보여주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동생이, 자신의 손에 잡혀 얼굴을 든 순간, 석민의 자아가 크게 비명을 질렀다. 숨이 멎고 심장이 터질 듯 아파왔다.

그가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말라비틀어진 잿빛 피부에, 휑한 눈구멍만 남아 있었다.

감염자의 모습이었다.

“아니야! 이럴 수 없어! 안 돼!”

“왜? 뭐가?”

군데군데 썩어 떨어져 나간 입이, 미소 짓는 것처럼 뒤틀려 올라갔다.

“왜 그러는데 오빠? 오빠….”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던 그는, 동생의 목소리 대신 어느새 들려오기 시작한 여러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점점 뜨거워져 가는 주변의 온도에 고개를 들었다.

주변은 불타오르던 그 날의 시가지로 바뀌어있었다. 사방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럴 수가.”

“오빠.”

그는 떨리는 눈동자로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쫓아갔다.

여전히 감염자의 모습을 한 여동생과 마주치자, 숨이 멎는 듯했다.

“가지 마.”

여동생은 손을 내밀며 절박하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얗고 고왔던 손이 감염자의 그것처럼 앙상하게 바짝 말라 있었다.

“날 두고 가지 마.”

“그래, 안 두고 가.”

내면의 자아가 원하는 대로, 꿈속의 자신이 여동생에게 다가갔다.

“이번엔 절대로 두고 가지 않을게.”

그는 감염자가 된 자신의 여동생을 끌어안기 위해 양팔을 벌렸다. 그때, 시야가 검게 변하면서 여동생이 사라져 버렸다.

품 안에 그립던 온기가 채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는 덜덜 떨리는 텅 빈 팔을 바라보다가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지옥도 같은 그 날의 시가지였다.

그 속에 자신의 동생만 없었다.

슬픔과 허무함, 공허함이 밀려나고 분노와 억울함이 자리 잡았다.

“여기서도! 여기서도! 내 뜻대로 못 한단 말인가!?”

그가 몸부림치고 피 토하며 비탄의 비명을 지르는 순간, 누군가 그의 몸을 흔들었다.

잔뜩 분노한 그는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누군가를 팔꿈치로 쳐낸 후, 상대의 몸이 뒤로 기울기 무섭게 왼쪽 팔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 그대로 내리찍었다.

칼이 상대의 목에 닿기 직전에 눈을 뜬 석민은 흐릿한 눈동자로 상대를 똑바로 보고자 노력했다.

눈앞엔, 숨을 멈춘 채 칼날을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는 박선우가 있었다. 그 옆에 당황한 상태로 굳어있는 이선재도 보였다.

잔뜩 흥분했던 석민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마치 전속력으로 몇 십 킬로미터를 뛴 사람처럼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실례했군.”

석민은 몸을 뒤로 물리며 단검을 도로 칼집에 넣었다.

“턱은 괜찮나?”

“괜, 찮습니다.”

석민이 내민 손을 잡고 상체를 일으킨 박선우는, 석민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를 따라 이선재도 착석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아 도와주려다 갑작스레 공격만 받고 죽을 뻔했기에, 박선우도 얼떨떨하면서 흥분한 상태로 보였다. 박선우는 잠시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시간이 다 된데다가 몸부림치시며 악몽을 꾸시고 있어서….”

“못 볼꼴을 보았군.”

석민은 자신의 얼굴에 흥건한,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를 소매로 대충 닦았다.

아직도 꿈이 생생해 마음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내 동생, 현정아.’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낮게 숨을 내쉬며 최대한 꿈을 털어버리려 노력했다.

그 사이 박선우가 일어서더니 초가 놓여있던 곳으로 걸어갔다. 밤새 촛불들이 전부 꺼졌던 모양이다. 예배당 내부가 어두컴컴했다.

박선우가 새로 초를 켜는 모습이 석민의 눈에 비췄다.

그는 크게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6시군.”

좀 정신을 차렸는지, 예전처럼 냉기 철철 흐르는 목소리가 석민에게서 흘러나왔다. 박선우는 그도 결국 사람이네, 라고 생각했다.

“깨우기 전에 잠깐 밖의 소리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딱히 들리는 소리는 없더군요. 고요합니다.”

“음-.”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밖에 괴수들이나 감염자들이 없으면 나가기 좋겠네.”

몸에 약간의 온기가 돌 때, 스트레칭을 멈추고 석민은 자신의 옆에 세워두었던 총을 잡았다. 찬 공기에 차가워진 금속과 맞닿으니 뼛속까지 시리는 느낌이었다.

석민은 그사이, 총과 손가락이 얼어붙어 있는 것을 살살 떼어내고는 장갑을 꼈다.

“촛불은 많이 켤 필요 없어.”

그는 한 번에 15개씩 불을 피우려고 하는 이선재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들은 어제 먹다 남은 수프를 데워서 먹은 직후,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했다.

약실에 탄환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석민은 문가로 가서 귀를 대보았다. 방음문이기 때문에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지만, 혹시 어제 들었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확인 차였다.

그들은 문을 보강으로 막아두었던 예배당 의자를 치웠다.

석민의 수신호에 박선우와 이선재는 문을 조준했고, 석민은 한 손으로 총을 전방으로 겨눈 채, 문을 살며시 열었다.

“클리어.”

예배당 밖을 확인한 석민은 버려진 쓰레기마냥 사방으로 쓰러져 있는 감염자들을 보았다.

“역시 괴수가 있었군.”

석민은 온몸이 난도질 된 괴수의 시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숫자를 보건데 8마리나 되었다.

8마리의 드레이크 시체가 다른 괴수들에게 뜯어 먹히지 않고 멀쩡하게 있는 것이었다.

“구역확보 하지.”

드레이크의 시체를 확인한 박선우는 반색을 했고, 이선재는 침을 삼켰다.

“짐을 찾기 전에 이것들을 전부 채취하고 가자.”

귀한 드래곤하트를 8개나 거저 얻을 기회였기에 그들은 짐을 찾는 것보다 이것들을 먼저 얻기로 했다.

공기와 오래 접촉을 하면 기화하듯이 사라져버리는 특성이 있긴 하지만, 봉지 같은 것만 있어도 어느 정도 사라지는 특성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내가 엄호할 테니까 준비해.”

석민의 말에 박선우와 이선재는 조금 긴장된 얼굴로 날카롭게 간 자신의 대검을 꺼내 들었다.

괴수들과 감염자들의 시체는 대부분 건물 안이나 건물 근방에 있었기 때문에 따로 옮길 필요가 없었고, 유사시엔 주변의 이목을 끌지 않고 숨을 수 있었기에 그들은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석민은 드레이크를 직접 해체 본 적이 없었다.

제2차 수복작전 땐, 보통 같이 활동하던 러시아군인들이 처리해왔었다. 자신은 그들 옆에서 움직임을 지켜보긴 했지만, 직접 한 경험은 없었기에, 이번에도 가만히 지켜만 보려고 했다.

특히 박선우와 이선재 앞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이미 아침에 악몽을 꾸면서 그들에게 약점을 잡힌 기분이었다.

하지만 박선우와 이선재는 그보다 더 경험이 미흡했고, 해체를 본 적도 없었기에 칼만 든 채 움직이지 못했다.

석민은 살짝 그들을 흘겨본 뒤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뭐야? 왜들 이리 굼떠?”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드래곤하트 하나를 못 꺼낸 그들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것은 대답보다 원망 섞인 시선이었다. 석민은 살짝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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