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59화 (59/226)

[게이트 오브 서울 59화]

“네, 보급품을 도로 가지고 오는 것을 우선으로 하지요.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보건데 감염자들은 전멸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말에 동의하듯 석민과 이선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늘은 만일을 대비해서 하루 정도는 여기에 있도록 하지. 싸움이 났으니 분명 피가 뿌려졌을 테고, 굶주린 괴수들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거든. 내일 아침에 해가 뜨는 대로 움직이자고.”

이제 겨우 오후 3시를 막 지났을 뿐이었지만, 이대로 움직이기엔 리스크가 컸기에 일단 이곳에서 쉬기로 합의를 보았다.

예배당은 밖보단 상대적으로 훈훈했다.

많은 개수의 촛불이 켜진 채 통풍이 잘 안 되니, 밖에 비하면 당연히 따듯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쌀쌀했다.

그들은 방한용 내의와 방한 부츠, 그 외에 군용 파카 등으로 완전무장한 상태였음에도 몸이 덜덜 떨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유통기한이 아직 남아있는 통조림을 찾아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주변의 의자를 부서 땔감을 대신했고, 촛불을 불을 피웠다.

완두콩과 옥수수, 고기와 수프 통조림을 따서 섞어 끓였다.

석민은 더러운 숟가락을 자신의 옷에 대충 닦고는 수프를 떠서 맛보았다.

오래된 쾨쾨한 맛이 살짝 풍겼으나 못 먹을 정돈 아니었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자 몸의 떨림이 잦아졌다.

“여기를 우리의 거점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선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류하던 이선재가 불쑥 말을 꺼냈다.

먹을 수 없는 게 제법 걸러졌음에도 3명이서 4달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이 있었다.

주변을 쓱 훑어보던 석민은 이들이 아닌, 아영과 활동할 때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보글보글 끓는 수프에 다시 시선을 돌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밥부터 먹자.”

***

석민이 서울로 들어올 때, 아파트 단지의 10층의 어느 집에 들어간 아영은 추위에 몸을 떨며 그들을 기다렸다.

GPS 기능 덕분에, 석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던 그녀는, 사전에 받은 정보대로 그들이 올 법한 위치에 미리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덜덜 떠는 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여분의 대형 배터리를 2개 챙겨오긴 했지만, 추위의 영향인진 몰라도 배터리가 빠른 속도로 닳고 있었다.

아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그때, 이윽고 석민이 근방으로 다가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저격총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석민 일행이 아닌, 어디선가 나타난 한 무리의 감염자였다.

“이런, 젠장.”

석민의 영향인진 몰라도, 아영 역시 혼자 있을 때 혼잣말로 욕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감염자들은 그룹을 나누더니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영은 자신이 있는 집의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어디서 나타난 것이지?’

아영은 의문을 가진 채, 감염자들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보기엔 저것들은 평소에 알고 있던 감염자들과 달랐다. 일사불란한 움직임도 그렇고, 저렇게 그룹을 나눠 행동하는 감염자들을 그녀는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아파트에서 빠져나오는 감염자들의 손엔 무언가가 한 아름씩 들려있었다.

마치 약탈자들이 집을 뒤지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아영은 그들의 이상한 움직임에 혼란을 느꼈다.

‘감염자들이 저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영이 그것들을 지켜보는 사이, 지도 어플에서 석민의 위치를 알려주는 빨간 점이 그녀와 점점 가까워져 갔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감염자들을 바라보다가, 어떻게 해야 석민에게 위험을 알려줄 수 있을까 생각했으나,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자신이 들어와 있는 집의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아영은 몸이 굳은 채 긴장한 얼굴로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나사를 푸는 듯 한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문을 열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감염자가 문을 딸 수 있나?’

아영은 조용히, 그리고 재빨리 몸을 움직여, 현관문 앞에 부비트랩으로 크레모아를 설치한 뒤, 격발기에 연결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릿속엔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그 순간, 창밖에서 매우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큰 소리는 아니었으나, 다른 감염자들을 불러 모으기엔 충분해 보였다.

문밖에서 들리던 인기척들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들이 흘린 소리들로 판단하건대, 계단을 따라 내려간 것 같았다. 아영은 문에서 떨어져 다시 관측을 위해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석민 일행이었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느리게 움직이며 천천히 아파트 단지로 접근하고 있었다.

‘제기랄.’

감염자들은 몸을 바짝 숨긴 채, 단지 주변 곳곳에 포진하는 모양새가 마치 매복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아영은 자신의 저격총에 소음기를 장착하고, 아음속 탄환이 든 탄창을 꺼내서 장전했다.

노리쇠 소리가 저들에게 들릴까 봐, 그녀는 약간 긴장한 상태로 매우 천천히 노리쇠를 전진시키고는 장전손잡이를 원위치로 돌렸다.

위험을 석민에게 전달하고 싶었으나, 후퇴로가 없는 자신의 위치상, 자칫하면 자신의 위치가 발각될 수 있는 행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좋게 끝난다 해도, 자신의 존재 때문에 석민의 정체가 탄로 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아영이 고민하는 사이, 그들은 감염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녀는 낮은 한숨을 내뱉으며 석민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다독이고는 스코프로 그들을 수시했다.

이윽고 총격이 시작되자, 상황을 주시하던 아영도 방아쇠를 당겼다.

울려 퍼지는 총성들 속에서 총을 발사해 석민과 그 일행, 그리고 감염자들에게 들키지 않은 채 지원사격을 가했다.

석민과 일행이 사거리 근방에 있는 대형 교회로 도망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아영도 몸을 안쪽으로 숨겼다.

한숨 돌리고 있던 아영은 밖에서 소란이 멈추지 않자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주시했다. 감염자들이 아우성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높고 멀리 떨어져 있긴 하나, 스탯 덕분에 교회 내부까지 살필 수 있었다. 예배당 문은 잠겼는지, 감염자들이 몸을 부딪치며 문을 열려고 했다.

끄떡없이 버티는 문을 보면서, 아영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장갑을 벗어 언 손가락을 녹이기 위해 입김을 뿜었다.

그 순간, 아영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감염자들이 하나, 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하더니,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는 마치 경배를 올리듯이 상체를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은 매우 기괴했다.

그녀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감염자들의 행동은, 총성을 듣고 찾아온 8마리 드레이크 무리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회색빛이 감도는 비늘을 가진, 작은 무리의 개체들이었는데, 많이 여윈 상태였고, 머리와 몸에 흉측한 상처들이 많았다.

아마 큰 무리에 여기저기 치이면서 보금자리를 가지지 못해 떠도는 녀석들로, 많이 굶주린 듯 보였다.

그것들은 침을 줄줄 흘리며 감염자들에게 접근했다.

감염자들은 마치 안으로 들여보내달라는 듯이 절박하게 예배당의 벽과 문을 긁어댔다.

그러나 문이 열릴 리 만무했다.

완전히 배수진에 몰린 감염자들은 이내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몽둥이, 식칼 같은, 괴수에 비하면 매우 조잡한 무기들이었다.

괴수들이 감염자들을 향해 흉포한 괴성을 지르며,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감염자들도 맞서서 소리를 지르며 괴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형 트럭만 한 괴수가 달려들기 무섭게 한 번에 2명의 감염자를 물어뜯었다.

드레이크 무리는 앞발로 감염자들을 찢어발기고, 물어뜯으며, 무자비한 살육과 포식을 시작했다.

그에 맞서 감염자들 또한 드레이크들에게 달려들어, 사방으로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가지고 있던 칼로 찔러댔다.

드레이크 비늘은 총알도 튕겨낼 수 있었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드레이크의 비늘을 생선 비늘 벗기듯, 자란 반대 방향으로 찔러 올리면 비늘이 떴다.

감염자들은 어찌 된 것인지 그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었고, 그 약점을 노리고 찔러댔다.

고통에 놀란 드레이크 하나가 자신의 등 위로 올라탄 감염자를 꼬리로 쳐내고, 앞발을 휘둘러 찍어 내렸다.

감염자들의 수는 많았으나, 드레이크는 강력했다.

감염자들의 수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갔으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때, 감염자 중 하나가 자신을 노리는 드레이크 앞발을 야구방망이로 쳐낼 수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나, 드레이크들은 너무 오래 굶주렸고 약해져 있었다.

순간 갸우뚱 기운 드레이크의 머리를 다른 감염자가 쇠지렛대로 마구 찔러댔다.

드레이크의 머리 비늘이 뽑혀 나가듯 떨어지고, 그 고통에 드레이크가 연신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드레이크가 쓰러졌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남은 드레이크들이 놀라 몸을 뒤로 뺐지만, 감염자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감염자들은 드레이크의 다리에 들러붙어 공격하거나 움직이지 못 하도록 물고 늘어졌다.

압도하는 수로 감염자들이 드레이크를 포위하자, 결국 드레이크들도 도망을 포기하고 필사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드레이크 1마리가 쓰러질 때마다 감염자들은 무수히 쓰러졌다.

약간이 시간이 흐르고, 가장 큰 드레이크 한 마리와 12명의 감염자만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드레이크는 애꾸눈에 큰 상처들이 많은 놈이었다.

그놈은 입을 크게 벌린 채 포효하며 곰처럼 뒷다리고 버티고 일어섰다.

그 순간 감염자 3명이 쇠지렛대의 날카로운 아랫부분을 겨누며 달려들었다.

드레이크의 상체에 3개의 지렛대가 찔렸다.

휘청이며 앞으로 쓰러지는 무거운 상체의 무게와 중력의 힘이 강력한 비늘을 뚫게 도와주었다.

깊숙이 박히는 지렛대에 드레이크는 비명과 함께 앞발을 휘둘려, 3명의 감염자를 쓸어버렸다.

한 번의 휘두름에 날아가 폐차에 박힌 감염자들은 다신 움직이지 못했다.

감염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드레이크는 여전히 건재했다.

드레이크는 주둥아리로 감염자 하나의 팔을 물고 늘어졌다. 팔이 물린 감염자가 단검으로 드레이크의 눈을 찔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눈마저 찔리고 완전히 시야가 차단된 드레이크가 비명을 지르며 물고 있던 감염자를 양발로 찍어 찌부러트렸다.

드레이크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마지막 포효를 토해냈으나, 주둥이를 벌리자마자 감염자들이 가진 무기들을 마구 쑤셔 넣었다.

드레이크가 한 번씩 몸부림칠 때마다, 감염자들이 죽어 나갔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감염자가 드레이크의 입천장을 노리고 식칼을 찍어 올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드레이크가 쓰러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감염자도 양 무릎을 꿇었다.

홀린 듯이 그들의 전투를 시켜보던 아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마지막 남은 감염자는 체형을 보아 여성으로 보였다.

잇몸과 이가 훤히 보이고, 양 눈구멍이 비어있는, 산송장과도 같은 그것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표정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하늘을 원망하는 듯 보였다. 감염자는 들고 있던 자신의 무기를 버리고 양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구원을 바라는 망자의 그것과 같았다.

그러다 힘이 다했는지 높이 치켜든 팔이 떨어지더니, 고개마저 바닥을 향해 꺾였다.

그리곤 더 이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삭풍이 불어왔다.

그것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이끌려 깃발처럼 휘날리다가 신체가 힘없이 쓰러졌다.

괴수들도 모두 죽고, 감염자들도 모두 죽었다.

이 순간 아영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가 아닌, 확신에 가까운 한 가지 의문뿐이었다.

‘감염자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닐까?’

그녀는 이 사실을 나중에 석민에게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감염자들도, 괴수들도 모두 죽어버린 거리엔 어디선가 울리는 또 다른 괴수의 희미한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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