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58화]
그때, 마치 그것에 반응하듯 쿵-하고 무언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문이 파르르 떨렸다.
그 소리를 들은 박선우와 이선재는 흠칫거리며 문 쪽을 보았다. 소름 끼치는지 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들리나요?”
박선우가 잔뜩 떠는 목소리로 물었다.
“들려.”
그들에게도 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석민은 그 소리를 더 자세하게 듣기 위해 문가에 귀를 대보았다.
[문을 제발 여시오. 축복받은 이여, 그곳은 버려진 우리들의 아늑한 보금자리. 제발 문을 열어주시오.]
‘내가 홀린 건가? 이게 나한테 말하는 건가?’
그것은 마치 노래를 하는 듯했다.
[먼 훗날 그날이 올 때 저주받고 버려진 우리가 구원받은….]
자세히 들리지 않았고, 시스템창에서도 글자가 잘려 나갔다.
[노예가 되어버리고 겨우 탈출한 저주받은 우리의 안식처 문을 여시오. 축복받은 이여.]
“미치겠네. 진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어, 심적으로 그는 혼란스러웠다.
이윽고 무언가 긁는 무수한 소리가 그들을 가득 둘러쌌다. 석민은 그 소리들이 무엇인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사람의 손톱이 벽과 문을 긁는 소리였다.
[아아, 온다. 그것들이 온다.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들. 문을 열어 주시오. 축복받은 이들이여, 자상한 이들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석민은 문에서 떨어졌다. 방음이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괴성을 들을 수 있었다.
드레이크 무리의 울음소리였다.
총소리를 듣고 몰려온 것이 분명했다.
[제발, 제발 자애로우신 분들이여, 문을 여시오. 우리의 보금자리에 돌아갈 수 있게… 우리의 가느다란 삶의 연속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순간 떠오른 글자가 보이지 않았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괴성이 더욱 커졌다.
[저주받은 우리의 삶, 사지가 차갑게 늘어지고 굳어버리지 않게. 우리가 그림자 속으로 끌려가지 않게.]
무언가 부딪치고 찔리는 듯 한 소리도 났다.
교전하는 소리 같았지만 진짜 그러한지, 석민은 판단하지 못했다.
다시 목소리들이 들렸다.
[싸워라.]
그것은 대단히 절박한 이들의 합창과도 같았다.
[싸워라. 버려진 자들아, 싸워라. 구원의 때가 머지않았다. 싸워라. 어둠의 구덩이에 버려진 자들아, 싸워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둔탁한 타격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들이 났다.
목소리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그와 동시에 괴수들과 감염자들의 괴성 또한 줄어들어 갔다.
[맞서 싸워라.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아. 굳센 믿음은 정예 군병과도 같으니 싸워라.]
[싸워라, 싸워.]
수많던 목소리들이 점차 사그라지고 이내 단 하나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우리들의 성자이시여.]
가장 먼저 들리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이번엔 다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내뱉는 소리 같았다.
[저 저주받을 자들을 벌하소서.]
목소리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혹시 더 이어지지 않을까, 석민은 귀를 기울였으나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가 코를 훌쩍이는 순간 새로운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버려진 이들의 노래를 들으셨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다른 설명도 없고, 레벨이 오른 것도 아니고, 뭔가 새로운 이벤트가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뭔가 새로운 단서가 나온 것도 없었고 뜬금없이 나온 것이었다.
‘이런 불친절한 놈 같으니.’
석민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혀를 찼다.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선재는 예배당 의자에 철푸덕 앉아 사지를 축 늘어트렸고, 박선우 또한 예배당 연단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참 소름 끼치는 소리였죠?”
예배당 문인데 방음이 잘 안 되나?
박선우가 덧붙이듯 말했다.
석민은 서울에 들어온다고 두고 온 담배가 아쉬웠다.
“무슨 놈의 괴성이, 마치 노랫소리 같았네요.”
이선재의 말에 석민은, 저 괴성을 제대로 들은 사람이 자신뿐이란 사실을 알아챘다.
“맞아, 끔찍하지.”
진실은 감염자를 버려둔 것이나, 마치 사람을 괴수에게 방치해 죽게 내버려 둔 몰인정한 자가 된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 석민을 싸고돌았다.
마지막에 들린, 저주받을 자가 분명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문에서 떨어진 그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보급품을 다 버렸으니 이제 어떡하지?”
어째서 이런 소리들이 문을 넘어 들려왔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박선우는 석민의 말에 잠깐 갈등하더니 헬멧을 벗고, 발라크라바도 벗은 다음,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거 한 번 보시겠습니까?”
“뭔데?”
석민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연단의 한쪽 구석에 무언가 잔뜩 쌓여 있었다.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전부 먹을 것이었다.
아니, 일단 진짜 먹을 수 있을 진 알 수 없는 것들이긴 했지만.
내가 홀린 것인가?
석민은 자신의 눈을 비비고 그것을 보았다.
봉지도 뜯지 않은 빵부터 통조림, 레토르트 음식, 밀가루, 쌀, 건빵, 초콜릿, 젤리나 과자 같은 음식들이 잔뜩 있었다.
“아니 이것들은 뭐지?”
석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그의 시야에 연단 좌우에 위치한 작은 방이 보였다. 살짝 열린 문을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밀자, 그 안엔 누군가 씹다 버린 듯 보이는 음식물들이 흩어져 있었고, 검은 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잔뜩 쌓여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사이사이에 휴지가 끼어있는 게 보였다. 석민은 인분이라는 걸 눈치 채고는 뒷걸음질 쳐 문밖으로 나왔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죠?”
박선우는 인상을 잔뜩 쓰며 문을 도로 닫았다.
그나마 낮은 기온에 얼거나 마른 상태였기에 냄새가 심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몰라.”
순간적으로, 혹시 이게 감염자들이 모은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석민은 단번에 그 의견을 부정했다.
감염자들은 심장이 뛰지 않았고, 생리적인 활동을 전혀 못 하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보시죠.”
이선재가 발견한 것은 휴대용 가스버너와 여분의 부탄가스, 그리고 깨끗하게 정돈된 조리도구와 식기들이었다.
그것 말고도 온갖 종류의 상표와 크기를 가진 초와 라이터, 돋보기, 안경, 머리빗, 반짇고리 같은 잡동사니를 비롯해서, 다 해진 옷 한 무더기와 두꺼운 솜으로 된 이불도 보였다.
비누와 세제 같은 씻는 용품도 있었고, 포장도 뜯지 않은 생수들도 잔뜩 보여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 주변 마트를 전부 털어서 살았던 건가?”
이선재가 말했다.
한쪽엔 시계와 귀걸이, 반지 같은 귀금속들도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저것들만 다 챙겨서 팔아도 벼락부자가 될 것이라 생각할 만큼, 엄청난 액수의 돈뭉치들이 분명했다.
석민은 다이아로 보이는 보석이 박힌 반지를 들어 약간 힘을 주자, 반지가 살짝 구부러졌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로도 살짝 물어보자,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순금이 분명해 보였다.
석민의 눈에서 살짝 탐욕이 감돌았다.
다이아몬드가 진짜인지, 그는 감별할 수 없었지만, 만약 진짜라면 제법 쏠쏠하게 팔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석민은 그것을 도로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있는 것 같은데.”
박선우는 귀금속들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촛불이 켜져 있는 것 하며 조리도구와 식기를 보면.”
“아니야. 집주인은 없어.”
그는 방금 ‘집주인들’이 전부 죽었다고 생각했다.
“음식들과 물들을 봐봐. 유통기한 같은 거.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거 같은데.”
그는 이미 유통기한이 6년 이상 지난 라면봉지를 들어 보았다.
통조림과 일부 레토르트 음식을 빼면 유통기한은 한참 지나 있었고, 생산일자 대부분이 사태가 터지기 전이었다.
조리도구들은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쓴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은 이미 한참 전에 없어진 거야.”
“그러면, 이 촛불은 뭐죠?”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군.”
석민은 저들에게 감염자들이 이성을 가지고서 생활한 거 같다고 말해봤자 미친놈 취급받을 것 같아서, 그냥 모르겠다고 말했다.
“맞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이선재가 말했다.
“그 잔뜩 쌓여있는 똥들을 보면, 최근 것이 하나도 없어. 전부 하나같이 오래되어서 굳은 것들이라고.”
“그래도 촛불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박선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결국 석민과 이선재의 말을 동의하게 되었다.
정리정돈을 잘했다 쳐도, 생활감이 너무 없었다.
“그러면….”
“그래, 일단 안심해도 된다는 거지.”
석민은 소총의 조정간을 안전으로 걸어두고는 예배당 의자에 걸터앉았다. 머릿속이 혼란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는 차분해질 필요가 있었다.
밖에 있던 감염자들의 합창을 보건데 이곳을 그것들의 보금자리였다. 그것들은 이미 다시는 얻을 수 없을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모아둔 것이 분명했다.
‘감염자들는 공식적으로 죽은 게 아니었나?’
그는 감염자가 되면 지능이 감퇴하고, 이성이 없어진다고 알고 있었다.
감염자가 된 사람에게 물리면, 찰나의 순간 발작과 함께 그것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버린다.
죽었음에도 산 자처럼 걸어 다니다보니, 중력에 의해 발에 몰린 피 때문에 검게 변해버린 다리를 이끌며 아무런 목적 없이 돌아다니다가 괴수들에게 사냥당하거나, 살아있는 생물을 보고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것이 감염자였다.
그렇게 경험했고, 그렇게 알고 있었으며, 그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그는 창고 2개에 흩어져 있던, 먹다 뱉은 흔적과, 사람 키만큼 쌓여있던 인분을 떠올렸다. 마치 미라가 음식물을 억지로 먹다가 뱉은 것 같았다.
저렇게 바짝 마른 상태여선, 속의 내장 또한 말라 있거나 오그라들었을 테니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넘기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설령 넘겼다 쳐도 소화기관이 정지되었을 테니, 억지로 먹어봤자 소화될 리 만무했다.
그리고 저 바짝 마른 똥들이 사람 키만큼 쌓인 것을 보건데, 저길 화장실 대용으로 쓴 건 아니었다.
이선재의 말이 맞다.
‘아니, 설마.’
그의 머릿속의 추리는 점점 비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먹고 싸던 게 그리워서 모아 둔 거겠어?’
그는 결론을 부정했지만, 눈에 보이는 증거물들은 그 추리가 맞다고 주장했다.
석민은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성자라는 것에게 복수를 요청하는 것 같았잖아.’
그렇다는 것은 그 성자라는 것이 어딘가에서 활동 중이란 말이고, 만약에 그놈이 돌아오면 꽤 성가시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살던 동료들이 죄다 죽었으니.
하지만 이내 석민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박선우와 이선재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으나, 석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봤자 감염자는 감염자지.’
성자라고 불려봤자 뭐 별거 있겠나?
덩치나 머리가 조금 더 큰 감염자일 것이다.
아니면 지능이 덜 부족해, 이단아 격으로 머리가 좋거나.
거기에 리더로 보이는 놈은 진즉에 날려버리지 않았는가.
‘그래, 기우로 머리 싸맬 필욘 없지.’
석민은 이 생각을 접기로 하고는 박선우와 이선재를 불러 모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보급품을 다 두고 왔으니, 어떻게든 다시 보급품을 찾던가, 아니면 도로 복귀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석민의 말에 박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