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57화]
그들은 근처에 버려진 편의점 안으로 몸을 급히 숨겼다.
소형 민항기만큼 커다란 와이번 하나가 그들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와이번의 양 발톱에 무언가 꽉 쥐어져 있었는데, 목이 뜯어져 나간 드레이크 같았다.
사냥을 하고 둥지로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와이번이 지나간 상공 바닥엔 드레이크의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피 냄새를 맡고 다른 괴수들이 찾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석민의 제안에 따라 그들은 편의점의 안쪽 창고로 더욱 깊숙이 몸을 숨기고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드레이크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석민은 추위에 살짝 몸을 떨었다. 아무리 스탯을 찍어도 추위만큼은 몸이 견디지 못했다.
‘추위 관련 스탯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속으로 투덜거리는 동안 박선우와 이선재는 석민을 경이롭게 보았다.
서울로 들어온 이후, 그가 얼마나 경험이 많고 실력이 좋은 사람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마치 실력 좋은 헌터 같군.’
이것은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우리 교단에도 서울 수복작전에 참가한 신도님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로 정보를 알려주거나 하진 않았는데….’
밖에서 으르렁거리던 드레이크 소리가 바뀌는 가 싶더니, 간헐적으로 할짝이는 듯한 소리가 났다.
“밖에 무슨.”
석민은 검지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제스처를 취했다.
“바닥에 떨어진 피를 핥아 먹는 거야.”
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소리는 오래가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가 사라지자, 석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피까지 먹을 정도면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군. 배고픈 괴수는 평소보다 소리나 냄새에 많이 민감하니까 조용히 있는 게 좋아.”
그는 그리 주의를 준 직후 총을 고쳐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 먹고 갈까?”
점심은 곡물을 뭉쳐 만든 전투식량과 그의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소시지 2개였다.
입 안에 넣기 무섭게 침이 메마르는 마법을 선보이는, 맛없는 식량이었다.
그는 대충 씹어서 삼킨 후 물을 마셨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마치 냉장고에서 갓 생수처럼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석민은 또 한 번 추위에 몸을 떨었다.
그나마 소시지는 먹을 만한 것이 다행이었다.
‘아영이랑 활동한 게 그리울 줄이야.’
지긋지긋한 레토르트 음식이 그리울 정도로 이 식량들은 맛이 없었다. 이 작은 덩어리가 열량이 높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들은 식사를 끝내고 편의점을 나와,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최단코스의 길을 택해 걸었다.
교회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고급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록 황폐해지긴 했으나, 지상엔 주차장 대신 입주민을 위해 조성된 공원과 여러 가지 여가 시설들이 설치된 곳이었다.
갈색으로 죽어버린 덩굴울타리는 뛰어넘은 후, 석민은 반쯤 부셔진 아파트와 깨진 유리창들을 보았다. 단지 바닥엔 부서진 아파트의 파편들도 쌓여 있었다.
마치 반쯤 철거하다만 상태 같았다. 아마 폭격을 정통으로 맞은 듯했다.
와이번이 서식하기 좋은 고층 아파트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둥지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저 단지 중에 하나에 아영이 있을 것이다. 저 속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그는 콘크리트 더미를 넘어 교회 쪽으로 움직였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와이번의 날갯짓 소리와 드레이크의 울음소리 잦아들었다.
그 순간,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무언가 기척이 느껴졌다.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무언가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시발,”
석민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하며 몸을 숙였다. 선두에 가던 그가 갑자기 몸을 숙이자, 뒤따라오던 이선재도 급히 몸을 숙였다.
후미를 살피며 쫓아오던 박선우 역시 그들을 따라 몸을 숙였으나, 발밑에 있던 콘크리트 조각에 걸려 넘어졌다.
비난 어린 시선이 쏟아지자, 박선우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석민은 전방을 주시했다.
다행히 감염자는 그 소리를 못 들은 듯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굶어죽은 사람처럼 빠짝 마른 몸과 푹 꺼진 눈두덩이, 다 빠져 휑한 머리, 잿빛 피부.
감염자들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나왔다.
그것들은 다 해진 옷을 거의 벗은 듯, 걸치고 있었다.
대부분은 맨손이었으나 일부는 손에 몽둥이나 식칼 같은 무기를 쥐고 있기도 했다.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어느새 그들은 감염자에 의해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석민은 혀를 차고서 가지고 있던 소총의 조정간을 단발에서 연발로 바꾸었다.
족히 백은 넘어가는 그것들이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웬만해선 바짝 긴장하지 않는 석민도 바짝 긴장한 얼굴을 한 채 계속 그들을 주시했다.
“내 말 잘 들어.”
석민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정면의 감염자를 조준하였다. 그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내 뒤 잘 따라 오고, 절대로 뒤처지지 마. 뒤쳐지면 버리고 간다.”
그의 의도를 알아챈 박선우와 이선재도 가방을 내려놓았다.
무언가 눈치 챈 것인지, 그의 조준점에 들어있던 감염자가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더니 몸을 숨겼다.
감염자들을 살피던 석민의 눈에 리더로 보이는 감염자가 보였다.
가장 덩치가 컸으며, 다른 놈들에 비해 멀쩡해 보였다.
그놈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아퇴행에 무리를 짓고 살긴 하지만, 인간에서 비롯된 놈들이다 보니, 사회적 동물의 습성을 이어받은 건지, 어느 무리든 리더가 존재했다.
석민은 앞을 조준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총구를 돌려 그자를 노리고 쏘았다.
조준경을 볼 찰나의 순간이 없었기 때문에, 시스템으로 눈앞에 보이는 조준점을 따라 대충 조준하고 쏘았다.
견착도 제대로 못 한 채 한 사격이서, 평소보다 큰 반동에 인상을 썼다. 그러나 다행히 초탄 두발에 리더의 머리가 박살 나 날아갔다.
주변에 있던 감염자들의 동요가 느껴졌다.
“뛰어!”
석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면에 있는 감염자들을 노려 쏘면서 달렸다.
총탄에 맞은 감염자가 쓰러졌다.
뒤쪽으로 왔던 길로 도망치는 방법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뒤쪽에 감염자가 더 많았다.
비록 기괴한 음성이긴 했으나 사람 목소리의 괴성이 울리자, 소름이 그들의 등을 타고 돋아 올랐다.
감염자들이 그들을 노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뛰는 것이 인간에 비해 한없이 느렸지만, 공포를 느낀 그들에겐 매우 기겁할 일이었다.
석민은 앞을 가로막는 감염자들에게 총을 쏘며 길을 개척했고, 박선우와 이선재는 좌우로 포위망을 좁히려는 나머지 감염자들을 쏴댔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짐을 버린 덕분인지, 살고 싶다는 절박함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평소보다 빨랐다.
박선우와 이선재가 석민에게서 슬슬 뒤처지기 시작할 쯤,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뛰어!”
석민은 뒤로 돌아 추격해 오는 좀비 같은 것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은 쏘는 족족 맞았고, 탄창은 순식간에 비어졌다. 비어버린 탄창은 덤프 파우치1)에 넣고는 새 탄창을 끼웠다.
상황이 급박하다고는 하나, 탄창 개수가 적어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는 박선우와 이선재가 다시 따라붙자 앞으로 뛰어갔다.
주변에 숨을 만한 건물이 없었다.
포격과 폭격의 영향인지 몰라도 들어갈 만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농성을 할 만큼 적절해 보이는 곳 또한 없었다.
박선우와 이선재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다시 처질 때, 석민의 눈에 그들이 원래 가고자 했던 목적지인 대형 교회 건물이 띄었다.
유리창이 깨져 있었지만 포격의 영향은 받지 않았는지, 건물은 온전했고, 쓸 만해 보였다.
“따라와!”
그는 그리 소리친 뒤 그곳으로 달렸다.
사거리 대로변에 있는 건물이라, 버려진 차들을 사이를 뛰어가거나 아예 차를 타고 넘어야만 했다.
석민은 급히 달리면서 주변에 괴수들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드레이크는 보이지 않았으나, 총성이 울렸고 감염자들이 괴성을 지르며 자신들을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석민은 달려서 교회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리로 된 문은 대부분의 창이 깨져있었다.
뒤따라 박선우와 이선재가 따라 들어왔다. 그러나 괴수들의 추격은 멈추지 않았다.
석민은 재빠르게 교회를 둘러보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있음을 알아챘다. 방음 때문인지 몰라도 문이 육중해 보였다. 거기다 그 문을 제외하고 예배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출입구도 보이지 않았다.
즉, 방어하기 용이하다는 말이었다.
석민이 예배당으로 향하자, 박선우와 이선재도 뒤따랐다.
잠금장치는 놀랍게도 고장이 나 있지 않았다.
“문 닫아!”
석민은 로비로 들어오는 괴수들을 쏘아서 쓰러트렸고 박선우와 이선재는 문을 닫기 무섭게 잠금장치를 걸었다.
잠금장치가 걸리기 무섭게 문에 부딪히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석민 예배당에서 사용하는 긴 의자를 한 번에 들어 올려 문 쪽으로 옮긴 후, 그것을 비스듬히 기울여서 문을 보강했다.
그것을 본 박선우가 따라 하기 위해 의자를 들려다가, 육중한 원목의자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삐끗하면서 낮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도와줘.”
그것을 본 이선재가 의자를 옮겼다.
문은 곧 부서질 것처럼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흔들렸다.
석민은 아직 탄환이 남은 탄창을 꺼내 새 탄창으로 갈고서 문을 조준한 채 대기했다.
문은 여전히 흔들렸다.
불안한 3쌍의 눈이 문을 주시했다.
예배당은 화강암 타일로 마감된 거라, 문만 뚫리지 않는다면 안전했다.
그것들은 포기가 안 되는지 연신 문을 두들겨댔다.
석민은 감염자들의 지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간이 감염되면 지능이 유아틱하게 퇴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거운 물건을 잡고서 문을 부순다는 생각을 못 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게다가 그것들은 사람을 비롯해 다른 살아있는 생물들을 전부 물어뜯을 만큼 난폭했다.
걱정이 된 석민은 의자 하나를 더 들어서 문에 기대놓고는 밀리지 않도록 의자 하나 더 그 뒤쪽으로 받침목 삼아 두었다.
그렇게까지 하자, 쿵쿵거리는 소리에 비해 흔들림이 줄어들고 안정되어 보였다.
그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났을 때, 쿵쿵거리는 소리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된 건가?’
이윽고 소리가 완전히 줄어들고 정적이 감돌았다.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그들은 그제야 예배당 내부가 이상하단 것을 느꼈다.
예배당의 구석구석마다 초들이 놓여 있었는데, 초들마다 불이 붙어 있었다.
괴수나 감염자들이 붙였을 리도 없고, 결국 누군가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결론밖에 도출되지 않았다.
“뭐지?”
박선우는 허리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누군가 살고 있는 건가?
석민은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석민은 이선재에게 수신호로 연단을 확인하라고 명령했고, 박선우는 예배의자들을 살펴볼 것을 명령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석민은 출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정적이 감돌았지만,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상함을 느낀 그는 문가로 가서 문 아래쪽을 보았다.
그 어떤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방음 목적으로 설계된 문이라 바깥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 순간, 이상한 소리가 그에게 들려왔다.
목이 다 쉰 사람의 그것마냥 날카로운 목소리로 누군가가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한.
[들리시나요?]
얼핏 여성의 목소리로도 들렸기에 석민은 혹시나 하고 무전기를 들어보았으나, 아니었다.
‘아니 뭐지?’
소리는 점점 더 뚜렷하게, 그리고 많이 들려왔다.
[축복받은 자들.]
그는 혼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예배당은 기본적으로 방음이 되는 문을 사용하는데, 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그 소리를 듣고 번역해주는 것처럼 울리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그의 눈앞에서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그곳은 우리의 보금자리, 축복받은 자들이여, 문을 열어라. 아, 그곳은 우리의 마지막 보금자리. 우리의 아늑한 집.]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와 똑같은 글자가 나타났다.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더 혼란함을 느꼈다.
“뭐야, 시발?”
석민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