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56화]
“포수 보고, 1시 방향에 새로운 큰손님 출현.”
박준경 병장의 보고에 김승환 중사는 전차장 조준경을 돌렸다.
“숫자가 대략 20.”
‘오늘따라 좀 많네.’
김승환 중사는 그리 생각하며 떼로 몰려오는 그것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새로 출현한 큰손님들에게 조준.”
“조준 끝!”
“쏴!”
“쏴!”
전차포가 발사되면서 커다란 포성과 함께 화염이 맹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포발사의 충격으로 주변의 흙먼지가 일어나고 김승환 중사의 몸이 흔들렸다.
포탄은 정면에서 달려오던 드레이크에게 맞아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육편을 흩뿌렸다.
그 충격에 다른 드레이크들도 튕겨 나가 버려진 차량에 박히곤 했으나, 쓰러진 개체를 비롯해서 다른 개체들은 해당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저것들은 언제 봐도 이상하단 말이야. 두려움이 전혀 없나?’
방금 포를 한 발 쏜 것만으로 적어도 3개의 개체가 죽어버렸는데도, 저것들은 여전히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포성과 기관포, 기관총의 총성이 울려서인지 점점 많은 괴수들이 나타났다. 아무리 괴수들을 한 방에 처리하는 기관포에 타고 있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사방을 에워싸는 괴수들에 군인들은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서 달려든 드레이크들은 자신들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장갑차를 할퀴거나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고 차내에 있는 이들이 처음과 다르게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겁먹지 마라. 평소처럼 하던 대로 해.”
김승환 중사가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방에서 울리는 쇠가 긁히는 소리는 매우 소름 끼쳤다.
-숭례문, 여기는 진달래.
“수신.”
-우리 단차에 붙은 괴수들 처리가 가능한지?
“수신완료. 포탑을 4시 방향으로 돌려.”
각 차량들이 서로에게 포탑을 돌려 기관총을 사격했다. 지근거리이기 때문에 기관포나 주포 사용이 불가능했다.
기관총에 맞은 괴수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전차에서 떨어졌다.
차체에서 튕겨 나간 기관총탄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자칫하면 외부에 노출된 관측 장비가 망가질 수도 있는 행위였으나, 지금 같은 상황엔 어쩔 수 없었다.
“조심해서 쏴라.”
김승환 중사가 습관처럼 혀를 차면서 주의를 주었다.
박준경 병장은 대답하지 않고, 신중하게 장갑차에 달라붙은 괴수들을 쏘았다.
전차에 비해 장갑차는 장갑이 얇고 무게가 적기 때문에 괴수들이 달려들 때마다 크게 들썩거렸다.
안에 있는 승무원과 승차보병들이 적잖게 동요하고 있을 것이다.
전차와 장갑차들이 서로를 노리며 기관총을 쏘는 것이 매우 우습게 느껴졌다.
과거 6.25전쟁 때 탱크에 기어오르는 중공군을 처리하기 위해 서로에게 기관총을 쏘던 영국군 전차가 된 기분을 느끼며, 박준경 병장은 포탑조종용 조이스틱을 세심하게 움직였다.
전차와 장갑차에 달라붙어 있던 괴수들을 거의 다 처리했을 쯤, 새로운 괴수들이 나타났다.
이대로 있다가는 완전히 포위될 가능성이 있었다.
“경복궁, 여기는 숭례문.”
-수신.
“현 상황, 큰손님들이 점점 더 많이 방문 중이다. 이 이상 작업이 무리일 것 같으니 복귀해도 되는지?”
대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공축기관총이 다 쏴지자, 장전수가 얼른 새로운 탄약상자를 꺼내 기관총을 장전하기 위해 움직였다.
상황이 생각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죽은 드레이크들에 의해 시신들이 잔뜩 쌓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간 장갑차는 물론이고 전차도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았다.
그는 무전기 주파수를 바꾸었다. 계속 대답을 기다릴 상황이 아니었다.
“전 차량, 후진한다. 뒤로 물러나라. 포수, 포탑을 9시 방향으로 목표 큰손님. 거리 500미터. 대탄 장전!”
포탑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장전수 이도영 상병은 포탄을 꺼내 포미에 포탄을 넣었다.
“장전 끝!”
“조준 끝!”
“쏴!”
포가 발사되고, 이번에도 접근하던 괴수들 무리가 박살났다.
괴수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거나 잡아먹으면서도 전차와 장갑차를 공격했다.
장갑차들이 뒤로 후진을 시도했다.
뒤쪽에 쌓인 괴수들의 시체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어갔으나, 장갑차 1대가 괴수들을 넘지 못한 채 헛바퀴를 돌고 있었다.
‘이런 젠장.’
-숭례문, 복귀해도 좋다.
‘이미 늦었어.’
김승환 중사는 그리 생각하며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 자신을 자책했다.
-무궁화, 정차해라. 뒤쪽에 시체가 너무 많아. 대기바람.
그는 전차장조준경을 돌려, 뒤쪽으로 천천히 물러나고 있던 장애물개척전차들을 확인했다.
-불도저, 무궁화 뒤쪽에 있는 손님들을 치워줄 수 있겠나?
-수신완료.
장애물개척전차의 블레이드가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짙은 회색 연기를 뿜으며 전진했다.
몇몇 드레이크들이 그것을 보고 장애물개척전차에게 달려들었지만, 전차에 치이거나 깔려 으깨졌다.
궤도 사이, 사이마다 뭉개진 육편과 피가 묻어 나왔다. 궤도는 순식간에 육편과 피, 내장 같은 오물에 더러워졌다.
4중으로 쌓인 드레이크 시체가 이내 치워지고, 고립되어 있던 장갑차가 간신히 뒤로 후진해서 나올 수 있었다.
장갑차의 포탑이 돌아가기 무섭게 장애물개척전차의 위에 올라탄 드레이크에게 40mm 기관포를 먹였다.
“흥분하지 마라. 천천히 큰손님들 접대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군대는 천천히 물러났다.
조금 식겁하긴 했지만, 위기는 넘겼다.
괴수들이 떨어져 나가자 장갑차량들이 40mm기관포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쯤 되자, 드레이크들은 자기들의 이빨이나 발톱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슬금슬금 물러나거나 몸을 엎드려 포탄을 피하려고 했다.
버려진 차량을 노리고 전차가 대탄을 발사했고, 드레이크는 박살 나 육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전차와 장갑차들이 대열을 갖추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것을 본 드레이크들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물러났다.
그 순간, 후방에서 새로운 전차와 장갑차들이 나타났다.
-숭례문, 여기는 흥인지문이다. 후퇴를 엄호하겠다.
무전을 들은 김승환 중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그러면 뒤를 부탁한다.”
엄호를 위해 장갑차와 전차들이 전진하면서 남은 드레이크들을 노리고 포격을 가하며 전진했고, 그들이 자신들보다 앞지르자 김승환 중사 역시 명령을 내려 전차를 뒤로 돌려 전진하도록 했다.
그는 앞서 전진하던 장갑차에서 후방도어가 열려 일단의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형제님.”
보병수송칸에 같이 앉아있던 상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교전이 벌어졌으니 들키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이 주변은 평지이고, 가끔 정찰 드론들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대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보다는 주변에 있는 숲을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대로에 있는 괴수들의 드래곤하트는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1시간 안에 채취팀이 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박선우는 원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도어를 빠져나왔다.
석민은 그것을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군 내부에도 협력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런 방식으로까지 협력해줄 줄은 생각도 못 했군.’
그들이 탄 장갑차를 비롯해서 다른 이들은 그들을 애써 무시했다.
단순하게 신앙심으로 움직이는 걸까? 아니면 교단에서 협력을 이유로 돈을 쥐여 준 것일까?
“빨리 이동하라 했으니, 빨리 움직이지.”
석민은 자신의 소총을 장전한 다음 움직였다.
그들은 상사가 주의해준 대로, 대로를 벗어나 근방 숲으로 이동했다.
아무리 훈련받은 입장이라 해도, 40킬로그램짜리 짐을 지고 은, 엄폐를 최대한 유지를 하며, 경사가 있는 숲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선우와 이선재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들이 대략 1시간쯤 이동했을 때, 허브 공원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버려진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가득한 고지대인 덕분에 석민은 평소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좋아.”
석민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지도 어플을 켰다.
“근방에 보훈병원이라고 큰 병원이 있는데, 거기로 가서 일단 좀 쉬도록 하지.”
“네? 그렇지만, 거길 가게 되면 우리가 가려고 한 루트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겁니다.”
이선재가 말했다.
“설마 대로를 따라가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근방에 아파트들도 있으니 높은 곳에 올라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석민은 그들의 목적이 드래곤하트가 아니라, 성전을 위한 루트 개척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해야 했기에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박선우는 이선재와 서로를 보다가 잠깐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시내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게다가 병원은 감염자가 있을 확률도 높구요.”
초창기에 나타난 감염자들은 치료 때문에 병원에 감금에 가깝게 수용되어서, 병원에 가면 마주칠 확률이 높았다.
석민 또한 그에 대한 반론이 떠오르지 않아 다른 루트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면, 보자.”
석민은 스마트폰의 지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보다가 지도상에 빨간 점이 뜨자, 얼른 다른 곳으로 화면을 돌렸다.
그것은 본인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치가 보이게 설정된 것은 딱 한 사람이었다.
‘미리 와 있었나?’
석민은 아영이 근방 아파트 단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원래 가려고 했던 보훈병원 근처였다.
석민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폈다. 그러면 그녀가 관측하기 쉬운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 대로변과 가까운 교회 건물은 어때?”
직선거리로 고작 1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 곳이었다.
“둔촌고교 입구 교차로라고 적힌 곳 말이야.”
제법 높은 건물이긴 하지만, 아영이 자리 잡은 아파트 단지가 더 높을 테니, 그녀가 감시하기에 용이할 것이다.
박선우와 이선재는 각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그곳을 확인한 직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것 같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할 거야.”
석민은 멀리서 알 수 없는 괴성이 들리자,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선우와 이선재도 고개를 돌렸다.
괴수의 소리가 아니라 마치 성대가 박살 난 사람의 괴성 같았다.
“괴수 소리인가요?”
석민의 두 눈이 가늘어지면서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자, 이선재가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감염자야.”
석민이 말했다.
“거리가… 가깝네.”
사람이 소리를 질러봤자 얼마나 멀리 가겠는가?
석민은 적어도 200미터 이내에 그것들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우리가 지나는 방향으로 없기를 바라야겠군.”
그의 경험상 감염자들은 절대 혼자서 돌아다니지 않았다. 조금 긴장된 얼굴로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았다.
쓸데없이 총성을 울리게 된다면 괴수들이 몰려들 것이다.
게다가 높은 건물을 좋아하는 와이번들의 특성상, 시가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분명 근처의 와이번이 나타날 것이다.
“이동하지. 체력은 아껴야 하니까 천천히 이동하자고.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이면 절대로 먼저 쏘지 말고 몸을 숙여. 그리고 소음기를 준비해.”
그들이 가진 무기는 총열이 짧아서 총성이 크고, 총구 화염 또한 컸기에, 아음속탄이 없다곤 해도 소음기를 장착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도로든 골목이든, 버려진 차들이 많아서 그들이 시내로 진입한 이후, 거리를 지나는 데 애를 먹었다. 시 외곽지역이라, 탈출을 위해 움직이던 차량들이 잔뜩 몰렸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오프로드 차량들이 산속에서 발견되기도 했는데, 억지로 산을 넘으려 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사람도 지나기 힘든 곳이다 보니, 그들은 다행히도 괴수 하나 만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민가를 지나 아파트 단지 쪽으로 움직이다가 커다란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석민이 조금 다급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