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55화 (55/226)

[게이트 오브 서울 55화]

그 이후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는 유쾌함의 연속이었다.

술이 들어가자 서로 사이를 가로막던 벽이 허물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술집 자체가 시끄러운 곳이긴 했으나, 그들의 음성이 높아지니 슬슬 그들을 거슬리게 생각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무르익고 가게에 있는 손님들 대부분이 취해서 감정이 쉽게 휘청거릴 무렵, 석민 무리를 거슬려 하던 자들의 인내가 바닥이 났다.

바로 석민이 태운 담배 때문이었다.

실내 흡연이 가능한 곳인지라 석민의 행동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태우는 담배가 문제였다.

파이프 담배는 연기가 일반 담배보다도 더 심했다. 석민은 그런 파이프 담배만 고집하는 자였다. 적어도 궐련의 3배, 혹은 5배가 되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자연스레 석민 주변이 점점 희뿌옇게 변해갔다.

“그것 참 신기하네요.”

이선재는 푸른빛의 연기 고리를 만들어내며 타오르는 파이프를 보며 말했다.

“왜 그런 것을 태우는 겁니까?”

이선재는 왜 담배를 태우는 것이냐는 취지로 물은 것이지만, 석민은 왜 파이프를 태우는 것인지로 알아들었다.

“그야 궐련보단 세금이 덜 붙거든. 그래서 연초 가격이 궐련보다 싼 편이지.”

대화 도중에 석민은 나 깡패요, 하는 남자들 쪽으로 힐끔 시선을 보냈다.

숫자는 2명. 그들은 매우 불쾌한 눈으로 석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석민은 그들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시선을 돌리고는 파이프를 문 채, 끌끌 거리며 웃었다.

그것으로 도발은 충분했다. 발끈한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손님이 왔네.”

석민의 말에 박선우와 이선재는 고개를 돌려 그자들을 보았다.

“야, 전세 냈….”

석민은 그자의 말을 잘랐다.

“꺼져.”

석민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한 남자가 석민에게 주먹을 날렸다.

석민은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남자의 주먹을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피했다.

서 있는 상태로 앉아 있는 자신에게 주먹을 뻗다 보니 자연스레 그자의 상체가 숙여졌다. 석민은 그자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당겼다. 그리고는 그자의 얼굴을 테이블의 모서리에 찧었다.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그자가 뒤로 넘어갔다.

박선우와 이선재도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자에게 달려들었다.

술을 잔뜩 마신 덕분인지, 그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훈련받은 혈기 왕성한 남자 2명이 1명을 노리고 패고 있으니, 당연히 1명이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남은 자도 계속 맞다가 쓰러졌다.

그럼에도 박선우와 이선재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석민 또한 은근슬쩍 동참하면서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술집에선 숱하게 일어나는 일인지라, 사람들은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술집 주인만 기물들이 파손될까 봐,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 얼척없는 싸움은 석민이 어느 정도 의도해서 일으킨 일이었다.

같은 팀으로서 동일한 적을 상대하면 한층 더 유대감이 깊어진다. 이렇게 쉽게 상대가 도발에 응할 줄 몰랐지만, 덕분에 쉽게 일이 풀렸다.

두 남자를 때려눕힌 직후, 그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 자식 묵사발 낸 거 봤어?”

“쓸데없이 술이나 처먹고 나대는 꼴이라니.”

잔뜩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흥분이 잔뜩 올라 빨개진 얼굴을 한 채 신나있었다. 덕분에 석민은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그들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거리는 더럽고, 곳곳에 구걸하는 거지들이 보였으나, 그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니네 뭐하는 놈들이야? 왜 이리 시끄러워?”

술에 취해 거리에 대놓고 잠을 자고 있던 남자 하나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죽고 싶….”

이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었다.

석민은 바로 권총을 꺼내 그자의 이마에 마크 23 권총의 총구를 들이댔다.

“아, 그, 그 죄송합니다.”

술에 취한 남자가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빌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박선우와 이선재는 깔깔거리고 웃으며 걸어갔다.

“그런 자는 신경 쓰지 말고 걷지요.”

박선우가 고개를 돌려 석민에게 말했다.

“그러지.”

석민은 권총을 도로 품속에 넣은 후 그들을 따라 걸었다. 그가 다가오자 박선우와 이선재는 좌우로 물러나서 그들과 나란히 걸을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석민은 이제 그들이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리라 판단했다. 내면에 숨겨둔 음험한 미소가 깊어지는 밤이었다.

“자, 2차를 가야지. 아직 밤은 길다고.”

감염자들

때가 되었다.

석민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고 무기와 장비를 챙겨 들었다.

그들이 서울에서 쓸 보급품들은 전부 합해서 무려 45킬로그램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들을 어깨에 걸쳐 메고 밖으로 나왔다.

빛 한 점도 보이지 않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그를 감쌌다.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추위에 살짝 몸을 떤 석민은 발라크라바로 얼굴을 가렸다.

영하 15도에 이르는 매우 강력한 강추위였다.

‘한겨울이구만.’

11월 말이 아닌가?

흘러가는 시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는, 오늘이 며칠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일어났습니까?”

박선우가 다가와 석민에게 말을 걸었다.

“어. 정말 춥구만.”

“새벽이라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래도 해가 뜨면 괜찮을 것입니다.”

“태양을 안 본 지 오래인데.”

석민은 예전에 대통령과 독대를 위해 경기도를 벗어난 적이 있지만, 이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안 본 것으로 쳤다.

그때를 떠올리면 정말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따스하고 좋았다. 심지어 그때 먹었던 식사도 좋았고, 대통령에게도 적잖은 감동을 받았었다.

“우리의 일이 잘 마무리되면 예전처럼 태양을 볼 수 있겠지요.”

“…태양을 본다고?”

석민은 그의 말이 단순하게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느꼈다.

“아, 드래곤하트 가지고 그러는 건가?”

모른 척 떠보는 듯 한 석민의 대답에 박선우는 아차 하는 심정이 되었지만, 그도 발라크라바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이 드러나진 않았다.

‘실수했군, 너무 친하게 지냈어.’

최근 그는 교구장 박재만이 주의 주던 것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마치 같은 교단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근심에 빠져 대답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는 사이 준비를 마친 이선재도 다가왔다.

“차량이 준비되었습니다.”

검은색 봉고차가 시동이 걸린 채 대기 중이었다. 석민은 가방을 싣고서 차량에 올라탔다.

“얼마나 있을 생각이지? 한 달?”

“아마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대한 열량이 높고 부피가 작은 음식들 위주로 준비하긴 했는데,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요. 추위가 심하면 에너지 소비가 높아질 테니, 그보다 더 빠르게 철수할 수도 있어요.”

석민의 눈엔 그들이 챙긴 보급품의 양으론 길어봤자 최대 2주였다.

나름 생각해서 특수작전식량이라고 불리는, 무게가 덜 나가는 식량들을 준비하긴 했으나, 맛도 좋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양도 적었다.

물론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도 일부 챙기긴 했으나,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거기다 물의 양이 매우 부족했다.

40키로 정도 나가는 짐의 대부분이 식량인데도 벌어진 일이었다.

탄약은 고작 한 사람당 240발.

샷건은 석민이 말한 탄창장전식 샷건을 구하지 못해 결국 가져가지도 못했고, 권총은 기본 2탄창 말고는 여분의 탄환도 없었다.

‘일반인이라면 이것도 버겁긴 하겠지만.’

어차피 그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들이 죽어버리면 그가 교단에 들어갈 방법은 없어지기 때문에 그게 걱정일 뿐이었다.

‘그것보다 어떻게 서울로 들어가는지 알고 싶은데, 마지막까지 알려주지 않는군. 박선우와 이선재도 잘 알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던데.’

그는 마지막까지 그것을 알아내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

천호대로 방면 방벽은 기계식으로 움직이는 대형 문을 비롯해서 1개 혼성 대대급 주둔 병력이 주둔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지역인지라 무인 터렛 시설을 비롯해 타부대서 12대의 장갑차와 4대의 전차가 파견형식으로 주둔되어 있는 곳이었다. 애초에 특별히 편성된 혼성대대이기 때문에 대대치고 무장이 더 충실한 편이었다.

천호대로는 그 특성상 유사시 서울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였기에 정부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장애물개척전차나 블레이드가 달린 전차들을 보내 대로를 청소하곤 했다.

버려진 차량이나 제1, 2차 서울 수복작전 때 벌어진 폭격이나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들 잔해가 대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실 청소라기보다 개척에 가까웠다.

작업에 동원되는 중장비들의 디젤엔진 소리는 괴수들이나 감염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결국 작업을 오래 이어가기 힘들었고, 청소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서울 시내가 아닌 외곽까지밖에 작업을 못 끝낸 상태였다.

여전히 청소 작업엔 크고 작은 교전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날 아침에도 2대의 장애물개척전차가 장갑차 4대와 전차 1대의 호위 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드레이크의 습격을 받았다.

-전방에 큰손님(괴수)출현. 거리 600미터.

가장 선두에 있던 장애물개척전차의 보고에 전차에 타고 있던 전차장 김승환 중사는, 자신의 전차장 조준경을 돌려 접근하는 드레이크를 확인했다.

“여기는 숭례문, 확인했다. 숫자는 대략 12.”

크기가 대략 중형트럭이나, 승합차 정도 되는 대형들이었다.

“경복궁, 여기는 숭례문. 손님이 출연했다. 수신했는지?”

-수신, 대응하라.

그는 고개를 돌려 장전수 이도영 상병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탄(대전차고폭탄) 장전.”

명령을 들은 장전수가 포탄을 꺼내서 포미에 탄을 넣었다. 탄이 들어가자마자 폐쇄기가 닫혔다.

“장전 끝!”

“조준 끝!”

포수 박중경 병장도 소리쳤다.

하지만 김승환 중사는 바로 사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날탄(날개안정분리철갑탄)은 비쌌고, 보통 전차에 쏘는 용이라, 괴수에게 쏘기 매우 아까웠으며, 과잉화력이기도 했다.

전방으로 나가서 작업을 하던 장애물개척전차들이 뒤로 후진을 하고 물러서자, 그는 조종수 이상욱 하사에게 전차를 전면으로 전진시킬 것을 명령했다.

명령을 내리는 그의 목소리엔 괴수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에 대한 지루함만이 가득했다.

그는 이런 짓을 2년째 하고 있었다.

현대 전투병기안이 탄 그들에게 괴수가 열이든 백이든 나타나 봤자, 그에겐 제초 작업처럼 지루한 작업의 연속일 뿐이었다.

괴수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도 전차의 장갑을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을 뿜는 개체나 온몸에 난 뿔을 발사하는 개체도 있긴 했으나, 전차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진 못했다.

그런데도 군대가 아직 서울을 탈환하지 못한 것은, 괴수들이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발생해 튀어나왔고 그 때문에 안전구역을 설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차가 앞으로 전진하고 뒤에 장갑차량들도 뒤따라 포구를 돌렸다.

장갑차량에 무장된 40mm기관포만으로도 충분히 괴수의 비늘을 뚫고도 남았다.

-허가가 떨어졌다. 각 차량, 준비되는 대로 교전하라.

상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갑차량들이 불을 뿜었다.

예광탄이 궤적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가기 무섭게 괴수의 몸에 적중했고, 괴수들의 몸이 폭발하거나 분리되어 터져나갔다.

“공축기관총으로 쏴.”

“쏴!”

김승환 중사의 명령에 포수 박준경 병장이 명령을 복창하면서 공축기관총을 발사했다.

장전된 기관총탄들은 날아가 일부는 괴수들에게 박혔으나, 일부는 튕겨져 나갔다.

그것을 본 김승환 중사는 혀를 낮게 찼다.

공축기관총으로 있는 7.62mm 기관총은 괴수들에게 어느 정도 약발이 먹히긴 했으나, 완벽하진 않았다.

전차장석에 거치된 12.7mm 기관총을 사격하면 완벽하게 괴수들을 조질 수 있었지만, 그걸 쓰려면 해치를 열어야 했기에 쓸 수 없었다.

‘망할 놈의 무인기관총탑은 언제 보급되는 거야.’

그의 전차장 조준경을 돌리며 다시 혀를 찼다.

국내에서 새로 개발된 그것은 전차장조준경과 통합된 것으로, 안전한 상태에서 괴수들을 쓸어버릴 수 있지만, 보급은 아직 요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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