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54화]
‘위에 있는 건가?’
1층에서 일일이 수색을 하는 것보다 2층에 올라가 석민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한 그는 천천히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예상치도 못하게, 너무나도 쉽게 이선재가 당해서 박선우는 바짝 긴장한 채 주변을 살폈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과 1대 1로 싸우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집중을 해야 하는데도 그의 머릿속은 잡생각으로 가득해졌다.
계단을 올라 고개를 내밀면 분명 총알이 쏟아지듯 올 것이고, 복도를 지나다 방안에 대기 중이던 석민이 총을 쏠 수도 있었다.
동료가 있었으면 그나마 덜 무서울 텐데, 이미 동료는 없었다.
그의 발걸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자연스레 이동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상대방이 발소리를 못 듣게 하려고 그는 살금살금 거리면서 계단을 올랐다.
그러는 사이, 1층의 방안에서 문이 살며시 열리며 사람이 나오는 발소리를 박선우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가 계단을 중간쯤 올라갈 무렵, 뒤에서 산탄의 장전음이 들리기 무섭게 주마등이 스치는 오싹함을 느끼고 눈을 감아버렸다.
“항복?”
“……그러죠.”
공방전은 너무나도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석민은 허탈한 표정으로 모이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이런 간단한 거에 걸리다니, 경험이 있다고 해도 아직 한참 모자라군.’
모의훈련전에 열렬하게 투지를 불태웠지만, 이제는 음울한 짐승이 되어버린 이선재는 석민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날카로운 어투로 질문을 던졌다.
“그 부비트랩은 뭐죠?”
“뭐가? 부비트랩을 굳이 수류탄으로만 한다는 규정은 없었잖아.”
석민은 바닥에 떨어진 소금탄을 주워 다시 약실에 넣었다.
“누가 머리 위를 보지 말래? 눈앞에 있는 단순한 부비트랩 보고 웃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이선재는 찔리는 기분이 들었는지 살짝 움찔거렸다.
“위, 아래, 좌, 우, 앞, 뒤를 가리지 않고 조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왜? 억울해?”
“아니, 그러니까….”
그의 대답에 이선재는 순간적으로 뭐라 해야 할지 말이 안 나왔다.
당연히 온갖 총성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석민을 구석으로 몰아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허무하게 죽어버린 이선재는 억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선재가 입을 꾹 다문 사이, 박선우는 석민이 만든 부비트랩을 매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은 것입니까?”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얻게 되는 거지.”
석민은 센서 전등을 분해하고 꺼내며 말했다.
박선우는 매우 존경스러운 눈으로 석민을 보았다.
“이런 방식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고 정교한 방식은 아니야. 사거리도 짧고, 사람을 잡기도 힘들지. 당연히 괴수잡기에도 턱없이 부족하고 말이야. 그나마 약간은 보험조로 할 만한 트랩이니, 아주 나쁜 건 아니라고 말할 순 있겠네.”
석민은 자신이 만든 트랩을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다가 박선우와 이선재가 관심을 가지고 힐끗거리자, 그들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에 넘어온 그것을 받기 무섭게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그들도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았고, 부비트랩을 만들 줄 알았지만, 대부분 수류탄을 통해 만드는 것으로 이런 방식은 전혀 몰랐다.
그의 말대로 매우 간단한 부비트랩이었지만,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부비트랩 말고 다른 것도 많이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왜? 몇 가지 알려줄까?”
석민은 그들의 갈망을 눈치 챘고 작은 제안을 해주었고 그것을 들은 그들은 두 눈을 반짝였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지요.”
잔뜩 기쁜 마음으로 박선우와 이선재가 대답했다.
“좋아.”
***
교주 백은호는 교구장 박재만과 함께 훈련을 하는 사도대의 영상을 시청했다.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표적지, CQB훈련.
마치 옛날 냉전 때 선전하던 특수부대들의 영상마냥, 그들은 마치 인간병기들로 보였지만, 백은호는 흡족해하지 않았다.
백은호의 두 눈은 석민에게 고정된 채 가늘어졌다.
물론 주변에 호위나 시녀들이 많이 있었으나, 백은호는 가면을 쓴 채였기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들이 알 순 없었다.
“사도대와 같이 훈련받는 자는 누구지?”
“김성훈이란 자입니다.”
“믿을 수 있는 자요?”
박재만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했다.
석민에게 기세가 눌린 나머지, 들키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뒷조사를 행하고 있으나, 그 때문에 확실한 정보는 하나도 모을 수 없었다.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자는 아닙니다만, 어차피 중요한 자는 아닙니다. 사도대에게 실전경험을 알려주기 위해 고용된 자이기 때문에 1달간 같이 서울에서 작전을 한 후에 퇴출할 예정입니다.”
“그런가?”
박재만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 큰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불신자이긴 하지만, 돈에 목을 매는 자인 듯하니, 그런 점에서는 나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에 목매는 자란 말에 역시 심기가 불편한지 백은호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가, 마른기침을 쏟아냈다.
백은호는 불신자를 믿을 수 없었다. 거기다 화면 속 석민을 보면 볼수록 이상한 불안감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신이 내려주신 감각인지, 자신의 본능적인 거부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자신이 교주라도 단순하게 자신의 느낌만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저자를 이제 와서 뺄 수 없었다.
아무리 소수 정예라 해도 3명만 서울로 보내는 것은 너무 적다고 우려가 나오는 중인데, 한 명을 더 줄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일정 또한 너무 지체되었다.
“모레 중으로 서울로 보낸다고?”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곧 서울로 진입하기 때문에, 자유 시간을 주었습니다.”
“넉넉하게 돈 좀 주었나?”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주시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이미 백은호는 그들에게 예전 정탐군들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연설과 함께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각각의 머리에 손을 올린 채 기도를 올리고, 그들이 쓸 무기에 축성도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겨졌다. 그는 이번에도 기도실에 들어가 단식을 하며 기도를 올릴 생각이었다.
교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고, 장비도 아낌없이 지원하게. 입에 담아서는 안 되지만… 복귀를 못 할 수도 있으니까.”
정탐군들이 모두 복귀에 실패한 후, 서울에 사람을 보내는 일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의 무사생환을 쉽게 입에 담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러한 점을 박재만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대답하고는 교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모레에 서울에 간단 말입니까?
“어.”
석민은 술집의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켠 석민은 아영에게 교단의 계획을 알려주었다.
-어디로 진입하려는 것 같습니까?
“일단 내게 알려준 계획상, 강동구 지역을 통해서 진입을 하려는 것 같더군. 정확하겐 하남 쪽에서 진입할 예정이야. 그쪽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기에, 석민은 매우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제가 아는 선에선 천호대로밖에 생각이 안 나는군요. 거긴 10차선 도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넓고 접근하기 쉬운 만큼 괴수들이나 감염자들이 밀고 들어올 때가 있어서,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방벽이나 방어시설이 매우 잘되어 있습니다. 하남시는 일반인들이 쉽게 무장하고 접근하기 어려울 텐데, 그곳에서 접근할 것이라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러면? 그 넓은 방벽에 전체에 군인들이 있을 리는 만무하니까… 아니, 됐어. 나중에 알게 되면 그때 확인할게. 일단, 저들은 나한테 드래곤하트를 수급할 거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정탐군 때처럼 ‘성전’을 위한 길을 개척하려는 것 같아.”
그는 비화폰의 지도 어플을 켜서 천호대로가 어디인지 검색을 해보았다.
GPS 기능은 없지만 그래도 지도검색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대로가, 상일 IC에서 신설동역까지 쭉 뻗어 있으니 개척만 한다면, 왕십리까지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내가 아는 선에서 서울을 뒤덮고 있는 이 ‘태풍’의 중심지가, 왕십리 아니던가?”
-맞습니다.
“혹시 서울에서 만날 생각이야?”
-네. 아, 물론 접촉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만일을 위해서 대기할 생각이에요.
아영은 혹시 석민이 마주치면 곤란한가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건 그렇겠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쟤네들은 지금 나한테 껌뻑 죽거든.”
석민이 피식 웃는 듯 한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요즘 이선재와 박선우는 석민이 가르쳐주는 노하우나 기술에 푹 빠져있었다. 거의 교관과 생도처럼 보일 정도였다.
석민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심지어 사격술에 대해서도 몇 가지 알려주었다.
박선우와 이선재의 사격술이 좋은 편이긴 했으나,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은 이들은 아니었다.
좋지 못한 사격자세도 많았고 심지어 사격 시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놈들이 최정예면, 다른 놈들은 알 필요도 없겠지.’
그나마 자주 사격을 하니, 실력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만 끊도록 하지. 서울에 들어가면 다시 연락할게.”
-알겠습니다.
석민은 휴대폰을 안주머니에 넣고는 손을 씻은 뒤 밖으로 나왔다.
밖에선 시끄러운 록 음악이 석민의 귀를 강타했다.
석민은 박선우와 이선재를 끌고 술집에 온 상황이었다. 그들이 온 곳은 질 낮은 부류들이 자주 찾는 술집 중 하나였다.
석민은 몸을 움직여 박선우와 이선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박선우와 이선재는 가만히 앉아서 석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아직 한 잔도 안 하고 있어? 이런 바른생활 사나이들 같으니.”
그는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에 메뉴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맥주가 별로야?”
“그런 건 아닌데….”
박선우는 침을 삼키며 메뉴판을 들어보았다.
“왜? 아, 설마….”
석민은 이들이 종교인이란 것을 상기했다.
“너희 사도대는 금주도 해야 하나?”
“네.”
그 말에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여태껏 단 한 방울도?”
그들은 고개를 말없이 끄덕일 뿐이었다.
석민은 메뉴판을 본 직후 종업원 호출 벨을 눌렀다.
“여기 맥주 3,000cc랑 순살 치킨 2마리 세트 줘. 바싹하게 튀겨서 말이야.”
잠시 후 맥주와 치킨이 나오자 석민은 커다란 맥주 피처를 들어서 그들의 잔에 따라주었다.
“교리고 자시고 난 무신론자라서 잘 모르겠지만….”
하얀 거품 가득 황금색 액체가 채워지는 것을 보고서, 단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다면 서도 박선우와 이선재는 침을 삼켰다.
“…오늘만큼은 술 한 잔 정도는 해도 될 거라고 봐. 그리고 교단 애들한테 술집에서 뒤풀이 좀 한다고 했을 때 다들 아무런 말 안 하는 거 봐선, 마셔도 되겠지. 이제부터 우리가 갈 곳은 생존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는 품속에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김지형이 건네준 법인카드였고, 내일 저녁까지 300만 원이라는 한도 내로는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받았다.
“그러니 마시자고.”
석민이 잔을 들었다.
박선우와 이선재는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지은 채 서로를 보았다.
독실한 신자인 그들은, 진실로 24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술을 마셔보고 싶었으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내가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나?”
“아니에요.”
석민이 팔을 든 채 재촉하자 그들은 마지못해 맥주잔을 들어 부딪쳤다. 그리곤 눈을 감고서 맥주를 들이켰다.
그게 시작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새로운 잔이 채워지고 채워질수록 그들은 점점 맥주를 빠르게 비웠다.
평생 지키던 맹약을 어기는 일탈의 희열과 배덕감,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이 그들의 이성을 지배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