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53화]
그 뒤에 벌어진 훈련들에서는 큰 충돌 없이 지나갔다.
박선우와 이선재는 이미 기가 꺾여서인지, 딱히 석민을 견제하지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사격훈련 속에서 협동훈련도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협동하여 행동할 때 쓸 수화를 배우는 것이었다.
석민은 자신이 쓰던 수화체계와 달라 외우는 데 조금 고생하긴 했으나, 무난하게 배울 수 있었다.
협동훈련이 계속될수록 박선우와 이선재의 석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그들이 많이 누그러지자 석민 또한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3주 차가 될 무렵, 그들은 근접격투 훈련을 하게 되었다.
이선재는 훈련용 고무 대검을 오른손으로 쥔 채 석민과 견제 중이었고 석민 역시 고무 대검을 거꾸로 잡고서 이선재를 살폈다.
“와 봐.”
이선재는 튀어나오듯 앞으로 달려들면서 석민의 목을 향해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석민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그것을 피한 직후, 칼 든 이선재의 손목을 왼손으로 붙잡고서 그의 목을 노려 자신의 칼을 뻗었다.
기겁한 이선재는 왼손으로 석민의 팔을 쳐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칼날에 손목이 그였다.
진짜 칼이었으면 손목이 깊게 베였을 것이다.
고무이긴 하지만 찌릿하고 전달되는 고통에 이선재는 살짝 얼굴을 찡그린 채 잡힌 팔을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스탯을 찍는 석민의 엄청난 팔심에 빼기는커녕 오히려 석민에게 끌려 다녀야 했고, 결국 잠깐 틈을 보인 사이에 석민의 고무 대검이 그의 목에 살짝 닿아있었다.
“그만.”
“제길.”
박선우의 말에 이선재는 투덜거리며 물러났다.
그러자 바로 박선우가 자신의 고무 대검을 꺼내 석민에게 달려들었다.
석민은 한 발짝 물러나는 것으로 자신의 배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박선우의 칼을 피하고서 박선우의 목을 베려고 팔을 휘둘렀으나, 그는 재빠르게 몸을 돌리면서 다리를 휘둘렀다.
아무리 일반인보다 강한 힘을 가진 석민이라도 그런 발차기에 손이 닿자, 저도 모르게 고무 대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박선우는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석민에게 달려들면서 고무대검을 휘둘렀다.
피할 줄 알았던 석민은 그런 박선우의 움직임에 오히려 앞으로 나서서 그의 팔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어?’
순간적으로 팔을 굽힐 수 없게 된 박선우는 당황했음에도 석민의 옆구리나 등을 찌르기 위해 행동했지만, 석민이 더 빨랐다.
석민은 박선우가 칼을 든 팔의 하박을 옆구리에 끼운 채 오른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서 그의 오금을 발로 차 무릎을 꿇게 만든 후, 팔과 허리의 힘으로 그를 억눌러 뒤로 쓰러지게 만든 다음 그의 얼굴에 군홧발을 살짝 올려 마무리 지었다.
실전이었으면 온 체중을 실어 그대로 짓밟았을 테니, 박선우의 얼굴이 처참하게 뭉개졌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박선우는 분을 삭이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수없이 겨뤘는데도 단 한 번도 석민을 이기지 못했다.
그들은 단 몇 번의 대련 이후 석민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장장 2시간 동안 대련이 이어지고 있는데, 석민은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칼을 잘 쓰는 법이 무엇입니까?”
수건으로 얼굴에 생긴 땀과 묻은 먼지를 닦으며 그가 물었다.
“잘 쓰는 법은 없어 그저 많이 대련을 하고 경험해야 해.”
석민이 말했다.
“그러면 어디서 이런 기술을 배우신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한테서.”
석민은 돌려 말했다.
이 이상 그의 과거를 말해주는 것은, 자신에게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칼 기술은 지금 너희가 아는 정도면 충분해. 사격술만 좋으면, 이런 건 쓸 일이 거의 없지. 절대로 칼을 쓸 일을 만들지 않는 게 더 나아.”
겨우 그 정도 조언으로도 석민은 그 두 사람에게서 대단한 존경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기준으로 순진한 만큼 순수했고, 그랬기에 쉽게 흥분했고 반대로 쉽게 사람에게 호감을 보였다.
같이 훈련하고, 밥도 먹고, 또 가르침을 주는 입장이 되니, 신뢰가 생기고 더 나아가 존경까지 생긴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석민의 뜻대로 되었다.
석민은 그들에게서 경험이 많고 실력도 매우 훌륭한 한 명의 군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석민은 완벽하게 안심하지 않았다.
이미 이선재의 텃새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틀리지 않았다.
자기들보다 모든 점에서 강하고 완벽한 석민의 모습에 기가 질린 두 사람은, 이내 다시금 치기 어린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다.
적어도 우리가 한번은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없는 근접격투에서도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석민의 모습에서, 박선우의 머릿속엔 작은 의문의 싹이 텄다.
“사도대에서 가장 정예인 우리가 이렇게 무기력하다니.”
마찬가지로 이선재의 입에서 으득- 하고 이가는 소리와 함께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말들이 쏟아졌다.
사명감이 투철한 그들은 자존심이 너무나도 크게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그들은 사도대 중에서도 교주 백은호의 큰 신뢰를 받을 정도로 직위가 높은 편이었었기에 상심이 더 깊었다.
“다음에 있을 모의전투 때 한 번 코를 좀 납작하게 만들자고.”
이선재의 제안에 박선우는 깊게 고민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시간이 지나 어느덧 4주 차가 될 무렵 그들은 마지막 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건물 점령 훈련이었다.
“사용할 무기는, 안전을 위해서 암염을 넣어 만든 소금탄을 장전한 샷건과 훈련용 수류탄입니다.”
이선재가 말했다.
“건물을 지키는 팀은 1명, 공격을 하는 팀은 2명입니다. 건물을 지키는 사람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공격팀을 전멸시키는 것이 목적이고, 공격팀 또한 방어팀의 전멸이 목적입니다.”
박선우는 폐건물처럼 방치되어 있는 3층짜리 건물로 석민을 데리고 와서 말했다.
“방어팀은 절대로 건물 밖으로 나가거나, 사격을 해선 안 되고, 더불어 외벽을 타서 건물 위로 올라가도 안 됩니다. 방어팀의 준비시간은 30분입니다.”
조건이 많은 걸린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보다 준비시간이 길어 무언가 이상했다. 석민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30분 동안 부비트랩을 준비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러면 역시 방어는 내가 해야겠지?”
“그러시죠.”
그들은 시간을 정한 후, 훈련을 하기로 합의했다.
한 사람당 주어진 탄환은 소금탄 30발이었고, 무기는 훈련용 수류탄 2발이 전부였다.
석민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천장에 달린 센서 방식의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예전에 펜션 혹은 모텔로 사용했는지, 건물 안엔 가구들이 가득했다. 가구들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긴 했으나 전부 멀쩡한 상태였으며, 유리창도 깨진 것이 없었다.
‘먼지 때문에 발자국이 남을 것 같은데.’
석민은 인상을 쓰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빗자루가 보이자 바닥을 대충 쓸었다.
건물이 넓어서 전부 다 쓰는 것은 무리였다. 대충 지나갈 통로만 쓴 다음, 근처에 버려진 공구상자를 발견하고는 거기서 드라이버를 꺼냈다.
이윽고 그는 청소하면서 봐둔 전류차단기를 찾아 내리고는 건물로 들어올 수 있는 앞문과 뒷문에 부비트랩을 만들기로 했다.
그는 뒷문 쪽 센서 방식의 전등을 드라이버로 분해하고는 전선을 빼냈다.
센서 조명에 있는 동작감지기는 적외선을 이용해 움직임을 감지한 후 전등에 불이 들어오도록 만들어진다. 이걸로 산탄총에 사용되는 뇌관을 이용해 트랩을 만들 생각이었다.
산탄총의 뇌관은 다른 탄약 뇌관들처럼 둔감뇌관이긴 했으나, 전구를 켤 정도의 전류가 있다면 격발이 가능했다.
석민은 소금탄 한 발을 빼낸 후 전선을 구리탄피에 감은 뒤 검은 테이프로 감싸 전구 소켓 구멍에 넣고서 경화제로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그것을 천장에 고정 시킨 후, 탄약이 발사될 방향으로 살짝 구부려 조정했다.
이제 차단기를 올려놓으면, 누군가가 뒷문으로 들어와 센서에 감지되자마자 격발될 것이다.
간혹 침입자가 머리 위를 쳐다볼 수도 있기 때문에, 문에도 수류탄과 가느다란 실로 만든 부비트랩을 만들어 부었다. 이것을 본 상대방이 수류탄 부비트랩에 정신이 팔려서 해체한 다음, 안도에 빠져 경계를 낮추었을 때를 노리기 위한 이중트랩인 것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30분이란 시간이 다 지나고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들이 이제 접근할 것이다.
석민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발자국을 몇 개 만든 직후 크게 뛰어서 내려왔다.
그가 보기엔 2층에서 교전을 벌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잊지 않고 차단기를 도로 올렸다.
***
박선우와 이선재는 바로 돌입을 하지 않고,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그들은 안전을 위해 바이저가 있는 헬멧을 쓰고 두꺼운 옷을 입은 채였다.
“내가 정문으로 들어갈 테니, 너는 뒷문으로 들어가. 부비트랩은 아마 수류탄일 테니, 평소 하던 대로 조심하고. 예전에 훈련받은 대로 1층서부터 차례대로 청소하듯이 올라가자고.”
박선우가 말했다.
“좋아.”
산탄총을 장전하며 이선재가 대답했다.
“사격실력이 좋긴 했지만, 우린 2명이고 실전경험도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어. 이번만큼은 저 양반 콧대 좀 눌러보자고.”
이선재는 박선우가 석민을 부르는 명칭이 전보다 부드러워진 것을 느꼈다.
자신도 전보단 석민이 나쁘게 생각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콧대는 한 번쯤 눌러주고 싶었다.
“그럼, 이제 가자. 무전기 채널은 32번으로 맞춰.”
이선재와 박선우는 각자 흩어져서 건물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박선우가 먼저 현관문을 열었다.
그가 문을 열기 무섭게 문의 경첩에서 쇠가 갈리는 특유의 끔찍한 소리가 났다. 조금 긴장하고 있던 그는 바짝 쫄아 바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뒤로 물러서려던 자신의 발을 끌어 앞으로 디디며 안으로 들어섰다.
“좋아, 들어와.”
무전으로 전달된 박선우의 말에 이선재도 다른 쪽 문을 열었지만, 이내 멈추었다.
눈앞에 파란 훈련용 수류탄이 나타난 것이다.
‘가소롭군.’
이선재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수류탄 부비트랩의 구조를 확인했다. 문가에 실을 연결해두고, 문이 열리면 안전핀이 뽑히는, 완전히 단순한 구조의 부비트랩이었다.
‘사격술이나 다른 것은 잘해도 이런 것은 영 젬병인걸.’
-무슨 일이야?
무전으로 박선우가 물었다.
“뒷문에 수류탄 부비트랩이 있어.”
이선재가 답했다.
“들어가는데 조금 걸릴 거야. 대기해.”
그는 대검을 꺼내 실을 잘랐다.
“좋아, 제거했다.”
혹시 모르기 때문에 그는 바닥에도 부비트랩이 이중으로 있는지 확인했지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문을 열 준비를 했다.
“들어간다.”
그 순간 머리 쪽에서 폭음이 들리기 무섭게 이선재는 머리와 어깨에 큰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
센서에 의해 산탄이 격발되면서 소금탄이 그에게 쏟아진 것이다.
“저, 전사!”
이선재가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자신의 전사를 전달하고는 문밖으로 기어나갔다.
“이런.”
박선우는 산탄총의 격발음이라 착각하고, 그쪽으로 빠르게 이동했으나, 바닥에 누운 채 앓는 소리만 내는 이선재만 보일 뿐이었다.
주변을 살피던 박선우의 시선에, 머리 위에 달린 격발된 산탄약이 보였다.
‘시발, 저게 뭐야?’
난생처음 보는 부비트랩에 저도 모르게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은 박선우는 산탄총을 고쳐 잡고 석민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는 1층 방안들을 수색하기 위해 움직이다가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확인했다.
먼지가 쌓인 덕분에 생긴 발자국이었다.
그는 발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발자국은 계단위로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