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51화]
석민은 이어서 베넬리 m4라 불리는 산탄총을 꺼내 들었다.
아래 삽탄구에 은색 기구가 새로 달려 있었다.
[베넬리 m4]
내구도: 100%
품질: 상상
탄약: 12게이지
이탈리아 Benelli사에서 생산한 반자동 샷건,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상태가 매우 좋다. 급속장전을 위해 스피드로더가 장전되어 있다.
반자동 산탄총으로 평이 좋은 녀석이었다.
석민은 그것을 들어보았다.
일반적인 총보다는 묵직했고 장전손잡이를 당기는 맛이 정말 좋았다.
“탄환은?”
그 말에 박선우가 12게이지 샷건 탄환들이 담긴 종이상자를 그에게 밀었다.
대 괴수용으로 철갑 슬러그탄도 충분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보는 석민은 표정은 대단히 떨떠름했다.
“왜?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박재만은 설마 여기에도 장난을 쳤나 싶어서 슬그머니 걱정이 들었다.
“뭐, 나쁘지 않은 총이긴 한데.”
헌터들은 신속한 장전을 위해 탄창식 산탄총을 사용하지,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말에 박재만은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신속한 장전을 위해 스피드 로더가 달린 것은 이해하긴 하는데, 스피드 로더 자체가 부피가 커서 많이 걸리적거리는데다가, 전용탄 삽입기도 너무 부피가 커. 이걸 어떻게 많이 들고 다니려고? 차라리 탄창식 샷건을 마련하거나 아니면 417만 사용하지 그래?”
“…참고하지.”
오늘따라 자존심이 와장창 박살나고 있었지만, 경험이 풍부한 자의 피드백을 무시할 순 없었기에 석민의 신랄한 비판에도 그저 꼬박꼬박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석민은 욕만 넣지 않았다 뿐이지, 완전 깔고 뭉갤 정도로 준비 상태를 비난했다.
‘이런 준비상태면 서울 가서 다 죽기 딱 좋은데.’
대통령이 들었으면 그래도 우리 국민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개소리(어디까지나 그의 입장)를 했겠지만, 석민은 딱히 그들이 서울로 가든, 거기서 죽든 별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신임이라도 좀 얻고자 대충 툭툭 던지는 이런 지적들이 그들의 준비를 탄탄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할 지경이었다.
“일단 준 무기이니 베넬리는 가지고 있도록 하지. 기관단총이나 권총도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필요 없어. 그럼 이제 나가봐도 되나?”
“그러시게. 우리는 일단 내일을 위해 이야기 좀 나눠야겠어.”
석민은 박재만에게 눈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잠깐, 탄환도 가져가는 건가?”
“처음 써보는 것이니 연습 좀 해봐야지.”
방금 전까지 베넬리에 대해서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았으면서 연습하겠다는 말을 신뢰할 자가 몇이나 될까 싶었지만, 다들 머릿속이 복잡한지 그 모순점을 깨달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마 자신이 나가자마자 박재만의 불호령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것이다.
‘정예라지만, 어린 것들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 칠 줄은 몰랐네. 적어도 서울에 가서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만약에 사격훈련 때 기능고장이 일어났다면, 총기를 대체하느라 시간이 지체될 텐데?
그가 보기엔 박선우와 이선재는 매우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나이 20을 넘겼는데 철이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공이가 부러진 상태에서 격발이 되긴 하나?’
아마 몇 발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서울로 갔다면 그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을 것이다.
‘엿 먹이려다가 실패했으니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하겠지.’
석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다시 아까 상황을 떠올려서인지 화가 치솟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어린놈이 벌이는 치기 어린 행동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어리석어 보였다.
‘그렇게 고결한 척 똥폼은 다 잡더니, 뒤에서 이런 더러운 짓을 하다니. 나랑 별반 다를 것도 없잖아.’
하지만, 이내 그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저렇게 답 없는 놈들이면, 접근하는 데 조금 애를 먹겠어. 첫인상이 너무 안 좋았어. 아니, 저렇게 정신적으로 어린놈들이면, 신뢰를 더 빨리 얻을지도.’
그나마 확실한 것은 주도권이 이쪽에게 완전히 돌아섰다는 것이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이게 웬 떡인지, 갑작스런 기회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이제 이 상황을 굳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석민이 예상을 한 대로 그가 나가기 무섭게 박재만은 분노의 감정을 터트리며 박선우와 이선재를 몰아붙였다.
“설명을 해봐, 이 자식들아.”
박재만이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건만! 이런 식으로 비겁하게 뒤통수를 쳐?”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방음이 잘 되는 곳이 아니라 소리가 석민에게 새어 나갈 까봐 최대한 소리를 죽여 가며 말했다.
“교주께서 빨리 서울로 보내라고 재촉하시는 마당에, 대업을 생각 못 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텃세 부리자고 총을 망가트리고 일정을 지연시켜? 주도자가 도대체 누군가?”
“교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박선우가 놀라 되물었다.
“우리가 왜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는 상당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는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분을 못 이기고 팔짝거리며 뛰었다.
“저희가 그런 짓을 해서 무슨 이득을 볼 수 있죠? 공이가 잘린 총은 격발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폭압에 의해 총이 망가질 수도 있는데….”
열렬하게 무죄를 주장하던 박선우의 시선이 자연스레 조용히 서 있는 이선재에게 닿았다.
“아니, 형제님….”
황망함에 그는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설마… 아니,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아니, 되었어.”
박재만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 일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으니 교주님께 보고되면 그대들이, 아니 우리들이 위험해진다. 오늘 일은 덮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오늘 훈련용으로 쓸 교탄은 내일 다 사용하는 것으로 하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박선우는 고개를 떨어트리고선 시무룩하게 답했다. 이선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끌어다가 대답하는 것처럼 작은 소리로 답했다.
“그럼 무기를 챙기고 나가봐!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딴 비겁한 짓을 하지 말고 실력으로 누르라고!”
박선우와 이선재는 쫓겨나듯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숙소로 도착하자마자, 박선우는 이선재의 멱살을 붙잡았다.
“도대체 왜 그런 것입니까?”
“전 그저… 그 녀석을 골려주려고.”
“뒷감당은 생각도 안 하고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그 말에 이선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한 생각으로 무난하게 속아 넘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 뒤틀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박선우는 이런 사소한 감정 때문에 막무가내로 일을 키운 이선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나름 자신들은 사명을 부여받고서 이런 일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런 뒷공작이나 한다면 석민과 다를 바가 없었다.
“회개기도를 하셔야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을 석민에게 가서 용서를 빌 생각은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이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박선우는 석민에게 약점 잡히고 주도권을 빼앗긴 게 아쉬웠다.
‘권총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쏘지만.’
박선우는 자신의 hk417소총을 들어 보았다.
도트사이트와 수직손잡이가 달린 총으로, 자신에게 맞춰 사용하기 편하도록 방아쇠 압력도 많이 낮춘 놈이었다.
이 총으로 수년 동안 사격연습을 하였다.
소총 사격만큼은 자신이 있다 그 말이었다.
‘이걸로 찍어 눌러주지.’
그는 총을 고쳐 잡았다.
‘내일은 누가 우위인지 보여주마.’
석민이 들었다면 25살 먹은 청년치고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라며 비웃었을 것이다.
그리곤 무분별하게 접한 만화가 사람을 망친 게 아닐까 하며 주석을 달았을 거고.
***
다음 날 아침, 석민은 교단사람으로부터 제대로 된 전투소총을 받을 수 있었다.
“좋아.”
총의 상태 확인을 끝낸 석민은 박재만의 대리로 온 남자에게 물었다.
“바로 사격 연습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김지형은 석민이 자기를 언제 봤다고 하대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레 말하니 뭐라 말하지도 못했다.
“교탄으로 각자 1,200발씩 준비했습니다.”
애써 화를 삭이며 김지형은 일정을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 1주일간은 사격연습을 통해 총기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고, 그 뒤 훈련은 침투, 기도비닉, 그리고 CQB(근접사격전투)와 CQC(근접격투) 전투 훈련이 있을 것입니다.”
“대 괴수 훈련은 없는 건가?”
석민의 물음에 김지형은 고개를 저었다.
“사격훈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아, 그러면 사격장으로 이동하면 되는 거지?”
석민은 그들이 준 장비로 무장을 한 상태였다.
박선우와 이선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급받은 탄약을 탄창에 넣는 중이었다.
20발짜리 탄창 8개와 50발짜리 드럼탄창 2개였다.
석민은 50발짜리 탄창을 넣으면서 탄약 하나하나 전부 시스템창으로 확인했다.
[7.62mm KM60]
내구도:100%
품질:상
한국에서 생산한 고압탄.
‘군용인가? 고압탄이면, 꽤나 강력하겠군.’
분명 좋은 탄창이었지만, 만약에 탄약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탄창도 제대로 쓸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준비를 마친 그는 고개를 들어 박선우와 이선재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들은 탁자 위에 올려둔 자신들의 무기 위에 사슬이 길게 달린, 골프공만 한 크기의 향로를 올려 향을 피운 뒤, 무언가 주문 같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일반 무신론자가 그들의 모습을 본다면, 그냥 경건하게 기도를 하는 중이라 생각하겠지만, 무신자를 떠나 종교 자체를 그리 좋게 보지 않는 석민의 관점에서는 인상 찌푸릴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코끝을 맴도는 향냄새는 마치 제사나 장례식장을 떠올리게 만들어 석민의 기분을 한층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동생의 시신도 확보하지 못해 제대로 된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그렇게 경기도 어딘가의 길거리에 하염없이 주저앉았던 기억이 생각났다.
석민은 낮은 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기도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들은 석민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경건하게 기도 중이었다.
특히 박선우는 석민의 코를 납작하게 누를 수 있게 지혜와 용기, 그리고 재능을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는 그리 오래지나 지 않아 끝났다.
향로 자체의 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인지 가는 연기를 피워 올리던 향연도 금방 사라졌다.
“끝났나?”
기다리다 지친 석민의 물음은 자연스레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미간을 살풋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사로에 들어가 사격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50발짜리 탄창을 사용하죠.”
박선우가 말에 석민은 손을 들어 답했고 커다란 원형탄창을 꺼내 탄창을 삽입했다.
표적지는 그들의 발밑에 있는 발판의 버튼을 발로 누르면 나오는 방식이었다.
“총 20개의 표적지가 나올 것입니다.”
박선우가 말했다.
“20개의 표적을 먼저 사격하면 되고….”
‘경쟁을 하자는 건가? 좋아.’
석민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씩 웃었다. 그 모습에 박선우는 인상을 쓰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표적이 명중되면, 표적지는 자동으로 하강할 것입니다.”
“좋아.”
석민은 장전손잡이를 당겨 약실에 탄을 넣었다.
“그러면 준비하시고, 시작!”
석민이 발판을 누르기 무섭게 눈앞에 표적들이 나타났고 그는 살짝 움찔거렸다.
일반적인 사람 모양이 아닌, 커다란 황소크기의 괴수부터, 대형견크기의 괴수 등 크기가 각양각색이었다.
‘흠, 이게 대 괴수 훈련인 건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괴수의 다양한 사진을 프린트해서 만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