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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50화 (50/226)

[게이트 오브 서울 50화]

석민은 그를 보고 입 꼬리를 올렸다.

“뭐, 그래. 난 딱히 사람 죽이는 게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야.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사람 목숨이 파리와 다를 바 없고 그만큼 페이가 좋진 않지만, 이렇게라도 따뜻한 난방이 되는 단칸방에서 살길 바라는 사람은 수두룩하니까.”

나도 그렇고.

석민은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이고는 너무 말을 많이 했나 싶어 아차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캐낼지도 모르니까.

석민은 지금이라도 입을 닫자고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반쯤은 모험이긴 했는데, 다행히 잘 먹혀들어 간 것 같았다.

박선우와 이선재는 감동과 동정이 섞인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두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대략 차를 탄 지 2시간하고 30분이 될 무렵, 북한강을 배경으로 이동식 목조건물들이 밀집한 펜션촌에 도착했다.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

석민은 차에서 내려 그 목조건물들을 보았다.

일본식인지, 서양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름 잘 관리가 되는지 깨끗하고 풍경과 잘 어우러져 보였다. 건물 근처에는 서바이벌 게임장처럼 보이는 벽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훈련장과 사격장도 보였다.

“202호실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석민에게 다가오더니 펜션촌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뒤에 있는 커다란 야산에 세워진 건물을 가리켰다.

그는 이미 사전에 명령을 받았는지, 석민에게 바로 열쇠를 넘겨주었다.

따로 떨어진 건물이라 좀 찜찜하긴 했지만, 2층에 설치된 발코니가 썩 마음에 드는 건물이었다.

“짐을 거기에 푸시고 잠깐 쉬신 다음에 2시쯤에 저기 본관 건물로….”

이선재가 가장 큰 3층짜리 회관 건물을 가리켰다.

“…오시면 됩니다. 거기서 장비와 옷을 나눠 드릴 겁니다.”

‘가지고 온 짐도 없는데.’

석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은 따로 장비를 챙겼는지, 봉고차의 뒷문을 열어 커다란 가방들을 챙겨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

석민은 열쇠를 챙겨 자신이 배정받은 건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가구 같은 것이 하나도 없어 내부는 썰렁하기 그지없었지만, 사전에 보일러를 틀어 놓았는지 내부의 공기는 훈훈했다.

그는 현관문 위쪽의 센서 방식의 조명등을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침구류와 침대는 준비되어 있었다.

1층엔 방 하나와 거실, 욕실이 딸린 작은 화장실 그리고 부엌과 보일러가 있는 작은 방이 있었다. 그는 전부 확인한 뒤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계단은 석민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2층에는 방 하나와 화장실이 전부였다.

‘2층은 쓸 일이 없겠군.’

계단은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고, 발코니도 집 정면이 아닌 측면에 배치되어 있어서 유사시 방어하기 어려워 보였다. 거기다 이 집은 뒷문이 없었다.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은 석민은 침대에 걸터앉아 시간을 때웠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일어나 천천히 본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당으로 쓰이는 건물엔 탁자와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고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엔 무기와 방탄복, 방탄모를 비롯해 온갖 장비들이 널려 있었다.

“아, 왔나?”

박재만이 석민을 보자마자 아는 체했다.

“전에 말한 대로 장비와 무기들은 전부 우리가 지급 할 거야. 최고의 장비들이지.”

박재만은 탁자에 올려진 무기들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석민은 그에게서 무기를 받아 들어보았다.

[H&K HK417]

내구도: 90%

품질: 중중

탄약: 7.62×51mm NATO

H&K에서 생산한 전투소총, 중고이다. 박재만은 이것이 자신이 구할 수 있는 무기 중에 최고라 여기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기 어린 질투를 가진 이가 공이를 부러트려 놓았다.

‘뭐야? 이거.’

석민은 매서운 눈으로 박재만과 뒤에 선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지?”

박재만이 물었지만, 석민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황당한 눈으로 시스템창과 총을 번갈아 보았다.

총을 의도적으로 망가트리다니.

나름 잘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완전히 설득한 상태는 아니었나 보다.

석민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문제 있나?”

참다못한 박재만이 다시 물었다.

“사용하기 전에 확인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확인? 무슨 확인?”

석민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총기를 분해하기 위해 탁자 위에 올렸다.

그것을 본 박재만은 언짢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비록 중고긴 하지만, 그가 직접 마련한 총기 중에선 최고급품이었다.

고맙다고 고개 숙이고 그냥 써도 모자랄 판국에 의심하고 총기를 분해하려고 하다니.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한마디 쏟아 부을까 하다가 그가 외부인인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기다 킬러라는 직업 때문인지 매사에 매우 신중해 보였다.

본인이 직접 깨끗한 물건이라는 걸 확인한 뒤에 뭐라 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석민에게 이것은 처음 만져보는 총기이긴 했지만, 예전에 M16A1을 분해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분해하는 데 별로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다른 쪽도 확인하는 척을 하면서, 총구 부분을 빛이 있는 쪽으로 둔 후 총열을 확인했다.

시스템에 나온 대로 총열 부분은 멀쩡했다.

그 직후 그는 노리쇠 뭉치를 분해하기 시작하면서 주변 인물들을 살폈다.

박선우는 태연하게 있는 반면, 이선재는 석민이 총열을 분해하자 얼굴이 심하게 굳어졌다.

내심 얼굴표정관리를 하긴 했지만, 그가 당혹해하는 것이 석민에겐 그대로 보였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석민의 속에선 분노로 열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애써 침착하게 노리쇠 뭉치를 분해하고 공이를 꺼냈다.

그러자 똑 부러진 은색의 공이가 튀어나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쇠톱으로 잘랐는지 단면이 많이 매끈했다.

석민은 그것을 들어서 보였다.

석민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박재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석민은 권총을 꺼내서 그들을 조준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함께 있던 모두의 몸이 굳은 채, 침묵이 그들 사이를 감돌았다.

그러다 한 명이 재빠르게 총을 꺼내자 석민이 그대로 총을 쏴 그자의 손에 들린 권총을 떨어트렸다.

“모두 다 동작 그만. 무슨 개수작이지?”

석민이 권총을 박재만의 이마에 겨누며 물었다.

“…뭔가 오해를 사게 한 것 같군.”

“오해?”

석민의 물음에 박재만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매서운 눈길로 박선우와 이선재를 잠깐 훑어보다가 이내 다시 석민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무기 조달을 하는데 착오가 있었어. 절대로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석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변명도 같잖았지만 이로써 편하게 주도권을 뺏어올 수 있다니 너무 쉬워서 절로 웃음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그런 의미로 온 것이 아니…. 아닙니다.”

눈앞에 권총이 있어서인지, 그의 말투가 정중하게 바뀌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당신을 속여서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그러겠습니까?”

박재만은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석민은 성큼성큼 걸어와 총구를 그대로 박재만의 이마에 붙였고,

“헛소리 마. 날 잡아서 넘기려는 거겠지. 나는, 적이 너무 많거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황당함을 느꼈다.

“우린 애초에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고요.”

박재만은 쉴 새 없이 땀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자는 정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순한 착오야. 애초에 그 짓을 하려고 했으면 무기 자체를 주려고 하질 않았겠지.”

“내 뒷조사를 하면서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박재만의 말에 석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기다 저기 있는 애송이 두 놈이.”

그 말에 손을 들고 있던 박선우와 이선재는 발끈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비 거는 것도 그렇고. 언제부터 사람을 죽여 봤냐는 둥 건방지게 물어보더군.”

“그건 내 뜻이 아니야.”

애초에 그가 마련한 무기들은 그가 김성일에게서 조달한 무기들로, 박선우와 이선재에게 전달하기 전에 분해하고 검증한 것들이었다.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뒷감당도 못 할 것들이 이런 장난을 치다니.’

박재만은 이들의 치기 어린 생각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분통이 터졌다. 제법 많은 돈을 써서 장만한 것인데, 신입 한 명 엿 먹이자고 이런 식으로 날리다니.

“뒷조사는 하지 않겠….”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어떻게 해주면 믿겠나?”

석민은 잠시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보상금으로 500만 원을 줘야겠어.”

“뭐? 500?”

박재만의 놀라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으로 이 상황도 타개하고 나랑 신뢰를 만들면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석민은 의도적으로 높은 액수를 불렀다.

첫 번째로는 돈에 목숨까지 걸 수 있는 놈으로 보이기 위해서였고, 한편으로는 돈 빼고는 딴생각 없어 보이는 놈으로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박재만은 석민이 욕심만 가득한 남자라 생각했다.

‘이걸 핑계로 돈을 뜯어낼 생각이군. 적어도 그래, 머리에 총알 맞을 일은 없겠어.’

그는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계좌이체로 해도 되나?”

석민은 추적당할 수 있는 계좌이체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를 대비한 대포통장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석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민을 향해 들어 보이던 박재만의 손이 슬금슬금 내려갔다.

“좋아, 나는 휴대폰을 꺼내지.”

“천천히 꺼내.”

석민은 박재만이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는 것을 지켜보고는 은행과 계좌번호를 말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단 내부에서 돈이 조금 빠듯해지고 있는 실정이라, 돈 지급과 이에 따른 계획 지체, 추가적인 지출은 분명 이유막론하고 용서받기 힘들 것이다.

이딴 말도 안 되는 장난질을 한 자의 처벌은 당연하겠지만, 이번 업무를 계획한 자 또한 감독 실패로 연대책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일이 공론화되면 여러모로 자신에게 불리했다.

‘아깝지만.’

그는 자신의 개인 돈에서 석민에게로 500만 원을 입금했다. 잠시 후 입금 내역을 확인한 석민이 총구를 내렸다.

“그럼, 이제 믿도록 하지.”

물론 석민은 보복이 두려워 쉽게 권총을 품속에 넣지 못했다.

박재만은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억눌렀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선우와 이선재를 한번 쏘아보았다.

박선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박재만을 쳐다봤지만, 이선재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자신의 통장이 크게 펑크가 난데다가 일정이 연기되었지만,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나름 교주 직속 친위대라 거들먹거리던 이들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나는 남이 조달해준 무기를 안 쓰는 편인데, 그래서 대체품이 있나?”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군, 박재만은 거만해진 석민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말을 아껴야 했다.

순간적으로 총을 쏴서 상대의 총을 멀리 날려 버리는 솜씨와 낮은 중저음 목소리에 다들 압도됐다.

“있기는 한데 바로 준비할 수는 없어. 그래도 내일까진 마련할 수 있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영점 사격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것은 내일로 연기해야겠어.”

박재만도 석민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반말을 썼으나, 떨리는 입 꼬리를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석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지 시선을 널려있는 다른 무기들에게 돌리며 말했다.

“다른 무기들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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