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49화]
“어떻게 그들과 신뢰를 쌓을 생각이시죠?”
“그런 부류는 자기가 고결한 전사쯤 된다고 생각하지.”
근거도 없는 편견이었지만 아영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
“그래서요?”
“그리고, 그 치들은 호승심이 높아서, 자신이 보았을 때 만만치 않은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서는 누르거나 겨뤄보려고 하지. 성질머리들이 안 좋아.”
그거 날 두고 하는 말인가?
아영의 콧등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가 사라졌다.
‘하긴, 나도 처음 석민 씨를 만났을 땐, 한번 겨뤄보고 싶었어.’
“그런 놈들은 한번 압도적으로 꺾이면 자기가 일방적으로 졌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론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되지.”
석민은 따뜻한 마테차를 홀짝였다.
“그걸 노릴 거야. 같이 합숙하면서 고생을 하면, 상호 간의 신뢰와 믿음이 생길 테고. 그렇게 같이 지내다 보면 졌을 때 가졌던 분노가 가라앉고 서서히 존경심이 떠오를 테니, 침투하기 완전 식은 죽 먹기겠지.”
“…그럴듯하네요.”
천천히 상상을 해본 아영은 나름 말이 되는 상황이라 판단되었다.
“전 어떻게 도우면 되죠?”
“일반적인 휴대폰으론 추적당하고, 또 비밀 훈련장일 테니 압수당할 거야. 비화폰이 있었으면 좋겠어. 나라에서 그거 쓰잖아. GPS 기능 없는 걸로 구해줄 수 있어?”
아영은 잠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레까지 드릴게요.”
“그걸로 연락을 하지. 이제 조금 오래 떨어져 있을 거야. 그리고 그거 말고, 도청 탐지기도 있으면 좋겠군.”
“그것도 준비하지요.”
“그리고 박선우와 이선재에 대해서 조사 좀 해줘. 사진이 필요하나?”
“아뇨, 교단관련 인물들은 정부에서 요주 인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름만 검색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걱정 마시죠.”
그 말이 끝난 직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석민은 이 어색한 침묵을 끝내기 위해 뭐라도 말을 해야 하나 싶어 입을 벙긋거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레벨 업에 관해서 알아낸 게 있어?”
“아뇨. 뭐, 알다시피 천국의 문 교단과 관련이 있겠지만요. 그리고 이건 단순히 제 추측일 뿐인데, 교주 백은호가 거짓된 전령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영의 말대로 석민 역시 그가 퀘스트에 나오는 거짓된 전령이거나, 못해도 그와 관련된 인물일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게 맞는지 알아봐야 한단 말이지?”
“네.”
마테차를 다 마신 그는 잔을 내렸다.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봐야지.”
텃새
하루 뒤, 석민은 교구장 박재만에게 문자로 이틀 후 아침 10시에 판교역 2번 출구 근방에서 만나자고 통보를 받았다.
따로 장비나 무기를 챙기지 말고, 휴대폰도 가지고 오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기에 당일엔 단검 2개와 권총만 챙겨서 약속장소로 나왔다.
따로 차를 타고 이동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은 채 걸어서 이동했다.
그가 2번 출구 근방에서 서성이는 사이, 보안업체의 문구가 적힌 봉고 차량이 그에게 접근하더니 옆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들이 그를 맞이했다.
“타세요.”
박선우가 말했다. 석민이 차에 타기 무섭게 문이 닫히면서 봉고차는 출발했다.
“휴대폰 가지고 왔습니까?”
“아니.”
석민은 외투를 열어젖혔다.
안에 권총이 보이자, 그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개인 무기는….”
“아무리 그래도 경기도에서 아무것도 안 가지고 서 있는 것은 위험하지. 그리고 아직 너희들을 신뢰할 수 없거든.”
그것도 맞는 말이었기에 그들은 눈썹만 삐죽이고는 권총을 빼앗진 않았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폐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차는 경기도 광주시 쪽으로 빠져 팔당호를 지나 가평으로 가는 국도로 이동했다.
차내에는 운전을 하는 운전사만 있었고, 뒷좌석엔 박선우와 이선재만 있었다.
그들은 석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는 가만히 눈앞에 시선을 고정하거나, 창밖을 쳐다보았지만 그럼에도 석민이 신경 쓰이는지 종종 힐끔거렸다.
석민은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창밖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지나쳐가는 풍경을 감상할 뿐이었다.
경기도와 서울을 가리는 망할 검은 구름들 때문에 평소에도 어두컴컴했는데, 거기다 더해서 차량에도 선바이저가 되어있다 보니 차 밖이 더 우중충해 보였다.
석민 역시 입을 열지 않자, 차 안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길목마다 자리한 검문소들 때문에 차량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지고, 매우 지루했다. 석민은 몸을 뒤척이다가 여유롭게 낮잠이라도 잘까 싶어 눈을 감으려 했는데, 그 순간 박선우가 입을 열었다.
“이 일을 몇 년 동안 하신 겁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석민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람 죽이는 일?”
그 말에 이선재는 석민의 표정을 살피며 코를 손가락으로 쓱 문질렀고, 박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한 4년.”
그 말에 박선우와 이선재가 인상을 썼다.
자신들도 교단을 위해 사람을 죽이긴 하지만, 자신들은 신앙심과 자신의 일이 결국 교단을 더 좋은 것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단순하게 이익을 얻기 위해서 살인을 하는 석민이 탐탁지 않았다.
“…죄책감은 없습니까?”
죄책감?
석민은 인상을 쓰며 그들은 하나하나 보았다.
‘빌어먹을 광신자 놈들이 진짜로 자기들은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이가 털렸다. 자신에 대해서 저들이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가.
솔직한 마음으로는 당장 총을 꺼내서 시원하게 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몇 번 봤다고 저런 무례한 질문을 하는 거지?
‘혹시 이거 지금 도발하는 건가?’
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쪽엔 시선을 주지도 않던 것들이 석민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의도를 가지고 노린 것이 분명했다.
석민의 대답이 늦어지자, 그들은 무표정이 조금 무너졌다. 아마 예상하던 반응이 아니어서 그러리라.
‘음, 한번 내 이야기 좀 해볼까.’
동정, 혹은 저들이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런 걸 아직 내가 가지고 있기엔, 너무 많은 일을 겪었지.”
상대와 가까워지기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숨기고 있던 일이나 비밀을 공유할 때, 혹은 감정을 공유했을 때라고 석민은 생각했다.
과거 일을 잘 말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들에게 호감이나 동정을 얻기 위해서는 이편이 제일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1차 서울 수복작전 때 서울에 있었나?”
“아뇨,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우리는 이천에서 살았기 때문에….”
석민의 말에 이선재와 박선우의 눈이 흔들렸다.
‘역시 이것들도 나이가 어리구만.’
석민은 대충 그들의 나이가 25살 전후로 판단했다.
“1차 서울 수복작전이 있기 전까지 사람들은 집안에서 박혀서 숨어 있었어. 구조는 너무 더뎠고, 거리엔 당연하단 듯이 괴수와 감염자들이 돌아다녔지. 어떨 땐 괴수들이 감염자들을 잡아먹기까지 하고.”
석민은 갑자기 자신이 이야기꾼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으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박선우와 이선재는 석민의 말에 흥미가 돋는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전기와 가스는 공급이 끊겨도 다행히 수도만큼은 끊이지 않아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집 안에 있는 식량이 점점 떨어져 가고, 결국 먹을 걸 찾기 위해 밤중에 거리를 배회해야 할 때가 생겼지. 거기다 집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집까지 지켜야만 했고.”
그 말에 박선우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석민은 그의 매끈한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보며 더럽게 표정관리가 안 되는 놈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론 그 나이답다 싶었고.
“집을 지킨다고요?”
“당시에 나는 다세대 주택에 살았는데, 너무 낡고 오래돼서 도시가스가 아니라 LPG 가스통을 연결해서 가스레인지를 쓰고, 난방으론 기름보일러를 썼거든. 옆집이나 아랫집은 우리보단 여유가 있는 편이라 도시가스를 연결할 수 있었지만, 우리 집은 연결할 돈 300만 원도 없었지. 그런 궁상맞은 집이 막상 일이 터지고 나서는 생존에 큰 도움이 된 거지. 가스로 음식 조리가 가능하고 난방이 되는 집이 동네에 우리 집밖에 없었거든.”
사태가 일어나면서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뒤덮자, 무슨 조화인지 몰라도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한겨울 같은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었기에, 대부분 집에선 식량뿐만 아니라 보온에 대한 욕망이 강했다. 특히 대부분의 집에서 부탄가스마저 구하지 못한 채 생쌀을 씹으며 배고픔을 잊으려 노력하는데, 버젓이 쌀을 조리해 먹는 석민네를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는지 안 봐도 뻔했다.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선 싸워야 했지. 아, 내가 소년가장이었거든.”
그 말에 박선우와 이선재는 조금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신경도 안 썼을 LPG 가스통 하나를 지키고자 집안으로 들이고서, 그걸 노리고 침입한 자들과 싸우다 보면 살인도 하게 되지.”
박선우의 눈빛이 누그러진 느낌이었다. 석민은 몇 가지 더 말하기 위해서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진 않아. 연료와 식량을 얻어야만 버틸 수 있었으니까. 밖에 괴수와 감염자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도 기어코 찾아와서 식모살이하겠다, 같이 좀 살자, 물물교환이라도 하자 등 간절하게 애원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대부분 어린 자식이 있던 부모들이었어. 하지만 우리도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
처음엔 초나 라이터라도 주고 달래서 보냈지만, 괴수나 감염자들의 눈을 피해서 땔감을 구해 불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조용한 전쟁이 끝없이 일어났지. 뭐, 우리 집에서만 있던 일은 아니겠지만.”
석민은 아직도 자신이 죽인 첫 번째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론 기억이 흐릿했지만, 사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면 자신이 미칠 거 같았으니까.
그래도 첫 번째 살인은 뚜렷하게 기억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옆집에 살던 5인 가족이었다.
집안 어른인 옆집 할머니, 그리고 그 아들과 며느리, 13살짜리 손자와 10살짜리 손녀.
밤중에 그들은 몰래 석민의 집으로 들어오기 위해 문을 따려고 시도했었다. 깊이 잠들었던 석민은 사전에 그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고 결국 문이 열리면서 그 집안 식구들이 전부 침입했다. 그들은 모두 몽둥이나 식칼을 하나씩 들고서 자신과 자신의 동생을 죽이려고 했었다.
다행히 그들이 집안에 들어오는 발소리에 눈을 뜬 석민은 덮고 있던 이불을 그들에게 던져 시야를 가리고서, 자신의 옆을 찔러오던 자가 가지고 있던 과도를 뺏어, 제일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던 자의 목을 향해 찔렀다. 그 집의 가장이자 아들이던 사람이었다.
그 뒤로 며느리와 손자를 처리하는 것은 쉬웠다.
그들은 필사적이었음에도 많이 여위어 있어서 힘이 약했다. 그들이 내려치는 몽둥이의 힘으론 석민이 입고 있던 겨울옷과 이불을 대충 팔에 감아 만든 방어구에 일도 충격을 주지 못했다.
발로 대충 밀어 세 사람의 시신을 현관문 밖으로 내보내고, 밖으로 쫓겨난 채 야윈 손으로 손녀를 꽉 끌어안는 할머니를 노려보며 문을 이중으로 잠근 그때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들을 지워나갈 때, 밖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그 뒤로 괴수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낮게 깔려왔다. 그는 여동생과 함께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귀를 막아야만 했다.
다음날 일어나서 현관문 밖을 살펴보니 마른 핏자국만 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 옆집 할머니와 손녀는 볼 수 없었다.
“2차 수복작전이 끝나고 혼자 남게 되었을 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더군. 일자리는 구하기도 어렵고, 막상 구해도 임금은 쥐꼬리라 싸구려 국밥집에서 겨우 끼니 한번 때우면 끝이고. 대피소는 만원이라 들어가지도 못해, 잘 곳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것은 일상다반사고. 그나마 괜찮은 자리를 찾으면 자다가 신발을 안 뺏기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지. 그렇다고 강도질을 하기엔 나라 치안이 또 엄청 막장은 아니고.
사람들의 분노는 끝없이 쌓여 가는데, 그 분노가 풀어지는 곳이 없는 상태가 계속 이어졌지. 결국 분풀이는 괴수나 현 상황보다 서로를 향하게 되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먹고 살아야 하니….”
“그래서, 킬러가 된 거군요.”
박선우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