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48화]
옆에 있는 두 녀석이나 뒤에 자리 잡은 김지형의 미묘한 표정을 보며, 진짜 돈을 아끼기 위해서 페이를 낮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였다.
“좋아,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이제 내가 고용주이니 반말은 그만해주었으면 좋겠군.”
페이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자신의 행태를 지적하는 박재만을 보고서 석민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네, 뭐 그러지요.”
박재만의 옆에 앉아있던 박선우와 이선재가 왠지 심기 불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돈을 제대로 받기로 결정된 자신이 깊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신경이 조금 쓰였다.
“가평 쪽에 우리 교단 소유의 수련원이 있습니다. 거기서 1달간 같이 수련을 하면서 팀워크를 기른 후에 서울로 진입하는 것으로 하죠. 며칠 뒤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때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지요.”
다시 사무적으로 돌아온 박재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석민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눈인사를 한 직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석민이 자리를 나간 직후, 박선우는 박재만 쪽으로 상체를 돌렸고, 김지형은 석민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정말 저자를 저희와 함께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박선우의 말에 박재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교단의 최정예 요원입니다. 교주님께서 직접 우리의 이름을 거론하시고 뽑으신 이유가….”
“교주님께서 직접 자네들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내가 원했기 때문이네.”
박재만이 박선우의 말을 잘랐다.
“지난번의 실패는 이미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 형제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지만, 2년 동안 훈련받고 선발된 대원들이었다고는 하나, 그들은 실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네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 물론 교단을 위해 자네들이 걸어온 피와 희생을 절대로 모른다는 것은 아니지만….”
박재만은 분위기가 날카로워지기 전에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대들 중에 괴수와 전문적으로 싸워본 자가 있는가? 우리 성도들 중엔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아는데.”
박재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물었다.
이윽고 담배 연기가 나오자 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인상을 썼다.
“그렇다고 저자가 전문가라는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 카메라에 찍힌 것만 가지고 믿을 수 있냐며? 하지만, 자네들도 방금 눈앞에서 당했잖나?”
그의 말에 박선우와 이선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이번 면접에 함께 참여한 이유는 단순히 석민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사시 석민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무력하게 당해버린 그들로서는 뭐라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납득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사실들을 그들의 눈빛이나 분위기를 통해 박재만 역시 느꼈기에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뭐, 총을 빨리 꺼냈다는 것만으로 실력을 전부 알 순 없겠지.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그는 대단한 실력자로 느껴졌어. 자네들, 교주님께서 근래에 하신 말씀, 기억하지?”
“네, 성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박선우는 잠시 신중하게 대답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보기엔 경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맞아, 경험이야.”
박재만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일어나 그들의 뒤편에 섰다.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계획을 잡았던 거야. 먼저 보냈던 정탐군들도 2년 동안 훈련을 한 정예이긴 하지만, 단 한 번도 괴수와 싸워본 적이 없었지. 총을 든 상대보다 더 무서운 게 괴수가 아닌가?”
그 말에 박선우와 이선재는 어릴 적에 겪었던 괴수사태를 잠깐 떠올려 보았다.
그때 그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징병을 면한 덕분에 괴수들을 직접 상대한 적은 없었지만, 붉은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드는 그것을 목격한 적은 있었다.
일반적인 총탄은 전혀 통하지 않았으며, 사격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을 덮쳐 한입에 삼키는 모습은 끔찍한 기억으로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지금이라 할지라도 분명 그것들을 마주한다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럼 그자를 붙인 것이….”
“그래, 이번 일을 마치면 자네들은 교관으로 다른 성도들에게 그 경험을 가르쳐야 해. 그러기 위해선 자네들도 경험이 있는 자에게서 배워야 하지 않겠나. 자네들은 그자의 행동과 요령을 전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흡수해야 하네. 물론 진짜로 그가 말한 대로 능력이 있는지는 가평에서 합숙을 해보고 알 수 있겠지.”
그 말에 박선우와 이선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훈련을 받아보면 충분히 그의 능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네들은 여전히 의심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야. 그자가 아니라 나를 믿는다 생각하게.”
그들은 박재만을 신용하는 편도 아니었고, 여전히 석민에 대해서 완전히 납득하진 못했지만, 상황상 그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그리고, 그자와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말게. 우리의 성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거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런 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답하는 박선우의 목소리에선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사람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그런 불신자 따위와 친해질 생각은 없습니다.”
“좋아, 그러면 각자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박선우와 이선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박선우의 눈빛이 무언가 계략을 꾸미는 듯 음험하게 빛났다.
자신들이 아무리 경험이 없다지만, 근본도 모르는 녀석과 함께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일도 없었다.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면 되겠지.’
박선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리를 굴렸으나, 박재만과 김지형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면 3일 뒤에 가평에서 보도록 하지. 이만 나가보게.”
“알겠습니다.”
그들이 나간 직후 박재만은 잠시 그들이 나간 문을 빤히 보다가 김지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결국 우리 교단시설을 공격한 자는 찾지 못한 건가?”
‘누구 때문인데?’
김지형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네, 뭐 마지막으로 정보를 얻으려고 했던 건스미스에서 일이 틀어졌으니….”
그는 일부러 말을 흐리며 누구의 책임인지 은연중에 흘렸고, 그의 의도를 알아챈 박재만은 눈을 흘겼다.
“그런 일을 하는 부류에게 강제로 찾아가서 윽박지르는 것은 우리에게 불리해. 게다가 그만한 양의 군수품을 마련하여 판매해주는 사람은 보기 힘들지.”
그는 남은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신뢰를 쌓고, 돈도 좀 벌게 해주면 자발적으로 정보를 흘리겠지. 교단시설을 공격한 자는 여간 교활한 놈이 아니니, 천천히 하자고.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 교단을 노리고 더 큰 일을 벌일지도 모르니. 그때를 대비하여 추가적인 정보나 모으면 돼.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일을 먼저 처리해주게.”
“무엇을 말입니까?”
그는 눈짓으로 교구장실 구석에 설치된 CCTV를 가리켰다.
“고프로보단 고화질이니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돌리는 데 더 도움이 될 거야. 김성훈에 대해 한번 알아봐 주게. 내가 선택한 사람이긴 하지만, 조금 걱정돼. 내가 아는 킬러들은 절대 혼자서 작업치진 않거든.”
그 말에 의문을 느낀 김지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 움직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어디 길거리에서 껄렁껄렁하게 쏘아 다니는 양아치나 돈이 없어서 절박해진 가장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선에선 제대로 된 킬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타깃의 정보를 모으는 사전조사팀, 그 정보를 가공하고 작전을 짜는 지휘부와 현장실행팀 혹은 킬러 본인. 그리고 만일을 대비한 백업팀이 준비되지. 이 나라가 치안이 개판났다고는 해도, 살인범도 못 잡을 정돈 아니야. 실제로도 검거율이 70%에 육박하지.”
박재만은 자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정말로 혼자 활동하고 있다면, 거짓말이거나, 진짜 실력자 중의 실력자겠지. 그리고 그만큼 혼자 활동하는 킬러는 많지 않으니 찾기 수월할 테고.”
그는 석민을 이용해 쓸모없는 것들을 처리하거나 교단에 유용하게 사용할 생각이었으나, 뒤를 털었을 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오히려 걱정과 함께 약간의 불신이 머리를 쳐든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자네도 나가보게.”
김지형도 나가고 박재만은 새로운 담배를 물었다.
정탐군이 전멸한 직후 교주 백은호는 히스테릭하게 변하고 말았다.
특히 정탐군의 편성과 보급, 그 작전을 준비했던 박재만은 매우 위험한 위치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중이었다. 그래서 교주의 조바심을 달래고자 이번 일을 준비한 것이다.
‘1달이라고 하긴 했지만.’
교주는 똥마려운 사람마냥 빨리 사람을 다시 보내라고 닦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빨리 보내게 될지도 몰랐다.
‘되도록이면 빨리해야겠지.’
자칫 잘못하다가 교주의 분노가 그에게 미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멸한 정탐군들도 충분히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었잖아. 이번만큼은 좀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겠지.’
결국 다시 돌아오지 못한 정탐군들 때문에 아무런 피드백을 얻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박재만은 정탐군의 문제점들에 대해 몇 가진 알 수 있었다.
일단 그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전문 헌터들은 절대 정탐군처럼 많은 수로 돌아다니지 않았다.
최근에 안 사실이긴 하지만, 인원이 너무 많으면 괴수들, 특히 와이번의 표적이 되기 좋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미 박선우와 이선재에겐 언급한 것이지만, 가리고 뽑은 인원들이라곤 해도 그들의 경험이 너무 미흡했다.
그나마 사람과 싸워보거나 죽여본 자들이 몇몇 끼어있긴 했으나 그 숫자가 극히 경미했다.
‘교주가 조바심을 가질수록 위험하긴 하지만, 그만큼 내게도 기회이긴 하지.’
실제로 그는 교주에게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자신의 발언권을 높이고 있었다.
그 증거로 교주 직속 정예들로 구성된, 교주의 허락 없이는 일개 교구장이 감히 함부로 부를 수조차 없는 사도대-박선우가 속한 집단-에게도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교주가 기적을 쓰긴 하지만, 결국 광신자에 지나지 않으니까.’
사실 내심 생각해보면,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기도만 올리니 리더로서는 실격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겠지만.’
그는 그리 생각하며, 다음 업무를 위해 서류를 꺼내 들었다.
***
“가평으로 가서 훈련을 받고 서울로 들어간다고요?”
안전가옥으로 돌아온 석민이 아영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자, 아영은 낮게 혀를 찼다.
교단 내부로 들어갈 줄 알고 기대했던 일이 틀어졌으니 실망이 큰 것은 이해하지만, 석민으로서는 오히려 이런 즉흥적인 계획이 제대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 아영이 무르게 보였다.
그래서 그는 즉흥적인 계획을 좋아하지 않았고.
평소 같았으면 입을 다물었겠지만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벌어진 작전이니까 생각대로 될 리가 없지. 그래도 같이 훈련받는 놈들, 꽤나 고위직인 거 같으니까 친하게 지내면 교단 내부로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
“친해질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석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래 전우애는 같이 생사고락을 느끼고 고생을 좀 하면 바로 생기는 거야. 물론 전투에서 발목을 잡는 순간 깨지겠지만, 내가 그럴 사람도 아니고.”
그 말에 동의하듯 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천천히 해야지. 일단 상호 간의 신뢰가 중요하니.”
영 내키지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거 그는 어떻게든 성공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박선우와 이선재는 굴러들어온 돌과 다름없는 그를 매우 안 좋게 보고 있었고, 석민 또한 광신도일 게 뻔 한 그들이 싫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 사귀는 일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일이라 생각한다면 나름 자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