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47화]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이윽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성훈 씨와의 만남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져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하는 일이 법에 저촉되는 일인지라, 김성훈 씨의 정보를 사전에 좀 알아보았습니다. 이 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그걸 알아본다고 3일 뒤에 만나자고 한 건가.’
석민의 양미간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가 사라졌다. 석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리곤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양팔을 소파 위에 걸친 뒤, 조금 무례할 정도로 편한 자세를 취하곤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알아봤습니까?”
박재만은 고개를 저었다.
“알아보긴 했는데, 전혀 정보가 나오질 않더군요. 당신의 얼굴, 이름, 주민번호까지 전부요.”
그 말에 석민은 당연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테지요.”
석민이 오히려 당연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재만은 속으로 ‘역시’라고 중얼거리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김지형은 팔짱을 낀 채, 불신가득한 눈으로 석민을 보고 있었다.
“사태 때 대혼란과 함께 정보가 말소된 게 아닌가 하는데, 일부러 생존신고를 안 하신 겁니까?”
“사람에게 총질하는 일을 하니 그게 더 편하지요. 수사를 피하는데 용이하기도 하고.”
그 말에 맞은편에 앉은 남자 두 명은 매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서, 박 목사님의 말을 들어보니 제 정보를 전혀 구하지 못하신 거 같은데, 그런데도 만나자 한 거 보면 직접 자기소개라도 해 달라는 겁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이 자린,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닌 거 같군요.”
“물론 하는 일의 특성상 어디에 떠벌이며 다니는 것은 매우 좋지 않지만….”
박재만은 양 손가락을 깍지 끼며 상체를 숙였다.
“김성훈 씨의 경력을 어느 정도 알아야 우리가 서로 간의 신뢰를 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몇 가지 말해도 괜찮은 게 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못 합니다.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믿고?”
석민은 다리를 꼬았다.
“이 일의 특성상 적이 많다는 것은 알지 않습니까? 혹여 조금이라도 정보가 샌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저입니다.”
그 말에 김지형은 인상을 찌푸렸고 박재만은 무표정하게 석민을 응시했다.
석민이 거만하게 굴수록 박재만은 그가 재수 없는 한편, 실력은 상당하리라 추측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런 게 알려지면 곤란할 것이다. 반대로 그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은 그가 뛰어나단 소리였다.
‘국가 주민정보, 경찰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안면인식 프로그램도 해보고 김성일의 자료도 찾아봤지만, 이 자의 정보가 안 나온 것을 보면 그만큼 뛰어난 것이겠지.’
그리고 정보가 없는 만큼, 유사시엔 제거하기도 편할 것이다.
‘무연고자일 테니까.’
그렇지만 몇 가지 의문은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영상을 보면 확실히 실력은 좋은데, 어디서 저런 것을 배운 거지?’
적어도 그의 출신이나 훈련을 어디서 배웠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면 다른 질문을 하지요.”
“어디 들어는 봅시다.”
“쓰고 계시는 무기가 무엇입니까?”
“AK소총.”
그는 일부러 제식번호를 말하지 않았다.
“사격술을 비롯한 전투기술은 어디서 배운 것입니까?”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이니까, 군대에서 배웠겠죠.”
“아, 어디 특전병이었습니까?”
그 말에 박재만의 목소리가 살짝 들떴다.
“아뇨, 헌병대였습니다.”
“허, 헌병대요?”
그 말에 맞은편에 앉은 박선우와 이선재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아무리 군대에서 전투훈련들 받는다지만, 헌병대는 전투병과도 아니어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진 않았다.
“그리고 제2차 서울 수복작전 때 러시아 수색부대에 소속돼서 길잡이 역할을 했었는데, 그때 그 친구들에게서 몇 가지를 배웠지요.”
“러시아?”
석민의 말에 그들은 눈을 반짝였다.
‘러시아 수색부대면 정예부대였을 테지. 그들에게 수련을 받은 건가?’
“왜 러시아 수색부대에 배치된 것입니까?”
박재만이 물었다.
“러시아의 작전구역이 내가 살던 곳이었으니까요. GPS 같은 게 있긴 했지만, 외국군대가 지리를 잘 알 리 없으니 길잡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외국군대가 진주한 2차 수복작전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서 끝났는데, 그만한 실력을 그 기간에 익혔다고요?”
“2차 수복작전은 1년 동안 준비되었습니다.”
석민이 말했다.
옛날 일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조금씩 불쾌해졌다.
그 당시 기억들은 그에게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니었다.
러시아인들은 말이 없는 만큼 무자비한 놈들이었다.
그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전무한 석민에게 ‘가벼운’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동반한 강제 훈련을 시켰으며, 러시아어도 배워야만 했다.
석민에겐 지금 떠 올려도 치가 떨릴 만큼 가혹한 기간이었다. 그때의 훈련이 지금에 와선 나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각국 특수부대원들의 친목파티에서 포커게임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러시아 부대의 대표로 석민이 대신 출전하여 승리하면서, 단검 2개와 함께 그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친해진 이후에야 그들이 잘 웃는 성격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곧 전우라는 이름의 친구가 되었다. 처음엔 석민을 포함해 31명이 부대에 속해 있었으나, 2차 수복작전이 끝났을 땐 12명밖에 남지 않았었다.
마지막에 벌어진 대혼란 때 헤어지고 말았으니까.
석민은 잡생각을 지우듯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잠시 회상에 빠지는 동안 박재만은 2차 수복작전 때 러시아군이 어떤 일을 했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꽤나 과격했지만, 보병에 한해서는 효율적으로 괴수들을 잡았지.’
즉, 그 말은 사람 죽이는 일 말고 괴수들도 잘 죽인다는 것이었다.
“1차 서울 수복작전 때도 참가하신 것입니까?”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원래 살던 집에 틀어박혀 정부의 구조를 기다렸으니까.
“흠.”
박재만은 손톱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역시 이런 질문만으로는 알 수 없군요.”
그 말이 나오자 슬슬 석민도 짜증이 났다.
“그러면, 직접 보여주지.”
박재만은 석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만 깜빡거렸고, 김지형은 눈치를 챘으나 놀라서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선우와 이선재는 석민이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몸을 움직였다.
특히 이선재는 재빠르게 오른손을 등허리 쪽으로 뻗어 권총을 꺼냈으나, 석민이 더 빨랐다.
석민은 이선재의 권총 슬라이드를 잡아 그대로 앞으로 밀었고, 덕분에 이선재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도 공이치기가 당겨진 슬라이드 때문에 전진하지 못해 쏠 수 없었다.
석민은 그대로 뒤로 당겨 총을 빼앗았다.
이선재가 뺏기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으나, 일반인의 힘으론 스탯을 찍은 석민을 이길 수 없었다.
직후 석민은 바로 권총을 꺼내는 박선우를 겨누었다.
박선우의 몸이 돌처럼 굳은 채 멈췄다.
“빵, 빵, 빵, 빵.”
석민은 그들을 일일이 겨누며 입으로 총소리를 내고는 권총을 도로 내려놓았다.
“굳이 내 총을 꺼낼 필요도 없지.”
그는 탁자에 놓은 권총을 밀어서 이선재에게 넘기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박재만을 보았다.
“됐나?”
“됐긴 뭐가 됐다는 거야?!”
박선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권총을 꺼내 석민의 머리를 겨누었다. 석민 또한 빠르게 자신의 품에서 총을 꺼내 그를 겨누었다.
“오호, 권총 하나 빨리 못 꺼내는 게, 이제 와서 꺼내겠다?”
석민의 도발에 박선우의 잘생긴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붉으락푸르락 거렸다.
석민은 박선우를 쳐다보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쏠 거면 각오하고 움직여라.”
석민의 말에 그는 살짝 움찔거렸으나, 금방 평정심을 되찾은 듯 보였다.
‘역시 일반인은 아닌가 보네.’
석민의 두 눈이 점차 가늘어졌고, 둘의 대치상태가 조금 더 지속될 쯤, 박선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교구장님, 진짜 이런 놈이 필요하신 것입니까?”
석민은 눈동자만 살짝 돌려 박재만을 보았다.
박재만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석민이 보기엔 자신이 제법 맘에 드는 듯 보였다.
박재만이 손뼉을 쳤다.
“자, 다들 그만하지.”
그는 짐짓 과장된 웃음소리를 내었다.
“박선우 성도, 먼저 권총을 내리게.”
“하지만!”
“앞으로 이제 함께 움직여야 하는 사이인데 그래서야 되겠소?”
“함께?”
박재만의 말에 석민이 낮게 중얼거렸다.
“난 누구랑 같이 일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렇다면 우리와 일하기 힘듭니다.”
박재만이 말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서울로 들어가서 하는 일이니까.”
“서울로 들어간다고?”
김지형은 마치 기밀을 함부로 말한 것 마냥 박재만의 뒤통수를 쏘아봤고 박선우와 이선재도 박재만을 놀란 눈으로 보았다.
“자, 이제 권총은 좀 치우고 이야기하죠.”
박재만의 말에 박선우가 먼저 천천히 권총을 홀스터에 넣었고, 그 모습을 본 석민도 자신의 마크23을 집어넣었다.
박재만은 상황이 얼추 정리된 것 같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교단은 서울에 사람을 보낼 생각입니다. 정확하게는 헌터 일을 할 생각인지라, 사람 잡는 일 말고도 괴수를 잘 상대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하죠. 그래서 당신과 앞으로 함께 일을 했으면 싶은 거고요. 앞에 있는 박선우 성도와 이선재 성도가 당신과 같이 일할 겁니다. 싫으면 어쩔 수 없고.”
박재만의 일방적인 수다에, 석민은 처음엔 뭐라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헌터 일은 생각도 못 했는데, 페이는?”
“월급제로 기본급 월 200, 일의 결과에 따라서 차후에 인센티브도 줄 생각입니다.”
순간적으로 석민은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임금이 짜다 못해 바다가 친구하자고 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경력 없는 헌터라도 그보다는 더 받는다.
“드래곤하트를 얼마나 많이 채취 하느냐에 따라 돈을 더 준다는 거지?”
“맞습니다.”
그렇다 쳐도 기본급 200은 말도 안 된다.
‘날 시험하는 건가?’
헌터들을 고용하는 비용을 박재만이 모를 리 없었다. 아마 일부러 적은 금액을 불러놓고 자신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리라.
당장 저들의 제안을 수락하면 분명 의심할 것이 뻔했다.
“드래곤하트를 개당 얼마에 쳐줄 생각이지?”
“드레이크 것은 개당 30, 와이번은 개당 60.”
석민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군. 개나소나 헌터 일을 해서 내가 잘 아는데, 기본급은 그래, 그렇다 치자고. 그래도 최소 드래곤하트는 개당 50 이상씩 쳐줘야지. 게다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라며?”
“물론 바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1달간은 같이 우리 성도들과 합을 맞춰 볼 것입니다.”
“아니, 내 말은 월급이 적다고.”
그 말에 박재만은 깍지 낀 손을 풀고 언짢은 눈으로 그를 빤히 보았다.
“그러면 얼마를 원하는 것입니까?”
“기본급 400에, 드레이크는 개당 60, 와이번은 개당 90.”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석민을 보며 박재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뒤에 서 있던 김지형의 얼굴은 더 가관이었다.
“왜? 내 실력은 확인하지 않았나? 사람 잡는 일 하는 사람에게 실력이 마음에 들었다는 둥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면서 꼬셔놓고는 난데없이 헌터 일을 시키면서 페이가 이 모양이면, 어떻게 일을 하라고.”
석민은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더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날 고용하고 싶으면 그 정도 줘야지.”
박재만이 뚫어지게 석민을 쳐다보면서 손가락만 까닥거리며 입을 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