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43화 (43/226)

[게이트 오브 서울 43화]

한발, 한발 쏴 질 때마다 카메라의 화면이 노이즈로 바뀌었다.

“이런 세상에. 미친 개시발 놈!”

혜원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카메라의 위치는 최대한 잘 숨겨놓은 소형 카메라인데?! 겨우 500원짜리 동전 크기라고.”

어지간한 눈썰미가 아니었다.

“사전에 전부 알아두었나 보네.”

석민은 혹시 이 남자가 자기처럼 스탯을 가진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권총 실력이 정확했다.

“22구경에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일 거야. 봐봐, 집 앞에 있는 놈들, 낌새로 눈치 못 챘어.”

석민의 말대로 가게 앞에 주차된 봉고차와 세단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남자는 자신이 온 방향의 CCTV만 파괴했다.

‘아무래도 벽을 타고 올라가서 내가 예상했던 것을 하려는 것 같은데.’

건물을 타고 올라가려는 게 분명했다. 저지하려면 창문을 열고 위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옥상 카메라 좀 보자,”

그의 말에 혜원이 화면을 확대해 주었다.

옥상 난간에 쇠작살이 걸려 있었다.

‘제길,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그는 잔뜩 불안한 얼굴로 자기를 보는 혜원과 눈이 마주쳤다.

혜원에게 말했던 예시들은 자신이 만약 혜원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취했을 행동들이었다. 저자가 똑같이 행동할 줄은 석민도 몰랐다.

‘이 일 하는 놈들은 생각하는 게 다들 똑같은 건가?’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크23 권총을 꺼내서 장전했다.

“놈이 올라왔어.”

잔뜩 긴장을 한 혜원이 소리치듯이 말했다.

그녀는 불안한 눈으로 천장과 모니터의 화면을 응시했다.

“어떻게 좀 해봐!”

봉고와 세단을 타고 온 놈들에게 걸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올라가서 총을 쏴야 하나? 아니, 그 짓거리를 했다가는 바로 죽을 것이다.

실력을 보건대 자신의 손가락이 난간에 걸리기가 무섭게 총에 맞아 죽을 것이 분명했다.

석민의 시선에 천장에 걸린 클레이모어에 향했다.

“저거 무선으로 바뀌었네?”

“안 돼. 군, 경들을 불러선 안 된다고. 어제부로 계속 일이 터져서…. 사업에 지장이 생긴단 말이야.”

혜원이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사이 옥상 쪽 CCTV에서 그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자가 총을 꺼낸다 싶은 순간, 옥상의 카메라도 지지직거리는 회색 화면만 보였다.

“제기랄!”

석민은 바로 자신의 권총에 소음기를 달고서 밖으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그가 모습을 보이기가 무섭게 봉고차에 있던 자들의 모습이 어수선해졌다.

석민은 창틀 아래 부분을 발로 밟고는 높이뛰기 하듯이 점프를 하여 왼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그대로 몸을 올렸다.

스탯 덕분에 그는 마치 누군가 낚아 올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옥상으로 오를 수 있었다.

석민은 몸의 중심을 잡기도 전에 시야에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권총을 조준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자의 양손엔 콘크리트 톱이 쥐어져 있어서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석민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남자는 잠시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이더니 바로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콘크리트 톱을 석민을 향해 던져버렸다.

석민이 쏜 첫 번째 총탄은 원형으로 생긴 톱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아무리 소음기를 꼈다고는 하나, 마크23의 총성이 봉고차와 세단에 타고 있던 자들에게 안 들릴 리 없었다.

결국 밑에서는 그들이 무기를 꺼내 차에서 나와 차 뒤로 몸을 엄폐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석민은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으나 그의 몸이 착지하면서 조준이 흐트러졌고, 남자 대신 그의 앞에 총탄을 박았다.

남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석민의 자세가 무너지는 틈을 타서 달려들었다.

석민이 다시 권총을 조준하려는 순간, 그자의 왼손이 석민의 권총을 쳐버렸다.

“이런!”

석민은 재빠르게 총을 꺼내려고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남자의 팔뚝을 잡아챘다.

스탯 덕분에 일반인들보다 한참 강한 그의 힘에 남자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남자는 잡힌 오른손을 비틀면서도 왼손으로 단검을 꺼냈다.

석민은 남자의 오른손에 집중한 나머지 왼손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그가 팔을 휘둘러 단검을 휘두르는 순간, 석민은 두 걸음 정도 몸을 뒤로 빼면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단검을 오른손으로 바꿔 쥔 남자가 달려들었다. 석민에게 대응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자는 석민이 자신보다 체격이 좋고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몸을 던지듯이 뛰면서 양손으로 단검을 잡아 힘과 체중을 실어 석민의 목을 노리고 찔러왔다.

석민은 자신의 왼발로 그자의 손목을 차는 것으로 대응했다. 신고 있던 신발의 가죽이 두껍고 단단해서 다행히 뚫리는 일은 없었다.

석민의 발차기에 단검을 놓친 남자는 뒤로 한두 걸음 물러나면서 권총을 꺼냈다.

아까 보았던 소음기 달린 권총이었다.

이번엔 석민의 차례였다.

그도 단검을 뽑았지만, 다가가서 찌르는 대신, 그대로 집어 던졌다.

석민이 단검을 집어던지자 그 남자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고 왼손으로 코트의 옷깃을 잡아 머리를 보호하듯 들어 올렸다.

단검이 그자의 오른쪽 어깨 쪽에 박혔지만, 두꺼운 방한복 덕분에 반쯤 들어가다가 떨어졌다.

석민은 단검이 살에 박히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나, 그 충격으로 상대가 권총을 떨어트렸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전의를 상실케 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석민은 자신이 떨어트렸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남자는 석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자기가 올라왔던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는 가지고 왔던 짐을 전부 버려두고 작살과 연결된 밧줄만을 쥐고 있었다.

‘제길.’

석민이 이대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총을 쏘아댔지만,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추가로 쏜 2발이 전부 빗나갔다.

그 남자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석민은 그를 뒤쫓아 그가 뛰어내린 난간 쪽으로 다가가 총을 겨누려고 하다가 급히 몸을 숨겼다.

그가 몸을 숨기기 무섭게 여러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남자가 밑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품에 무기가 있었는지 석민을 향해 총알이 날아왔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총을 쏘려는 순간, 이번엔 석민과 남자를 노린 다행히 사람들의 총격이 쏟아졌다.

교단 측 사람들은 처음엔 멍하니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기만 하다가 남자가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급히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 역시 소음기를 끼고 있었다.

석민은 몸을 숨겼다.

남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쏴대는 교단의 사람들이 자신과 석민을 쏘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격중지! 빌어먹을, 계엄군이 오면 어쩌려는 거야?!”

점점 소란스러워지자 김지형이 차에서 나와 소리쳤다.

이미 가까운 곳에서 총성이 들리는 통에 근방에 사는 주민들까지 고개를 내밀어 보고 있었다.

“일단 철수한다. 철수.”

그것으로 끝이 났다.

주민신고로 순찰차가 다가왔고 석민은 옥상에서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있어야 했다.

그는 3시간쯤 시간이 지날 무렵 천천히 눈치를 보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상황이 싱겁게 끝나는 모양새였다.

***

“내가 일 처리한다고 생각하고 말한 거지만, 이쪽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다 똑같네.”

석민은 창구를 통해 남자가 버리고 간 물건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 남자가 버리고 온 물건들은 다음과 같았다.

저소음 콘크리트 톱, 22구경 권총, 그리고 특제 폭약과 무선 기폭제였다.

“이 폭탄 좀 봐.”

석민은 잼 통조림으로 만든 폭탄을 분해했다.

뇌관은 이미 제거했고 기폭제도 그들에게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통조림 가운데에 1킬로그램 정도의 T4가 들어있었고 주변에 30mm짜리 쇠구슬들이 차곡차곡 쌓인 형태였다.

혜원은 잔뜩 질린 표정으로 그것을 보았다.

“안에 가득 찬 갈색 액체는 뭐야?”

그녀의 물음에 석민은 살짝 냄새를 맡아 본 직후 인상을 썼다.

“쥐약.”

그 말에 그녀의 눈썹이 치떠졌다.

“쥐약?”

“쥐약에는 혈액응고를 방해하는 성분이 있거든.”

그 말에 혜원의 얼굴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되었고 안색은 하얗다 못해 푸르딩딩하게 변했다.

“이거 파편 하나라도 맞았으면 혈우병 환자마냥 피 흘리다가 죽었을 거야. 뭐, 안에 든 폭약의 양이 C4폭약정도면 건물 내부가 작살났겠지만. T4 1킬로그램이라니. 어지간히 화가 났나 보네.”

T4폭약은 C4폭약 보다 배로 강력한 폭약이기에 한 말이었다.

이 정도 양이면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둘째 치고 주변 건물들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말을 한 직후 석민은 22구경 권총을 들어보고는 단번에 인상을 썼다.

[스텀 루거 MK.II]

내구도: 98%

품질: 상중

탄약: 22 LR

스텀 루거사에서 생산한 권총, 커스터마이징으로 방아쇠압을 2파운드로 줄이고 소음기를 장착한 상태. 이승철은 매우 은밀한 작업을 할 때 이것을 애용했다.

그는 이것으로 희생자의 머리를 쏘아서 희생자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이런 시발?’

석민은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이 남자는 완전 변태나 다름이 없는 자였다.

솔직히 자신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고 돈을 받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일부러 고통스럽게 죽이는 짓을 좋아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일말의 양심과 자비로 최대한 상대방을 고통스럽지 않게 즉사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가끔 복수에 미친 일부 의뢰자들이 희생자가 고통스럽게 죽기를 원하기도 했으나, 석민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미성년자 살해, 납치, 고문을 요구하는 자들은 오히려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이쪽 일이 아무리 불법이라도, 세상이 아무리 막장이라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라는 게 존재했다.

그런데 일부러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걸 좋아했다고?

그는 폭탄의 파편용 쇠구슬에 쥐약을 섞은 남자의 취향이 이해가 되었다.

조금 더러운 수이긴 하지만, 희생자를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 매우 기가 막힌 방법이기도 했다.

자신도 한때는 고려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냄새와 액체만 보고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같이 활동하던 러시아 군인들도 잘 사용했었지.’

그들은 폐허가 된 서울에서 온갖 물건들을 구해 부비트랩을 만들거나 즉석폭탄을 만들어냈었다.

쥐약은 괴수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독약이었고 파편에 맞은 괴수들은 과다출혈로 많이 죽었다.

그는 22구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 구경 탄환의 특성은 잘 알았다.

22구경은 약한 편이긴 했지만, 탄환은 탄환인지라 사람의 두개골쯤은 쉽게 관통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탄환이 너무 약해 반대편 두개골까지 뚫지 못하고 내부에서 운동에너지를 잃을 때까지 회전하며 뇌를 휘저어 버린다.

그런데 그걸 즐긴다고?

석민은 그가 프로란 생각에 바짝 경계하면서도 어떤 의미로 동업자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저딴 마음을 품었단 생각에 자신이 괜히 부끄러웠다. 석민은 권총을 혜원에게 전달해 주었다.

“내가 커스터마이징 해준 총이네.”

그녀는 매우 침울하게 말했다.

원래 소음기가 달려있지 않았고, 스테인리스강으로 번쩍번쩍 거리던 걸 소음기를 달 수 있도록 소음기 어댑터를 설치하고 무광도색을 한 것이었다.

“스텀 루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나쁘게 보지 않는 총이지. 가격도 착하고 호신용으로도 좋아. 제대로 된 군용 소음기를 달면 유효사정거리가 15미터밖에 안 되는 대신 격발 시 볼트의 찰칵거리는 소리밖에 안 날 테지.”

“이 남자의 이름이 뭐야?”

“이승철.”

석민의 물음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었나보군. 뭐, 그게 나에게 말한 이름이긴 하지만, 진짜 이름은 아닌 것 같아.”

그녀는 권총을 집어 들어 탄환들은 전부 빼내고 약실도 확인한 직후 빼냈다.

“흥정 같은 잔말 없이 돈도 재깍재깍 내주고 탄환도 많이 사주는 통에 정말 좋은 단골이라 별로 안 무서워했는데, 적이 되니 너무 무섭네. 게다가 쥐약이라니.”

그녀는 잠시 사이 나이를 20살은 더 먹은 것처럼 초췌해져 있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의 물음에 석민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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