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41화 (41/226)

[게이트 오브 서울 41화]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매우 부드럽군요. 석민 씨, 그거 아세요? 석민 씨가 처음엔 얼마나 차갑게 굴었는지요.”

그 말에 석민은 떨떠름해졌다.

“팀을 이룬 이상 그렇게 지내면 안 되지.”

팀이라, 아영은 그 말을 곱씹었다. 그래, 전장에서 전우들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 그런데 팀이라. 저 사람에게서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팀을 이루는 게 두려웠던 거죠?”

명치를 콕콕 찌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본 석민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 또한 그랬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발목을 잡거나, 절대 상실감을 느끼시도록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석민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특히 천사들을 보고 난 후 그는 아무리 스탯을 올린다고 해도 천사들을 잡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능력이 좋다고 해도, 그들 또한 죽음을 비껴갈 순 없었다.

“나도 네 발목을 잡거나, 하진 않을게.”

아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고 잔을 들었다.

“예, 내일도 잘해보죠. 아, 그리고 헌터들을 좀 많이 잡은 날엔 고기 좀 사 주세요. 치맥을 하지 않은 지 정말 오래됐거든요. 돈 많이 벌잖아요.”

“다음에 그렇게 하지.”

석민이 잔을 들자, 아영도 잔을 들었다.

아영은 석민이 러시아 군인들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는 것과 그들이 일반적인 군인들과 달랐다는 것을 이번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석민은 그들이 일종의 수색대 같은 정예부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아영이 보기엔 그런 흔한 부대가 아니었다.

‘분명 다른 놈들이야.’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나중에 정보를 더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

다음날 점심쯤, 석민은 혜원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무슨 일이지?”

혜원씩이나 되는 여자가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하자, 석민은 공적일 일을 할 때 나오는 매우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미안한데,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 의뢰 좀 할 수 있을까?

“의뢰?”

그의 두 눈이 치떠졌다.

난데없이 전화를 하더니 의뢰라니? 석민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뢰라면 지금은 받지 않는데. 다른 일을 하고 있거든.”

-부탁한다. 내가 지금 상황이 매우 안 좋거든? 도와줘. 대가를 주지.

부탁하는 목소리가 평소 당당하고 퉁명스러운 혜원의 목소리와 달리 많이 애처로웠다. 아마 제법 겁을 먹은 게 아닌가 싶었다.

석민은 ‘여장부’에 딱 어울리는 혜원이 저렇게까지 다급하게 부탁하는 걸 보면 분명 크게 곤란한 일이 생긴 거라고 판단했다.

‘도와주면 나중에 크게 신세 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보통은 용민을 통해서 일을 의뢰받는데,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해도 될지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어쨌든 빚 하나 만들어 놓아서 나쁠 상대는 아니었다.

석민은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타깃은?”

-아, 그런 게 아니야. 문제가 생겨서 내 목숨이 위험해.

“목숨이?”

석민은 어제 있었던 작은 소동이 생각났다.

“어제 찾아온 양복쟁이 때문이야?”

-아니,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지.

“심각하다고?”

석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판단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오늘, 아니 내일, 아니 며칠 정도 내 호위 좀 해주면 좋겠어. 가능해?

서울에서 이제 막 왔는데.

귀찮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스탯 덕분에 몸의 피로는 다 사라졌다고는 해도, 고문과 심문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로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은 휴식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1주일 정도 일을 쉬기로 합의가 된 상황이었다.

“…가능이야 하지.”

-좋아, 그러면 바로 와줘.

“지금? 바로?”

-어.

“……알겠어.”

석민은 귀찮음과 짜증에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혜원은 한숨을 쉬었다.

어제 이후로 망할 놈의 양복쟁이들은 집요하게 찾아왔다.

혜원은 이들이 바로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기에 적잖게 당황했다.

아무리 안전한 강철문과 방탄유리가 자신을 지켜주고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해도, 혼자서 지내는 그녀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문 앞을 계속 서성거리거나, 창문에 사다리를 놓고 넘어오려고 시도하거나 가게에 들르는 회원들이 회원카드로 문을 여는 틈을 노려 안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했다.

다행히 어제 총기 난사 이후 계엄군이 민감한 상태인지라, 신고를 통해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어제저녁 10시쯤 기어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녀는 녹화된 CCVT의 영상을 확인했다.

혜원이 하는 일은 불법적인 것이었고 등록되지 않은 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떳떳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 중, 아영이 아는 선에서 하필 가장 위험한 자가 양복쟁이들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양복쟁이들이 회원카드를 뺏기 위해서 접근한 자는 권총을 귀신같이 잘 쏘는 자였다.

그리고 그걸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다.

4명의 남자가 포위하고 카드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순간, 그자는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 4명의 머리를 순식간에 쏴버렸다.

그들이 쓰러지자 근방에 주차되어 있던 봉고차에서 다른 양복쟁이들이 소음기가 달린 기관단총과 권총을 들고서 남자를 향해 난사했지만, 남자는 차량 뒤로 몸을 엄폐한 후 오히려 남은 2명마저 쏴 죽여 버리고는 도망쳤다.

그 남자는 무기를 구하는데 까다로우면서, 직업 특성상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운 인물이었다.

아마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을 수 있다.

혹여 다시 온다고 해도 이번이 마지막 거래일 테니 그녀는 방금 손님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다.

저 남자는 이미 선입금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혹여 혜원이 돈을 먹기 위해 사람을 고용했다는 오해를 사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릴 무렵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그녀가 추가적으로 말을 하기도 전에 통화가 종료되었다.

그의 번호를 알기 때문에 혜원은 통화를 위해 번호를 눌렀지만, 그는 수신거부를 해버렸다. 아무래도 심사숙고를 내린 결과 저 남자는 단단히 오해를 한 게 분명했다.

‘시발.’

저 인간을 위해서 권총 커스터마이징 하느라고 개고생했는데 거래는 틀어지고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었으니, 헛고생한 것은 둘째 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크게 놀란 그녀는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전화를 한 것이 석민이었다.

그가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데다가 전리품으로 가지고 오는 총을 보건대 석민의 실력도 분명 수준급일 테니, 자신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좋지 않는데.’

석민이 그마나 좀 말이 통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킬러 일을 하는 자들에게 빚을 지게 되면 결국 약점으로 취급되어 또 다른 고생을 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 생각이 들자 그녀는 또 화가 났다.

이게 다 저 양복쟁이들 때문이다.

‘여자 혼자서 장사하니까 시발, 저딴 새끼들이 꼬여 드는 거겠지. 시발, 개 같은.’

짜증이 난 그녀는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어찌 되었든 석민이 얼른 오길 바랐다.

‘저것들 정체가 뭐야? 너무 집요한 거 아냐?’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조직이나 단체, 개인이 생각나진 않았다. 자신이 판단하기엔 딱히 원한관계가 쌓일 법한 일도 없었다. 혹시 그녀의 손님들 중에 원한관계가 쌓여서 알려고 하는 자가 있었나?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존재를 손님들이 말했으려나?

생각이 많아지자 복잡해졌다. 다시금 짜증이 난 그녀는 저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 짜증나!”

얼마 지나지 않아 CCTV에서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이 나타나 그 시신들을 치우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것을 지켜보았다.

안 그래도 총기난사 건으로 경찰에서 주변 탐방수사를 하느라고 몸을 숨긴다고 고생인데, 이젠 살인사건까지 났으니 더 숙이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러다간 사업을 일시중단 할지도 몰랐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컴퓨터에서 낮은 전자음이 울렸다. 지금 가게 문은 그놈들 때문에 잠긴 상태였다.

게슴츠레하게 뜨고서 CCTV를 보는 그녀의 눈과 무언의 질문을 하는 석민과 눈이 마주쳤다.

“아, 왔군.”

혜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여는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석민은 안으로 들어왔다.

“도움이 필요하대서 오긴 했는데.”

석민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인사는커녕 대뜸 말을 했다.

“설명이 필요해.”

그 말에 혜원은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혹시 석민이 자기를 버리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서 설명을 해야 했다.

설명을 마친 직후 혜원은 석민의 표정변화에 주목했지만, 석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숨을 길게 내쉴 뿐이었다.

“그런가. 그래서 그 양반이 노릴 수 있단 거군?”

그는 방탄유리로 된 격벽을 둘러보았다.

“이거 환기구는 어디에 있지?”

“환기구는 창구 말고 없어. 가끔가다가 답답하긴 하지만, 뭐 죽는 것보단 났지.”

혜원의 말에 석민은 잠깐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천장을 보았다.

“이 건물이 강화 콘크리트라고 했나?”

“맞아. 전차포를 끌고 오지 않는 이상 뚫지 못해. 알라봉도 견딘다고. 물론 방탄유리도 마찬가지고.”

그녀는 매우 자신 있게 말했지만, 석민이 보기에는 여전히 문제가 많아 보였다.

“탈출로는? 비밀통로는 없나?”

“없어.”

이 세상에 아무리 방어시설이 잘되어 있어도 난공불락은 없었다.

그런 것을 대비해서 비밀 탈출로쯤은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이는 곳은 전혀 없었다.

“내가 그놈이라면 널 날려버리기 위해 콘크리트 톱을 사용할 것 같군.”

“콘크리트 톱?”

그 말에 혜원은 뒤통수에 망치를 한 방 맞는 기분이었다.

“그 톱으로 구멍을 낸 다음에 C4든 T4든 넣어서 터트리면 되겠네.”

꽤나 요란하겠지만, 어차피 의뢰를 받고 ‘증거’를 찍을 필요도 없으니 깔끔하게 처리하긴 편할 것이다.

게다가 각종 화약이나 폭발물을 가지고 있으니 유폭나기 딱 좋았다.

생각을 마친 그는 주변을 계속 둘러보았다.

“실력이 있는 킬러라고 했지?”

“맞아.”

실력이 있는 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방문하는 건물에 도착하면 그 건물의 구조나 물건들의 위치를 매우 빠르게 확인한다.

여기에 여러 번 왔던 인물이니 방어시설이나 안에 든 물건들의 위치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는 너무 노출되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여기를 떠나서 어디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인데….”

혜원이 거부의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석민이 먼저 말을 이었다.

“그것을 싫어할 것 같으니 뭔가를 준비해야겠군. 건물 창문은 방탄이 아니지?”

“맞아.”

혜원은 나중에 창문을 바꾸기로 마음먹으며 대답했다.

길 건너에도 건물이 늘어서 있었기에, 석민은 이 건물이 생각보다 더 많이 취약하다는 것을 느꼈다.

“창문을 통해서 사격이나 유탄, 혹은 대전차 미사일을 계속 쏘면 피할 곳이 없군.”

물론 그렇게 요란하게 할 것 같진 않았지만,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변에 잔뜩 쌓인 종이박스들을 보았다.

다른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불에 잘 타는 이런 것들을 계속 이 자리에 두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행위였다.

“일단 방탄유리 밖에 있는 물건들 중에 불에 탈 만한 것을 전부 옮겨야겠어. 그래도 되지?”

“그럼.”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 좀 해도 될까?”

“뭔데?”

“밑에 층에 있는 네 사람들은….”

그녀가 부리는 인원이 6명쯤 되었는데 그들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은 일반인들이야. 총이랑은 먼 사람들이라고.”

“그런가.”

“아, 그리고 페이 말인데.”

석민은 손사래를 쳤다.

“되었어.”

“뭐라고?”

혜원은 처음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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