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40화]
작은 소란 덕택에 거의 3시간을 허비한 뒤에야 석민은 지친 상태로 안전가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느린 발걸음으로 거실에 들어서자, 소파에 편안히 누워 서류철을 보던 아영이 그를 반겨주었다.
“사업은 잘되었나 보군요.”
막판에 좀 구겼지만, 그래도 돈은 벌었기에 석민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어, 덕분에 탄약도 구했어. 그건 뭐야? 정부에서 보낸 자료야?”
“예, 정부에서 보낸 기밀자료입니다.”
기밀자료라고? 석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정부는 천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아영은 DVD를 하나 꺼내서 보여주었다.
“지금부터 보시는 것은 1급 기밀이니까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아영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고 진지한 사무적인 어조로 변하자 석민도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의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아영은 석민이 자리 잡은 뒤 담배 파이프에 불을 붙이는 것을 확인한 후, TV를 켜서 DVD플레이어를 틀었다.
화면은 전차의 암카메라로 추정되었는데, 소리까지 들렸다.
그 전차는 조준점을 정면으로 돌린 후 달려들던 드레이크 무리를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폭발이 일어났고 고기조각들로 변한 괴수들 뒤로 새로운 드레이크들이 나타났다.
-대탄(대전차고폭탄의 준말)장전!
전차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소리쳤다.
-장전 끝!
-쏴!
다시금 포성이 울리면서 화면이 일시적으로 흐려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차가 공축기관총을 발사했다.
영상 속 전차는 매우 효과적으로 괴수들을 처리했다.
괴수들이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달려들어 전차의 장갑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온몸에 가시가 달린 드레이크는 전차를 향해 자신의 가시들을 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차의 장갑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천사는 언제 나오지?
석민은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전차장님! 잔탄이 6발 남았습니다!
아, 전투가 좀 오래되었나 보네, 석민은 속으로 추론했다.
-빌어먹을! 이것들 어디서 계속 튀어나오는 거야?! 이 길로 가야 서울을 나갈 수 있는 거 맞아?!
화면이 이리저리 좌우로 조금씩 움직였다.
-9시 방향! 대탄장전!
화면이 왼쪽으로 돌더니 골목길에서 나타난 드레이크 3마리에게 다시 포탄을 먹였다.
비명소리들이 들려왔다. 전차뒤쪽에 있던 보병들이 드레이크들에게 당하는 듯했다.
-보병들이 당했어! 뒤쪽에! 포탄을 아낀다! 공축기관총으로! 포탑을 여섯 시!
-어?! 정면에!
화면이 다시 정면으로 돌아가는 순간, 화면이 크게 들썩였다. 이윽고 화면은 전차 위를 덮친 와이번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와이번이 입이 쩍 벌어지고 화염이 화면 가득 채워졌다.
비명소리가 울렸다. 와이번의 불꽃은 매우 강력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전차 안에 있는 승무원들에게 피해를 주진 못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 순간 화면이 갑자기 새하얗게 변하더니 와이번이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뭐?
카메라 또한 위로 올랐고, 어느 거리의 상공위에서 천사와 와이번이 싸우는 것이 화면에 잡혔다.
“뭐야?”
그 존재는 대략 키가 3미터쯤 될 정도로 장신이었다. 거기다 매우 희다 못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피부를 가지고 긴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등에는 진짜 천사처럼 2장의 새하얀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비단처럼 광택이 도는 옷감 위에 기이한 문양이 장식된 흉갑과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었고, 티아라인지 분간이 안 가는 투구를 쓰고서 거대한 창을 들고 있었다.
그는 7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창을 들고서 와이번의 몸을 향해 찔렀다. 와이번이 비명과 함께 불을 뿜는 순간, 그것의 오른손에서 무색의 막이 뻗어 나오며 화염을 막아냈다.
이윽고 그 존재는 하늘 높이 오르더니 와이번을 향해 창을 뻗으며 급강하했다.
와이번이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으나 천사의 날개가 더 빨랐다. 창과 함께 내리찍는 천사의 모습은 마치 흰 빛의 화살과도 같았다. 하얀 깃털들이 흩어져 날렸다.
전차 안에서 상황을 목격하고 있던 승무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와이번을 해치운 천사가 천천히 승무원이 타고 있는 전차 앞으로 다가왔다. 영상에서 금속음이 들려왔다.
아마 승무원들이 해치를 연 것 같았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지지직- 거리며 영상은 끝이 났다.
“진짜 있었던 거야?”
석민이 다시 중얼거렸다. 그는 담배 피우던 것도 잊고서 멍하니 영상이 끝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영상을 본 아영도 여전히 곤혹스러운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 영상을 끝으로 전차 승무원들은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저 창에 의한 자상으로 추정됩니다. 다음 영상을 보겠습니다.”
그다음 영상은 공격헬기로 추정되는 것의 건카메라였다. 거의 저공으로 날면서, 시내에 있는 괴수들에게 기관포를 쏘고 있었다.
-목표 제압, 다음 표적을….
사수는 건카메라를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사를 발견했다. 그 덕분에 사수도 말하다 말고 말문이 막힌 듯했다.
-뭐해? 쏴! 쏘라고! 저게 이 세상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기관포가 발사되었다. 탄의 궤적이 날아가 그 천사에게 꽂히려는 순간, 천사가 그것을 옆으로 피했다.
-피했어?
-계속 쏴! 계속!
조준점이 돌아가는 순간, 그 천사가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았다. 그 천사의 몸에서 빛이 나는 듯싶더니 천사 주변에서 청백색의 빛덩이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마치 플레이아데스성단처럼 아름다웠다.
-아…….
빛이 장렬했고 그렇게 영상이 끝이 났다.
그다음 영상이 나왔고, 또 다른 영상이 나왔다. 전차의 영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먼저 천사를 공격하다가 반격당해 죽은 것이었다. 10분 정도 되는 매우 짧은 영상이었지만, 충격 받은 석민에겐 1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이것이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영상입니다. 괴수들처럼 서울로 온 지성 체들로 판단되고 이 영상을 끝으로 저것들을 발견, 접촉 혹은 교류한 적은 없습니다.”
“정부는 이걸 여태껏 숨기고 있었던 거야?”
석민의 목소리가 상당히 낮아졌다.
저 영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요상한 마법을 사용하는 저들과 서울에서 생긴 그 ‘문’이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사실, 저도 몰랐어요.”
아영이 말했다.
“저들과 접촉한 이들 중에서 살아남은 자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부에선 저들이 우리를 적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지성 생명체, 정부는 새로운 혼란을 막고 싶어 했습니다.”
“아니야.”
석민이 고개를 저었다.
“천국의 문 교단과 연관이 있어. 고문했던 놈이 말했잖아. 천사가 강림해서 계시를 내리고, 교주에게 기적을 전달해 주었다고 했잖아. 빌어먹을.”
석민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왜 우리에게 힘을 준 이는 이딴 능력밖에 주지 않는 단 말인가?
“우리는 기껏해야 단순한 신체능력만 좀 높아졌을 뿐인데, 왜 저것들은 마법 같은 기적을 펼치고 있어?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래서, 정부에서 천국의 문 교단을 어떻게 한데? 계엄군으로 쓸어버린데?”
“아뇨, 그건 불가능해요. 천국의 문 교단은 세력이 막강하고 이미 사병조직이 있어서, 그것들을 건들면 거의 내전수준으로 교전이 벌어질 거라고 정부에서도 건드리기 쉽지 않아요. 게다가 내각이나 국회에도 천국의 문 교단 신자가 있기 때문에 허튼짓 했다가는….”
“아니, 아무리 나라가 좀 부실해졌다 해도 이정도야? 수도가 털렸어도 그거 노리고 도발하던 북쪽 빨갱이들도 물리쳤는데, 그깟 사이비 교단 따위 하나 제거 못 한다고? 계엄군이?”
“대한민국의 무력은 전부 휴전선과 서울을 방어하느라고 소비되고 있어요.”
대답하는 아영의 목소리에 조금 힘이 없었다.
“압수수색이나, 경찰은?”
“지금 나라는 지금 그럴 능력이 안 돼요.”
안 좋은 예감이 떠올랐다.
“이걸 알려준다는 것은?”
“네, 이들과 절대로 접촉하거나, 공격하지 말라고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음? 그 반대가 아니고?”
석민은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예, 아직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에 접촉을 금하는 중입니다. 다만, 교단이 저들과 접촉한 것을 안 이상, 예전처럼 묵과하진 않을 것입니다. 국정원을 통해서 감시를….”
석민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게 퀘스트에서 나오던 거짓된 전령이잖아. 우리 사명은 저것들을 죽이는 게 아니었나?”
그 말에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아직 확인된 것이 없어요. 거짓된 전령을 찾아 사명을 완수하라가 아니었던가요? 죽인다고 판단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더구나, 영상을 보다시피 녀석들을 먼저 공격한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먼저 적대를 했으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전차 쪽 영상은 먼저 공격하진 않았잖아.”
“모르죠. 승무원들이 공격했을 수도.”
“그놈들이 생명의 은인에게 왜 공격을 하지? 혹여 공격을 했단 것은 다른 의미로 반격했단 뜻이 될 수 있잖아. 그러면 저 망할 것이 승무원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겠지.”
아영은 뭐라 말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논쟁을 했다가는 끝이 없단 것을 알았던 것이다. 석민도 그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대통령님께선 적을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만나는 것을 우려하시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도 같은 생각이구요. 교단에 국정원의 요원을 보낼 것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우리는 예전처럼 다시 헌터들을 잡으면 됩니다.”
“너는 ‘전달하는 자’잖아. 퀘스트 주는 양반이 뭐라고 계시 같은 거 내린 게 없어?”
그 말에 아영은 움찔거리더니 민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아직 그런 건 없어요.”
석민은 혀를 찼다.
“내 생각은 조금 달라, 난 바로 저것들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고. 서울에 드론을 보낸다고 했잖아. 저것이 발견된 적 없어?”
“예, 저 영상이 전부입니다.”
“……아무리 봐도 천국의 교단을 조져야 할 것 같은데.”
“그건 정부를 믿어주세요. 우리는 그동안 해야 할 일을 하죠.”
석민은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자신이 움직여야만 한다고 육감이 말하는 듯했지만, 아영이 저리 말하니 더 이상 나설 수 없었다.
“알았어.”
그는 파이프를 뒤집어버리고, 재를 털어내었다.
“그럼 내일부터 다시 원래 일을 하는 거지?”
“예, 다만 지난번처럼 과천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님께서 강동구로 가라 하십니다.”
“아니, 왜?”
“가장 최근 드론 정찰에서, 강동구 쪽에 열원이 가장 많이 발견되었어요. 적어도 4개, 혹은 8개 팀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군.”
두 사람은 다시 조용해졌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자, 석민은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부엌으로 가서 술 한 병을 꺼내왔다. 이 집에 있던 오래 묶은 위스키로, 한 번도 개봉하지 않는 것이었다.
“안 좋은 생각은 집어치우고 돈도 벌었으니 한잔하지.”
그는 그것을 들어 보이고 어깨를 으쓱거리자, 아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잔을 내려놓고 석민은 다시 부엌으로 가서 적당한 안주거리를 찾아왔다. 유통기한이 대략 1주일 지난 육포였다. 썩은 냄새는 안 나니 괜찮겠지 생각하며 그냥 먹기로 한 것이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술이 반쯤 비워질 때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신이 아는 웃긴 이야기나 전장에서 싸워본 경험담 등을 나눴다. 물론 제3자가 들었다면 재미있지 않을 이야기뿐이었지만.
“…그래서 내가 유리, 그 자식 엉덩이를 발로 한 대 차면서 말했어, 이 새끼 운 좋나 좋네.”
아영은 평소와 다르게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독주를 많이 마신 덕분에, 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것은 석민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그녀는 잠시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