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39화 (39/226)

[게이트 오브 서울 39화]

‘저놈, 얼마 본 적 없었지만 감정표현 같은 건 잘 안 하던 놈인데.’

얼마나 기분이 좋은 일이 있기에 저러는 거지?

혜원은 잠시 추리를 해보았다. 궁금증이 생기면 알고 싶어 하는 그녀의 성격상, 소리 내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질문이 나오진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그에게 물었다. 그 때문에 석민의 적의를 받기까지 했다.

혜원은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킬러인 그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일이 잘 풀린’ 것밖에 더 있겠나 싶었다.

‘그래, 너무 알려고 하다간 내 손해지.’

“탄약에 열처리까지 해놨네? 마음에 드는군.”

그 말에 혜원은 피식 웃으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재생탄이라도 열처리를 하면 내구도가 올라가고 조금 더 안전해지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하지만, 이건 망가졌군.”

석민이 탄약 하나를 건네자, 혜원은 낚아채듯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살펴보았다.

표면에 잔기스가 조금 있지만 봐줄 만했고, 그녀가 열처리를 한 직후 잘 닦아준 덕분에 탄피의 표면이 반짝반짝한 것이 멀쩡해 보였다.

“멀쩡해 보이는데?”

“문제 있는 탄이야.”

문제가 있다고? 어떻게 겉 표면만 보고 알 수 있다는 거지?

자신이 만든 탄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녀로선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내 물건은 자부심을 가지고 만드는 거라고. 비록 수작업이지만, 그렇게 대충 봐서 판단할 만큼 허투루 만들지 않아.”

“뭐, 그렇다면 한번 쏴보던가.”

도대체 무슨 근본 없는 자신감이지?

혜원은 이 녀석이 자신을 무시하는 건가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나 당당하게 나오는지라 바로 여기서 그냥 저 면상에다 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석민은 탄약 3발을 더 골라낸 후 나머지 47발을 챙겼다.

“나머진 신품탄약으로 하지 네 말대로 텅스텐탄으로.”

‘돈 좀 벌겠네.’

혜원은 계산기와 수제 계산서를 꺼내 들었다.

“몇 발?”

“몇 발까지 있는데?”

“5천 발.”

“다 줘.”

혜원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럴 거면 재생탄 같은 건 안 사도 될 것 같은데.”

“서울에 오래 있을 것 같거든.”

‘통이 커서 마음에 드네.’

라고 생각하며 혜원은 뒤쪽으로 가서 탄약상자들을 꺼내왔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재고 전부가 나갔다.

“전부 다 합쳐서 600만 원이고, 재생탄은 발당 300원이니까. 14,100원이네.”

“그냥 14,000원으로 계산해줘.”

“1,680만 원에서 빼서 1,078만 6천 원을 주면 되겠네.”

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금이 담긴 돈통을 꺼냈다.

“더 자주 이용해줘.”

“그러지.”

그녀는 석민이 싱글거리며 탄약상자를 총을 가지고 온 가방 안에 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기에, 그녀는 용기 내서 평소에 하지 않던 영업용 미소까지 지으며 아까 미처 묻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이유가 뭐야?”

“아, 그동안 뭔가 막막하게 안 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제 실마리를 잡았거든.”

“그렇군.”

그러면 그렇지 킬러가 하는 일이 뭐겠는가? 일이 잘 풀렸다니 다행이네, 별일도 아닌 쓸데없는 거에 관심 가져 가지고.

혜원은 그리 생각하며 의문을 털어냈다.

그러나 석민이 기분 좋아진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

[5.45mm 7N24]

내구도:98%

품질:상

러시아에서 생산한 탄약.

탄약에 대한 정보가 시스템창을 통해서 보였다.

‘상태창.’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2

지구력:7

체력:5

활력:7

시력:5

거기다 시력은 6에서 5등급으로 스탯이 올랐다.

지난 4년간 오르지 않던 스탯이 드디어 오른 것이다.

그러나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문과 심문이 끝난 직후에 알림글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석민뿐만 아니라 아영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앞에 뜬 창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를 쳐다보고는 현철을 급히 예배당에 넣어둔 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냐, 이거?”

“저도 모르겠어요.”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들은 설마 고문을 해야 경험치가 쌓이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할 정도였다.

석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확실한 것은 우리 레벨이랑 스탯을 올리는데 이놈들이랑 연관이 있다는 거군.”

그들이 아는 것은 꽤 많았다.

현철의 말에 따르면 천국의 문 교단은 정부가 추측하던 수보다 더 많은 사병 집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직접 보진 못했다고 하나 천사라고 하는 것이 실존하며, 그 존재가 교주에게 계시를 전달하고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기적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석민은 현철이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하리라 생각진 않았지만, 기적 자체에 대한 의구심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일단 그가 성남에서 직접 그의 기적을 목격했다고 했으니, 넘겼을 뿐이었다.

“복귀하는 대로 천사에 대해 알아봐 줘.”

“알겠습니다.”

그 직후 그들은 서로의 스탯창에 시선을 돌려 뭘 찍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아영이 말했다.

“전 시력에 찍겠어요. 아무래도 체력이나 다른 건 지금으로서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 말에 석민도 동의했다. 석민 또한 다른 것엔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사격에 필수적인 시력은 매우 중요했다. 그랬기에 석민도 시력에 주저 없이 스탯을 올렸다.

덕분에 이젠 밤중에도 마치 컴퓨터의 밝기조절이 최대로 된 것처럼, 주변을 매우 환하게 볼 수 있었다.

***

‘전반적으로 운이 좋았어. 원래 다른 목적으로 이 일을 한 것이었는데.’

회상에서 빠져나온 석민은 그리 생각하며 혜원이 건넨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요란한 전자음이 들려왔다. 혜원은 감시카메라의 화면이 나오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젠장, 귀찮은 놈들.”

“뭐야? 뭔데 그래?”

“아까 전에도 우리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던 빌어먹을 호로새끼들이 있었는데, 아까 그것들 사라져서 올라온 거였거든? 근데 또 왔잖아.”

혜원이 모니터를 돌려 화면을 보여주었다. 육중한 철문을 두드리는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화면에 보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을 보건대 뭐라 말하는지 추측이 가능했다.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문 열어!”

그들이 타고 온 봉고차도 1대에서 2대로 늘어났다.

아무래도 감시로 1, 2명을 둔 다음, 지원을 요청한 게 분명했다.

그런 것도 눈치 못 채다니. 혜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지?”

혜원이 중얼거렸지만, 석민도 감이 잡히진 않았다.

“뭐, 원한이라도 있나? 팔아치운 무기에 뭐가 문제 있거나.”

“원한을 살만한 짓은 하지 않았는데? 나 때문에 사업에서 실패한 동업자도 없고.”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혜원은 일의 특성상 원한을 살만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누구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석민의 두 눈이 차분해졌다.

“처리해 줄까?”

혜원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소란은 만들고 싶지 않아. 게다가 여긴 경찰도 모르는 곳이라고. 괜히 주민센터 근처에 가게 차린 거 아니야.”

주민센터엔 항시 2개 분대급 무장한 육군부대가 주둔해 있으니 이 근방은 다른 부랑자들도 있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잠깐 동안 더 여기에 있어야겠어. 저것들도 제풀에 지쳐서 나갈 거야.”

“그게 언제일지 궁금한데.”

석민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저들은 여전히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다른 이가 손짓을 하자, 같은 복장의 사람들이 더 나타났다. 그들 중에는 여러 가지 연장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문을 뚫으려고 하는 건가? 야, 갑자기 왜?”

석민이 휴대폰을 들자, 혜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경찰에 전화하려고, 누군가 문을 강제로 열어서 들어가려고 한다고 말하면 되겠지. 적어도 경찰이 보이면 저것들도 더 이상 못 설칠 거야.”

그는 혜원의 반발을 무시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고 전화가 끝난 지 정확히 3분 만에 경찰들이 찾아왔다.

대형 순찰차에서 2명의 순경과, k-2 자동초총에 단독군장, 방탄복을 착용한 전경들이 내렸다.

경찰들이 오자,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섰다. 그리고 누군가가 새로 나타났다.

계급이 좀 있어 보이는 순경이 새로 나타난 남자를 보더니 먼저 머리를 숙이고 악수를 청했다.

“경찰들이란….”

혜원이 혀를 찼다. 순경들이 그 남자에게 경례까지 해준 직후 물러나자, 기가 막힌 석민도 혀를 차고야 말았다. 양복들이 다시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기서 문 여는 거 불가능해. 은행금고랑 같은 문이거든. 건물도 강화콘크리트이고.”

그들의 손에서 무언가 덩어리가 들려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그것을 문에 붙였다.

“…저거 c2(도어 브리칭용 폭발물)인 것 같은데.”

“괜찮아, 은행금고문처럼 강력한 거라고 말했잖아.”

하지만, 석민은 MK23권총을 꺼내 들고는 안전장치를 풀었다.

“잠금장치만 10개라고.”

석민이 준비한 게 무색하게 혜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폭발물을 터트렸다. c2특유의 미약한 진동과 작고 둔탁한 폭음이 들려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감시카메라를 통해 확인하니 탄 흔적만 있을 뿐 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거봐.”

하지만, 다음에 나온 것은 산소 절단기였다. 석민과 혜원은 잠시 서로를 보았다.

양복들 중 하나가 소음기 달린 권총으로 감시카메라를 부쉈다.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화면으로 바뀌자 혜원이 낮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저게 얼마짜리인데.”

“수류탄 있나?”

석민이 물었다. 혜원은 대답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어, 난데. 그것들 몰아낼 수 있나?”

하지만 대답들이 부정적인지, 혜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밑에 있는 남자들은 4명뿐이지만, 문밖에 있는 것들은 12명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용민이 형에게 전화해볼까?’

그는 밖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석민은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고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용민이 ‘여보세요?’하는 것을 들었다.

“……미안하지만, 수원청의 형사가 성남청의 구역에서 일을 하는 것은 무리야. 게다가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차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봐. 혼자서 이건 못해.”

“…그렇군요, 알겠어요. 형, 대신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눈감아줘요.”

그는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저들은 벌써 절단기를 가동했다. 괜한 분란에 끼어들면 석민도 곤란했다.

“안 되겠어. 기관총이든 수류탄이든 하나만 줘봐.”

그 말에 혜원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하려고?”

“경찰들이 오지 않는다면 군인들을 불러야지 c2폭약보다 더 큰소리가 나는 것으로.”

그 말에 혜원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인상을 썼지만, 이 이상, 계속 두면 놈들이 문을 열 것이라 여겼는지 순순히 PKM기관총을 꺼내서 석민에게 주었다.

“딱 50발만이야.”

“그거 참 고맙군.”

석민은 이죽거리며 방을 나와 창가로 갔고 혜원은 전화기를 들어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는 듯했다.

검은 필름이 붙은 창문을 열고 그는 총구를 하늘로 향한 채 기관총을 난사했다. 갑작스레 들리는 기관총의 총성에 양복들은 몸을 움츠렸다.

석민은 기관총을 전부 난사한 직후 권총도 꺼내서 한 탄창 전부를 쏜 직후 창문을 닫았다.

c2폭약 정도는 몰라도 백주대낮에 기관총의 연사음이 들리자, 결국 주민센터에서 주둔 중이던 육군부대가 출동했다.

수분 후 밖에서 고성이 들리자 석민은 창문을 살짝 열어 군인들과 대치 중인 양복들을 볼 수 있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 순순히 군인들에게 잡혀갔다.

포박용 케이블타이로 묶여서 그들이 끌려갔다는 보고를 받은 혜원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미덥지 않지만, 잘했어. 그래, 탄피도 밖으로 유출 안 되도록 쏘고. 기특하군.”

“이제 밖으로 나가도 되나?”

그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안전을 생각해서 조금 있다가 나가는 것도 괜찮아 총기들도 옮겨야 하는데 일이 벌어졌으니 조금 있다가 해야겠지. 조금만 기다리는 것은 어때?”

“…별수 없지, 그러도록 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