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38화]
“너희들 중 하나는 내가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불거고.”
“으억!”
석민이 십자가를 흔들어 대자 현철은 비명을 질렀다.
“다른 하나는 저 심연 속으로 추락할 거야. 구원이고 자시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과 다름이 없지.”
이번엔 이삭의 십자가를 흔들자 그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동요했다.
아무리 신실한 신도라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냉정할 순 없었다.
이삭은 입으로 중얼거리며 주기도문을 외우기 위해 애썼다.
“자, 그럼.”
석민과 아영은 그들의 두 눈을 가렸다.
“누가 먼저 말할래?”
현철은 매우 불안한 얼굴로 이삭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만큼은 이삭도 겁에 질렸다.
그도 결국은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그는 옛날의 순교자들은 어떻게 의연하게 순교를 받아들였는지 의문이 들었다.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은 없어?”
석민은 현철의 뒤쪽으로 다가가 십자가를 잡아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밀었다.
“으어.”
“너는?”
현철은 숨을 크게 쉬면서 벌벌 떠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아니면 넌?”
이번엔 이삭에게 같은 방식으로 하자 그의 입술이 벌벌 떨리면서 이가 보였다.
“……없어?”
석민이 일부러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아영과 시선을 교환했다.
무언의 비난을 받은 아영도 얼른 따라 스산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면 진가영 씨? 어느 놈을 떨어트릴까요?”
“흐음.”
아영은 낮에 신음소리를 내며 선택을 위한 침묵을 가졌다.
이삭과 김현철이 서로 눈치 보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 맞혀보세요.’로 하지요.”
석민과 아영은 그들의 십자가를 차례대로 흔들었다.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어. 딩동댕, 척척박사님, 알아 맞춰 보! 세! 요!”
석민은 이삭의 십자가를 뒤로 빼서 약간 비튼 후 앞으로 밀었다.
십자가 상부에 무게를 실어 밀었기 때문인지 이삭은 머리가 아래인 채로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엘리베이터 통로는 빛도 안 들어오는 완전한 암흑이라 그의 두려움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머리부터 떨어졌기 때문에 즉사할 수 있다는 것뿐.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들리던,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비명소리가 멈추자, 공포에 질린 현철이 입을 열었다.
“다 말하겠습니다! 다요! 전부 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좋아.”
석민은 그가 묶인 십자가를 뒤로 뺀 후 예배당 쪽으로 옮겼다.
현철의 마음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이 상태에선 그는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치부까지도 술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묻는 말에 대답해봐.”
심문은 하루 종일 이어졌고 약속대로 현철은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심문 이후 아영을 통해 어디론가 인계되었고, 석민은 그 뒤로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날 저녁 9시, 천국의 문 교단 당직실에선 정기적인 정탐군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끝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 그 사실은 백은호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뭐라고?”
기도실에 틀어박혀 있던 교주 백은호는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한 후 상황파악을 위해 움직였다.
교단 상부에서는 그들에게 무전을 보내보았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 천국의 문 교단은 정탐군 전부가 순교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크게 상심한 백은호는 3일 동안 기도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석민이 김혜원의 가게 앞에 나타난 것은 심문이 있었던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였다.
***
혜원의 가게에 양복을 입은 2명의 남자가 찾아왔다.
정확히는 말도 안 되게 육중한 철문에 가로막혀 가게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당황한 남자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햇빛보기 어려운 경기도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에 그들의 시선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기 어려웠지만, 고갯짓으로 보건대 대충 문과 그 위에 달린 감시카메라를 향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남자 한 명은 문을 두드렸고, 또 다른 한 명은 감시카메라 앞에서 열어달라고 제스처를 취했다.
그렇다고 해서 문을 열어줄 리 없었다. 남자들은 거의 30분가량 문 앞을 서성거렸으나 결국 열리지 않는 문에 계단을 따라 주차해 놓은 봉고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새끼들, 존나 오래 버티네.’
1층 중국음식점에서 식사하던 혜원이 감시카메라와 연동되어있던 어플을 끄고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커버올을 입고 있었는데, 점심식사 직전에 작업을 해서인지 철가루들이 가득했다.
이미 한참 전에 식사가 끝났기에 식탁엔 소스만 남은 짜장 그릇과 탕수육 접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지만, 저놈들 때문에 올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혜원은 추가로 시킨 고량주를 한잔 들이켰다. 도수 높은 알코올이 들어오면서 목구멍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한 잔 더 들이켤 때쯤, 봉고차 시동소리가 들리더니 편의점 점원이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는 것이 혜원의 시야에 걸렸다.
“누님, 없어요.”
“좋아.”
그녀는 아직 반병 남은 고량주를 들고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킵 해둬, 다음에 마실 테니까.”
“예.”
그녀는 기분 좋은 듯 휘파람을 불면서 계단을 올라왔다.
그러다 철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본능적으로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 점심 먹었나?”
석민이었다. 그는 마침 카드 리터기에 녹색회원카드를 긁으려고 하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혜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놀랬잖아 시팍새끼.”
“왜 보자마자 욕하냐.”
석민이 인상을 쓰면서 카드를 긁어내렸다. 혜원은 그가 인상을 쓰건 말건 작게 구시렁거렸다.
열린 문 안으로 석민이 앞장섰고, 혜원은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방탄유리 안으로 들어가서야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너, 많이 피곤해 보이네.”
자리에 앉으며 입에 담배를 문 그녀가 말했다.
“어, 일을 좀 했거든.”
대답하는 석민의 눈가엔 짙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으나, 그와 반대로 얼굴색은 좋았고, 표정도 즐거워 보였다.
그는 양손에 커다란 가방의 지퍼를 열고 총기들을 꺼냈다.
“이것들은 견본품들이야. 전부 사주면 좋겠어.”
그가 꺼낸 견본들은 전부 정탐군들이 쓰던 무기들이었다.
[ak-102]
내구도:100%
품질:상
탄약:5.56mm 나토탄
러시아 칼라시니코프사에서 생산한 수출형 총기, 교주 백은호가 성수로 축복해주었다. 이삭은 이 총을 마음에 들어 했으며, 자신의 임무를 위해 몸과 영혼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자신의 최후가 이렇게 비참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
이삭이 죽은 후 바뀐 설명글에 아주 조금 남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지라 석민은 고개를 돌렸다. 이왕이면 이 무기들을 빨리 팔아버리고 싶었다.
석민은 무기들을 최대한 수거하여, 돌격소총 29정, 경기관총 4정, 권총 35정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 무기들은 지금 석민이 타고 온 트럭에 고이 실려 있었다.
“어디서 이런 것을 다 가져온 거야?”
혜원은 석민이 이것들은 전부 직접 가지고 온 것에 놀랐다.
“약간의 도움이 있었지.”
석민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용민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이거, 얼마에 사 줄 수 있지?”
그녀는 총기 하나를 카운터의 구멍을 통해 받았고, 몇 번 물건을 살펴보는 순간, 단번에 얼굴이 심각해졌다.
“ak-102잖아, 그것도 러시아제 정품이네?”
“전용 탄창도 있지.”
그가 가지고 온 탄창의 개수도 정확하게 96개였다.
“얼마에 살 거야?”
혜원은 조금 짜증스런 얼굴로 그를 본 직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1,680만.”
석민은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탄창 포함?”
“어.”
그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이것들을 챙겨 나오기까지 상당히 고생을 한데다가 아영의 도움도 받았다.
“왜 그거 밖에 안 줘? 정품이면 정당 아무리 못해도 100만 단위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말에 김혜원은 인상을 썼다.
“이거, 딱 봐도 기관이나 단체 거잖아. 똑같은 무기를, 그것도 정품으로 지급할 정도로 자금을 가진 애들이면 괜히 뒷구멍으로 어쭙잖게 팔았다간 내가 위험해.”
석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 석민의 반응에 혜원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그녀는 찬찬히 무기들을 들여다보더니,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것 봐.”
그녀는 창구를 통해 개머리판의 구석 부분을 보여주었다. 석민은 고개를 숙여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개머리판 구석에 열십자 무늬가 상감 방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반짝거리는 게 은 아니면 크롬을 채운 것 같네.”
그녀는 다른 총기들도 보여주었고 그것들마다 열십자 무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탄창에도 그것을 확인했다.
“무슨 일본 자위대냐? 일일이 벚꽃무늬를 넣은 것 같네.”
혜원이 보기엔 이들은 절대로 일반 조직이 아니었다.
아무리 나름 거대한 조직이라도 이렇게 일일이 총기에 무늬를 찍어서 상감 방식으로 채우는 자들은 없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을 조진 거야?”
석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걸 말해야 하나?
분명 무기를 처분해서 돈을 벌려고 한 것은 그였지만, 그 이유를 말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말하는 순간 보안상 위험이 배가되기 때문이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자 혜원은 팔짱을 낀 채 석민을 노려보았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거래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어. 최악의 상황은 내 고객리스트에서 널 빼는 거지. 그러니까 당장 말해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천국의 문 교단.”
결국 기세 싸움에 진 석민이 사실대로 말했다. 혜원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 사이비 광신자들?”
“어, 서울에서.”
“너 헌터였나? 청부업자 아니었냐?”
“어쩌다 보니 서울에 들어갈 일이 생겼지. 그래서 어쩔 거야? 살 거야?”
초초함과 불안감에 석민도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석민이 혜원을 적개심 가득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뭘 이리 자꾸 캐묻는단 말인가?
그가 한마디 더 할까 고민했지만, 석민의 분위기를 파악한 혜원이 먼저 대답했다.
“사지. 그 자식들이랑 엮이면 별로 좋을 게 없지만, 천국의 문 교단쯤은 속일 수 있겠지.”
“좋아, 지금 돈은 지불하지 말고 총알 좀 사고 정산하지. 5.45mm 철갑탄 있나?”
“서울에 몇 번 더 가는 거야?”
석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총알 있어?”
“있기야 있지.”
그녀는 뒤로 돌아가서, 선반을 열었고 탄약상자 하나를 꺼내서 뚜껑을 까 보여주었다
“탄두 끝부분이 강철로 된 것들이야 발당 700원.”
이윽고 그녀는 다른 탄약상자의 뚜껑을 열고 보여주었다. 새로 보여준 것들은 탄두가 검은색이었다. 혜원은 손가락으로 총알을 잡아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건 탄두가 텅스텐인 놈, 러시아에서 만든 건데 발당 1,200원, 괴수를 안정적으로 잡으려면 텅스텐탄이 나을 거야.”
1,200원이란 말에 석민의 오른쪽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뭐가 그렇게 비싸?”
그 말에 혜원은 다시 양팔의 팔짱을 꼈다.
“정품이거든. 내가 보증할게. 걱정 마, 난 이런 거 가지고 장난 안쳐.”
“재생탄은 없나?”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하지만 몇 발 없어. 보여줄까?”
그녀는 뒤쪽에 탄약 재생기를 흘겨보며 말했다. 재생기는 일일이 수동으로 탄을 찍어내는 것이라 번거로워서 그녀도 잘 쓰지 않았다. 더군다나 공장이 아니라 가내수공업 형태로 재생된 탄약은 완전 안전하다고 보장하기도 힘들었다.
“일단 그것부터 가지고 와봐, 총알을 골라보지. 텅스텐으로 된 것부터 보여줘.”
탄이 카운터에 쏟아졌다. 석민은 종류별로 한발씩 세워 둔 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그렇게 본다고 뭘 아나?’
혜원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지켜보았다.
진지하게 총알을 살피면서도 석민의 입 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처음 보는 석민의 표정이었다.
제법 기분이 좋은지 조금만 더 좋았다면 노래까지 흥얼거릴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