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37화]
이미 갖은 구타와 이삭에게 행한 폭력을 목격한 현철은 완전히 겁에 질려있었다.
[ak-102]
내구도: 99%
품질: 상
탄약: 5.56mm 나토탄
러시아 칼라시니코프사에서 생산한 수출형 총기, 교주 백은호가 성수로 축복해주었다. 이삭은 이 총을 마음에 들어 했으며, 자신의 임무를 위해 몸과 영혼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별 영양가 있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고 석민은 현철의 소총을 들었다.
[ak-102]
내구도: 100%
품질: 상
탄약: 5.56mm 나토탄
러시아 칼라시니코프사에서 생산한 수출형 총기, 교주 백은호가 성수로 축복해주었다. 김현철은 매우 독실한 신도집단에 속했지만, 여전히 그 교단의 교리와 구원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의심하고 있다.
‘역시 김현철은 그리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나보네.’
석민은 그것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석민은 직감적으로 이삭보단 현철의 마음을 흔들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맞았다.
이자와 오래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의심이 많은 성격으로 보였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믿음이 오래가지 않는다.
석민은 기절한 이삭을 한번 힐끔 쳐다보다가 다시 현철을 보았다.
이들에게서 얻은 식료품이나 무기들을 생각하면 달 단위로 있을 수 있겠지만, 언제 다른 헌터나 괴수들이 이 지하로 내려올지 알 수 없었다.
더 많은 정보를 알 것 같은 이삭을 굴복시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석민은 현철의 마음만 꺾이게 만들기로 했다.
“네 대장이 뻗어버렸네.”
석민은 그들의 앞에 의자를 끌고 앉았다.
이들이 침이라도 뱉는다면 피할 새도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석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천사라는 거 말인데, 한번 말해줄 수 있나? 그리고 교단에 대해, 교주 백은호에 대해 아는 것을 다 말해봐. 아, 물론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을 제외하고 내부적인 것으로 말이야.”
그 말에 다시금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눈빛이 그를 노려보았다.
“지랄 마, 시발새끼야.”
“욕하는 게 정말 별로네.”
“시발!”
“겨우 할 줄 아는 욕이 그런 건가?”
석민은 웃음을 터트리며 왼팔 소매 속에 숨겨놓은 단검을 뽑아들었다.
석민은 단검의 끝을 검지손가락 끝에 살짝 두고는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날카로운 칼끝에 피가 조금씩 고였다.
“난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거다! 이 더러운 불신자 놈아!”
김현철이 의도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석민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래봤자 방음이 잘 된 예배당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석민의 손가락에서 떨어지는 피가 조금씩 많아졌다. 그에 따라 현철의 숨소리도 점점 가빠졌다. 그는 애써 내면에 폭풍같이 휩쓰는 감정들을 참으려는 듯 보였다.
현철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며 석민과 그가 들고 있는 단검을 쳐다보았다.
‘저 칼로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현철은 눈을 조금 길게 감았다 뗐다.
“정말 실망인데.”
한 발 더 현철의 앞으로 다가온 석민이 자신의 단검을 거꾸로 잡아 왼손바닥을 그어 내렸다.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고 현철의 두 눈은 공포로 가득했다.
“칼이 정말 날카롭네.”
그 말과 함께 현철의 머리 위로 석민의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석민의 차분한 목소리와 피가 떨어지는 소리만 교회를 가득 메웠다.
“빌어먹을!”
현철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가 보기엔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놈은 완전 또라이였다.
자기 몸을 칼로 자해하는 놈인데 나한테는 무슨 짓을 할지 그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는 교단에서 1년간 훈련받기 전까진 그저 일개 고등학생이었다가 졸업을 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군대도 아직 가지 않은 햇병아리였다.
“그만!”
머리를 타고 흐른 석민의 피는 어느새 진한 핏줄기를 만들어내며 현철의 눈을 따라 볼살까지 흘러내렸다.
“원하는 게 뭐야? 그만해!”
“난 그냥 그 천사와 너희 교단에 대해 알고 싶은 것뿐이야. 아는 걸 전부 말해.”
“천사는 나도 본 적 없어 교주님께서 계시를 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몰라! 그게 전부라고!”
석민의 피 묻은 칼끝이 현철의 목에 살짝 닿았다,
“악, 악! 시발! 그만!”
현철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상체를 최대한 뒤로 빼면서 두려움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고정된 의자에 몸이 묶여있어 생각처럼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닌데?”
“말만 하라고! 물어봐!”
“대답하지 마!”
그사이 깨어난 이삭이 호통 쳤다.
“형제님, 절대로 대답하면 안 됩니다! 다른 형제자매님이 욕보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생각입니까?”
정신을 차린 이삭은 석민에게 주먹으로 발음은 줄줄 샜지만 매우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 그래? 내가 보기에 여기 있는 김현철 씨 생각은 안 그런 거 같은데.”
석민이 이삭에게서 현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지만, 그사이 다시 정신이 들었는지 현철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실망이야.”
석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이프를 들어 현철과 이삭의 귀를 자르기 위해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마치 무딘 칼로 두꺼운 스테이크를 썰 듯이.
매우 고통에 찬 비명이 예배당을 다시 가득 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영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석민이 어떻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저런 행위들을 자연스레 행하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녀가 보기에도 저들은 석민의 계획대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단순히 무식한 폭력 하에 무너트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철저한 심리분석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절대로 킬러 몇 년 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석민은 그 둘의 목을 졸라 기절시켰다.
“좋아, 됐어. 준비하지.”
“네.”
석민은 좀 희게 질린 아영의 얼굴을 보고서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나라고 절대로 이걸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야. 여하튼 도와줘.”
석민은 교회 구석에 박혀있던 큰 십자가 2개를 가지고 나왔다.
사람을 메달아 묶고도 충분한 크기였다. 아영과 석민은 기절한 그들을 의자에서 떼어내 십자가에 묶은 후, 저항하기 못 하도록 녹색테이프로 온몸을 칭칭 감았다.
이후 이삭과 현철을 떨어진 벽에 각각 세워 놓은 뒤, 석민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9시.
“됐어. 이제 잠 좀 자지. 아마 저 녀석들도 곯아떨어질 거야. 잠 좀 자고 일을 진행하지.”
“네.”
사람을 압박하는 기술부터 타이밍까지.
아영은 진심으로 석민이 어디서 심문하는 법을 배웠는지 궁금해졌다.
그녀 역시 포로 심문 기술을 배운 적이 있었지만 석민이 하는 것처럼 배우진 않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물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
오후 1시가 될 무렵 그들은 군용 즉석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무전기를 켰다.
겨우 4시간 정도 잤지만, 다행히도 피로는 어느 정도 풀린 상태였다.
석민이 사전에 예배당 안에 켜 놓은 상태인 무전기를 두고서 수신버튼을 테이프로 눌러 고정시켜 두었다.
덕분에 손쉽게 현철과 이삭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현철의 말했다.
-확실해?
되묻는 이삭의 목소리와 말투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분노에 찬 목소리에 간간이 고통의 신음소리가 섞였다.
-정말입니다.
-저 녀석들 정체가 뭔지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그저 천사와 우리 교단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천사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전혀 모릅니다.
-그래놓고 뭐든지 말하라고 소리친 건가?
이삭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현철을 질책했다.
그는 가래 섞인 기침소리를 내었다.
-왜 나만 이렇게 망가진 거야? 아,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다고!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명을 받고서 1만인의 후보들 중에 뽑힌 선택받은 자들이었는데!
그 후 숨소리와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가식적인 인간이었네, 이삭은.”
석민이 말했다.
그는 낮게 비웃음을 섞인 목소리였지만, 눈은 경멸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점잔 떨더니 본성이 드러나니 형제님, 형제님 하던 양반에게 반말이나 해대고. 게다가 의심 없이 우리를 고용한 건 자기인데, 그건 아무런 말도 안 하네. 우리를 의심하던 것은 현철이란 양반이었는데, 순진한 줄 알았더니 아주 뻔뻔한 양반이군.”
그 말에 아영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현철은 분명 속으로 아주 쌍욕을 하고 있을 거야. 아마 허탈감도 느끼거나 이삭이나 교단에 대한 반감이 생길지도 모르겠지. 게다가 겁도 좀 많은 것 같고…. 그걸 비집고 들어가면 되겠지.”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예전처럼 예의를 갖춘 어조로 이삭이 말했다.
-계속 입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형제님, 우리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배교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배교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고 영원히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교주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망정, 실망을 안겨드리면 안 됩니다. 그분은…. 그분은, 절대로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그 분노가 우리의 가족들에게도 미칠 것입니다.
“아무래도 교주라는 작자는 인정사정없고 연좌제를 좋아하는 것 같네.”
아영이 대답했다.
“광신자들이 다 그렇지요. 천국의 문 교단은 배교자들에게 매우 인정사정없기로 유명합니다.”
석민은 다 먹은 즉석 비빔밥의 플라스틱 수저와 비닐 팩을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열었어?”
“네.”
그들이 있던 건물은 총 지하 5층까지 있었다. 난리통에도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지 않아서 지하가 꽤 깊은 편이었다.
“그러면 예정대로 ‘누가 먼저 불까’게임을 시작하지.”
그 말에 아영은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배운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지만, 이 심문기술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종종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헬리콥터나 비행기에 태운 포로들의 눈을 가린 뒤 한 명을 떨어트려 다른 한 명의 입을 열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하늘을 나는 이동수단이 없을 시엔 높은 건물에서 떨어트리는 방법도 있었다.
물론 지금 그랬다가는 와이번이나 드레이크의 맛있는 저녁식사거리 제공 및 자신들이 있는 장소를 노출할 뿐이었기에 살짝 응용하여 엘리베이터 통로를 사용하기로 했다.
“자, 시간이 되었네.”
기습적으로 문을 열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떠들고 있던 이삭과 현철의 말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봐, 뭘 하려는 거야?”
현철은 자신이 묶여 매달린 십자가를 아영이 끌고 가자 불안함에 덜덜 떠는 목소리를 냈다.
“뭘 하려는 거냐고?!”
“입 다물어!”
이삭이 소리쳤다.
“그런 건 금방 알 수 있으니까 기다려.”
“이봐, 이러지 말자고. 우리 교단은 그저….”
“입 다물어!”
석민은 피식 웃으며 이삭을 끌고 교회를 나섰다. 그 뒤를 현철을 끌며 아영이 뒤따랐다.
현철은 이삭의 윽박지름 때문인지 덜덜 떨면서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석민과 아영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둘을 끌고 와 세워두고는 굳게 닫혀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을 좌우로 열었다.
“이런 세상에!”
“신이시여.”
그들의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자, 그러면 게임을 시작하지.”
석민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입만 열면 된다고.”
석민과 아영은 그들을 엘리베이터 입구 쪽으로 밀었다.
곧 떨어질 것처럼 십자가가 위태위태하게 흔들렸다. 그에 따라 두 사람의 비명도 다시 흘러나왔다.
‘잘못하다간 이 비명소리를 듣고 드레이크들이 오겠어.’
아영은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십자가의 좌우 부분이 엘리베이터 문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떨어지진 않았지만,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덕분에 심연처럼 어두운 통로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