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36화]
이삭은 석민과 아영이 자신들의 기도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신앙에 흥미를 가지고 우리의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혹여 그들이 교단의 신도가 된다면 교단은 매우 큰 전력을 얻을 것이고, 그들은 매우 훌륭한 스승 혹은 교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나이 23살의 풋내기는 그리 생각하며 설교를 이어나갔다.
“날개 3쌍이 달린 천사가 교주께 강림하사 그분을 선지자로 삼으셨습니다. 성스러운 영혼이 그분의 몸에 은거하셨고 그분께 기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방주, 3쌍의 날개 천사, 교주, 선지자.’
석민은 속으로 해당의 단어들을 되뇌었다. 그가 되뇌기는 모습에 이삭은 그가 신앙에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석민은 종교를 믿지 않았지만, 천사라는 것이 신의 사자(使者)라는 것쯤은 알았다.
사자는 전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설교를 지켜보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명은 거짓된 전령을 찾으라 하지 않았나? 그럼 저기서 말하는 천사(전령)은 거짓인가? 그러면 그걸 찾으면 되는 건가?’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이내 그의 머릿속은 저들 전부를 죽이지 말고, 한, 두 명은 살려둬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대상은 이삭과 현철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이 지도자급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들의 예배가 끝이 나고, 이삭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오늘 우리 예배를 보셨는데 혹시 관심이 가십니까?”
“아주 흥미롭더군.”
석민이 답했다. 그는 아영을 보았고, 아영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그렇습니까?”
이삭의 얼굴에 살짝 반색이 감돌았다 사라졌다. 그는 이들이 교단의 교리와 신앙에 관심이 생긴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형제자매님이 된다면….’
“그러시다면, 조만간 시간을 내서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교단은 새 신도를 언제나 환영합니다.”
“그래, 조만간 긴밀한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지.”
그리고 그 시간은 이삭의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날 밤, 지하실 근처에 보초를 서던 2명의 대원에게 아영이 소음기를 장착한 마카로프 권총을 오른손에 쥐고 살짝 뒷짐을 지며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대원들의 질문과 동시에 미약한 소리지만 총성이 살짝 울렸다.
석민은 조심스레 예배당의 문을 열었다. 방음문 덕분에 그들은 총성을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잠에 빠져있었다.
그는 왼손 소매에서 단검을 빼어들었다.
낮에 있던 일들 때문인지, 유독 코 고는 자들이 많았다.
석민은 코 고는 자보다 곤히 자는 자에게 먼저 다가가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급작스럽게 엄청난 압박이 자신의 입과 코에 닿자 자다 놀란 남자의 눈이 부릅떠졌지만, 석민의 칼이 이미 그자의 목에 깊숙이 박힌 뒤였다.
석민의 손목을 비틀던 남자의 손이 풀리고 움찔거리던 몸이 축 늘어지자 석민은 다음 타깃을 향해 갔다. 곤히 자던 자들이 죽고 코 고는 소리도 점차 줄어들었다.
악몽이라도 꾼 것인가? 피 냄새라도 맡았나?
마지막으로 남은 2명 중 1명이 인상을 가득 쓰며 눈을 떴다. 현철이었다.
눈앞에 피 묻은 칼을 든 석민이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어?!”
그는 얼른 자신의 권총집에서 글록 권총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석민의 손이 더 빨랐다.
석민은 단검을 거꾸로 잡아 현철의 머리에 그대로 찍었다.
“억!”
낮은 비명소리와 함께 현철은 그대로 혼절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이삭도 눈을 떴다. 이삭은 눈 뜸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권총집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역시나 석민이 더 빨랐다. 그는 이삭의 머리맡에 있던 권총을 발로 차 버린 후, 다시 발을 들어 올려 이삭의 상체를 눌러 쓰러트렸고, 목을 발로 밟아 제압했다.
그때, 타이밍 맞춰 아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문 닫아.”
“당신, 지금 무슨….”
“긴밀한 시간을 가져봐야지.”
아영이 이삭에게 총을 겨누는 동안 그는 예배당의 단상에 두는 크고 무거운 나무의자를 가지고 와, 죽은 이들에게서 허리띠를 풀어 이삭과 현철을 묶는 데 썼다.
“자, 그러면 시작해볼까?”
이삭의 얼굴이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올랐다.
곧이라도 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으나, 그는 입을 여는 대신 꾹 다문 채 석민의 얼굴만 노려볼 뿐이었다.
석민은 이삭이 당연히 입을 열지 않으리라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보통 이렇게 잡힌 인간들은 욕을 하거나 저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삭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무슨 숭고한 일을 하고 있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그 의지를 실현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이런 인간은 말로 해선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
석민은 아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별로 좋지 못한 거니까 보기 싫으면 나가.”
“아뇨.”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일인데 빠질 수 없죠. 게다가 여긴 방음처리가 잘 되어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자신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엔 긴장이 감돌았다.
석민은 잠시 아영을 쳐다보다가 다시 몸을 돌려 현철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현철은 눈을 뜨지 못했다.
“혹여 자살하지 않을까요?”
아영이 물었다.
“아니, 이놈들 교리상 자살이 금지야.”
“그걸 어떻게 알죠?”
“가만히 있잖아. 죽으려는 놈들은 최소한 혀 깨물거나 어떻게든 죽으려고 발악하는데, 이놈은 안 그러잖아?”
석민은 이삭의 턱을 잡아 난폭하게 올렸다.
“게다가 이 표정 좀 봐. 아주 비장하잖아. 이미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한 거지.”
석민은 그리 말하면서 시선을 내려 이삭과 현철의 손가락을 훑어보았다. 그에 이삭은 자신의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따라 내려가던 석민의 시선이 의자 하단부에 고정되었다.
“순교자가 될지, 아니면 정보를 줄지, 어디 한번 보자고. 그 전에 준비를 할 것이 있어. 아마 근방에 못이랑 망치가 있을 거야. 교회 다용도실이나 비품실에 말이야. 그것을 찾아와줘.”
“왜죠?”
“의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잖아.”
석민이 말했다.
“발광하면 힘들어, 의자가 흔들려서. 이성을 잃은 사람의 힘이란 생각보다 강하거든.”
그렇게 말하며 입 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리는 석민을 본 아영은 순간, 지금껏 자신이 알던 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
좁은 골목길에 있는 당구장의 문이 열리자 김지형이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번이 3번째 허탕이었다.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린 후 남자 하나가 문밖으로 나왔다.
“처리했습니다.”
“좋아, 청소반 불러.”
2시간동안 족쳤지만, 남수현은 아무것도 몰랐다. 이 남자는 PMC회사의 지정사수 역할을 하는 자로 주로 경호 일을 하였지만, 부업으로 해결사 짓을 하기도 했다.
이 자식을 찾는데 2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 그만한 희생에도 전혀 소득이 없으니, 김지형의 기분도 좋을 리 없었다.
이윽고 봉고차가 도착했고, 청소반이 들어갔다.
“사무장님, 차라리 총포상 쪽에 알아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9x39mm는 취급하는 곳이 극소수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김지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총알을 취급하는 총포상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사무장의 보조를 담당하는 여성 사무관이 다가왔다.
“과천 쪽에서 소식 없어? 원성한 쪽은?”
“소개꾼들을 알아보는 중이라는데 연락이 없는 것을 봐서 딱히 찾은 게 없는 듯합니다.”
“이런.”
우려하는 지형의 목소리는 그다지 우려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에게 이 일은 어차피 빨리 처리하든 느리게 처리하든 그만이었다.
그는 이미 박재만에게서 빼먹을 만한 수완과 노하우는 다 배웠다. 물론 박재만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눈치껏 받아먹은 것이었지만 말이다.
박재만이 교주에게 숙청된다면, 교구장 자리는 사무장인 그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찾아도 그만, 안 찾아도 그만이지.’
그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하얀 담배 연기를 훅- 내뱉었다.
***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문이란, 사람을 묶어놓고 신체적인 위협을 제공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행했을 때 도를 지나치게 되면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것 마냥 지어내기 십상이었다. 따라서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고문은 물리적인 고문보다 심리적인 고문이 더 효과가 좋았다. 상대의 마음과 의지를 꺾고 심문자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다.
게다가 이런 광신도들은 오히려 압박하면 압박할수록 악착같이 버티고, 차라리 순교를 택할 이들이었다.
이삭이 묶여있는 지금도 입을 꾹 다문 채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러한 생각을 방증해주고 있었다.
석민은 이들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영과 함께 의자를 바닥에 고정시킨 뒤, 죽은 정탐군들의 무기와 장비, 식량들을 수거하여 다른 곳에 몰아두었다.
그리고는 현철과 이삭의 군화를 벗겨 주변에 깨진 유리나 도자기들을 뿌려두었다.
일의 준비를 대충 마친 석민은 아영을 밖으로 불러 신신당부했다.
“앞으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석민의 당부에 아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리고 저놈들 무기도 찾아두고.”
그들은 기절한 현철이 일어날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예배당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대략 2시간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이삭은 그동안 오만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현철에게서 신음소리가 들리고 눈을 뜨려고 했다. 그 순간, 석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현철의 광대뼈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현철이 비명을 질렀고, 놀란 이삭도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치고 말았다.
“무슨 짓이야!?”
석민은 대답 대신 현철을 계속 팼다.
그는 최대한 힘을 조절하여 현철의 뼈나 장기가 손상가지 않도록 했다.
“심문을 할 거면 질문이라도 하던가! 뭐야? 원하는 게 뭐야?!”
자신의 동지가 계속 맞자 악에 받친 이삭이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석민은 현철을 무려 30분 동안 쉬지 않고 팼다.
스탯 덕분에 타격의 힘은 일정했고, 석민이 때린 곳마다 점점 짙은 피멍이 멍울졌다. 결국 피부에서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부어오를 때서야 석민은 구타를 멈추었다.
현철은 기절도 하지 못한 채 고통에 몸부림쳤다.
석민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맞은 사람만큼 퉁퉁 부어오른 주먹이 보였다. 그러나 스탯 때문에 얼음찜질할 필요도 없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부기가 빠지고 있었다.
석민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러면 다음.”
그리 말한 직후 이제 이삭을 패기 시작했다.
이삭을 때리는 것은 현철과 다르게 자비가 없었다.
턱을 노린 첫 방에 바로 이삭은 혼절해버렸다. 입에서는 피와 이빨이 전자레인지에 속에서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의 혼절은 석민의 두 번째 주먹에 의해 바로 깨어났다. 석민은 그 순간 이삭의 양 가슴에 주먹을 연타로 뻗었다. 우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렸다.
현철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이삭과 석민을 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석민이 힘 조절해서 갈비뼈가 폐를 찌르진 않았다.
그렇게 석민의 주먹이 내려갔다. 구타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곧 다른 것이 시작되었다.
석민은 이삭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잡아서 그대로 부러트렸다. 이삭의 입에선 아까보다 더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곧 이삭의 두 눈이 올라가는가 싶더니 흰자위를 보이며 다시 기절해버렸다.
석민은 잡고 있던 이삭의 손을 털어내고는 그의 소총을 집어 들었다. 현철의 몸이 움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