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35화]
“숨어, 빨리!”
“뭐야? 뭐야?”
석민은 다급함에 제대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바로 옆에 있던 건물 안으로 몸을 던지듯이 들어갔고 아영 역시 그를 따라 달렸다.
그러나 정탐군은 그러지 못했다.
일부 눈치 빠른 자들이 석민의 말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엄폐물 쪽으로 달렸지만, 거의 대부분은 멀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일부는 석민의 호들갑에 오히려 비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위험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총 3마리의 와이번이었다.
크기가 마치 경비행기처럼 컸다. 그것들은 그들의 머리 위를 빙빙 돌더니, 급강하하여 어느 불쌍한 청년의 머리를 물고 올라갔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길게 울렸다. 희생자가 가지고 있던 무기를 난사했지만 와이번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으아아!”
비명에 가까운 함성과 함께 총성이 울렸다. 충격 받은 정탐군들이 하늘에 있는 와이번들에게 무작정 총을 쏘았다. 석민과 아영은 이미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창문을 통해 그것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석민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놈들.”
-사격중지! 중지! 모두 안으로 들어와! 빨리!
-어, 어디로?
-그냥 아무 데나 빨리!
무전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패닉에 빠진 정탐군들은 쉽게 평정심을 찾지 못했다. 요란하게 총을 쏜 덕분인지 와이번들은 몇 바퀴 더 돌다 물러났다.
하지만, 더 큰 위험은 바로 다가왔다. 비명과 총성을 들은 드레이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세상에.”
아영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예전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온몸이 검은 비늘로 뒤덮인 황소만 한 크기의 거대한 괴수들은 바로 둥지의 주인인 브레스 드레이크들이었다. 그들은 석민의 예상보다도 더 많이 몰려들었다.
-도망쳐!
-아니야, 자리를 지켜! 자리를 갖춰라. 쏴라! 쏴!
명령이 통일되지 않았고 정탐군들은 제멋대로 행동했다.
역시 훈련만 좀 받은 풋내기들이었다.
브레스 드레이크들은 먹이를 산채로 구워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들은 입을 벌린 채 정탐군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와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
RPG를 든 대원이 드레이크의 아가리에 쏜 것이다. 신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탄구가 아가리에 들어가기 무섭게 드레이크가 폭발했다.
총성과 예광탄이 어지럽게 드레이크 무리들에 작렬했지만, 드레이크의 화염 또한 맹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결국 먼저 굴복한 것은 당연히 인간이었다.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제아무리 좋은 방탄복을 입고 있다고 해도, 설령 엄청난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저 많은 드레이크 무리와 화염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뒤로 물러나! 뒤로!
-제길! 제길! 으윽!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몸에 불이 붙은 병사가 고통 속에 발광하다가 죽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온몸에 불이 붙은 대원은 1초 만에 비명도 없이 쓰러졌다.
“으아아!”
전의를 상실한 대원 하나가 무기를 버리고 등을 돌린 채 도망쳤다.
드레이크 한 마리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고, 그자의 허리를 통째로 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깊게 물리지 않아 아직 숨이 붙어있던 그자는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 순간, 드레이크의 머리가 하늘을 향하더니 입의 구멍으로 맹렬한 화염이 뿜어졌다.
대원은 주둥이에 물린 채 몸부림치며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다가 이내 죽었다.
드레이크는 검게 타버린 대원의 시신을 단 두 번 만에 삼켜버렸다.
상황은 너무 쉽게 끝이 났고, 저들이 전부 불타 죽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드레이크들은 까맣게 타버린 나머지 시신들을 입에 물고 자신들의 둥지로 어슬렁거리며 돌아갔다.
“몸을 낮추고 있어. 잘 숨어있으라고.”
석민이 무전으로 말했다.
무전이 전달되기가 무섭게 총성과 괴성을 듣고 다른 곳에서 온 드레이크 무리와 와이번이 부딪혀 괴수들끼리 싸움이 발발했다. 괴수들의 싸움이 끝나는데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
그들이 각자 숨은 곳에서 나와 합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4시간이 지나서였다. 이삭은 남은 사람의 수를 세어 보았다.
12명, 12명이 남았다. 40명이 출발했는데 남은 자가 겨우 12명이었다. 죽은 자들이 전부 경기관총이나 유탄발사수, 대전차미사일 같은 무거운 무기를 가진 자들이었다. 때문에 중화기를 가진 이가 하나도 없었다.
‘내 RPK-74가 가장 강한 중화기라니.’
석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45mm에 철갑탄도 아닌 것으로는 괴수들에게 큰 효과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였다.
“어떻게 할래? 군 작전상 전멸이나 다름이 없는데. 돌아가는 것이? 우면산 등산로를 따라가면 될 듯한데.”
“아뇨, 임무를 포기할 생각 없어요.”
이삭이 말했다.
그는 전보다 매우 공손한 어조로 말했고 현철도 시선을 내리깔고는 석민의 말을 경청했다.
석민은 옛 서울 지도에다가 브레스 드레이크 무리를 표시해 두었고, 그것들의 특성을 적어두었다.
“당신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젠 석민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을 듯했다.
“뭐, 알면 되었어.”
그러거나 말거나 석민은 매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또 가겠다고?”
“예, 정탐은 포기할 수 없어요.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중요하니까요.”
“납득할 수 없군.”
석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속으로는 웃었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되는 중이었다.
“오늘은 일단 은거지를 하나 만들고, 정비 후에 쉽시다.”
“그렇게 하죠. 은거지는 어디로 만들어야 좋습니까?”
그날 그들이 은거지로 삼은 곳은 서초 3동 사거리 부근 건물 지하였다.
대략 120평쯤 되는 지하상가였으며, 석민과 아영은 카페 쪽에, 교단의 정탐군들은 버려진 교회 건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은 직후 석민과 아영은 푹신한 카페 의자에 마주 앉았다. 의자에 쌓인 뽀얀 먼지들을 대충 털어내고 앉으니 나름 안락했다.
“대충 된 것 같군.”
석민은 교회 쪽을 본 직후 입을 열었다.
아영도 그쪽을 잠시 보다가 목소리를 작게 해서 입을 열었다.
“오늘 처리할 건가요?”
교회는 보통 예배 말고도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거나 성가대 합창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장소인지라 방음에 신경 써서 짓는 곳이었다.
아마 문만 제대로 닫는다면 총소리나 비명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 권총 소음기 있지?”
그 말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불침번을 처리한 직후 안에 있는 것들은 내가 처리하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예배당에 방음문이 있건만, 어리석게도 그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
천국의 문 교단이니 뭐 찬송가 비스무리 한 것을 부르는 거겠지 하고 생각을 하며 석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출구는 딱 하나뿐이니까. 만일을 대비해서 부비트랩을 설치하지. 그리고 이번에 돌아가면 정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반드시 보고해. 애초에 무기를 모으는 시점서부터 제재를 가하고 그랬어야지. 아무리 나라가 예전 같지 않다지만, 이건 아니야.”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노랫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석민은 저들이 뭐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 교회 근처로 다가갔다.
“교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역경과 고난이 있다 해도, 불굴의 투지를 잊지 말고….”
교회 예배당에서 무릎 꿇고 앉은 정탐군들 앞에 서서 이삭이 설교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모습은 전도사나 목사의 모습보단 대원들 앞에서 정훈 교육하는 정훈장교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오늘 우리는 많은 형제님들을 잃었습니다. 마귀들은 그렇게 강합니다.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며 우리의 육신을 태우고 영혼을 영원한 고통의 나락으로 빠트립니다. 허나, 그럴수록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교주님께 강림하셨던 그분의 전령, 즉 천사께서 강림하사 말씀하셨습니다.”
“음?”
석민은 자신이 뭔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문을 열어라, 그리고 방주를 맞이하라.’ 저 서울상공에 있는 문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하늘로 향하는 문, 천국으로 가는 문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그분께서 전령을 보내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현세에….”
전령? 저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싶었더니 아영이 어느새 가까이 서 있었다.
“방금 들었습니까?”
그녀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우리의 사명, 실마리를 찾은 거 같네.”
그는 담배를 태우고 싶어졌다.
***
품속에 총을 숨긴 이들을 대동하고 김지형은 검은색 세단의 뒷좌석을 열어 탑승했다. 김지형을 따라오던 남자들은 뒤쪽의 승합차에 탔고, 곧 차들은 출발했다.
“이병욱이, 찾았나?”
뒷좌석에 앉아있던 박재만이 물었지만, 김지형은 고개를 저었다. 이병욱은 원성한의 리스트에 있는 사람 중 하나로 석민처럼 vss을 사용하는 킬러였다.
“찾지 못했습니다.”
“실망스럽군.”
박재만의 말에 김지형은 속으로 발끈했다.
‘부패한 놈 주제에.’
“이자들은 보통 일 특성상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기 때문에 이름들이 대부분 가명이었고, 주소도 가짜입니다.”
박재만은 혀를 낮게 찼다.
“오늘 아침에 정탐군들이 서울로 떠나서 교주께서 단식 기도드리며 있기에 하나라도 근심거리를 덜어드리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군.”
그는 자신의 무능을 이것으로 덮고자 하였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듯했다.
“그래도 얼굴 자료는 확보했으니 우리 교구를 비롯해서 다른 교구에도 그놈들 사진, 수배 걸어. 단, 비밀리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서 인원 4명 정도 빼내서 경기도 전체 총포상을 뒤져 9x39mm 탄을 취급하는 가게들도 좀 수소문해봐.”
“경기도 전체를 말입니까?”
“그래, 그 탄환 흔한 게 아니라고 했으니까. 분명 취급하는 총포상도 많지 않을 거야. 그것들의 고객명단도 뒤져보면 몇 놈 더 나오겠지.”
평소에 좀 이렇게 성실하면 얼마나 좋을까. 김지형은 속으로 혀를 찼다.
박재만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원래 그랬듯이 구름이 잔뜩 껴 있어서 우중충했다.
자신은 교구장임에도 신앙심이 깊지 않았고 예전부터 목사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그저 부와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기적을 행하는 교주의 모습을 보거나 세기말에 가까운 괴수들의 출현에도 신의 존재를 의심했었다. 하지만 이젠 신을 믿었다.
다만, 그게 정말 천국의 문이고 신의 계시일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꺼낸다면 그날로 파문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테니까.
“정탐군들과 주기적으로 통신하기로 되어있었지?”
“그렇습니다. 매일 저녁 9시, 기도시간 이후입니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10시, 이미 보고가 끝난 시간이었다.
‘돈은 확실히 발라서 무장시켜줬으니 뭔가 성과가 있겠지.’
그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고는 넘겨버렸다.
‘그리고 새로 무기를 공급할 업자도 찾아봐야 할 텐데.’
박재만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세단 바닥을 보았다.
원성한은 생각보다 교단에서 필요로 하는 총기와 무기들을 전부 공급할 수 없었다. 거기다 가격도 예상보다 비쌌다.
무엇보다도 탄창이나, 탄약류의 수급이 부족해서 새로 공급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무기와 탄약을 너무 많이 잃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알아봐야겠군, 범인추적은 김지형이에게 전임하고 나는 무기업자나 알아봐야겠어.’
박재만은 그리 생각하며 휴대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