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34화]
“식량과 그 외 생필품입니다. 5일치이고 급여는 우리가 복귀하면 드리죠.”
“우리가 당신들을 안내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석민이 정중한 어투로 물었다. 현재 자신이 맡은 역할이 어디까지나 길잡이였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천국의 문 교단이기에 어딜 갈지 뻔했지만, 그래도 확인해야 했기에 질문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의 임무는 이곳에 있는 미물들과 싸우는 법과, 드래곤하트의 수급, 그리고 서울 왕십리로 가는 길을 개척하고 정탐하는 것입니다.”
왕십리라고? 석민은 정탐군들을 둘러보았다.
헌터들은 웬만해서는 강북으로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왕십리로 가달라는 건데, 웬만하면 안 갔으면 합니다. 헌터들은 강북에 가지 않아요. 그곳에는 망할 괴수들이 갑절로 더 있고 감염된 인간들도 아직 있습니다.”
그 말에 이삭이 대답했다.
“그건 우리도 충분히 고려한 사항입니다.”
“가기엔 당신들 숫자도 너무 많고요.”
석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자들의 숫자는 무려 40명이었다. 헌터들은 아무리 많아도 10명을 넘지 않았다. 이 많은 인원이 괴수들의 눈을 피해서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또한 고려한 것입니다.”
확실히 소병기말고도 기관총, 유탄발사기, RPG-7 같은 휴대용대전차병기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겨우 이 몇 번의 대화만으로 이들이 얼마나 대책이 없고 경험이 부족한지 알 수 있었다.
발라크라바를 썼지만, 볼살들이 통통하고 목소리들이 어렸다.
그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이봐요, 당신들이 얼마나 훈련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운반꾼 생활 말고도 1차, 2차 서울수복작전 때 2년 동안 빌어먹을 괴수들과 싸웠습니다. 빌어먹을 드레이크와 와이번이 우글거리는 이곳에서 이렇게 소풍 나온 유치원생마냥 우르르 몰려다니면 늑대 떼에게 포위된 양떼가 될 뿐이란 말입니다. 사람을 나누던가, 아니면 정탐이고 자시고 그만두는 게 나을 것입니다.”
‘평소보다 말이 많네.’
아영은 두 사람 사이를 지켜보았다. 이삭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 중이었지만, 다른 이들의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당신은 그냥 안내만 하면 돼.”
참지 못한 지현철이 소리쳤다.
“나대지 말고 돈 받고 해달라는 대로 하란 말이야!”
석민의 목소리는 반대로 낮아졌다.
“언성 낮춰라. 새끼야 뒤지고 싶지 않으면.”
“뭐라고? 뭐, 이딴 새끼가….”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아영은 석민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금 혼란스런 눈초리로 두 사람을 보았다. 정탐군들은 여차하면 쏘려는 기세였다.
아무리 그들이 일반인보다 강하다고 해도 수적으로 엄청나게 밀리는 지금은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좋아, 뭔 일 생기면 다 당신들 책임이야. 일단 출발은 하지. 우리가 어차피 앞장설 것이니까. 거리는 최소 150미터로 두고 최대한 산개해서 따라와. 무전기도 한 개 주시고.”
석민의 말이 다시 반말에 가까워졌지만, 이미 서로 맘이 상했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뭐, 그렇게 합시다.”
이삭은 자신의 무전기를 넘겼고 석민은 자신의 군장에 그것을 끼웠다.
“채널은 41번으로 맞춰.”
그 말과 함께 석민은 이어폰을 끼운 후 헬멧을 썼고 RPK-74를 들었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가면 우면산 터널이 있는데 그 길을 통해서 반포대로로 쭉 갈까 하는데.”
“알아서 하쇼.”
대답하는 목소리가 퉁명스러웠기에 아영은 잠시 두 쪽의 사이를 불안한 눈길로 보다가 먼저 성큼 가는 석민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하필 만난 게 천국의 문 교단이라니.”
석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것들 능력이 저 정도였어?”
“무기를 모으고 있단 것은 알았지만, 벌써 저렇게 사병을 양성하고 있는 줄 몰랐어요.”
“하, 정부가 뭐 그렇지.”
석민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이에 발끈한 아영은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석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앞장서.”
그에 입을 다시 꾹 다문 아영이 석민보다 조금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석민과 아영은 그 사이 약실에 총탄을 삽탄하고 안전장치만 걸어서 준비해 놓았다.
한참 앞서 걷던 아영은 석민이 여전히 저기압인 것 같자,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사실 우리야 좋지.”
짜증나 보이던 아까와 달리 대답하는 그의 말투가 살짝 들떠 있었기에 아영은 놀라 앞서 걷던 것도 잠시 멈추고 석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석민은 다시 움직이라는 듯 아영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바이저를 올렸다. 그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잘 되었어. 저 새끼들,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날 텐데.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아가지고 이런 도발에 너머 가다니. 덕분에 책임 같은 거 질 필요가 없어졌어.”
“아.”
아영은 그제야 석민이 필요이상으로 말을 한 이유를 알았다.
“저 녀석들 1시간도 안 돼서 반수가 잡아먹힐 거야. 그러고 나면 나중에 우리에게 기회가 생기겠지. 생각보다 일이 오래 걸리지 않겠어.”
***
그들은 처음엔 아무런 문제없이 전진하는 듯했다.
이 근방 폐허들은 매우 조용했다. 망할 괴수의 울음소리도 없었고, 헌터들도 없었다. 그랬기에 조금 긴장한 채 걷던 정탐군들도 어느 정도 풀린 얼굴들이 되었다. 일부는 조롱에 가까운 얼굴로 히죽거리며 석민의 뒷모습을 보고 낄낄대기도 했다.
그렇게 대략 30분쯤이 지난 후, 그들은 우면산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전기가 나갔기에 우면산 터널은 매우 어두웠다. 길 곳곳에는 버려진 차들로 가득해 여러 사람이 지나기 힘들어 보였다.
“생각보다 어둡네.”
석민이 중얼거렸다.
“혹시 여기 드론으로 정찰한 적 있어?”
그 말에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지만 이 터널 남쪽에서 괴수들을 발견한 적이 없어요.”
-무슨 일이지? 빨리 안가나?
현철의 목소리였다. 무전을 무시하며 석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안을 보았다. 스탯이 오른 덕분에 밤눈도 좋은 그의 눈에 폐차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밤눈이 좋아봤자 야시경을 쓴 것처럼 환하게 보일 리 만무했다.
-뭔가 있습니까?
이번엔 이삭이었지만, 석민은 여전히 무전을 무시했다.
“시발, 맨눈으로 거길 노려본다고 그게 보이나?”
“형제님.”
지현철의 중얼거림을 듣고 이삭이 주의를 주었지만, 다른 정탐군들도 불신으로 가득한 눈초리로 석민과 아영을 노려보았다.
“모두 저분들만 보지 말고 훈련받는 대로 은, 엄폐하고 사주경계, 대공경계를 똑바로 하세요.”
정탐군들이 정리되는 사이 석민의 관찰은 계속되었다.
“안에 있을까요?”
아영이 물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불확실한 것이 싫었지만, 현재로선 그의 눈에 괴수가 보이지 않았다. 딱히 함정 같은 것 또한 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판타지 영화에선 미심쩍을 때는 자신의 코를 믿으라고 했지.’
석민은 코를 킁킁거렸다. 시각만큼 후각은 생존에 직결되는 중요한 감각 기관이었다.
그리고 터널에선 괴수들 특유의 역겨운 몸 냄새, 그리고 시체처럼 쾨쾨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터널에 괴수가 있을 확률이 매우 낮다는 말이었다.
“일단 가보지.”
그는 무전의 수신버튼을 눌렀다.
“없어,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헬멧에 달린 야시경을 내려서 킨 뒤, 총에 단 레이저 표적지시기에도 불을 켰다.
석민과 아영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각자 좌우를 살피며 차량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터널이 워낙 깊은 곳이라 불안한 행군은 계속되었다. 이윽고 석민은 몸을 숙였다.
“전방에.”
석민의 말에 아영도 몸을 엄폐하고 무전을 들은 정탐군들도 제자리에서 멈추었다.
“뭔가 보여.”
-뭔가 보인다고요?
이삭이 물었다. 그는 ‘맨눈으로 어떻게?’ 라고 덧붙이려고 했지만, 석민이 먼저 대답했다.
“어.”
석민의 눈에 보이는 것은 둥글고 하얀 덩어리였다. 폐차들에게 가려져 있어 그것이 뭔지는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거 느낌이 불안한데.’
그는 숨을 들이마셨다. 뭔가 탄 냄새와 함께 공기가 따뜻했다. 어떻게 따뜻한 거지? 그는 천천히 앞으로 갔다. 의문이 풀리는 것은 한순간이었고, 비탄에 젖은 외마디가 나왔다.
“이런 젠장.”
“뭐예요? 뭐죠?”
아영이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길을 잘못 잡았어. 여긴 드레이크 둥지야.”
그것들은 알이었다. 타조알보다 조금 더 큰 알들이 십 수 개나 몰려있었고 뜨거운 열기가 이글거리는 것이 방금 전까지 달궈진 것 같았다.
‘최소 50마리, 최대 100마리 정도 군락이군.’
따뜻함을 넘어서 땀이 흐를 정도로 열기가 느껴졌다. 석민은 벽면에 밴 댔다. 뜨거움이 훅 올라왔다. 그는 얼른 손을 떼고 손을 쳐다보았다. 반장갑을 낀 손가락에 탄매가 심하게 묻어있었다.
“이래서 역한 냄새가 안 났던 거군, 브레스 드레이크야.”
드레이크 중에 가장 위험한 종으로 입에서 화염방사기 같은 불을 뿜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자신들의 알을 품지 않고 불을 뿜어내 따뜻함을 유지했다.
탄매 말고도 터널의 콘크리트 외벽이 열기에 녹은 흔적까지 보였다. 이 정도 열기면 냄새 같은 것도 싹 타버릴 것이니 냄새가 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무리가 밖으로 나갔어. 놈들이 돌아오기 전에 얼른 나가지. 아무것도 건들지 마.”
그는 잔뜩 주의를 준 후 다시 앞으로 나갔다. 아영은 신기한 눈으로 알들을 힐끗거리며 지나갔고, 그것은 정탐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단 말인가? 정말로 운반꾼이 맞나?
‘아니 모르지, 운반꾼이 아닐지도. 그래, 단순한 운반꾼이 아니라, 저건 프로다.’
저 정도의 실력자가 단순하게 운반꾼을 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여자가 운반꾼을 할 리가 없다.
이삭은 아영도 지켜보았다. 이제 와서 보니 저 여자의 움직임도 거의 프로였다.
그는 의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그들의 뒷모습을 차근차근 살펴보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지금 여기서 쏘아야 하나? 아니다. 은밀하게 이동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여기서 쏠 순 없다.
그는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떼고 잠시 머리를 식혔다.
‘일단 지금은 의심하지 말자.’
그들이 이 둘을 찾은 곳은 인력소개소. 의도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고, 입구 또한 그들이 비밀리에 건설한 땅굴이니 저들이 함정을 파거나 다른 음모를 꾸밀 여건이 되지 못했다.
‘애초에 함정을 판다면 우리에게 아부하듯 하지 않았을까?’
그는 현철과 석민이 언성을 높인 것을 떠올리고는, 이내 마음을 고쳐 잡았다.
***
한편 의심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던 석민은 평소와 달리 바짝 긴장한 얼굴로 터널을 지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드레이크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다행이군.”
석민은 뒤돌아서 정탐군이 터널에서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조금 지친 듯했다. 상당히 많은 짐을 가지고 바짝 긴장한 채 드레이크 둥지를 지났으니, 근육의 긴장이 풀리면서, 늘어지는 듯했다. 그는 수신버튼을 눌렀다.
“좀 쉬었다 갈까?”
-아니오. 바로 가죠.
“은거지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는 고개를 돌려 폐허가 된 예술의 전당 건물을 보았다.
-그냥 갑시다.
현철이 다시 끼어들었다. 석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그들이 터널을 벗어나, 대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기 시작할 때였다.
바람소리가 났다. 그것은 거대한 날개 바람소리로 석민이 자주 들어본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