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32화 (32/226)

[게이트 오브 서울 32화]

그들이 있는 곳은 일종의 응접실로 노인정 지하실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다. 일단은 응접실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 말고도 경호로 경비 한 명이 원성한 뒤에 있었고, 김지형도 그 뒤에 서 있었다.

“헌터들도 가끔 부수입으로 해결사 짓을 하긴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아. 헌터들이 뭘 쓰는지도 말이지.”

원성한은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듀퐁 라이터의 뚜껑을 열었다.

땡~! 하면서 라이터 특유의 금속음이 울렸고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리는 장터를 열어 줄 뿐이지 소개꾼이 아니야. 성남에서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겨우 그것 때문이었나? 기가 막히는군.”

“거짓말 마.”

박재만은 역시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윽고 그의 손에서 나온 라이터는 순금으로 만든 지포라이터였다.

그것을 본 원성한의 두 눈이 가늘어졌고 박재만 또한 은근슬쩍 원성한의 담배를 살짝 살펴보았다.

중국산이지만, 고급 궐련이었다.

박재만이 가진 것은 국산 고급 궐련이었다.

‘그러면 가격이 얼마짜리지?’

두 사람이 잠깐 고민에 빠졌다.

고작 담배랑 라이터 가지고 기싸움이라니….

그것을 지켜보는 김지형의 인상은 찌그러졌다.

흡연량이 늘어나는 형국이긴 하지만, 여전히 담배는 혐오스러운 기호품이었고 중2병 걸린 청소년마냥 흡연가지고 멋있는 척하는 것은 그들이 찐따로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기 싸움을 벌이다가 이내 담배가격이 서로 동등하단 것을 알게 된 후 박재만이 입을 먼저 열었다.

“네 외동아들 놈이 여기서 칼빵 맞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러진 후 헌터들과 고객들 정보 몰래 모으고 있는 거 다 알아.”

꽤나 자극적인 도발이었지만, 원성한의 얼굴만 봐서는 전혀 반응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박재만은 그가 상당히 분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속으로 웃었다.

아무리 겉모습을 잘 감췄다 해도, 담배에 불을 붙여놓고도 피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분노했으니까.

부모란 다 그런 거니까.

그가 이성을 잃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죽일지 살릴지 저울질하기 전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보수는 확실하게 주지, 비밀도 지킬 테니까. 물론 또 다른 이권도 주지. 우리가 무기를 좀 잃었거든? 어떤 망할 자식 때문에 말이야. 니 조카를 바지사장으로 둔 무기상사(商社)에게 무기와 탄약을 공급받도록 하지. 어느 정도 공급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월 30억 정도 거래야.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그 말에 원성한은 잠시 박재만을 노려보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현명하고 원성한은 냉정하며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먼저 무기 계약부터 하면 생각해 보도록 하지.”

박재만은 휘파람을 불며 손뼉을 쳤다. 거래는 성공했다.

“자, 그러면 실무적인 일은 부하들에게 맡기지. 이 친구를 데리고 가면 될 거야.”

박재만의 손짓에 김지형은 경호하던 경비의 안내를 받고 사라졌다.

이윽고 둘만 남게 되자, 원성한은 응접실에 있는 찬장에서 소주와 함께 육포와 땅콩, 마른오징어를 꺼냈다.

“무기거래 쪽만 아니었어도 여기서 살아 못 나갔을 거다. 싸가지 없는 새끼.”

역시 죽은 자식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역린을 건드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여기만큼 정보가 모이는 데가 없으니까.”

두 사람은 서로 잔을 부딪쳤다. 술 몇 잔이 돌고 안주가 조금씩 줄어들 무렵 원성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9x39mm 러시아제 탄환이면 거의 쓰는 인간은 없을 거야. 경기도에서, 아니 대한민국에서 겨우 10명쯤 될 거다. 그런데 그놈이 천국의 문 교단을 공격했나? 성남에서 있었던 일이 그놈 때문이었나 보군.”

“그렇지….”

박재만은 씁쓸한 표정으로 소주를 들이켰다. 그는 교주의 일갈이 생각났고 저도 모르게 경기를 일으켰다.

“계약서가 완성되는 대로 자료를 한 번 찾아보도록 하지. 그러고 보니 너희 교단에서 헌터 2명을 고용하려고 한다고 들었는데 어때, 소개시켜줄까?”

오늘 온 건데 어떻게 안 거지? 박재만은 인상을 썼지만, 답하진 않았다. 분명 그의 사람일 게 분명하니까. 김지형이 완성된 계약서를 가지고 오는 덴 1시간이 넘게 걸렸다.

***

“헌터팀에 들어간다고요?”

아영의 물음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과거엔 지하 주차장, 지금은 우정파크빌의 블랙마켓이 된 곳 입구에 서 있는 중이었다.

석민이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자, 아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정확히는 운반꾼 같은 애들, 왜 그래? 그런 표정 짓지 마.”

“헌터팀에 들어간다고 하진 않았잖아요.”

“정보를 모으려면 그게 최선인 거 몰라?”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불법으로 저지른 놈들이 다른 뒷길을 만들었다면, 그걸 알아내고 없애는 것도 우리 일 아니겠어?”

이윽고 문을 연 석민은 먼저 안으로 성큼 들어갔고, 아영도 곧 뒤따라 들어갔다.

주차장을 지탱하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칸막이를 쳐서 매장을 만들고, 차들이 지나다니던 교통로는 고객들이 다니는 길이 되어 지하상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매장은 총포상이었다. 진열대에는 국가에서 금지하는 무기들, 기관총이나 대구경 저격총이나 유탄발사기, 심지어 대전차병기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석민은 그저 그것들을 흘려 넘기며 무심히 지나갔으나 아영은 연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유탄발사기나 대전차병기가 이렇게 버젓이 대한민국에서 판매되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구한 무기입니다. 미군과 한국군이 쓰던 정품입니다.”

무기를 판매하는 아줌마가 매우 빠르고 큰 목소리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아영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저 호객행위로 쓸 단어가 너무나도 잘못되었어!’

가판 위에 널려있는 무기들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제2차 서울수복작전은 대실패로 끝났다. 그 때문에 시신이나 무기들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었다. 심지어 전멸된 부대도 있었고 보급소를 통째로 버린 적도 있으니, 서울에 얼마나 많은 무기들이 버려져 있을지 가늠하기도 힘들 것이다.

무기의 출처가 바로 그곳인 것이다.

그녀는 주변 상점들을 구경하면서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졌다.

앞장서서 걷던 석민은 보원직업소개소라고 적힌 현수막이 간판을 대신한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뒤늦게 본 아영 역시 빠르게 뒤를 따랐다.

안엔 탁자에 컴퓨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의자에 노파 혼자 앉아 있었다.

석민은 노파에게 다가갔다.

“소개 좀 받고 싶은데요.”

“여기가 뭐 어디인지 알고 말하는 거겠지?”

노파가 타자기를 두드리며 물었다.

“몰랐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지.”

나이가 많다고는 하나 건방진 노파에게 존경을 담아 말해줄 마음 따윈 석민에게 없었다.

노파는 자신의 돋보기안경을 살짝 내려 석민과 아영을 잠시 노려보다가 다시 사무적인 표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다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전과 다르게 조금 부드러워진 어조로 질문했다.

“2명? 2인조라고 하면 되나?”

“뭐,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네요. 시간은 상관없어요.”

석민은 마치 자주 이 일을 해본 것처럼 자연스레 대답했다.

“연락처를 남길 거야, 아니면 대기실?”

“대기실로 가죠.”

“무장은 뭐야?”

“RPK-74 경기관총.”

석민이 아영을 바라보자, 아영이 바로 말했다.

“저는 AKS-74U요.”

원하는 것을 다 적었는지 노파는 목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석민과 아영은 그에 따라 노파 뒤쪽에 위치한 천막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여러 명의 사람들이 교회에서나 쓸 법한 기다란 의자의 자리를 먼저 선점하고 있었다.

나이 좀 있어 보이는 사내가 아영을 보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다들 빛을 못 보고 살아서인지 얼굴들이 백면서생인 반면에, 경기도 외부에서 살다 온 아영의 얼굴은 빛 좋은 갈색으로 그을려 있었기에 시선을 끌었다.

“아가씨,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저 뼈다귀가 남친이야? 맥아리도 없어 보이는데?”

그들은 자기들끼리 저속한 농담을 하며, 킬킬거렸다.

아영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으나, 석민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볼 뿐이었다.

그들은 비어있는 의자의 끄트머리에 대충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그들이 앉았는데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음담패설을 이었다.

그들 전부 더러운 군복을 아무렇게나 입고 있었고, 군화나 혹은 안전화, 등산화를 신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흙먼지가 가득 묻어 있었다.

다행히도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밖이 조금 어수선하다 싶더니 곧 노파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서울 강남, 탄약과 식량지원, 일당 20, 지원자 5명.”

석민과 아영을 포함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고용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안에 들어왔고 그는 5명을 대충 선택한 후 그들을 데리고 나갔다.

석민은 콧바람을 길게 내쉬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아영은 불안한 눈치였지만, 석민은 어차피 오래 기다릴 거라면 편하게 기다리자 싶어 마음 놓고 등을 뒤로 기대앉았다.

그들은 선택되지 못했다. 2인조인데다가 여자인 아영이 끼어 있으니 고용인들이 영 못 미더워 했다.

40킬로그램이 넘는 짐을 지고, 개인무장까지 챙겨야 하는 고된 중노동을 해야 하는데, 여성이 하겠다고 나서니 다들 여자인 아영을 꺼리는 것이었다.

거기다 보수가 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거라도 해서라도 벌고 싶은 사람은 흔하거든. 게다가 소득세로 뜯길 염려도 없으니까. 그리고 다른 데서 일반인들이 하는 일보다 일당이 더 많고. 그렇지만, 소개비로 일당의 10%가 뜯기지.”

“그렇군요.”

“관악구, 탄약공급, 일당 25, 지원자 8명.”

또 한 명이 들어와 입을 열었고 모든 사람이 일어났지만, 고용인은 석민과 아영을 빼고 나머지를 데리고 갔다. 결국 남은 것은 그들 둘뿐이었다.

그제야 아영도 자신 때문에 고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챘다. 그녀가 더욱 눈치를 보았지만, 석민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

“……생각보다 예산이 짭니다. 아니, 말도 안 돼요. 일반 노무자를 고용하는 것도 아니고, 헌터 두 명을 고용하는데 하루 예산이 겨우 50만 원이라니요?”

정탐군, 제2차 대성전에서 뽑힌 40명의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정탐군의 총무 지현철은 투덜거리면서 블랙마켓을 걸었다.

“교구장님께 따질 수 없잖아.”

이삭이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듯이 말했다.

그는 정탐군의 리더로 총무와 함께 길잡이가 되어 줄 헌터 2명을 고용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헌터가 아니라 운반꾼 따위나 고용할 돈이라고요.”

이삭은 한숨을 쉬었다. 지현철 말대로 이 정도의 돈으론 헌터를 뽑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무언가 부정의 냄새가 났지만, 그는 독실한 신자였다. 박재만을 향한 의심을 애써 거두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운반꾼들 중에 가장 경력 있어 보이는 자들을 뽑으면 되겠지. 덤으로 우리 짐도 들게 하고 말이야. 솔직히 불신자들에게 너무 비싼 돈을 쓸 순 없지.”

너무나도 낙관스럽게 말하는 이삭의 의견과 다르게 그 정도 돈으론 불신자 운반꾼도 구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괜찮은 사람들은 이미 고용되었거나, 아니면 길잡이가 되기에 경력이 미흡했다.

운반꾼들의 수명은 그 일의 위험함 때문에 매우 짧았기 때문이었다.

“이봐, 운반꾼의 수명이 얼마인지 알아? 최대 4개월이야, 4개월. 무거운 짐을 들고 빌어먹을 폐허를 왔다 갔다 하며 기진맥진하다가, 재수 없게 드레이크에게 잡아먹히고 와이번에 낚여서 죽지. 짐을 두고 도망간다면? 그럼 잃어버린 짐에 대한 보상금을 내야 하거나 일당을 받지 못하는 건 양반이고 자칫 잘못하면 아내와 자식들이 팔러 가거나 총 맞아 죽는다고. 쓸데없이 돈 아끼려는 것 같은데 길잡이를 고용하려면 제대로 된 헌터들을 고용해.”

그들은 오히려 오지랖 넓은 아저씨에게 한소리까지 들었다.

“여기가 마지막이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