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31화]
“저거 실총 아니야.”
“예?”
“저거 그냥 짝퉁 모델건이라고.”
그 말을 들었는지 주방에 있던 사장이 부릅뜬 눈으로 석민과 아영을 노려보았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영은 사장과 부엉이만큼 눈이 커진 종업원을 보고 얼른 고개를 돌린 후 상체를 약한 숙여 진지한 얼굴로 석민을 보았다.
“그것도 능력 중에 하나인가요?”
정말 모르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석민이 입을 열었다.
“그냥, 보면 대충 알 수 있어.”
김이 샌 듯 아영의 표정이 풀어져 버렸다.
“1차, 2차 서울수복작전이나 대혼란 때 많은 민간인들이 에어소프트건이나 권총모양라이터, 모델건 같은 것들을 실총인 것처럼 가지고 다녔거든. 강도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혹은 강도가 되려고 말이지. 일부는 정말로 실총이기도 했지만, 여하튼 그런 거 하나만 있어도 강도당할 위험이 많이 줄어드니, 총 사기 힘든 사람들이 사지. 그리고 사실 경기도에서 열에 여섯은 그런 총을 가지고 있어.”
“그렇군요. 몰랐어요.”
“네 생각만큼 경기도에 총이 많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는 마. 그나저나 1시간 동안 몇 명 지나갔어?”
“총 7개 팀이네요. 하지만, 우리가 찾던 이들은 아니에요.”
“예상대로군.”
그는 익은 고기를 자신의 앞 접시로 옮겼다.
“뭐, 여기 말고도 다른 데에도 우리처럼 출입구를 가진 놈들도 있을 거야.”
그 말에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장벽은 길어, 그만큼 뒷문이 있겠지.”
그는 고기를 새로 올렸다.
“뭐, 여긴 볼일 다 봤으니까….”
고기를 올리고 고개를 들려는 순간, 석민은 아영이 허리춤에서 마카로프 권총을 꺼내 드는 것을 목격했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석민도 품속에서 MK.23권총을 꺼내 들었지만, 이내 그들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엄청난 연사소리와 함께 유리창들이 박살나고 사방으로 유리 파편들이 날아갔다.
총알은 특정지역을 조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분무기로 물을 뿌리듯이 사방으로 박혀들었다.
아까 눈여겨보았던 사내들이 유리창 앞으로까지 다가와서 기관단총을 난사했던 것이다.
그들은 견착도 제대로 안 하고 무슨 영화 속에 나오는 갱스터 마냥 한 손으로 쏘거나 거의 90도에 육박한 정도로 총을 기울여서 쏘아댔다.
딱 1명만 철사형 개머리판을 제대로 펴고 견착을 하여 쏘고 있었지만, 점사가 아닌 다른 동료들처럼 마구잡이로 총을 쏘는 것은 똑같았다.
결국 서로를 배려하지 않은 채 쏘아대는 난사에, 자신들이 쏜 탄피가 서로의 얼굴과 몸에 튀면서 총구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난장판이 되었다.
‘우지잖아!’
설마 그것이 품속에서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석민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갑작스런 기습과 총기난사에 몸을 살짝 떨며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겨 탄환이 약실에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시스템창을 확인해서 총의 상태가 멀쩡한지 보았다.
우지 기관단총은 연사력은 아주 빠르지만, 그 연사력 때문에 순식간에 탄환이 비워버리니 무작정 연사 시 조준하기 힘든 총이었다. 석민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빈 공이소리가 들려왔다.
아영이 먼저 상체를 세워 권총의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석민도 깨진 유리창 너머로 우지 기관단총을 든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눴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느라 그는 평소처럼 가늠쇠의 가늠좌로 조준하는 것이 아닌, 능력 중 하나인 증강현실처럼 보이는 십자선에 맞춰 대충 조준하여 쏘았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초탄부터 상대방에게 총알이 박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총 맞은 남자 하나가 크게 비명을 지르며 인상을 쓴 채 뒤로 넘어갔다.
“엄호!”
순식간에 한 탄창을 다 쏜 아영이 소리쳤다.
“엄호!”
석민은 큰 소리로 대답하면서 방아쇠 당기는 속도를 줄였다. 마침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가 상체를 숙이며 어떻게든 재장전하기 위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모습이 보였다.
석민은 그를 향해 총구를 옮겨 정조준하고 쏘았다.
저쪽이 엄청난 연사력을 가진 우지 기관단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빈 탄창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는 잠깐의 눈짓으로 시선을 돌려 아영이 재장전을 마친 것을 확인한 후,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남자들을 뒤로하고 허벅지에 총을 맞아 절뚝거리며 도망치는 남자가 보였다.
석민은 손을 들어 권총을 겨눴다.
남자의 등에 2발이 박히면서 쓰러졌다.
정확히 심장에 박힌 총알에 남자는 즉사했다.
석민은 창문 근처에 쓰러져 있는 나머지 2명의 머리에도 권총을 쏘아서 확인사살을 했다.
죽지 않았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뭐라 말을 하려고 했으나, 석민의 손가락이 더 빨랐다.
탄환이 장전되는 장전음이 들려왔다.
권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석민은 멈칫거렸다.
“손들어!”
가게 주인이 샷건을 장전하고 석민을 겨누었다.
“시발….”
석민이 구시렁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을 때, 종업원으로 있던 아줌마가 달려왔다.
“사장님, 그만두세요! 강도들 때문이에요!”
몇 초 뒤 상황파악이 끝난 사장은 총구를 올렸다.
“이런 데서 장사하면서 방탄유리도 안 샀어?”
석민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고 사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미안합니다.”
“제길, 죽을 뻔했네.”
석민은 품속에서 10만 원을 꺼냈다.
“여기 유리값. 식비는 안 낼 겁니다. 왜인지 아시죠?”
“……예.”
밥을 다 먹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물러나는 게 좋았다. 그의 신발까지 챙긴 아영이 나왔다.
“가지.”
군인들이 탄 차가 다가오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괜히 저들과 엮이면 그의 신상에 좋을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10만 원으론 깨진 유리도 다시 맞추기 힘들 텐데, 밥값이 굳었을 때 빨리 빠지는 게 좋았다.
“성남으로 돌아갈 건가요?”
“아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볼 곳이 있어. 부랑자들 말고 헌터들만 모여서 사는 동네가 하나 있는데, 거기는 방금처럼 총격전이 벌어지진 않을 거야. 불한당 같은 것들은 들어오지도 못하는 곳이니까.”
그는 무언가 눈에 들어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울면서 도망갔던 소년이 어느새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먹던 음식을 두 손으로 잡아 입안에 쑤셔 넣고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튀어서 그냥 먹기 그럴 텐데 그 소년은 불판에 올려놓고 먹지 못했던 덜 익은 고기도 입에 쑤셔 넣었고 열심히 턱을 움직이는 것이 마치 햄스터 같았다.
분노한 사장이 욕설을 퍼부으며 그 소년의 등을 때렸지만, 소년은 맞으면서 먹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분이 더러워진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
대략 30분은 걸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아파트단지였다. 물론 그곳은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가 아니었다.
“특이한 아파트 단지네요.”
아영이 말했다.
그 아파트 단지주변에 7미터 높이의 성벽처럼 벽을 쌓아놓았는데, 그 재료가 H빔, 콘크리트 블록이었다.
아파트 단지의 크기에 비해 불편하게도 단지입구는 단 1개뿐이었다.
도로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으며 감색의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쓴 경비원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6명이나 있었는데, 일반적인 아파트 경비원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방탄조끼에, 단독군장, 카빈소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안전구역, 우정파크빌, 10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 단지야. 여기 거주민들은 대부분 돈 좀 있는 인간들인데, 헌터들과 그 가족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어.”
아영은 이 정도 수준의 경비와 담벼락이라면 이 단지 안에서만큼은 예전처럼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치안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여기서 의뢰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불법무기도 밀매하지.”
그 말에 아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었다.
헌터들은 정부가 최대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선 거주민과 경비를 제외한 방문객들은 도검류를 제외하고 무장이 금지야. 용무가 있는 사람은 출입증을 받고 가지고 있는 무기를 반납해야 들어갈 수 있지.”
그의 말대로 그들은 경비실을 통해 마치 공항검색대처럼 몸수색을 당하고, 권총들을 제출하여 번호가 적혀있는 수납함에 넣은 후에야 출입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곳은 밤중에 고성방가도 가능하고 취해서 길에 자도 아무도 터치 안 하지. 여기만큼은 예전같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어. 그것 때문에 여길 벗어나지 않고 지내는 인간도 있지.”
그 말에 공감이 가는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비슷한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이 아파트 단지 같은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파크빌이란 말이 무색하게 공원으로 보이는 곳들이 이미 누렇게 말라죽은 나무들 투성이었지만, 쾌적하고 깨끗한 길과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들, 여유롭게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줌마, 트레이닝복을 입고 조깅하는 남자의 모습 등, 경기도에서 이젠 보기 힘든 길거리였기에 아영에게는 신기하게 보였다.
“거주민은 대략 1만 1천 명 정도. 고용된 경비는 60명. 경비실 근처에 보이는 저 2층짜리 벽돌 건물이 관리사무소 겸 경비원 숙소, 단지 중앙 쪽에 있는 3층 건물은 종합상가건물이고 미용실, 식당, 마트, 편의점, 유치원 등이 있어. 여기 거주민들은 절대로 자기 자식을 밖으로 보내지 않아. 자체적으로 만든 학교에서 선생을 초빙해 애들을 가르치지. 여기보다 밖이 위험한 것을 알거든.”
그는 건물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저 공원 중앙에 있는 노인정 건물이 이곳을 장악한 조직의 실세가 살고 있어. 그 인간이 이 아파트 단지 자체를 소유했다고 봐야겠지.”
그 말에 아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단지를? 통째로? 전부 그 사람과 조직 소유라고요? 그게 가능해요?”
그는 다시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몰라. 단지, 안전한 구역을 만들어서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월세를 받는 것뿐이야. 게다가 은밀한 거래를 위한 시장도 여니 자릿세, 보호비 명목으로 뜯어내는 것도 매우 쏠쏠하지. 여기 경비들은 그놈 조직의 조직원들이야. 그놈들은 한 달에 한 명당 교탄으로 30발을 쓸 정도로 탄약 사정도 넉넉한 편이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죠?”
아영의 물음에 석민은 잠시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석민이 입을 열지 않은 채 그저 자신만 쳐다보고 있자, 아영은 석민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 상기했다.
‘의뢰받았던 타깃 중 하나가 여기 거주민으로 있던 자였나 보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매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여기 있어도 돼요?”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 들었으면 분명 경비를 불렀으리라 생각하며 아영은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관없어, 내가 했는지도 모르니까. 난 일 처리는 확실히 하거든. 자, 가지.”
이미 길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앞장서서 걸었다.
***
“그래, 여긴 일 처리 확실한 사람은 많지만, 헌터들을 고용하는 곳이지, 해결사를 구하는 데는 아니야.”
안전구역 우정파크빌의 실소유주 원성한이 말했다. 올해 환갑이 된 초로의 남자는 60세의 나이에 비해 나잇살도 없는지 상당히 마른 나머지 볼살도 쏙 들어가서 광대뼈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거기에 머리카락도 회색빛의 백발이라 나이에 비해서 더 늙어 보였다.
그러나 몸 자체는 운동을 한 젊은 사람처럼 근육비율이 많아 탄탄했다.
그 나이에 이런 몸을 유지할 만큼 이 남자는 독종이었고 그런 원성한의 말에 방문자인 성남교구장 박재만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게 아니라 네가 아는 사람들 중에 러시아제 9x39mm 아음속탄환을 쓰는 놈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거지.”
그 말에 원성한은 피식 웃으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편히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