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30화 (30/226)

[게이트 오브 서울 30화]

대회 종목은 달리기, 태권도, 이종격투, 총검술, 서바이벌 게임 등으로 일반적인 체육경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기에 참가하는 인원들과 응원열기가 매우 대단했지만, 연단을 떠난 교주는 이것을 보지 않았다.

그는 각 지역의 교구장들을 데리고 그대로 성남시의 교단 소속 교회로 들어갔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박재만 교구장.”

“네.”

교주의 부름에 박재만 교구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탄천과 판교에서 벌어진 일들은 잘 들었소. 그래서 범인들은 찾았소?”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인은 단수가 분명하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범인이 쏜 탄환을 확인한바, 동일한 구경의 총을 사용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주섬주섬 변명을 주워 삼던 박재만은 주변 다른 교구장들의 비난 어린 시선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고개를 조아리고는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직 용의자는 찾지 못했지만! 그 범위가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범인이 사용하는 탄환은 매우 희귀한 러시아제 9밀리 아음속탄환입니다. 사용하는 사람이 매우 적기에,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소.”

다행히 교주는 아직 심하게 박재만을 채근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교주의 태도에 박재만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해 본 것을 메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소?”

박재만은 비굴하게 웃으며 답했다.

“1달, 1달만 주시면 됩니다. 1달 뒷면 손해 본 것 이상으로 메울 수 있습니다.”

“주 거래를 하던 무기상인도 죽었다 하지 않았소?”

그 말에 박재만는 뒤쪽에 서 있던 김지형을 보았다.

‘이 새끼가.’

쓸데없는 것을 알려가지고는….

그는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만, 그 말고도 다른 무기상인들이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비축한 것만 하더라도 우리 교인들 정도는 충분히 무장하고도 남을 만큼….”

“지금도 부족해!”

백은호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갑작스런 고성에 같이 앉아 있던 모든 교구장들이 움찔거렸다.

“서울에 있는 괴수들은 일반적인 총알에 안 통한다는 거 알지 않소! 모든 성도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대성전을 준비하는데, 그대는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 같군.”

그러자, 백은호 뒤쪽에 서 있던 남자들 중 건장한 남성 2명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왔다. 그들의 어깨엔 개머리판이 접힌 AKS-74U 단축형 돌격소총이 달려 있었다.

박재만은 두려운 눈길로 그들의 총을 보았다. 그들은 여차하면 바로 총구를 자신에게 겨눌 것이다.

‘빌어먹을 사도대들.’

그는 순간적으로 짜증이 섞인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사도대는 교단의 신도들 중 정예들을 교주가 직접 선발해서 뽑은 자들로 주 임무는 교주의 경호였지만, 뒷 세계의 분란이나 ‘교단내부’에서의 분란도 처리하는 임무도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교주의 개인 사병이라기 보단 개들이었고, 그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것이고 누군가를 죽이라고 하면 아무런 의문 없이 살인을 하는 그런 자들이었다.

교구장의 직위는 매우 강하긴 했지만 교주와 사도대 앞에서는 한낱 방아쇠 한 방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자네의 비리를 모를 줄 알았나? 그럼에도 그대를 기용한 것은 그대가 무기를 구하는 능력이 뛰어나서이지, 그대의 신앙심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내게 실망을 안긴다면, 자네가 교단에 쓸모가 있을지 의심해봐야겠군.”

“아, 아닙니다… 제발….”

박재만은 바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야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박재만 교구장. 정말로 대성전이 멀지 않았네. 이렇게 거룩한 사명에, 방해꾼은 없어야 해. 빠른 시간 안에 그놈 찾아서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

백은호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화제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으나, 박재만의 귀에는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놈을 어떻게 해야 찾아낼 수 있을지 궁리하느라 바빴다.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드래곤하트 수급과 대성전을 위한 서울정탐은 어찌 되었소?”

그의 말에 다른 교구장이 나서서 말했다.

“여태껏 헌터들을 고용하여 정탐해왔으나, 헌터들은 불신자들이기에 그들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습니다. 근래에 죽은 자들이 많아진 김에, 이번 대회를 통해 신앙심 깊고 능력 있는 청년 교인들 중 최정예를 뽑아 서울로 보내려고 합니다. 대략 40명 정도에 초행길인 걸 감안하여 길잡이 2명 정도를 고용해서 말이지요.”

백은호는 부정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겨우 이제 막 기본 훈련을 마친 신도들로? 우리 정예 대원들을 보내는 것은?”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부 쪽 감시도 심하고 완벽하게 훈련이 된 상황이 아닙니다.”

“말 나온 김에 정부 쪽 동향은?”

“우리 쪽의 일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만약에 알고 있었다면 계엄군이 움직였을 테지요. 혹여 계엄군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우리 교단이 눈치 챌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놨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의 계엄군은 괴수들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그다지 큰 위협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탐군을 위한 예산과 무기, 장비는 마련하였소?”

모두의 시선이 박재만에게 쏠렸다.

이런 것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박재만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상의 장비를 준비하였습니다. 길잡이는 바로 정탐군들과 조율하여 고용하겠습니다.”

“길잡이는 어떻게 고용할 생각이오?”

“되도록 헌터를 고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교단의 교구장급 이상의 회의는 거의 하루 종일 이어졌다.

교인들은 교주가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열심히 대회 일정을 소화했다.

그들은 교주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백은호는 마지막까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

과천. 과거엔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정부에 고용되거나 기업이나 타국정부에 고용된 헌터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변모했다.

이곳에 있는 서울장벽 게이트는 ‘공식적’으로 헌터들이 서울로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문이었다.

게이트 또한 과거 서울지하철 4호선을 개조해서 만든 것으로, 선바위역의 지하도에 거대한 철문으로 된 게이트가 있었고 그것을 통해 서울 안쪽에 있는 남태령역으로 나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보건소에서 받은 무료 종합검진 서류와 이곳에서만 만들 수 있는 사냥등록증을 제출해야만 게이트 통과가 가능했다.

정부는 헌터들에게 자동화기를 가질 수 있도록 허가했고, 과천 시내에 한해선 총을 들고 길거리를 배회해도 계엄군이 간섭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헌터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정부의 포석이었으나, 실상 다른 곳에서도 자동화기를 들고 다니는 이들은 넘쳐났으니, 정부의 의도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자동화기가 허락된 곳이다 보니, 사건 하나 터지면 총기난사가 기본인지라 치안이 속된 말로 개판이었다.

계엄군이 정부시설이나 공공기관, 게이트와 그 근방의 치안만큼은 확실하게 지키고 있었으나, 그 외 다른 지역은 보장해주지 않았다.

“아, 저기 보이네요.”

선바위역 근방 불고깃집에 앉아 점심밥을 먹으며 선바위역의 유일한 출입구 앞을 지켜보던 아영이 말했다.

그녀는 볼에 가득 고기를 넣고 턱을 움직이며 서류를 넘겨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조태식, 나이 36. 우리정부에 고용되어 있어요. 직업은 뭐 당연히 헌터고, 부업으로 골동품수집상이나 장물아비에게서 서울에 귀금속이나 유물 등을 채취해오는 것을 하네요.”

“전에 잡은 헌터들이랑 비슷하네.”

석민은 고개를 뒤적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다지 큰 거래를 하지 않아서 정부에서도 그냥 넘어가 주고 있어요. 나머지 4명은…. 뭐 알 필요 없겠네요. 같이 다니니까요.”

고기를 뒤적이던 석민은 고기가 다 익은 것 같자, 아영의 앞 접시에 고기를 놓았다.

“아, 고맙습니다.”

숯불 향이 밴 불고기 냄새에 마늘과 양념, 채소가 든 상추쌈을 싼 후 입에 넣으려는 순간 아영은 창문을 통해 어느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추운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소년이 입은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었고 머리는 산발에 얼굴은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배고픈 얼굴로 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지 마.”

석민이 입에 고기를 넣으며 말했다.

“동정도 가지지마. 여기서 동정심 가지면 곤란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젓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그 녀석 말고, 그 뒤에 있는 놈들을 봐, 주차장 쪽 나무 아래.”

그의 말대로 나무 아래에서 대략 3명의 인물이 흡연을 하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후드 달린 두꺼운 잠바 같은 것을 입었는데, 배 부분이 볼록했다.

그 안에 무언가를 숨겨놓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어떤 놈인지 시험하는 것뿐이야.”

별로 동정심이 통하는 것 같지 않자, 그 소년의 얼굴이 무표정해지더니 남자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영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소년이 남자들을 향해 무언가를 속삭거렸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소년의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의 주먹이 소년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건장한 남자에 비해 마르고 볼품없던 소년은 그대로 힘없이 튕겨 나가 쓰러졌다.

부들거리는 팔로 겨우 일어난 소년은 서럽게 울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별로 좋지 못한 장면에 아영은 입맛이 싹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전장이나 온갖 더럽고 처절한 것을 본 덕분에 강심장이긴 했지만, 여전히 장면에 무감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석민은 태연하게 고기만 열심히 먹을 뿐이었다.

“어지간히 우리가 마음에 들었었나 보네? 하긴, 겨우 1인분 정량이 150g에 가격이 4만 원이나 하는 불고기를 6인분 시켜놓고 술까지 곁들어서 먹고 있으니 돈 많은 놈으로 보였겠지.”

심드렁히 말하며 고기 한 점을 더 입에 밀어 넣던 석민은 손을 들어 식당 아줌마를 불렀다.

아줌마의 허리춤에도 권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경기도지방도 간당간당하긴 했지만, 과천은 단순 서빙 하는 종업원도 권총을 찰 정도로 치안이 불안정했다.

“여기 맥주 한 병만 더 줘요.”

그 말에 아영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 역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근무 중이었다.

“무슨 술을 그렇게 먹어요?”

“반주지.”

석민은 맥주를 새로 까며 말했다. 국내산 맥주 주제에 한 병에 1만 3천 원이나 하는 고가여서 그런지, 제법 먹을 만했다.

“오토바이는 안 타고 오길 잘했어 저것들 눈초리를 보니까 밥 먹고 나오려는 걸 덮치려는 것 같은데, 뒷문으로 나가도록 하지. 이 근방에서 괜히 총성을 울리면 곤란해.”

그 말에 아영이 우울해진 눈으로 종업원 아줌마를 보았다.

“생각보다 경기도는 치안이 개판이군요. 종업원도 권총을 들어야 하다니.”

그녀는 군인이었고, 군인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그녀가 왜 침울해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석민은 손가락으로 아줌마 종업원을 가리켰다.

“저 아줌마가 든 권총이 뭐인 것 같아?”

그 말에 아영이 종업원에게 다시 시선을 보냈다. 권총은 권총집 안에 있었지만, 그녀는 대충 크기와 그립을 보고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PPK(독일 발터사에서 생산한 소형권총)아닌가요? 국내에서도 38구경으로 라이선스 생산 중이라 구하기 쉽고 호신용으로 제격이죠. 덕분에 국내에 많이 유통되고 있어요. 모델명이 DH380이었나?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런 모델도 있었나? 석민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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