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9화 (29/226)

[게이트 오브 서울 29화]

“확실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뭐, 제가 받는 임무가 2주에 1번 정도이기 때문에 1달에 한 번씩 모은 무기들을 처분하면 될 듯합니다.”

“좋아, 마지막으로 그 처분업자 말인데 믿을 수 있나? 내 말은…. 이런 일들은 자네가 전에 하던 일과 마찬가지로 원한관계가 쉽게 생길 수 있는 일이잖아? 더군다나 총이나 탄약 같은 것들은 각각 번호가 새겨져 있고. 요즘은 총열상태나 발사된 탄두를 통해서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있단 말이지? 그래서 처분업자가 매우 중요한데… 일 똑바로 하는 양반인지 모르겠네.”

“정확힌 건스미스인데, 아주 잘합니다. 신뢰할 만합니다.”

조금 더 경계하리라 생각했던 용민이 의외로 석민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무기 쪽은 네가 더 잘 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그는 석민의 눈에 나타나는 시스템창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그가 무기에 대해 잘 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

용민은 소금과 감자튀김에서 나온 기름이 잔뜩 묻은 손가락들을 쪽쪽 빨고는 물수건으로 닦은 후 손을 내밀었고 석민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혼자서 옮길 수 있는 무기의 양은 한정적이겠지만 그래도 벌이는 나쁘지 않겠지.”

“같이 동업하는 사람이 도와줄 것입니다.”

아영이 도와준다고 확답했으니, 그래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석민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용민은 그를 힐끔거리며 맥주를 기울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 만난 김에 몇 가지 정보와 주의를 해줘야겠군.”

용민이 다른 화젯거리를 꺼냈다. 석민의 눈이 가늘어지며 상체가 살짝 앞으로 숙여졌다.

“뭐죠?”

“그 천국의 문 교단인가? 그놈들과 관련되는 일을 몇 개 했었지? 지난번 탄천에서 내가 소개해 준 일도 그렇고 말이야.”

석민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피커에선 끊임없이 걸그룹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로 옆이 아니고서는 자신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얼마 전부터 어떤 놈들이 9x39mm 탄환을 쓰는 사람들을 찾는다고 하더군. 정황상 교단 놈들인 것 같은데, 요즘 같은 세상에 이단 광신자 같은 것들이랑 엮이면 좋을 거 하나도 없으니까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예상은 했지만, 의외의 정보였다.

‘역시 날 찾고 있구나.’

석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용민 형을 찾길 잘했군.’

“걱정하지 마세요. 전 지금 거처를 옮긴 상태인데다 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어요. 형이 문제지요.”

“내가?”

그는 입술까지 움직일 정도로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경찰이야. 공무원 신분이라고 제까짓 것들이 어떻게 할 수 없지. 거기다 내 부업은 대단히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다고. 그러나 나와 거래를 두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탄환을 쓰는 사람은 너뿐이야. 아마 경기도 내에서 그것을 쓰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일 테니, 오히려 네가 더 조심해야지.”

용민은 석민이 걱정 돼서 한 말이었지만, 이미 정부가 마련한 안전가옥에서 살고 있는 석민은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아무리 국가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국가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진 않았다.

오히려 저렇게 자신만만해하는 용민이 걱정이었다.

자신이 경찰이자 공무원이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위험하다고 석민은 생각했다.

용민은 공직에 있는 만큼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납치라도 되면 모든 게 끝장일 텐데 너무 자신만만했다.

물론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용민이 쉽게 납치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한편으론 그 스스로쯤은 지킬 수 있다고 생각도 했지만, 교단이 마음먹고 나선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기껏 생각해서 위협을 알려주는 그의 마음에 재를 뿌리고 싶진 않았다.

“주의하도록 하지요.”

“좋아, 그러면 이만 헤어지도록 하지. 서로 가봐야 하거든. 오늘 돈을 이렇게 받았으니 이번엔 내가 쏜다. 피자든 뭐든 마음껏 먹어.”

그의 말에 따라 석민이 피자 3판에 흑맥주 4잔까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설 무렵, 아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상부에서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내일 아침에 바로 가지요.

석민은 알았다고 답장을 보냈다.

과천, 헌터의 도시

탄천종합운동장.

과거엔 성남시민들이 사용하는 종합스포츠시설이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천국의 문 교단에서 매년마다 하는 행사인 제2회 하늘 문 체육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물론 이것은 외부적으로 선전하는 것일 뿐이고, 실상은 제2회 대성전(大聖戰)회의였다.

겉으론 체육대회라고 되어 있지만, 천국에 교단에 속한 교인들이 자신의 훈련성과를 교주에게 뽐내는 대회이자, 성도들의 내부결속을 다지는 대회이기도 했다.

이 대회를 위해 필사적으로 훈련한 사람들로 운동장은 북적였다.

성남의 일반교인들 1만, 그리고 전국 교구 대표 청년이 1만 명. 총 2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 말고도 대회를 관람하기 위한 성도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기에 운동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맨 처음엔 3천 명의 청소년들이 관중석에 앉아 카드 섹션을 펼치고, 대회를 축하하기 위한 매스게임이 펼쳐졌다.

그 이후엔 대표 참가자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체육대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각 교구의 전용 유니폼을 입고서 전부 각 맞추어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흡사 군대의 행진 같았다.

아니, 이들은 교단의 사병집단이었다.

이들은 단상에 군대식 경례를 하며 지나갔다. 물론 경례의 상대는 교주 백은호였다.

백은호는 단상의 의자에 앉아 경례를 하며 지나가는 교인들을 향해 손 흔들며 답례를 해주었다.

그는 은도금이 되어있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로마 교황이 예식 때 입는 만툼(Papal mantum)과 유사한 의복에, 손에는 흰 장갑을. 머리에는 수녀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베일을 써서 온몸을 꽁꽁 싸매듯이 가리고 있었다.

옷이 펑퍼짐하고 두꺼웠기 때문에 그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일어나려는 몸짓을 보이자, 그의 주변에 서 있던 젊은 여성 시종들이 얼른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옷의 무게보다 몸이 더 가벼울 정도로 그는 많이 야윈 사람이라, 시종들은 그 가벼움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여성 시종들은 엄격하게 뽑힌 신실한 신도들로, 교단에서 제일 열성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건강한 이만이 될 수 있었다.

그녀들은 마치 왕을 대하는 궁녀들처럼 교주를 쳐다보지 않은 채 움직였다. 이는 교단 내의 법에 기재된 것으로 교주를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보통은 상의의 두 번째 단추 정도의 높이에서 시선을 고정하거나, 상체를 숙이고서 땅바닥을 봐야만 했다.

그때, 옆에서 부축을 돕던 여자 한 명이 고개를 살짝 올려 자신의 교주를 우러러보았다.

교주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이런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과 기쁨 넘치다 못해 광신도스러움이 묻어나올 정도였다.

그녀는 스스로의 흥분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면에 뚫린 두 개의 구멍 사이로 반짝이는 다갈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녀는 얼른 눈을 깔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마주친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엄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떼어낸 것은 백은호의 뒤에 서 있던 성남교구장, 박재만의 목소리였다.

여자는 그의 말에 얼른 고개를 숙였다.

다른 불신자들이 들었으면, 무슨 사극에 나오는 대사냐며 웃을 법한 말투였으나 이곳에 있던 모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때마침 참가자들의 행진이 끝났고, 백은호는 운동장에 모인 이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내리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영광스러운 우리 성도들에게 천국의 문이 열릴지니, 그대들에게 축복이 있으라!”

그의 목소리는 녹이 낀 쇳덩이 같았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 따윈 상관없다는 듯,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적이 펼쳐졌다. 그의 양손에 번쩍이며 눈부신 빛이 펼쳐진 것이다.

빛은 점점 퍼지더니 300미터 반경 내를 모두 감쌌다. 강렬한 빛 때문에 모든 사물에 기다란 그림자가 새겨졌다.

그러나 강렬한 느낌과 다르게 빛은 한없이 따뜻했다.

사태 이후 태양을 볼 수 없게 된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는 이제껏 느껴볼 수 없던 생소한 감각이었다. 감히 전등으로는 비할 수 없었다.

이는 신도들에겐 태양과도 같은 광명이었다.

차갑게 식었던 몸이 온기에 녹으면서 온몸에 짜릿한 감각이 솟아올랐다. 신도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기적에 커다란 희열 느끼고 믿음에 대한 확신을 받았다.

자신들의 영혼이 축복의 빛을 받고 있다고 말이다.

그 믿음에 대한 도가 지나친 몇몇 이들은 축복의 빛을 더 잘 받기 위해 입고 있던 외투를 비롯하여 옷이나 속옷까지 벗어대기도 했다.

혹자는 백은호의 손안에 아크등과 같은 장치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사기꾼 백은호가 옷을 저렇게 두껍게 입고 몸을 숨기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들 떠들어댔지만, 그것만으로 따뜻함까지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온몸에 따스한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끼며 신도들은 눈을 감고서 빛을 즐겼다.

시간이 지나며 빛은 서서히 멎어 들었고 다시 차가운 공기가 운동장을 감돌았다. 그와 함께 신도들의 요란한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울렸다.

“일어났다! 일어났어!”

휠체어에 앉아있던 남자가 갑작스럽게 일어나 방방 뛰었다.

그 남자는 행사 시작 전에 교주의 연단 근처에 앉아있던 남자로 ‘사전에’ 택시 일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고 소개받은 남자였다.

갑작스럽게 그 남자가 그렇게 행동을 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그와 같은 일은 연단 주변에 있던 환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축복을! 좀 더 많은 축복을!”

빛을 제대로 쬐지 못했다고 생각한 이들이 절규에 가까운 함성을 지르며 연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통제인원들이 인간장막을 만들어서 연단의 접근을 막으려고 했지만, 수많은 남녀노소들이 달려드니 그들의 장막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주 일행은 이미 연단에서 물러났다.

“뭣들 하는 것입니까?”

통제반장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소리쳤다.

“축복은 이미 충분히 받았잖습니까?”

그는 반쯤 나체로 헐벗은 노인 남자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밀어 넘어트렸다.

그 노인은 나이로 인한 관절염과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어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통재반장의 눈에 지팡이가 보이자, 그자의 얼굴이 완전히 썩어들어 갔다.

“아니, 지금 뭐하는 겁니까? 왜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거지?”

그는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노인을 윽박질렀고 종국에는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노인이 다시 일어나기 무섭게 통제반장은 그 지팡이를 빼앗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교주님이 어? 축복을 내렸는데 왜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거냐고 이 새끼야? 안 돌아가? 걸어서 돌아가라고! 야, 이리 와. 걸어서 가봐.”

노인이 다시 지팡이를 가지고 가려고 하자 통제반장은 주변 사람을 밀치고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다시 지팡이를 빼앗아 더 멀리 던져버렸다.

주변의 다른 신도들은 그것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겼고 일부는 그 지팡이를 짚어서 더 멀리 던졌다.

혼란이 사라지고 그렇게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었다.

연단은 어느새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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