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8화 (28/226)

[게이트 오브 서울 28화]

자신은 사람을 죽이는 일로 돈을 벌던 사람이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이득관계, 혹은 다른 어떠한 이유로 상대를 죽이고 싶었지만 법과 보복이 두려워서 나서지 못했던 ‘겁쟁이’들을 대신해서 칼을 겨누거나, 방아쇠를 당기던 사람인 것이다.

그 일은 정신적으로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자신이 ‘그런 것’을 이미 많이 겪었던 사람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일의 위험도에 비해서 버는 돈은 쥐꼬리만 했고, 그럼에도 일의 특성상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런 일을 했을 때에 비해서 지금은 어떤가.

훨씬 안정적이고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많은 돈 앞에서 탐욕이 머리를 드는 치켜드는 것이다.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잖아.’

아영은 힘을 가졌으니, 힘을 준 사람(절대자 혹은 신)의 의지를 이어받아 사명을 완수하자고 했고, 대통령은 나라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석민은 솔직히 그런 것보다 돈을 더 많이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고귀하고 보람찬 일을 한다 해도 3일 동안 굶고서 빈 지갑만이 자신을 반긴다면, 돈이 최고임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고결하고 숭고한 삶을 지향하는 수도승이라 생각지 않았다.

근래에는 제법 돈이 쌓이긴 했으나,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정부의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고, 아영의 말대로 사명이 끝난다 해도,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결과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결국 돈이지.’

씁쓸한 생각을 정리한 석민은 담배 한 대가 너무 절실해졌다.

그러나 아직 서울을 나오지 못했기에 피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

다음날,

석민은 보석들을 가져온 것에 대한 수고비로 250만 원을 받았다. 보석과 귀금속들을 처분한 돈은 시가로 3억이 조금 넘었는데 말이다.

‘이건 너무하군.’

폰뱅킹을 통해 입금된 돈을 확인하며 그는 죽은 헌터들에게서 G3를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거라도 가지고 왔다면, 최소 혜원이 좋은 값을 쳐주었을 것이다.

‘다음부턴 이런 일은 적당히 하고 부업에나 집중해야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돈줄은 분명 혜원이 될 것이다.

석민이 안전가옥의 거실에서 흉흉한 기세로 휴대폰을 보고 있자 원인을 눈치 챈 아영은 석민의 옆에 앉았다.

“과천 쪽의 일은 보고 올렸습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허가가 떨어질 것입니다.”

“그래.”

석민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역시 페이가 적어서 그런 것 같군.’

예상은 했지만 석민이 크게 실망을 하는 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역시 말을 했지만, 석민 씨에겐 돈이 너무 적군요.”

아영의 말에 석민은 휴대폰의 화면을 끄고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지난번에 G3를 빤히 보시던데 혹시 무기 쪽 밀매를 하시나요?”

석민의 고개가 그제야 아영을 향했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석민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분명 군인이고, 나라를 위해 일하며, 공무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도와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저 때문에 정부 일을 하게 된 것이니.”

그녀는 무안한지 그 이상은 덧붙이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공무원이자, 나라를 위해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 그녀의 입장에선 엄연히 불법적인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라에서 치안을 바로 잡기 위해 애쓰는 중인데, 애국심이 투철한 그녀가 그걸 악화시키는 행위를 자진해서 하겠다고 나선다니, 석민이 보기에도 놀라웠다.

저런 말을 꺼내기까지 그녀에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고마워.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우리는 스님처럼 무소유를 실천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그 수익을 나누어 받지 않겠습니다. 그게 제 마지막 자존심이랄까요.”

저 여자가 친한 친구였다면 포옹했을지도 모를 것이라며 생각하다가, 석민은 무안하고 쑥스러움에 헛기침을 몇 번 내뱉었다.

근래에 너무 감성적이 되었다.

“나중에 힘들어서 안 한다, 돈 달라고 없기다.”

“뭐, 그러죠. 다만 가끔가다가 맛있는 것 좀 사주세요.”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하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8시.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인지 제법 배가 고팠다.

“치킨이나 시켜 먹을까?”

석민의 말이 끝나자, 마치 이 자리에 치킨이 존재하는 듯, 아영의 코끝에 고소하고 진한 치킨의 기름 냄새가 나는 듯했다. 절로 입 안에 침이 고여 왔다.

이에 닿는 순간 파삭하는 소리와 함께 육즙이 터져 나오는 바삭한 닭다리.

거기에 진한 양념 소스 혹은 파채가 함께 곁들여진다면….

안 그래도 레토르트 음식에 질린 터라 더욱 사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게 된 상태였다.

빈 위장이 공복을 주장하고 나서자 오늘 저녁은 더더욱 치킨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치킨을 시키기 위해 폰을 든 석민을 향해 아영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안전가옥이라, 여기서 시키는 것은 안 돼요.”

“그러면 내가 사 오도록 하지. 맥주도 마시겠어?”

“좋습니다.”

아영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

석민은 오랜만에 오토바이를 타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영이 그의 부업까지 도와준다고 했는데, 치킨쯤이야 못 사줄 것도 없었다. 물론 비싸지만.

그는 아영이 생각보다 자신에게 매우 협조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이윽고 이렇게 된 거 판을 좀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무기와 탄약들은 대부분 중량이 크게 나가기 때문에 아무리 스탯을 통해 남다른 체력과 근력을 가진 석민이라도 1톤짜리 트럭마냥 짐들을 옮길 수 없었다.

더불어 차도 없어서, 검문을 피해 무기들을 옮길 수도 없었다.

‘하지만, 용민 형은 가능하겠지.’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개꾼’으로서 용민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신뢰’가 자신의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단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자신이 정부 일을 하게 된 이후로 그 범주 안에 들어가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최근에 천국의 문 교단이란 인간들의 재산과 인명을 파괴했다. 교단은 범인을 찾고자 할 테고, 용민은 그 사태의 A-Z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형사라는 직분 상 건드리기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하늘 위의 작자는 아니었다.

사태 이후 소금보다 짠 공무원들의 월급을 보자면, 그의 앞에서 500만 원짜리 돈 한 뭉치면 흔들어도 기꺼이 자신의 존재를 떠벌일 것이다.

어디에 사는지, 무기는 무엇을 쓰는지, 뭘 좋아하고 심지어 무슨 맥주를 즐겨 마시며, 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 지까지 나불댈 사람이었다.

결국 그의 범주 안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이른바 돈이 되는 일에 그를 끼워 넣으면 된다.

절대로 손해가 아니다.

뭐, 자신의 돈이 좀 들어가겠지만 근래엔 자금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내일 연락해야겠군.’

석민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층 더 오토바이의 속도를 올렸다.

***

한편 혼자 안전가옥에 남게 된 아영은 석민이 생각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것에 적잖게 놀랬다.

아무래도 같이 고생을 하다 보니 신뢰감이 형성된 것 같았다.

‘최소한 석민 씨의 신뢰는 얻었네.’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마자,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는지 저도 모르게 풉-!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녀 입장에서 석민은 원래 매우 ‘쓰레기’였고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말이 민간군사기업이지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버는 더러운 놈들, 이 나라를 병들게 하는 이 사회의 암 덩어리들.

석민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킬러들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니, 타국과 결탁한 매국노-헌터들보다 더 나쁜 존재로 여겼다.

그에겐 절대로 말하지 않겠지만, 그랬기에 그녀는 석민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사실 대단히 실망했었다.

선택받은 자는 그와 같은 직분의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군인이거나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남자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의 임무를 함께 수행하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그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했다.

그는 그저 살기 위해 무기를 든 사람일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태껏 하던 일들이 정당화되진 않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하는 일이 나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돈을 너무 밝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신도 애국심이 없었다면 똑같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영은 치킨을 다시 떠올리며 석민에 대한 생각을 머리 한쪽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

“그래, 정부일은 재미있나?”

다음날 더 로드에서 용민은 맥주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재미있지는 않지요. 하는 일의 횟수와 난도에 비해 돈이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석민의 말에 용민은 키득키득 웃으며 갓 나온 감자튀김을 씹어 먹었다.

“그래? 그건 그거대로 안 되었군. 정부의 일을 하기에 이제 자주 못 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웬일로 보자고 한 거야?”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가시가 있었다.

용민의 말에 대답하듯 석민은 품속에서 돈다발이 담긴 봉투 하나를 꺼내 용민의 앞에 두었다.

용민은 그것을 말없이 자기에게 가까이 손가락으로 끌어당긴 후에 봉투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고는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5만 원권으로 500만 원이라, 엄청나네.”

“일종의 수고비라 생각해 주세요.”

석민의 말에 용민이 순간 돈 받기를 머뭇거렸다.

둘은 비즈니스적인 관계였다. 현재 둘 사이에 서로 주고받을 무언가가 남았던가.

자신의 기억엔 그런 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돈을 그냥 준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대가 없이 소고기를 사주진 않는다.

아무리 순수한 호의와 신뢰관계라도, 그건 돼지고기까지가 아니던가.

용민의 생각이 끝날 무렵 석민이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잠시 다른 쪽으로 치우쳤다고는 하나, 어차피 제가 하던 일은 사양 산업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다른 일거리를 만들어 보려고요.”

“중고무기 거래 말이야?”

석민이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용민의 입에서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전에도 비슷한 유형의 일을 해봤기 때문에 머리가 더 빨리 돌아간 듯했다.

“네. 이번엔 실패했지만, 제가 하는 일 특성상 무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더군요.”

석민은 그가 서울로 들어가 헌터들을 사냥한단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할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용민 자체도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한 개의 팀이나 조직을 처리하는 수준이다 보니 거기에 나오는 부산물들이 엄청나죠. 게다가 혼자 옮길 수 있는 양도 아니고, 검문을 피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니, 형과 제가 서로 힘을 합친다면 적지 않게 돈 좀 만질 수 있을 겁니다.”

“흠~.”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용민은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더니, 남은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맥주잔을 톡톡 두드리는 용민의 손가락에 알바생이 새로운 맥주를 잔에 채웠다.

용민은 벌써 고민을 끝낸 건지, 감자튀김 하나를 케첩에 듬뿍 찍어 입 안에 넣으며 말했다.

“판매랑 처분은 지난번 그곳인가?”

용민의 말에 석민은 방탄유리 속에 앉은 혜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 맞아요.”

그렇게 대답한 후 석민도 흑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 그쪽이면 나쁘지 않은 것 같군. 지난번의 그 물건들을 군말 없이 전부 산 거 보면, 재력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얼마나 자주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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