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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27화 (27/226)

[게이트 오브 서울 27화]

그들은 보석 말고도 무언가를 매우 조심스럽게 유리병 속으로 집어넣었고, 입구 또한 매우 주의 깊게 밀봉했다.

석민은 그들을 살피며 혀를 찼다. 바로 곁에 보석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에 수류탄을 던지면 보석들이 망가질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거 귀찮게 되었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침 고개를 돌린 석민의 눈에 헌터들과 운반꾼 몇몇을 제외하고 따로 모여서 자기들이 할 일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무리가 들어왔다.

이간질하기 딱 좋은 상태였다.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아영이 석민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석민은 어깨에 메고 있던 AK-107을 바닥에 내려놓고 조정간을 연사로 둔 후, 그녀에게 수화로 섬광탄을 던질 것을 주문했다.

석민의 말을 알아들은 아영은 섬광탄 2개의 안전핀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뽑아낸 뒤, 숨을 살짝 들이마심과 동시에 헌터들에게 그것들을 던졌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도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곧 터진 섬광탄으로 주변은 삽시간에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일시적으로 눈이 멀어버리고 섬광탄 특유의 폭음에 귀까지 멀어버린 그들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거나 어디론가 도망치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석민과 아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격소총으로 그들에게 쏴댔다.

마침 석민과 아영이 가진 돌격소총은 50발짜리 대용량 탄창을 달고 있어서, 저들을 쓸어버리는 용으로 좋았다.

하지만 섬광탄이 터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승강장 아래로 몸을 던져 피해를 줄인 놈도 있었고, 무기를 꺼내 반격을 준비하는 자도 있었다. 더불어 모두 모여 있던 상태도 아니었다.

한 탄창, 50발을 전부 발사한 석민은 돌격소총을 내던지고 빈토레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사방이 깜깜한데 유독 밝아 거슬리던 전등을 쏘아서 깨트렸다.

“젠장, 어디야? 어디냐고?”

석민은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주변을 살피는 헌터의 머리를 노리고 쏘았다.

총을 맞은 헌터의 고개가 힘없이 꺾이면서 쓰러졌다.

“뭐야? 놈들이 배신한 거야?”

석민이 다 들리게 소리쳤다.

그리고 석민의 그 한마디는 당황한 그들의 마음속에 쉽게 스며들어 어떤 의문을 만들어냈다.

장전을 마친 아영이 다시 저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아직 어둠에서 적응이 되지 않은 운반꾼 2명이 아영의 사격에 쓰러졌고 석민은 승강장 아래로 숨어 살짝 고개를 내밀은 운반꾼들이 있는 방향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나란히 반쯤 숙이고 있던 헌터와 운반꾼 2명 중 헌터만 노리고 2발을 쏘았다.

장전을 마친 아영이 다시 저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아직 어둠에 적응되지 않은 운반꾼 2명이 아영의 사격에 쓰러졌다. 석민은 타이밍 맞춰 승강장 아래로 숨어 살짝 고개만 내밀고 있던 운반꾼들이 있는 방향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곤 빈토레즈를 들어서 운반꾼과 나란히 반쯤 숙이고 있던 헌터를 노려 2발 쏘았다.

가슴에 총탄이 박힌 헌터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으아아!”

자기 옆에 있던 헌터가 쓰러지자 패닉에 빠진 운반꾼이 사방으로 기관단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엎드려.”

석민은 무전을 날린 직후 다른 방향으로 수류탄을 연달아 던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이봐, 아니야! 아니라고!”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헌터에게 운반꾼은 자신의 호신용 기관단총으로 총구를 겨누며 소리쳤다.

냉정하게 설득하려고 했다면 저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쨌든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 죽여! 이 개자식들, 다 죽여 버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곧 총성들이 멈추자 석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곤 때마침 야시경을 낀 채 주변을 살피던 한 헌터의 머리를 노리고 빈토레즈를 쏘았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남자의 뒤통수가 터져나갔다.

아영은 석민의 반대편으로 달렸다.

“저쪽이다!”

그 소리에 놀란 헌터 4명이 엄폐물에서 벗어나 상체를 내밀고 사격을 가했다.

7.62밀리 나토탄 특유의 강력한 총성과 총구화염이 번쩍였다.

그들은 화가 단단히 났는지 반동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연사로 갈겨댔다. 석민은 엄폐물에서 벗어난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는, 그들 중 뒤쪽에 있던 2명을 향해 플레이트 캐리어에 보호가 되지 않는 배를 노리고서 쏘았다.

자기 동료들이 쓰러졌는지도 모르고 남은 2명은 씩씩거리면서 새 탄창을 끼웠다. 그들이 다시 사격을 가하려는 순간, 석민은 나머지 2명 역시 쏴버렸다.

마지막 비명이 끊어지자 주위가 침묵으로 휩싸였다. 석민과 아영은 입을 다문 채, 인기척을 느끼기 위해 귀를 쫑긋거렸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시체들 속에서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계단 쪽으로 달아났다.

석민이 계단을 향해 조준하고, 아영 또한 방아쇠를 당기려 하던 그때, 무언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섬광탄이었다.

석민과 아영이 피하려 했으나 이미 섬광탄은 폭음과 함께 터졌고, 일시적으로 눈과 귀가 먹었다.

윙윙- 낮게 울리는 이명에 석민이 정신을 차리려고 귀를 때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힘겹게 석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쪽으로 한발자국 내밀었을 때 멀리서 폭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도망치던 놈이 부비트랩을 밟은 것 같았다.

“괜찮아?”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생각이 든 그가 먼저 평정심을 찾고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곁에 쓰러져 있던 아영에게 다가갔다.

아영은 몸을 엎드린 채, 양 귀를 막고 낮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석민이 아영의 등을 툭툭- 쳐주고는 손을 내밀어 기다려주자, 아영이 조금 해쓱한 얼굴로 그의 손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잡고서 일어났다.

약간 민망한지 자리에서 일어선 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귀가 좀 멍하네요.”

“다 처리한 것 같으니 어디 한번 보자고. 난 올라간 놈 좀 확인하지.”

석민은 폭음소리가 난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가 예상한 대로 부비트랩에 걸린 헌터 하나가 낮게 신음소리를 내며 벌벌 떨고 있었다.

그자는 죽어가면서도 귀금속이 담긴 가방을 놓지 않았다.

석민은 괜히 자비를 구걸하는 말을 듣고 일말의 죄책감이 생겨나 정신건강을 해치기 전에, 권총을 꺼내서 쏘기로 했다.

앓던 신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석민은 가방을 챙겨서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

“엄청나군요. 시간이 제법 지났으니 더 이상 서울엔 약탈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영은 유리병 가득 담긴 보석들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주위가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지 손전등까지 켜서 보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보석들이 손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을 내자, 그녀는 어린애 같은 순수한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담겨 반짝거렸다.

석민은 아영의 생소한 모습을 보며 피식거렸다.

유리병 안에는 보석 외에 무언가 녹색 빛이 감도는 액체가 담겨 있었고, 보석들 위로는 은색의 네모난 물체들이 보였다.

석민은 아까 저들이 보석들을 정리하면서 그 물체와 액체를 함께 담아내는 ‘작업’을 보았었다.

보호용 고무장갑을 끼고서 하는 것을 미루어 봤을 때, 절대로 일반적인 작업은 아니었고, 심지어 매우 위험한 물체를 다루고 있음이 분명했다.

‘가만.’

석민의 두 눈이 가늘어지기 무섭게 아영은 굳게 봉인이 된 마개를 열기 위해 힘을 주려고 했다.

공기와 접촉을 막으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것은 뚜껑 말고 비닐로도 추가적으로 봉인이 되어 있었다.

“멈춰!”

그 말에 아영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폭탄이야, 폭탄이라고.”

“네?”

석민은 아영에게서 병을 낚아채고선 자세히 보았다. 은색으로 보이는 덩어리는 분명 나트륨이었다.

“나트륨이요?”

석민의 설명에 아영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UDT에서 폭파특기 훈련을 받은 적이 있던 그녀의 입장으로선 이런 쉬운 트랙조차 미리 알아채지 못한 것에 굴욕을 느낀 것이다.

“공기와 접촉하면 터지는 거야. 정확하게는 수분, 물.”

그는 그것을 흔들어 보았다.

일반적인 액체가 아닌 벤젠이나 석유로 보였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유리병을 반대로 들어서 뚜껑 안쪽을 살펴보았다.

트리거는 그 안에 있었다.

이렇게 보기만 해서는 작동하는 원리까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뚜껑을 열면 작동하는 것은 분명했다.

나트륨은 물에 닿으면 폭발하는 성질을 가진 물질이다.

아마 나트륨 말고 마그네슘도 있을 거라고 석민은 예상했다. 왜냐하면 금가루가 든 술처럼 은빛 알갱이들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운반꾼들이 보석을 빼돌릴까봐 어지간히도 신경 썼군.”

운반꾼 혹은 다른 이들이 보석을 훔치기 위해 뚜껑을 열면 펑- 터질 것이다. 뚜껑을 열지 않고 유리병 자체를 깨트려도 터질 테고.

“그러면 기름에 담가두었다가 깨트려야겠네요.”

아영의 말에 석민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 합쳐서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돈맛 좀 보겠군.”

석민은 여러 종류의 귀금속들이 반짝이는 유리병을 잠시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무리 귀금속이 비싸도 그에겐 저걸 처분할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 국민들의 온갖 비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나오는 모든 자원은 정부에 귀속된다는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현행법상, 이 귀금속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물론 불법적인 방법으로 빼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빼돌린다고 쳐도,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귀금속 거래 또한 삼엄한 감시 아래에서 이루어졌기에 자신이 보석으로 치장하지 않는 이상, 자신에게는 반짝이기만 하는 쓸모없는 돌멩이 이상의 가치가 없었다.

석민과 아영은 대충 유리병에 대해서 파악하고는 가방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대충 다 추려 넣으니 군용 대형 가방 하나가 꽉 찼다.

들어보던 석민과 아영은 다시 가방을 열어 유리병들이 깨지지 않게 틈 사이를 여벌의 옷들로 메웠다. 그 지독한 헌터들이 괜히 운반꾼들에게 1-2개의 유리병만 전달한 게 아니었다.

이러한 위험물을 가지고 계속 행동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그들은 바로 서울을 빠져나가기로 합의했다.

석민이 가방을 메고, 아영이 석민의 짐까지 챙겨들었다.

짐이 위험하기 때문인지 석민의 행동은 조심스러웠고, 두 사람 모두 급격하게 말이 줄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말이야.”

게이트와 겨우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잠깐 쉬면서 석민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이것들이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곤 해도 국가예산에 의미가 있을 만큼 크게 보탬이 될까? 다 합쳐봤자 대충… 몇 억밖에 안 하잖아? 나라에서 굴리는 돈은 조 단위고.”

그의 말에 아영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나는 맞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틀린 말입니다. 현재 나라에서 굴리는 예산은 500조 정도입니다. 서울과 경기지역이 무너져 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음에도 나라에서 굴리는 예산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늘어난 거죠. 물론 물가가 많이 올라서 실질적으로 거대 예산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시에 가까워서 군비가 많이 나가는데다가, 예비로 두는 예비비마저 없을 만큼 재정적으로 아슬아슬하죠. 에너지 관련 공기업을 민영화시키지 않은 게 다행일 지경일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니 몇십 만 원이든, 몇백 만 원이든 천이든, 억이든 돈 한 푼이 아쉽죠.”

“그러니까, 무의미한 작전이 아니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러니 긴급명령이 왔지요.”

그 말을 들은 석민은 잠시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아영이 말하는 것을 보건대 이것을 제대로 전달해줘도 돈을 제대로 받기 힘들 것 같았다.

‘돈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그 생각이 들자 석민은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순간적으로 표정관리가 제대로 안 돼서 입이 삐뚜름하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아영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쳐다봤다.

석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곧 아영의 시선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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