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6화]
그나마 경기도까지만 사태의 영향이 미쳐서 이 정도였다. 주요 산업시설들은 무사했으니까.
물론 대량의 인구가 죽어 나가고 서울과 근교의 산업시설이나 회사들은 작살이 났지만, 그래도 나라의 경제가 아주 못살 정도로 무너지진 않은 것이다.
‘그래도 생각이 있다면, 수고비 정도는 주겠지. 그나마 대통령은 좋은 사람인 것 같던데….’
석민은 그리 생각하며 물에서 건져낸 레토르트 식품의 봉지를 뜯었다.
하얀 김과 함께 음식의 냄새가 올라오자, 배고픔이 더 가속화되는 기분이었다. 석민은 봉지에 코를 박듯이 얼굴을 묻고는 음식을 먹어댔다. 몇 입 음식을 뜨면서도 석민은 코를 훌쩍거렸다.
추운 기운이 사라지고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
“아, 저기 옵니다. 167방향.”
쌍안경으로 주변을 관찰하던 아영이 말했다.
아영이 말하는 방향으로 석민은 고개를 돌려 눈에 힘을 주었다.
“정보대로 15명.”
헌터들은 2개 조로 나뉘어, 버려진 차들로 가득 찬 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절대로 아니네.’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석민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철저하게 훈련받은 자들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렬로 전진을 하면서 각자 자신이 맡은 구역을 감시하고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석민은 그들 하나하나를 살폈다.
그들의 소총에는 도트사이트와 수직손잡이가 달려있었고, 군장에는 수류탄 말고도 섬광탄이 달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흔들 거렸다.
야간 투시경은 단안경식 그리고 적외선 레이저 표적지시기도 있었다.
보통 적외선 레이저는 일반적인 눈에는 보이지 않았고, 야간 투시경을 사용해야만 보였다. 그것은 능력자인 석민과 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하에서 싸우는 게 그다지 유리하진 않겠어.’
그나마 야간 투시경들이 단안경 형식이라 시야가 좁긴 하지만, 숫자가 저리 많으니 그다지 큰 단점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영이 물었다.
석민은 바로 대답하기보다, 헌터들의 가방 쪽을 쳐다보았다.
일의 특성상 보급품이 든 가방은 아닐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히 살피니, 가방들이 꽉 차고 묵직해 보였다.
‘에이, 설마.’
석민의 눈이 찰나의 순간 탐욕스러워졌다가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저 안에 든 물건들이 전부 귀금속은 아닐 것이다. 혹여 그렇다고 해도 18k거나, 가짜 다이아몬드거나 그것도 아니면 짝퉁이겠지.
‘세상에 귀금속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소박하고 서민적으로 살아 귀금속과 인연이 한 번도 없었던 석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상상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곤 생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일단은 저들을 어떻게 잡는가가 지금으로서는 더 중요했다.
‘생각을 해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무장의 소염기는 소염기가 아니라 총구 제동기에 가까워서, 화염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반동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잖아.’
그가 가진 빈토레즈는 아음속탄환에 소음기가 기본 장착이라 총구화염이 없다고 봐야하지만, 아영의 보조무기인 AKS-74U는 나팔형 소염기라, 어둠 속에서 쏘았다간 총구화염에 완전히 노출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가능한 것은 기습뿐인데.’
석민은 기습을 통해 저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난사를 해서 쓸어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지, 잠깐만. 생각을 해보니 저것들은 총성이나 폭음이 들리면 어쩌려고 저렇게 무장을 한 거지?’
수류탄이나 섬광탄 같은 것은 그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무장할 수 있었지만, 소리 때문에 드레이크나 와이번에게 이목을 끌게 분명하기에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았고, 꼭 사용해야 한다면 도망칠 때나 사용해왔다.
즉, 수류탄 몇 발 이용하면 지난번처럼 괴수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테고, 굳이 자신이 힘들이지 않아도 괴수를 이용해 저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해보자.”
결론을 내린 석민의 말에 아영은 약간 놀란 기색을 띠었다.
“비트에 넣을 탄약을 쓰진 않겠지. 그 저격총은 여기에 두지 그건 필요하지 않아.”
아영은 그의 말에 따라 자신의 저격총을 두고 기관단총을 들었다. 평소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에 항상 자리 잡고 있던 구소련식 소총 홀스터에 aks-74u 기관단총을 넣었다.
석민은 트렌치건을 두고 소음 저격총과 돌격소총을 챙겼다.
“일단, 저들이…. 가만, 저것들은 뭐야?”
2개 조 중 한 무리들이 송파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아영은 쌍안경을 다시 꺼내 그들을 살폈다.
“숫자는… 17명, 운반꾼들인 것 같네요.”
제각각 옷을 다른 옷들을 입은 그들은 군장으로 보이는 것은 거의 착용하지 않았고 등에 짊어진 가방이 과하게 컸다.
가방이 지나칠 정도로 큰 나머지 몇몇은 걷다가 비틀거리는 것이 무리하게 물건들을 옮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보기에도 애처로울 정도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나, 결코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가 괴수들을 만나면 어쩌려고 저렇게 무리해서 짐을 옮기는 거야?’
아마도 저들이 안전한 루트를 찾아 그쪽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짐을 가지고 다닐 수 없을 것이에요.”
“그러면, 전부 잡지 말고 몇몇은 심문을 좀 해볼까?”
“네,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석민은 잠시 시선을 돌려 깊게 생각을 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모두 몰려 있을 때 많이 어수선해질 거야. 물건들을 정리하고 보급품을 수령하는 순간, 같을 때 말이야.”
그의 말에 아영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운반꾼들은 헌터들과 같은 자들이 아니겠지요. 분명 저놈들은 운반꾼들에게 보급품을 슬쩍했는지, 혹은 자기들이 모은 귀금속들을 빼돌리진 않았는지 확인할 거예요. 그때 한 번에 처리하면 되겠지요. 물론 모든 이들이 모여 있진 않을 테니 한, 두 명 정도는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석민의 눈에 운반꾼들을 맞이하는 헌터들이 보였다.
보초를 서고 있던 헌터들이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운반꾼들을 을러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운반꾼들은 무거운 등짐으로 비틀거리면서도 연신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좋아, 가자.”
건물에서 내려간 석민과 아영은 송파역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헌터 두 명을 주시했다.
그들은 지하철 출입구를 자기들 나름대로 요새화를 해두었다.
중앙의 입구에는 철조망으로 엮어서 만든 바리케이드와 기다란 쇠못이 잔뜩 박힌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한쪽 구석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드럼통으로 쌓아서 만든 엄폐호가 위치하고 있었다.
보초들은 바로 그 엄폐호 안에 몸을 숨기고 전술 잠망경으로 주변을 살피며 감시를 했다.
몸을 완벽하게 숨기고 또 주변을 완벽하게 감시할 수 있는 초소가 2개 있는 꼴이었다.
길거리에서는 저격을 할 수 있는 포인트가 나오지 않았고 근방에 조금 높은 건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석민은 입구 기준으로 좌측 상가 건물 3층에 자리를 잡았고, 아영은 그 반대편 건물로 올라갔다.
유리창들이 모두 깨져 있었기 때문에 저격하기엔 용의하긴 했지만, 한 명 처리한 뒤 빠르게 다른 놈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반대로 역공을 당하거나, 상황을 다른 동료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위험했다.
석민은 약간 긴장한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는 상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평소 같았으면 거리가 너무 가까운 창가에서 저격을 하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았겠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곳은 옛날에 당구장이었는지, 당구대나 큐대, 당구공들이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석민은 당구대 위에 조심스레 올라갔다.
내부가 어두우니 아마 자신의 모습은 저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석민은 총을 쏘기 위해 자리를 잡다가 무릎에 거치적거리던 당구공 하나를 옆으로 슬쩍 밀어내고는 아영에게 연락을 취했다.
“울프 1, 여기는 울프 2, 자리를 잡았다.”
곧바로 아영에게서 답신이 왔다.
-알겠습니다. 울프 2, 이쪽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발사하십시오.
“수신완료.”
석민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보초를 조준했다.
보초들이 전부 잘 보이는 자리이긴 했으나, 여차하면 바로 몸을 숨길 수 없는 곳이었기에 주의해서 쏠 필요가 있었다.
문뜩 석민은 자신의 9x39mm 탄환이 저 최신형 헬멧을 관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뭐… 최신형이라고 해도 지근거리에서 방탄복을 뚫어버리는 아음속탄을 막지는 못하겠지.’
판단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석민은 최대한 보초의 목이나 얼굴을 조준하기로 마음먹었다.
보초들은 조용히 있지 않고 연신 잡담을 했다.
지루한 보초시간을 때우는 방법이기도 했고 서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수다를 통해 서로의 무사를 확인하는 듯했다.
석민의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황의 특성상 오래 기다릴수록 불리해질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자신의 사격실력을 믿고서라도 무리할 생각이었다.
잠시의 기다림도 최대한 그들의 머리가 사격하기 쉽도록 어느 정도라도 노출될 때까지 기다린 것뿐이었다.
이윽고 전술 잠망경을 바라보던 이들이 몸을 뒤척이면서 상체가 가장 많이 노출되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석민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작업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소음기가 달렸다곤 하나, 보초들의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소리가 안 들릴 리 없었다.
결국 살아남은 보초의 고개가 돌아갔다.
상황을 파악한 보초는 고개를 숙이려고 했으나, 석민의 행동이 더 빨랐다.
목에 총알이 박힌 보초가 목을 부여잡았지만, 손가락 마디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자주 보던 것이었지만, 스코프를 통해 보는 것은 언제나 끔찍했다.
“처리했다.”
-네, 확인했습니다. 이동하죠.
석민과 아영은 건물에서 내려와 죽은 보초들의 물건을 빠르게 뒤졌다.
“수류탄과 섬광탄은 전부 챙겨.”
석민의 말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초들의 품에서 나온 수류탄 2개와 섬광탄 2개를 각각 챙겼다.
그때, 발밑에 채이던 G3소총이 석민의 눈에 띄었다. 그는 총을 손에 들어보았다.
[G3A3]
내구도: 88%
품질: 상하
탄약: 7.62MM 나토탄
H&K사 에서 생산한 돌격소총
귀금속을 모으는 일을 하는 민준은 뒤로 상당히 많은 양의 보석들을 빼돌렸다.
그는 이번 임무를 완수하면 일을 그만두고 2년간 보지 못한 딸아이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왜 이딴 글이 나오는 거야.’
석민은 눈앞에 나타난 글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게 남은 일말의 양심이 가책이라도 느끼라는 거야, 뭐야?’
“다 챙겼습니다.”
“…좋아, 내려가지.”
무기까지 마저 챙긴 그들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
지하 1층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부는 나름 청소라고 한 건진 몰라도, 말라비틀어진 시신들을 전부 좌우 벽면으로 몰아 놓은 덕분에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이 있는 계단 쪽으로 작은 불빛이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야, 똑바로 세라, 물건 하나라도 부족하면 니 팔다리 하나로 끝나지 않을 거야.”
석민과 아영은 서로를 보았고 이내 둘은 수화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마친 그들은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수류탄을 사용해 부비트랩을 만들었다.
가느다란 낚싯줄로 만든 부비트랩은 어둠 속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그들은 천천히 소리가 나는 계단 쪽으로 내려갔다.
“18K가 총 402개, 24K가 534개, 은으로 된 것이 2200여 개, 백금이…….”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보석의 수는?”
“각종 크고 작은 다이아 65개에 사파이어가 47개, 루비는 82개…….”
그들은 반지와 목걸이에 붙은 귀금속들을 분해해서 종류별로 따로따로 선별해 유리병에 넣었다.
헌터들은 보급품을 받아 자신들의 가방에 넣고 자기들이 챙긴 보석들을 운반꾼들에게 확실하게 넘기기 전,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