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5화]
“거기서 조금 찾아보면, 처리해야 하는 놈들이 나올 거야. 이런 식으로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건 언제 올지 모르는 행운을 바라며 그냥 가만히 있는 어리석은 사냥꾼과 다를 바 없지.”
그리고 석민은 몹시 담배가 고팠다. 그것을 말하면 자기 말의 신뢰가 사라질 것이기에 그는 욕망을 숨기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중으로 짐 싸고, 남길 물품은 잘 숨긴 다음에, 부비트랩 설치하고 내일 떠나지.”
그 말에 기겁한 아영이 손사래를 쳤다.
“잠시 만요. 그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하시면 안 되죠. 애초에 우리는 여기서 한 달을 버틸 예정이었는데요?”
“첫 사냥 이후로 사람은 그림자도 안 보이잖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시간만 죽이고, 식량만 축낼 거면 난 반대야. 일방적으로 기다리느니 찾아가는 게 낫지. 사냥꾼은 사냥감을 찾아야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잖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야지.”
아영은 뭐라 항변하려고 했지만, 석민의 말에 일리가 있었고 그녀도 딱히 반론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내 입을 다물더니 결국 석민처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석민은 AK-107에 사용하는 60발짜리 빈탄창을 꺼냈고 클립에 담긴 총알들로 가득한 가방을 꺼내서 총알을 채웠다.
그는 평소엔 탄창의 스프링이 약해질까 봐 보통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2개의 탄창을 제외하고 탄약을 빼두는 편이었다.
“이런 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영이 말했다.
그녀도 지난번 헌터들을 보았으니까 하는 말이었다. 그녀가 가진 aks-74u는 성능에 있어 아무런 하자가 없었지만, 일반적인 소총탄으론 괴수들에게 씨알도 안 먹히니까 말이다.
하지만, 석민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자신에겐 빈토레즈가 있다는 점이었다.
빈토레즈의 경우 괴수에게 유효사거리가 비록 70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연사가 가능했고, 9밀리짜리 철갑탄을 사용한다면 자비 없이 저세상으로 보내버릴 수 있었다.
물론 그가 가진 트렌치건도 관통까진 힘들겠지만, 지근거리를 기준으로 엿 먹일 수준은 되었다.
아영이 가진 SV-98의 경우 놈들을 뻥뻥 뚫어버릴 순 있겠지만, 그건 볼트액션이니 위급상황에선 대처하기 힘들게 뻔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그것들이 안 보이네.”
“안 보이다뇨? 어떤 놈들이요?”
“감염된 인간들. 아니 좀비라고 해야 하나? 그놈들 엄청 많았는데.”
“그놈들을 대부분 강북지역에 있어요. 마지막으로 드론이 정찰했을 때, 죽지 않고 잿빛으로 변해서 방황하고 있더군요.”
별로 좋지 못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아영은 그 이상 말하진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석민이 입을 열었다.
“아직 감염원인은 못 찾았지?”
“일단 정부는 포기하지 않고 있지만, 세계보건기구는 포기했죠. 아무것도 먹지 않고 6년째 돌아다니는 것들을 산 사람이라 보긴 힘드니까. 죽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짐을 챙긴 그들은 계단에 부비트랩을 설치한 후 엘리베이터에 둔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1층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3마리의 드레이크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드레이크!”
아영이 비명과 가까운 소리를 질렀을 때, 석민이 트렌치건을 겨누고 쏘았다.
고작 2미터 거리에서 쏜 40그램짜리 납덩이(슬러그탄)가 가장 가까이 있던 드레이크의 얼굴에 박혀 들었고, 그 충격에 드레이크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드레이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석민은 저도 모르게 같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드레이크의 몸에 총을 갈겨댔다.
석민의 총격에 드레이크가 주춤거리는 순간, 그는 이를 악물고 총검을 앞으로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드레이크의 두꺼운 비늘은 마치 찰갑(刹甲) 같았지만, 비늘 아래쪽에 틈새가 있어서 밑에서 찔러 비틀면 쉽게 치명상을 줄 수 있었다. 이는 석민이 지난 과거 2년간 괴수들과 싸우면서 얻은 노하우였다.
그의 총검이 드레이크의 목을 찔러 그대로 비틀어 올렸다. 총검이 드레이크의 체중에 실려 칼끝이 비늘을 뚫고 나왔다.
생명력이 지독하게 강한 놈이긴 했지만, 석민의 공격에 제대로 반격도 못 하고 절명했다.
쓰러진 드레이크 뒤로 석민을 향해 다가오는 2마리의 드레이크가 보였다.
석민은 그대로 총구방향을 뒤에 있던 드레이크들에게 돌렸다.
보통 드레이크의 무게가 대략 200킬로그램쯤 되었는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힘들었겠지만 그에겐 아니었다.
슬러그탄이 운이 좋게도 괴성을 지르던 드레이크의 입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드레이크는 목구멍이 막힌 듯 켁켁 거리며 자기 목을 긁어댔다.
마지막 드레이크도 석민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자신의 카빈소총을 꺼낸 아영의 총알에 기도 쓰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 단발로 방아쇠를 당기며 드레이크에게 접근했다. 총격을 받은 드레이크가 몸을 잔뜩 움츠렸다.
물론 대부분은 튕겨 나갔지만,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몇 발의 총알이 드레이크의 비늘을 뚫고 몸에 박혔다.
평소답지 않게 치명적인 부위를 노리는 것이 아닌, 되는대로 마구 총을 쏘아대는 모습을 보니, 갑작스레 드레이크와 맞닥뜨려 당황한 것 같았다.
45발짜리 탄창이 빠르게 비워졌다. 이윽고 찰칵거리는 빈 공이소리가 나자 아영이 허둥대며 장전을 시도했지만, 드레이크가 기회를 노리고 공격을 개시했다.
그 순간, 석민이 아영을 옆으로 밀치고 자신의 돌격소총을 조준하여 쏘았다.
첫발은 머리에 맞고 튕기는 듯했지만, 두 번짼 드레이크의 눈에 맞출 수 있었다.
드레이크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자신의 양 앞발을 세워 달려들었으나 석민이 조정간을 연발로 맞춘 뒤 드레이크의 입 안에 총알을 계속 박아 넣었다.
드레이크가 쓰러지고 석민이 주변을 살피며 그들이 나왔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고갯짓을 하자, 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직였다.
아영이 먼저 들어가고 석민이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지 대략 30초 후, 한 무리의 드레이크들이 나타났다. 죽은 드레이크들과 비늘 색이 달랐고, 머리엔 뿔이 잔뜩 나 있었다.
그것들은 죽은 드레이크들을 보더니 주변을 수색하듯 살폈다. 일부는 엘리베이터 문을 긁어대기도 했지만, 다행히 엘리베이터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윽고 다른 위협이나 먹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뿔 달린 드레이크들은 죽은 드레이크들을 게걸스럽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
석민과 아영에게 명령이 전달된 것은 그들이 겨우 드레이크의 위협으로 벗어나 한숨을 돌릴 때였다. 갑작스레 울리는 진동소리에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주변을 살폈고, 아영이 휴대폰을 받는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갑작스럽게 이렇게….”
그녀는 전화를 받아 연신 예, 예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윽고 3분이 지날 쯤 그녀는 휴대폰을 닫았다.
“뭐야? 뭔 일이야?”
“상부에서 정보를 주었습니다.”
아영이 말했다.
“강남의 부촌과 쥬얼리 숍들을 뒤지면서 귀금속을 모으는 헌터들이 있다고 합니다. 외부의 정보원이 그들의 일정을 알아냈는데, 내일 오후 2시, 송파역에서 헌터들과 전에 보았던 운반꾼들이 모이기로 했다는군요. 헌터들에 대한 개인신상정보는 별로 얻을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뒷배가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아요.”
어차피 다 죽여야 하는 것이니 그런 건 어차피 신경 쓰지 않았기에, 석민은 그것은 흘려들으며 폰을 꺼내 들었다.
“여기서 송파역은 가깝긴 하지만, 사전에 송파역이 내려 보이는 곳을 찾아야 할 텐데.”
아영 또한 지도를 꺼내 송파역 주변 건물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송파역 근방엔 옛날 좋은 시절에 만들어진 고급 아파트가 하나 있었다. 거기라면 송파역 인근을 관찰하기 좋을 것 같았다. 거리 자체도 자신들이 위치한 곳과 크게 멀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나 순간, 석민에게는 몇 가지불만이 생겼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그는 다시 비트의 침대에 편히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요즘은 드론 같은 게 있는데 굳이 꼭 이렇게 자리를 자꾸 옮기면서 관측을 해야 하나?”
“드론도 다 돈입니다. 나라에 돈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전기 같은 연료도 들어가는데다가, 드론까지 챙기기엔 지금 우리가 가진 짐도 많잖아요.”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
석민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폰으로 송파역 안내도를 검색해 보았다.
송파역은 지하 2층 구조였다.
“침수가 되지 않은 건가? 강남은 저지대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모르는 거지요. 일단은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미리 움직일까요, 아니면 저녁에?”
멀리서 알 수 없는 괴수의 포효가 들려왔다.
“저녁에 움직이는 걸로 하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안 움직이겠지만, 우리는 일반인이 아니니까.”
그 말에 아영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지요.”
“소음기를 쓴다 해도 아음속탄환이 없고, 또 실내니 분명 시끄러울 테고…. 무성무기를 준해야겠군. 숫자는 얼마지?”
“헌터들은 15명이라고 합니다. 무장도 매우 훌륭하다더군요. 정보원이 정보를 제법 구체적으로 구해 주었습니다.”
아영은 아까 휴대폰으로 들은 정보를 읊었다.
“경량 방탄모에, 플레이트캐리어, 무장은 7.62mm 나토탄을 쓰는 G3돌격소총으로 통일이라고?”
석민 편안하게 앉은 자세를 풀고 허리를 숙이며 진지하게 들었다.
그들이 가진 무장보다 더 좋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야시경과 수류탄, 권총 등 무장을 하고, 유탄발사기까지, 이거 완전 작정하고 왔구만.”
그게 다 돈이고 비싼 것인데, 어지간한 재력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장만할 수 있는 무장이 아니었다. 아영이 배후가 의심된다고 말할만한 무장이었다.
숫자도 많고 무장도 좋기 때문에 한발이라도 잘못 맞으면 위험해질 것이다.
“어떡할까요?”
아영이 물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이것은 2명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그들보다 무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부비트랩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은 아영은, 석민의 결정에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야시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지하철 지하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긴 하는데, 혹시 그들이 쓰는 야시경이 뭔지 알 수 있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단 그들을 관찰해보고 결정하는 것으로 하지. 어차피 비트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들의 상태를 보고 결정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알겠습니다.”
석민은 이것도 돈이 궁한 정부가 돈을 벌기 위해서 시키는 명령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돈이 궁하다지만, 이건 아니지. 드래곤 하트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게다가 대통령이 말한 원래 목적은 불법적으로 드래곤하트를 채집하는 헌터들을 처리하는 게 아니었나?’
그는 괜히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으로 겉으로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다.
이윽고 해가 지고 저녁시간이 되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레토르트 식품들을 주섬주섬 꺼내다가 몸에 직격으로 불어 닥치는 찬 기운에 석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추운데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치고는 영양이나 열량이 매우 부실한 음식들만 가지고 있었다.
‘다이어트하기엔 딱 좋네. 그래.’
그는 자신군복 바지허리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보았다.
예전보다 더 헐거워진 기분이었다.
이게 다 돈이 없는 정부 덕분이었다.
‘옛날에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1달 만에 20킬로그램을 뺀 적이 있었는데.’
별로 좋지 못한 추억이 떠오르자, 그는 짜증이 난 나머지 콧김을 세게 불고 낮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끓는 물에 레토르트 식품을 던져 넣고는 추위 때문에 다리가 저리자, 덩달아 석민의 기분도 저조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국가씩이나 돼서 이건 너무하잖아. 국가적 위기로 경제력이 11위에서 20위로 떨어졌다지만, 이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