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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24화 (24/226)

[게이트 오브 서울 24화]

“여기 있어.”

“예? 하지만….”

“놈들 동료가 있는지 지켜봐. 여기가 제일 높은 고지대잖아.”

석민은 빈토레즈를 챙기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는 빨리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설치해 둔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덕분에 몇 초도 되지 않아 1층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총기를 바로 잡은 그는 무전기의 수신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채널이 바뀐 것을 상기하고는 그만두었다.

그러고 보니 아영의 지원을 받으려면 무전이 맞아야 하는데.

‘뭐, 상관없겠지.’

아까 있었던 전투로 약간 헌터들이 낮잡게 보인 것도 있었지만, 저들도 드레이크를 해체한다고 했으니, 분명 그쪽에 시선이 팔릴 것이다. 그때 저격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허리를 숙인 채 건물 밖으로 나왔고, 버려진 차들로 엄폐하면서 타깃들 가까이로 다가갔다.

저들은 석민의 예상대로 드레이크를 해체하려는 듯, 줄톱을 꺼내고 있었다.

-빨리 빨리해, 다른 괴수들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해.

거리는 대략 300미터쯤 되는 듯싶었다. 석민은 상체를 차량 위로 올린 뒤, 팔꿈치를 차량 뒤쪽에 받쳤다.

왼쪽 눈을 감고 스코프를 들여다보자 신나게 드레이크를 해체하는 녀석들이 보였다. 이윽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거울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오른쪽 위에 나타났다.

석민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주변에 총탄이 튀었다.

“빌어먹을!”

그 총성에 헌터들이 몸을 숙였고, 석민은 무전기에 귀를 기울였다.

-니들 뒤쪽에! 저격수다!

어째서 저놈을 못 본 거지? 우리 비트에선 안 보이는 곳인가?

석민의 머리가 의문으로 가득 차는 동안, 무전은 시끄러웠다.

-숙여, 숙여! 규석아, 더 숙이라고!

-몇 명? 몇 명이야? 그 개새끼들 몇 명이냐고?

그들은 흥분을 했는지 언성들이 높아졌고, 석민은 무전기 소리를 조금 줄였다.

-어… 한 명!

-계속 살피고 있어, 백린탄 한 개 남았으니까 그것으로 처리하지.

‘이런, 젠장!’

석민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것은 여기에 계속 있으면 위험하다는 점이었다. 석민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을 살짝 일으킨 순간, 총성이 울렸다.

헌터들을 엄호해주던 스나이퍼였다.

총탄이 자신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고, 결국 석민은 다시 몸을 숙일 수밖에 없었다.

총성을 보건데, 조금 약한 것 같았고 섬광도 보이지 않았다.

소음기라도 낀 건가? 대충 5,56mm 탄환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총성이 약하긴 해도 크게 들리니, 아음속총알은 아닌 게 분명했다.

‘전문 저격수는 아닌 것 같고, 지정사수인가?’

석민은 나갈 수 없었다. 총알이 날아오는 위치를 보건데, 어디로 도망치든 시선 안에 들어갈 것이다. 거리는 300미터도 채 안 될 것이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백린탄을 맞을 순 없었다.

그는 차량 왼쪽으로 돌았다. 오른쪽 위에서 쏜 이상, 왼쪽 아래는 못 볼 것이다.

석민은 왼손잡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반대로 총을 잡고 조준했다.

총을 조준하며 석민을 향해 다가오던 헌터 하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석민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너무 급히 쏘느라 총알은 무릎에 박혔다. 덕분에 위치를 제대로 발각당한 석민은 다른 이들이 쏘아대는 총알을 피해 얼른 다시 몸을 숨겼다.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상대가 방독면을 쓰고 있던 덕분에 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다.

-조용히 시켜!

-무릎이 완전 박살났어!

-제압사해! 제압사격! 총을 쏘면서 접근하라고!

총성이 마구 울렸다. 주변에 총탄이 마구 튀면서 작은 불꽃이나 흙먼지를 일으켰다.

“제길!”

상대들은 빠르게 접근해 왔고, 석민은 이도저도 못하게 되었다. 이윽고 수류탄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수류탄 던…….

총성이 울렸다.

자신을 겨누던 총성이 아닌, 자신을 서포트하던 총성이었다. 그리고 백린수류탄을 쥐고 있던 헌터의 팔뚝이 떨어져 나갔다.

“아악!”

“피해!”

연막탄이 터지면서 비명들이 울렸지만, 그것은 호들갑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방호복에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총상에 팔이 잘린 자는 그렇지 못했다. 상처부분에 백린이 붙으면서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총성이 다시 울렸다.

-……들리십니까? 울프 2

비명 속에서도 아영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석민은 안도의 한숨을 쉰 후 마이크 단추를 눌렀다.

“들린다. 울프 1.”

-백린탄을 든 자는 제압했고 저격수 제거했습니다. 한 명 남긴 했지만, 물러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북쪽에 드레이크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자였다.

석민은 그자를 무시하고 비트 쪽을 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자리 잡았던 타워팰리스 근처, 버려진 차량 위에 자리를 잡은 채 엎드려 쏴 자세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알았다. 물러나겠다.”

-채널을 우리가 쓰던 채널로 바꿔주십시오.

총성이 울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움직이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이, 이봐! 이러지 말자고! 드레이크가 오고 있잖아! 이러지 말자고! 제발! 살려줘!

석민은 채널을 바꾸었고, 다시 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비트로 가십시오, 저는 저들을 지켜보겠습니다.

다시금 울리는 총성을 뒤로 하고 석민은 몸을 숙이고 비트 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 있게 아영에게 남아있으라고 했는데 이 꼴이 났으니까. 스탯을 올려놓고 이게 뭔 꼴인가?

‘역시 이런 건 혼자하기 힘들어.’

그는 혀를 낮게 차고 계단을 올랐다. 그가 도착했을 때쯤엔 일이 다 끝나있었다.

그는 창가에 서서 드레이크들이 헌터들을 뜯어먹는 장면을 보았다. 유일하게 멀쩡했던 자는 보이지 않았다.

도망친 것인가? 그의 눈에 버려진 봉고차의 천장을 손톱으로 찢어발기는 드레이크가 보였다. 이내 봉고차 안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그 안에 숨었다가, 살기 위해 총을 쏜 듯했다.

총격에 드레이크가 고통스럽게 뒤로 물러났지만, 곧 주변에 다른 드레이크들이 몰려들었다. 실제론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비명과 총성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그는 다시 한숨을 쉬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영이 비트로 올라왔다. 그는 묵례를 하듯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다음부턴 이러지 않도록 하지.”

“아뇨, 괜찮습니다. 무전기 채널을 맞추지 않은 것도 있으니까요.”

아영은 근처에 SV-98을 내려놓았다.

석민은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조금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스탯 덕분에 지친 것은 금세 풀렸으나, 정신적으로 매우 지쳤다.

‘오늘은 그만 사냥하고 싶군.’

이런 기분이 얼마 만인가? 해결사 역할 하던 것보다 더더욱 심장이 쫄리는 느낌이었다.

망원경으로 밖을 주시하던 아영이 렌즈에서 눈을 떼었다.

“저기, 또 손님이 왔군요.”

“어디?”

석민이 시선을 돌렸고 호수 쪽 대로변에서 바삐 뛰고 있는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영은 명단을 꺼내 들었다.

“제가 보기엔…….”

“아니야, 됐어.”

석민이 말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움직이는 형상이 그의 눈에 보였다. 곧 그들의 뒤를 쫓는 드레이크 무리가 드러났다.

그자들 일행은 총 9명이었는데, 드레이크는 적어도 15마리가 넘어 보였다.

심지어 도망치는 이들 중 6명은 군장가방보다도 더 큰 가방을 지고서 뛰고 있었다.

“알아서 죽을 거야.”

저들은 뒤를 살피며 드레이크들이 쫓아오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총을 쏘아댔지만, 그들이 쏘는 총알은 드레이크들에게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듯했다.

K-3기관총으로 추정되는 경기관총을 든 남자가 폐차에 자리 잡고는 난사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잠시 드레이크들이 주춤하는 듯했으나,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철갑탄이나 7.62밀리 탄환이 없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들인데 저도 모르게 걱정이 들었다. 경기관총을 든 남자가 난사하는 동안 다른 자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도망쳤다. 엄호나 보조도 없었고 팀워크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쏘면서 도망쳐야지.”

그 말에 아영이 고개를 돌려 석민을 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석민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기관총을 난사하던 남자는 우회에서 들어온 드레이크에게 그대로 머리채 뜯어 먹혔다. 그가 죽어버리자 방해거리가 사라진 드레이크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었다. 애초에 4족보행인 그것들을 2족보행인 인간이 따돌릴 수 없었다.

그들의 비명과 총성이 사방에서 울렸지만, 순식간에 그쳤다.

석민과 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냥을 하고 사냥을 당하는 곳이 바로,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서울이었다.

“아니, 어째서 등짐을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는 거죠? 저게 얼마나 중요한 거라고.”

“쟤들, 헌터 아니야.”

석민이 말했다.

“쟤들은 운반꾼들이야. 헌터들의 보급품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들이나 다름없고, 저 짐을 버리고 도망가면, 그에 상응하는 벌금이나 보복을 당할 수 있어서 못 버리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 되는…….”

“사실이야.”

아영은 말을 잊지 못했다.

***

석민과 아영이 서울에서 일을 시작한 지 대략 일주일이 지났다. 첫날부터 헌터들을 만났고 2개의 팀을 처리했지만, 그 뒤로 한 개의 팀은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지 못했고, 석민은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야했다.

비트를 잘못 잡은 것인가?

서울은 과거 메가시티라고 불렸던 만큼, 대도시이기 때문에 면적이 매우 넓었다. 그렇다 쳐도 현재 활동하는 헌터들이 대략 2천 명쯤 되었고,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한강이남, 강남지역에서 활동한다고들 했으니 얼추 마주칠 법도 하건만, 개미코딱지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안달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의 조바심을 읽었는지 아영이 말했다.

“원래 사냥꾼들을 사냥을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죠.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그녀는 따뜻한 마테차를 석민에게 내밀었다.

“게다가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여기뿐이니까요. 곧 얼마 안 가 또 나타날 것입니다.”

그녀는 스나이퍼 출신이라서 그런지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듯 보였다.

예전에 그녀는 타깃 하나를 잡기 위해 1달간 같은 장소에서 보낸 적도 있다고 들었다. 물론 석민이 보기엔 매우 비효율적이었지만.

“작전을 바꿔야 해.”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일단 다른 비트를 만들어야지 비트를 한 개만 두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그리고 정보를 좀 모았으면 좋겠어. 헌터들이 어디에서 활동하는지 말이야.”

“정보 말입니까?”

석민은 가방을 챙겼다.

“그래, 정보.”

아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아!’ 하고 작게 탄성을 질렀다.

“과천을 말하는 건가요?”

석민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천에 헌터들이 모여 살지. 거기서 의뢰를 받기도 하잖아. 버려진 은행의 금고라던가, 금은방, 박물관의 문화제를 가지고 오라는 등 말이지.”

“하지만, 거긴 위험합니다. 게다가 우리 얼굴은 알려져선 안 됩니다. 차라리 다음에 정찰드론 같은 것을 이용해서…….”

“아아, 그러셔? 그럼 짐은? 제대로 찾으려면 민간용보다 군용을 써야 할 텐데? 얼굴 알아볼 정도로 고화질에 열상장비가 달린 거로 구한다고 쳐도 배터리는? 단기로 쓸 게 아닐 텐데? 게다가 좀 크다 싶으면 와이번들이 다 낚아채는 거 알면서도 그러는 거야?”

그 말에 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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