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3화]
“6명, 전원 자동소총으로 무장했고…. 아니, 한 명은 저격총이군. 총기를 보니까 대구경 저격총.”
“M82 바렛이네요.”
아영이 말했다. 그녀는 조준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쏠 수 없어.”
“압니다. 다만, 제 시력으론 저들 얼굴까지 못 봐요.”
“얼굴을 못 본다고?”
석민이 되물었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시력 등급은 7이지만, 그는 6이었다.
‘설명글이 없으니까 몰랐는데, 확실히 차이가 있나 보군. 시발, 좀 편하게 설명글이 나오면 어디 덧나나?’
“일단 명단 줘봐.”
아영은 A4용지 다발을 작게 혀를 차고 있는 석민에게 넘겼다.
명단마다 사진과 이름 프로필 등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윽고 그는 명단 중에 한 사람을 발견했다.
“한성주. 나이 32세, 전직 특전사 대원. 중국 놈들에게 고용됐군.”
“쫓아야겠죠?”
“어.”
석민은 남은 음식을 입안에 마구 때려 넣은 뒤, 대충 씹은 후 삼켰다. 그리곤 러시아군 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면서 AK-107과 빈토레즈를 챙겼다.
“북쪽 아파트단지로 가고 있네요. 거긴 와이번의 서식지입니다.”
“가지.”
첫 사냥이었다.
***
그들이 타깃의 뒤를 따라잡는 덴 10분이면 충분했다.
첫 임무라서 조금 다급하게 움직인 그들과 다르게 타깃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이 근방에 위험이 없는 듯했다.
석민과 아영은 대략 300미터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따랐다.
아영이 스코프로 살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자들은 덫으로 와이번을 잡나 보군요.”
아영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아파트단지 외곽에서 그물에 걸려 몸부림치고 있는 와이번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대형 세단 수준인 것을 보면 성체가 아닌 새끼인 듯했다.
타깃들의 신이 난 휘파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석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자들은 참새를 잡는 것처럼 아파트 단지사이에 거대한 그물을 걸어서 와이번을 낚은 듯했다.
‘아니면 거미 같거나.’
와이번은 밤새 몸부림치다 기력이 다했는지, 머리 말고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저걸 몰랐네.’
서울수복작전 때 저런 방법을 썼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가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타깃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소총에 총검을 끼웠다.
길이가 1미터쯤 되는 것을 보니 일반적인 총검이 아닌, 개조 총검으로 보였다.
석민은 아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하지.”
그는 좌측상단의 아파트 건물을 가리켰다.
“내가 먼저 저격을 하고, 네가 엄호 겸, 도망치는 놈들을 저격해.”
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석민은 빈토레즈의 스코프로 타깃들을 살폈다.
그들은 뭐라 서로 의논하는 것 같더니, 저격총을 든 이가 와이번의 머리를 겨누고는 쏘았다.
총성이 크게 울리는 것과 동시에 괴성이 울리더니, 와이번의 머리가 풀썩 쓰러졌다. 그때, 총검을 든 자들이 달려들어 와이번의 가슴과 목을 마구 찔러댔다.
‘괴수들 잡는 법을 아는 자들이군. 이 일이 익숙하다는 거겠지.’
그들이 특정부위를 비틀면서 총검을 찔러 대는 장면이 석민의 눈에 띄었다. 석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장면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무전이 들려왔다.
-울프 2, 자리를 잡았다.
“알았다. 적들과 교전하겠다.”
-적 스나이퍼를 먼저 처리해라.
“수신완료.”
석민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총을 쏘았다.
저격총을 든 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동료가 쓰러지는데도 나머지 사람들은 와이번을 해체하느라 정신들이 없는지 바로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바로 다음 사람을 조준했다. 옆에 있던 타깃의 뒤통수도 터지자, 그제야 위험을 알리는 고함을 지르며 남은 사람들이 엄폐물을 찾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되도록 가볍게 무장을 하기 때문에, 방탄복이나 방탄모를 쓰지 않았다. 4족 보행하는 괴수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수들에게서 도망치려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니까.
덕분에 그들을 사냥하는 석민은 매우 꿀 같았다. 아음속 총알에 타깃은 매우 효과적으로 쓰러졌다. 그렇게 2명을 처리한 후, 석민은 몸을 숙였다.
석민이 머리를 내리기 무섭게 총성들이 울리며 그가 있던 자리로 총탄들이 날아왔다. 날카로운 소리들과 함께 총탄들이 바닥이나 부서진 차량에 박혀들었다.
-울프 2, 적들이 네 위치를 알았다.
“알았다. 지원 사격할 수 있나?”
-2초 뒤 사격한다.
총성이 울렸다.
반자동사격을 해대는 적들 중 가장 뒤에 있던 자가 쓰러졌다. 하지만 자기들이 내는 총성 때문에 저들은 눈치 채지 못한 거 같았다.
이윽고 누군가 탄창을 달라고 하려던 순간, 쓰러진 자신의 동료를 보고 위험을 알리려 했다. 그때, 그자의 머리도 퍽-하고 터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은 자신의 동료의 대가리가 터져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이내 몸을 숙였다.
아영은 자신의 자리에서도 쏠 수 없자, 무전기의 마이크를 눌렀다.
“울프 2, 적은 하나 남았고, 여기서는 쏠 수 없다.”
-알았다. 울프 1, 접근하겠다.
석민은 빈토레즈를 조준하며 접근했다.
석민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차량에서 양손을 번쩍 들고, 남자가 일어섰다.
“항복, 항복! 저항하지 않겠다! 가진 거 다 줄게!”
그자는 아까 석민이 명단에서 본 한성주였다. 석민은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그자의 목에 맞았고 그자는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사살. 울프 1, 합류 바란다.”
석민은 저들의 무기를 수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뭐하는 겁니까?”
“일종의 부업.”
석민은 그렇게 말하며 그들의 무기를 주웠다. 이들이 가진 무기는 중국제였다.
[QBZ-03]
내구도:88%
품질: 중
탄약: 5.56mm 나토탄
중국에서 수출형으로 생산한 무기, 한성주는 이것을 자신을 고용한 중국 요원에게 받았다.
그는 평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에게 고용된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게 뭐야?’
석민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읽어보았다. 내용은 달랐지만, 여태껏 이런 설명문을 본 적은 없었다.
그는 다른 무기들을 주웠다. 무기를 사용하던 이들의 이름과 각자의 사연이 나왔다. 이런 적은 없었다.
“이거 무기 집어 들어 봐.”
아영은 갑자기 뭔 소리냐는 듯이 보며 그의 말대로 무기를 들었다.
“설명글을 읽을 수 있어?”
“중국에서 수출 형으로 생산한 무기, 오래 사용되었고 잔기스가 많다.”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다르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석민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아영은 자못 심각하게 인상을 쓰며 생각에 빠졌다.
“뭔가 변화가 생긴 것 같군요.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죠. 시신 냄새며 총소리에 드레이크들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제야 주변을 살핀 석민은 빠르게 무기와 탄약 등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아영은 죽은 이들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석민은 드래곤하트까지 챙겨서 비트로 돌아왔다. 타깃들은 드래곤하트를 정성스레 비닐봉투에 담아 포장해 보관하고 있었다.
석민은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거란 말이지?’
드래곤하트는 그의 주먹만 했다.
그가 상념에 빠진 사이 아영은 명단에서 한성주 일당 목록을 빨간 펜으로 쭉쭉 그어댔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석민의 손에 쥔 드래곤하트를 보았다. 그녀가 보는 줄도 모르고 석민은 그것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비싼 거란 말이지?’
“이 드래곤하트는 정부에 반납하는 게 좋겠어요.”
단호한 목소리에 속으로 놀란 그는 겉으론 그렇지 않은 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지.”
눈에서 탐욕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석민은 순순히 아영에게 넘겼다. 못내 아쉽긴 했지만, 아영이 자신의 부업을 도와주었고, 필요 이상으로 욕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때요? 변화된 능력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요?”
“잘 모르겠어. 무기에 대한 설명이 늘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이상한 힘을 준 이에게 적잖이 실망했다.
힘을 주려면 제대로 주던 가 이게 뭐란 말인가? 뭔가 멋지고 강력한 힘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자신의 빈토레즈를 들어보았다.
[VSS, Vintorez]
내구도:88%
품질:중
탄약:9X39mm
러시아제 저격소총, 꽤 오래 사용해서 탄착군이 조금 벌어졌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뭐지? 이건 변한 게 없잖아.’
그는 자신의 소총도, 샷건도 들어보았지만, 자신의 빈토레즈를 들었을 때처럼 변한 것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그는 가늠하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석민과 아영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드레이크들이었다. 총 5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조금 전까지 아영과 석민이 있었던 곳에서 나왔다.
“총성을 들었나 보군.”
석민은 드레이크들에게 신경을 끄고 다시 총을 들어보며 알람창들을 확인했지만, 아영은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로 그것들의 동선을 살폈다.
이윽고 아영이 급하게 석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것들이 이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코를 박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꼴이, 흡사 사냥개가 사냥감의 냄새를 쫓아 수색하는 모습 같았다.
‘젠장, 우리 냄새를 맡는 건가?’
석민과 아영은 불안한 표정으로 점점 다가오는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석촌 호수에 최소한 발이라도 담글걸.’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호숫물이 얼어있었다. 후회를 해도 이미 늦었다.
“여차하면 도망칠 준비해야겠어.”
“보급품은요?”
아영은 아까운 표정으로 보급품에 시선을 돌렸으나, 그녀 또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올바른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당연히 버려야지.”
아쉬웠지만, 저것들을 전부 챙길 수 없었다. 드레이크들은 확실하게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걱정하지는 마, 드레이크들은 저런 거 건들지도 않을 거야. 저것들 사라지고 난 다음 다시 와서 챙기면….”
순간, 석민의 귀에 치직거리는 잡음소리가 들렸다. 무전기에 꽂은 이어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석민과 아영은 서로를 보더니 무전기 채널을 만지기 시작했고, 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26번 채널입니다.”
석민도 채널을 바꾸는 순간, 사람의 말이 들려왔다.
-던져!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무언가 던져졌다.
“봤어?”
아영이 입을 열기 전에 그들 사이에서 하얀 연기가 퍼졌다. 드레이크들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것이 보였다.
“백린탄.”
석민은 어딘가에서 다시 무언가를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백린탄이 더 날아왔다.
그들은 백린탄으로 괴수들을 잡는 듯했다.
죽음의 연기를 뚫고 기어코 3마리가 나왔고, 2마리는 그대로 쓰러진 듯했다. 그러나 그 3마리도 백린을 많이 흡입한 상태로 보였다.
연막이 사라지고 근처 건물에서 방호복에 방독마스크, 국군이 사용하던 얼룩무늬 특전조끼를 착용한 자들이 나타났다. 위장에 제법 신경 썼는지, 입은 방호복들이 잿빛으로 어두웠고, 특전조끼 또한 일부러 더럽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3명이군. 더 안 보이나?”
아영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보입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고 아영은 명단을 꺼내 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아영은 명단하나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박철, 나이 29, 이 사람의 팀은 백린탄을 주로 사용한다고 나오는군요. 이자들인 것 같습니다.”
“다녀오지.”
“예, 가죠.”
아영도 따라나서려고 했지만, 석민이 손짓으로 제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