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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22화 (22/226)

[게이트 오브 서울 22화]

“그딴 거 안 와도 되는데.”

석민은 낮게 중얼거리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너는 ‘전달하는 자’잖아.”

“그렇죠.”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나한테 전달할 다른 퀘스트, 뭐 없어?”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퀘스트창을 부르고는 시선을 허공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유감스럽게도 역시 없습니다. 이것 말고 알려진 건 단 하나도 없어요.”

석민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솔직히 뭐랄까… 메인 퀘스트로 최종보스 하나 잡으라고만 던져주고 그 중간과정을 생략한 것 같은데, 우리에게 힘을 준 자는 사명의 중압감에 비해 너무 불친절하군.”

솔직히 아영의 추측이나 계획은 직감에만 따른, 추상적이기 그지없었다.

신빙성도 없고 믿음도 가지 않았지만 자신 또한 짐작 가는 부분이 1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지도 모르지만, 찾을 수는 있을 거야. 혹시 모르지, 정말로 여기서 찾을지도.’

“아, 대충 커피가 다 된 것 같군요.”

그녀는 반합에서 끓고 있는 커피를 스테인리스 컵에 담았다.

서울은 경기지역에 비해 구름의 밀도가 더 높았고, 때문에 기온이 다른 곳에 비해 추운 경기도보다도 더 쌀쌀했기에 이렇게 따뜻한 것이 필수였다.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자 기분이 좋아진 건지, 아영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커피와 석민의 커피가 담긴 컵을 들고 석민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때,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드레이크야.”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크기가 대형견 정도로 작아.”

그 말은 저것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몸을 바짝 낮춘 채, 드레이크 무리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르릉 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런데,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석민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유일한 탈출구를 보았다. 거기엔 이미 부비트랩으로, 수류탄 2개를 설치해 두었다.

석민이 대충 본 바로 드레이크의 숫자는 30마리가 조금 넘었다.

드레이크들은 늑대들처럼 무리지어 생활하는 습성을 가졌으니 당연했다.

자신으로서는 이것들을 전부 감당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에 아영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짐 속에서 밧줄을 꺼내 근처에 묶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비명소리와 함께 총을 난사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를 보건데 상당히 가까웠다.

드레이크 특유의 울음소리들이 들리더니, 지처에서 거친 발소리들이 지나갔다. 그들의 무게에 쿵쿵- 소리와 함께 바닥이 살짝 흔들렸다.

“갔군.”

석민은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누가 비명을 질렀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자의 명을 재촉하게 되었을 것이다.

석민은 아영이 자신에게 주려 했던 커피잔을 받고는 그대로 쭉 들이켰다. 실제로 10분쯤 지났을까, 그 잠깐 사이 뜨거웠던 커피가 적당하게 식어있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신 그는 입을 소매로 닦았다.

“갈 준비하지. 그런데, 역시 지상은 위험한 것 같은데 지하로 갈 수 없을까?”

“지하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석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수복작전 때 주둔시설로 지하철역을 요새화시킨 적이 많았기에 한 말이었다.

“지하철은 괴수들의 침입을 막으려고 전부 지하수 펌프를 멈춘 것으로 아는데요.”

“서류상으로만 그렇겠지.”

그는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일부지역은 정부에서 활용하긴 하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은 이미 전력, 식수공급을 차단했습니다. 그 말은 지하수 펌프가 가동을 멈춘 지 오래되었다는 말이에요.”

그나마 기대했던 안전한 이동통로가 막히자 석민으로서는 인상이 안 찌푸려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폐허가 된 이 건물을 통해서 지나가면, 걸릴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아영의 말에 짐을 챙기고 움직였으나, 목표했던 지역까지 가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울 입성 전, 아영은 빨리 도착할 수 있다면 바로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짐을 챙겨서 오자고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를 넘기고 있었고, 스믈스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은, 목적지가 이 폐허가 된 도시에서 겉이라도 멀쩡한 건물이라는 점이었다.

“괜찮군. 창문에 선바이저 코팅되어 있어서 안에서는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볼 수 없겠는데? 와이번들의 눈도 속일 수 있을 거야.”

바로 건물 수색에 들어갔다.

구름을 투과해 들어온 빛은 있었지만, 그 외에 다른 빛이 없어서 어두웠다.

타워팰리스 특성상 로비는 유리문으로 되어 있었는데, 강화유리인 것 같았다. 누군가 억지로 뜯어버린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기에, 그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발밑 조심해.”

석민이 트렌치건을 앞세워 먼저 나아갔다. 석민의 뒤를 따르면서 아영은 자신의 카빈총을 꺼내 장전손잡이를 당겨 조정간을 안전에서 연발로 바꾸었다.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바닥엔 깨진 유리 파편이나 잡동사니들이 많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1층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고 방화문을 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녹이 슨 덕분에, 문을 여는 순간 끼기긱-거리는 엄청난 소음이 났다.

그들은 급히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레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15층이었다. 이곳은 창문조차도 없어서 사방이 완벽한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없는 것 같은데.’

발치에 무언가 걸리자, 그는 고개를 내려 보았다.

어둠에 조금은 익숙해진 시야 사이, 무언가의 두개골 뼈가 비췄다.

빠짝 마른 장작 같은 뼈엔 뼈의 주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게끔, 양복과 분홍색 원피스가 걸쳐져 있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시신을 발견했다는 점 빼곤, 아무런 문제없이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15층의 문을 열고 들어간 석민은 15층의 방화문도 열었다.

작은 복도와, 2개의 문이 보였다. 반대편엔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그들은 각자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겼군.”

그는 총의 개머리판을 뒤로 잡았지만, 뒤에서 아영이 그의 팔을 잡아 막았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문 따기를 꺼냈다.

“그런 건 어디서 난 거야?”

“혹시나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 따기 2개 중 하나를 선택했다.

하나는 전자식 도어락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본적인 열쇠로 여는 문의 문 따기였다. 대략 3초 후 딸깍 하고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군.”

그녀가 문을 열자 석민은 트렌치건을 조준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략 평수가 45평쯤 되는 것 같았고 내부는 깨끗했다. 오랜 시간 동안 창문을 닫아놓은 덕분인지 조금 공기가 답답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먼지는 많지 않았다.

그는 방문들을 열어보았다. 가구들이 그대로 들어차 있었다. 옷장은 다 열린 채였는데, 안에 옷이 하나도 없었다.

석민은 안방으로 향했다. 그곳 또한 비어있었다.

이 집 주인들은 아마 제때 피난을 간 것 같았다.

“클리어.”

그는 헬멧을 벗은 뒤 발라크라바도 벗었다. 바짝 긴장한 덕택에 그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심하게 젖어있었다.

“여기 가족들은 제때 피난을 간 것 같군요.”

“그런 것 같군.”

석민은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를 떼어버렸다. 보는 것 자체가 거북했다.

석민의 행동에 아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알아서 납득한 듯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석민은 가족사진을 침대 밑에 던져두었다.

“옆집으로 가지.”

“어떻게 말인가요?”

그는 발코니 쪽으로 갔다.

“국내법상 옆집과 통하는 발코니는 화재 시 탈출할 수 있게 되어 있거든.”

그가 옆집 쪽으로 움직이더니 벽을 발로 찼다. 콰직 하고 소리가 나면서 벽이 뚫렸고, 그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집도 역시 비어있었다. 그는 창문으로 다가가 주변을 확인했다. 두 번째로 뚫린 집이 호수와 북쪽을 감시하기 좋았다.

그들은 이곳을 거처로 삼기로 했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밧줄을 연결해서 비상탈출로를 만들어. 계단이 1개뿐이니 어쩔 수 없어. 비상구 쪽으로 부비트랩 설치할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짐도 옮겨야죠.”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석민은 안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방화문 쪽에 전등 하나를 깨트려서 유리 조각들을 바닥에 흩쳐두었다. 누군가 이걸 밟는다면 소리가 날 것이다.

그들이 짐을 옮기고 비트로 삼는 덴 결국 5일이나 걸렸다.

물론 그 덕에 그들은 한 달 치 식량과 탄약을 옮길 수 있었고, 본격적인 준비를 전부 끝마칠 수 있었다.

***

괴성소리에 석민은 잠에서 깼다.

과거, 집주인 부부가 애용하던 침대는 이제 그의 침대가 되었다. 그는 AK-107을 들고 창가를 살폈다. 3마리의 와이번들이 공중에서 싸우고 있었다.

1마리는 피부가 노란빛을 띠고 있었고, 나머지 2마리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인간도 피부로 인종이 나뉘듯, 저 괴수들도 피부나 뿔 혹은 크기 등으로 종이 나뉘었고, 서로 다른 종들을 거리낌 없이 잡아먹었다.

“일어났습니까?”

석민이 전투복을 입고 나오자, 미리 식량을 준비하던 아영이 물었다.

그녀는 가스레인지를 부수고 만든 버너에 불을 붙였다. 가스가 나오던 분사구는 부서져 내부 땔감을 두는 곳이 되었고, 땔감은 그들이 가지고 온 고체알코올이었다.

아영은 레토르트 음식을 데우고 있었다.

군용이 아니라 민간에서 판매되는 식품으로 보였다. 그녀는 즉석 밥과 함께 그것을 끓는 물에 넣고 끓이는 중이었다.

“치킨? 미트볼? 둘 중 어느 거 하실래요? 뭐 그래봤자 둘 다 닭고기 100%인 것 같지만요.”

그녀는 성분표를 흘끗 보며 물었다.

“미트볼로 하지.”

이들의 임무 특성상, 고열량 음식이 필수이다. 그러나 한국군용 전투식량은 한국정부와 연관성을 부정하기 위해서라도 지급받기 어려웠고, 외국군용 전투식량을 지급받기로 했으나, 그 또한 구하기 힘들어서 결국 대부분 민간음식만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정부는 이런 사소한 지원도 힘들어했다.

아영은 석민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았다.

하지만 석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배부르게 먹을 수만 있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2개의 즉석 밥과 미트볼이었다. 그러나 식량을 아껴야 했기에 1개씩만 챙겨서 창가로 갔다.

한가로이 경치구경이나 하면서 밥 먹기 위해서가 아닌,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시작하자마자, 아주 운이 좋네.”

석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밥을 입 안에 넣었다.

호수 쪽 대로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석민은 눈에 힘을 주어 시야를 확대했다.

“발견했어.”

그 말에 밥을 입어 넣던 아영은 명단과 자신의 저격총을 가지고 창가로 다가왔다.

석민은 그들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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