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1화 (21/226)

[게이트 오브 서울 21화]

다음날 새벽, 석민은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그는 아직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열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였지만, 집 안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언제나 똑같군.”

석민은 침대 옆에 둔 생수통을 열고 물을 마시는 것으로 갈증과 잠을 날려 보낸 뒤, 내복과 방한 내의를 챙겨 입었다. 방한바지까지 입은 후 그는 군복을 꺼냈다. 그것은 2가지 색상으로 된, 고르카라고 불리는 러시아제 군복이었다.

성현제 대통령이 자신에게 준 것인데, 재질은 아노락으로, 찬바람뿐만 아니라 방수까지 된다.

군복을 입은 석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러시아제 군장과 티타늄으로 된 헬멧까지 썼다. 자신이 봐도 영락없이 러시아 군인, 그것도 특수부대원 같아 보였다. 과거 자신과 같이 활동하던 이들의 복장이었다.

‘그 아재들 살아있으려나.’

그는 발라크라바와 무기들을 전부 챙긴 후 방문을 나섰다. 거실엔 이미 준비를 마쳤는지 아영이 소파에 앉아서 석민을 맞이했고, 탁자에는 그들이 짊어지고 갈 더블백들이 놓여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양이었고, 일반인이라면 들 수 없을 양이 분명했다.

“양이 너무 많은 거 아냐?”

“뭐, 우리는 들 수 있잖아요?”

그녀는 한 손으로 더블백을 들어보였다. 묵직한 무게감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석민은 새삼스레 그녀도 자신처럼 능력자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의 팔보다 한참 가녀린 팔이 저런 것을 번쩍번쩍 드는 장면은 역시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 당장 이걸 옮기진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비트(비밀 아지트)를 만들 거고, 빠르게 완수한다면 오늘 밤에 다시 여길 와서 이 짐을 옮길 거예요.”

“그럼 됐어.”

석민은 무기를 챙겼다.

자신이 쓰는 트렌치건과 이번에 새로 산 AK-107, 빈토레즈, 그리고 총에 알맞은 탄환들이 담긴 백팩 등.

최대한 많이 챙기다 보니 이것만으로도 이미 무게가 장난 아니었지만, 자신의 신체능력 덕분에 그럭저럭 견딜 만은 했다.

아영 역시 SV-98이라는 볼트액션식 저격소총과 aks74u 카빈총을 챙겼고 그 외 여러 가지 필요 용품들을 챙기고 있었다. 그녀 역시 석민 못지않은 양의 짐이었다.

잠시 챙겨진 짐들을 둘러보던 석민은 이내 자신에게 담배가 없단 사실을 깨닫고 담배를 찾으러 방으로 돌아가려다 멈췄다. 그리고는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집을 나와 하늘을 보자 마치 태양이 사라진 것처럼 깜깜했다.

짐을 짊어진 둘은 말없이 게이트로 향했다.

서울, 용들의 도시

서울 방어선, 제 7게이트.

이곳은 대왕판교로를 통해 서울 강남구로 들어갈 수 있던 길을 막은 곳으로, 20센티미터짜리 두께에 높이는 3미터, 가로길이가 7미터인 매우 육중한, 미닫이 형식의 강철 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문을 지키기 위해 1개 완편보병중대가 항시 주둔 중이었고, 강화 콘크리트로 된 벙커 2개가 방어선 외부를 지키며 방어하고 있었다. 이 벙커들은 지하통로를 통해 출입이 가능했다. 또한 만일을 대비해서 대전차 방호벽이 게이트 바로 뒤쪽에 배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 주변엔 약 3미터 높이의 담벼락과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담장이 쭉 이어져 있었으며, 탄약고와 생활관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부대정문을 지키고 있던 정문당직자 송주성 상병은 깊게 담배를 음미하고 있던 중이었다. 흡연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지루한 당직을 버틸 수 없었다.

원래 보통 같았으면 후임에게 망 잘 보라고 하고는 위병소 구석에서 꿀잠이라도 때렸을 텐데, 요인 2명이 5시에 정문을 통과할 예정이라는 당직인계를 받은 덕분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시발, 오려면 내 당직이 아닐 때나 오지.’

그가 당직교대를 한 시간은 새벽 4시, 그의 전자 손목시계는 이제 4시 4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송 상병님.”

“왜?”

되묻는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듬뿍 섞여 있었기 때문에, 고작 일병인 박정원의 얼굴도 찌그러질 뻔했으나, 그는 현명하게도 재빠르게 표정관리를 하고는 말을 이었다.

“저쪽에 거수자 2명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혹시, 무장하고 있어?”

“예, 그렇습니다.”

“5시에 오기로 한 사람들이야. 수화하고 기다려.”

그는 유선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정지, 정지!”

어둠 속에서 인형들이 멈추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라면!”

“5시에 오기로 했던 사람이야. 암구호는 몰라!”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고 송 상병은 당직실로 연락했다.

“통과시켜.”

부직사관 현정화 중사가 송 상병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고 끊었다.

“문 열어.”

“예.”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러시아군?”

“입 다물어.”

박 일병이 뭐라 중얼거리자. 송 상병이 핀잔을 주었다.

그들은 여러 개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군장과 백팩, 헬멧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으니 송 상병은 저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일반인은 아닐 거라고 했지만, 이건 좀….’

여성으로 보이는 이가 송 상병에게 다가왔다.

“당직사관은 어디 있지? 아니지, 당직실이 어디야?”

“저 회색건물입니다.”

회색 타일로 외벽을 가린 건물은 내부 또한 그럴싸해 보였지만 실제론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가건물일 뿐이었다.

당직실 문을 열자, 군복에 단독군장을 하고 당직사관 완장을 찬 소위가 그들을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갈 것입니까?”

“네.”

여자가 말을 했고 남자 쪽은 묵묵부답이었다.

“보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 그럼.”

당직사관의 눈짓에 부직사관이 핫라인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각 벙커, 이상 유무보고.”

-제 1벙커, 이상 무.

-제 2벙커, 이상 무.

“게이트를 열거다. 대기해라.”

“알다시피. 만일을 대비해서 게이트는 작게 열 것입니다. 이점 유의 바랍니다.”

당직사관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언제 돌아올 예정입니까?”

“빠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3일 이내에 올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더 늦을 수도 있겠지만, 1주일이 지나도 우리가 오지 않는다면, 다 죽은 것이라 보고 상부에 보고하면 됩니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다니, 당직사관은 고개를 숙이고 혀를 낮게 찼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중대 전체가 완전 무장한 상태로 준비를 해야 했고, 야밤엔 최소 못해도 5대기는 준비해야 했으나, 비밀리에 나가야 한다는 명이 상부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당직사관은 병사들을 깨우지 못했다.

육중한 게이트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전기모터를 이용해야 했으나, 조용히 열기 위해서 힘들고 오래 걸리는 수동식 크랭크 손잡이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간신히 한 사람 정도 지나갈 틈이 생기자 남자가 먼저 앞으로 나갔다. 그는 빈토레즈를 앞세우고 있었다. 아마 총성이 나 봤자 좋을 게 없다는 판단하에 그런 것 같았다.

그가 주변을 살피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여자도 곧 따라 들어갔다.

“문 닫아.”

게이트가 다시 닫혔다.

벙커를 지키고 있던 초병은 야시경을 통해 그들이 서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멀리 어둠 속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를 향해서 사라졌다.

***

“웰컴 투 서울.”

석민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서울로 들어와 걷기 시작한 지 대략 40분 정도, 그들은 어느 주상복합건물로 몸을 숨긴 상태였다.

오랜만에 괴성을 들었다. 석민이 창가에 서서 밖을 정탐했고 아영은 커피를 끓였다.

이런 곳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고체 알코올에 물을 담은 반합을 올리고, 거기에 커피티백을 넣은 것이 전부였다. 티백보다 믹스커피가 더 간편하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가진 물이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믹스커피엔 설탕이 들어 있어서 씻을 때 번거로웠다.

“제 경험상 비트는 대충 30층짜리 건물의 15층 정도쯤에 만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드레이크들은 대부분 몸집이 커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힘든데다가 그 이상 높이의 건물은 와이번들의 둥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혹시 생각해 둔 곳이 있어?”

석민은 자신의 바지 건빵주머니에 손을 넣어 파이프를 꺼내려고 하다가, 일부러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드레이크들은 냄새를 개만큼은 아니더라도 잘 맡았기에, 서울에서 담배 피는 것은 자살행위와 맞먹을 정도로 위험했다.

“헌터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역시 한강 이남이지요. 한강 이북 지역은 이남 지역에 비해 괴수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먼저 강남지역에서 비트를 설치하고, 거기서 놈들을 처단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디가 가장 좋겠어?”

그녀는 바지 쪽 건빵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냈다. 이상하게도 서울 내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GPS나 위성사진 같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지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마저도 사실, 서울이 전쟁과 괴수들이 둥지를 틀면서 많이 망가져 어림짐작하는 정도가 다였다.

“송파구에 위치한 구 석촌 호수 근방에 30층 조금 넘는 타워팰리스가 있어요. 그 근방엔 거기 말고 높은 건물이 없으니까 거기서부터 하죠. 강변 근처에 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시다시피 고층 건물은 와이번들 둥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는 것은 근처에 다른 헌터들도 있겠지.”

“네.”

“그런데, 헌터들이 그곳에 지내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있어?”

“헌터들은 보통 20층 이상 높은 건물에 절대 들어가지 않아요. 들어간다고 해도 10층 이상 올라가지 않죠. 와이번들이 무서우니까요. 괜히 창가에 있다가 독수리만큼 눈이 좋은 그것들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그들은 지하에 숨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죠.”

“그럼 그 건물에 와이번이 있을 수 있단 건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건물엔 없어요. 와이번들도 무리생활을 하니까요. 보통 수컷 하나가 암컷 4, 5마리를 이끌고 다니는데, 거기에 새끼들까지 포함하면 한 무리당 숫자는 최대 15마리까지 되죠. 보통 와이번들이 높은 곳에 둥지를 트는 것을 선호하긴 하지만, 그 근방엔 제대로 서 있는 건물들이 없어요. 홀로 외로이 서 있는 건물은 너무 눈에 띄니까 절대로 안 가요. 이건 우리 정찰드론이 몇 년간 감시한 결과, 알아낸 정보이니까 확실해요.”

그렇게까지 말하자 석민으로서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사명, 거짓된 전령은 어떻게 찾을 거야?”

아영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는…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서?”

그는 눈을 치떴다. 그 말이 나올 줄 몰랐던 것이다.

“근거는?”

“그저, 뭐라고 해야 할까…. 여자의 직감이라고 할까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는 초병으로서의 임무도 져버리고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그를 보았다.

“……정말이야?”

“거짓된 전령은, 아무런 짐작이 가지 않아요. 석민 씨를 찾았을 때만큼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사명은, 저 망할 놈의 태풍, 요즘 과학자들은 차원의 문이라 주장하는 저것을 없애는 것이라 생각해요. 문이 열렸으니 저쪽에서 사절단이나 전령이 오지 않겠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