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0화]
본래 석민은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누군가를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경기지역에 계엄령이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통제되었고 치안도 일단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으나, 음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서울지역을 탈출한 구 서울시민들은 거의 대부분 빈곤층이 되었다.
인력사무소는 일자리를 가지기 위해 줄 서는 사람들로 넘쳐났으나, 일자리는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사람들의 노동은 값싸게 팔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총기소지합법화는 물론이거니와 전쟁으로 군수품, 즉 무기들이 마구 풀리기 시작하면서 미등록무기들이 넘쳐났고, 가격 또한 싸서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해서 불어나는 빈곤층과 총기소지의 합법화라는 제도가 겹쳐지면서 강도나 살인, 강간 등의 사건들이 일상처럼 일어났고, 범죄조직들 간의 알력싸움은 거의 내전을 방불케 했다.
물론 정부에서 계엄군과 경찰들을 통해 이런 일들을 처리하려 노력했으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총을 쏘고 손에 든 지갑이나 휴대폰을 빼앗는 행위는 10초만 있으면 충분했기에, 전부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경기지역 사람들은 괴수들이 두려워 무기를 소재했다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욱 더 무기를 소지해야만 했다.
물론, 걔 중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하거나, 총기로 인한 범죄로 추적당하고 싶지 않은 이, 혹은 총을 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이 등의 부류들도 존재했다.
그러한 이들 대신 일을 처리해주고 돈을 받던 직업이 바로 석민이 하던 해결사였다.
특히, 석민의 경우는 특별한 힘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의뢰에서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의 의뢰는 VSS를 이용해 저격하거나, M16을 이용해서 성공했다. 물론 그만큼 적도 많았다. 가령 타깃의 친우나 속한 조직, 가족들에게 말이다.
의뢰를 수행할 땐 최대한 증거물이나 목격자를 남기지 않으려 노력했고, 필요시엔 탄피까지 모두 수거하였으나, 타깃에 박힌 총탄은 회수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해결사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소개꾼’이었다.
이들이 청부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중계수수료를 비싸게 받아먹는 이유가 바로, 이런 기밀유지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최용민은 최고의 소개꾼이었다. 그가 관리하는 청부업자는 대략 20명 정도였고, 의뢰를 받을 때 전부 익명으로 처리했으며, 그의 신분이 경찰인 덕분에 업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이들로부터-그것을 사적으로 알아내려는 순간부터 불법이었으니- 여타 소개꾼들에 비해 안전했다. 게다가 모든 계약은 구두로 이루어졌기에 증거물 찾기도 힘들었다.
덕분에 2년 가까이 석민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서 곤욕을 치른 적도 없었고, 월셋집을 옮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서울에서 활동할 예정이니 서울과 가까운 성남으로 옮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사비용은 정부가 지불할 것입니다. 갑작스레 옮기는 것이기에 그에 따라 집주인이 불이익을 준다면, 그에 따른 손해도 배상할 것입니다.”
“뭐,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아영의 말에 석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레 이사라 어리둥절했지만, 나름 합당한 이유라 생각되었기에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면 어디로 옮기는 것이지?”
“성남에 정부소유 건물이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부에서 만든 안전가옥이지요.”
그녀는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정확하게 어떤 건물인지는 저도 알 수 없는데 크기는 100제곱미터, 방 2개, 화장실 2개짜리입니다. 아직 위치는 알려드릴 수 없지만, 방벽 바로 옆에 있어서 서울로 진입하기 편합니다. 안에 가구도 전부 구비되어 있어서 안락하게 보낼 수 있다더군요. 이곳에서 저와 석민 씨가 지낼 것입니다.”
“가만, 나와 지낸다고?”
“그렇습니다. 뭐, 불편하시더라도 참아주세요. 앞으로 계속 활동해야 하니까요.”
별로 거리낌이 없는 건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그녀가 딱히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기에 자신도 도저히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여자와 동거라…….
쓸데없는 상상에 빠지려다가 석민은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은 후 입을 열었다.
“그럼 이사는 언제 하지?”
“내일 바로 할 것입니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일러도 너무 일렀기에 그랬다.
“그렇게 빨리해야 하나?”
“한시라도 빨리 임무를 수행하는 편이 좋으니까요.”
“……알았어.”
작업은 빨리 이루어졌다. 애초에 그의 개인 짐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의 가구는 원룸에 딸려 있던 것이라 준비할 게 없었다. 그래서 이사를 한답시고 중형트럭을 몰고 온 아영과 일행이 민망해할 지경이었다.
“청부업자는 생각보다 벌이가 시원찮은가보군요.”
아영의 말에 석민은 어깨를 으쓱했다.
“겨우 입에 풀칠할 수준이지. 총알 값이나 총기유지비, 중계수수료까지. 거기다 뇌물로 찔러 넣는 돈까지 하면 남는 게 없다고. 게다가 이 좁은 땅에 의뢰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니까.”
“짐을 다 실었습니다.”
짐꾼으로 온 청년의 말에 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지.”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라고 해봤자 오토바이가 다일 정도로 석민의 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차량번호판에도 ‘국’이란 글자가 새겨져있더니 국방부소속차량답게 트럭은 검문소들을 전부 쉽게 지나쳤다.
“아, 보인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석민도 시선을 돌렸다.
대략 30미터 높이의 시멘트로 된 성벽이 보였다.
“서울 방어선이군.”
“지금은 방벽이라 부릅니다.”
운전을 하던 남자가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석민의 얼굴이 씁쓸해졌다. 그는 그때 이후로 서울 방어선 근처로 온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건물 사이사이에 컨테이너를 쌓고 바리케이드를 친 게 전부였는데.”
석민이 말했다.
“2년 만에 다 쌓았다고 들었습니다. 군이 서울에서 싸운 덕분이죠.”
운전하던 남자가 말했다. 어쩌다 보니 이들과 계속 말이 섞이게 되었다.
이제 갓 21살 된 청년들은 징병된 군인들이었고, 또 열심히 숨기려고 노력하는 듯 보임에도 말에서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왔다.
“당시 난민들을 거의 강제 징발하다시피 해서, 거의 반강제징용으로 방벽을 쌓았다고 들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석민은 말을 막지 않았다.
“그래, 그랬군.”
그의 대답에서 씁쓸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영이 팔꿈치로 툭- 쳐서 군인에게 눈치를 주자, 차 안은 자연스레 조용해졌다.
“도착했습니다.”
차가 도착한 곳은 교외 시골마을이었다. 정확힌 시골마을이었던 곳인데, 마을의 정중앙에 방벽이 지어지면서 버려진 마을이었다.
차가 멈춘 곳 앞에 세워진 전원주택이 보였는데, 석민은 적잖게 실망했다.
돌과 시멘트로 지어진 집은, 지붕엔 통나무로 엮여 있었으며 나무 난간이 있는 테라스도 보유하고 있었다.
겉은 그럴싸했지만, 앞마당은 잿빛으로 죽은 풀들이 석민의 허리까지 올라와 있었고, 테라스 쪽으로 통하는 새시는 깨져있었다. 아마 도둑이나 고물을 노린 고물상이 침입한 것 같았다.
그랬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안전가옥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곳이었다.
‘시발, 이거 불안한데.’
그가 걱정하는 사이 미리 열쇠를 가지고 있던 아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안으로 들어간 아영의 반응은 그의 우려와 달랐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그래?”
순간 아영의 안목에 대한 불신이 살짝 들었으나, 곧 석민도 반신반의한 마음을 품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 냉기가 올라오는 차가운 마룻바닥이 그를 맞이했다. 먼지가 많아서 바닥은 석민이 움직이는 곳마다 신발자국을 그대로 드러냈다.
거실엔 오래된 소파와 함께 TV, 기다란 탁자가 놓여있었다. 바닥엔 깨진 유리들도 널려있었다.
다행히 누가 만진 흔적이나, 도둑질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새시의 유리가 깨진 것은 사고인 듯싶었다.
“청소하고 깨진 유리만 치우면 되겠군요.”
석민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왼쪽 문을 열었다. 화장실이었다.
그 후 바로 옆에 붙어있던 문을 열었다.
탁자와 침대 그리고 빈 책장이 있는 방이었다. 한쪽 구석엔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선풍기도 놓여 있었다. 벽엔 유화로 그려진 듯 보이는 풍경화가 걸려있었고, 적당한 크기의 창문엔 커튼도 달려있었다.
벽지 모양도 그렇고, 내부 가구나 조명 등을 보건데 이 집의 설계자는 어지간히도 유럽문화를 흠모하는 것 같았다.
석민의 안목이 낮아 이게 유럽풍이 아니라고 해도, 일단 서양풍인 건 확실했다.
“이 방은 내가 쓰지, 그쪽 방은 어때?”
“좋네요. 훨씬 넓고 방안에 화장실도 있고, 아늑하고 이상하게 고상해 보이기까지도 하네요. BOQ(장교용 독신자 숙소)보다는 100배는 좋아요.”
“그럼 잘 됐군.”
부엌은 그냥 평범했다. 전자레인지만 추가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아영이 병사들을 불렀다. 그녀는 집에 딸린 창고에서 낫 3개를 찾아 병사들에게 주었다.
“짐 좀 옮기고 주변 제초 좀 해줘.”
병사들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예? 저희보고 제초까지 하란 말입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아영이 바로 지갑을 꺼내서 병사의 손에 돈을 쥐여 주었다. 5만 원짜리가 대충 6장이었다.
물가가 오른 세상이긴 하지만, 30만 원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알바 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거창하게 할 필욘 없어. 단지 저것들 보기 안 좋으니까 대충 잘라놓고 자른 것은 어디 구석에다가 버려.”
“바로 하겠습니다.”
“응, 수고해.”
병사들이 제초하는 동안 그녀는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짐은 석민보다 3배는 많았지만, 이 역시 그리 많은 편은 아니어서 20분쯤 지나자 다 옮길 수 있었다.
석민과 아영은 병사들이 마저 제초하는 동안 집 안도 청소했다.
대충 청소가 끝난 석민은 파이프 담배를 들고 테라스로 나왔다. 담배 연기 사이로 열심히 제초 중인 병사들이 보였다.
내일, 테라스 새시의 유리까지 교체하고 나면 그럭저럭 괜찮은 모양새를 갖출 것 같았다.
그때, 그의 눈에 그릴이 보였다. 그 주변에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도 있었다.
석민은 가까이 다가가 그릴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먼지는 뽀얗게 쌓여 있었으나, 녹이 슬진 않았다.
파이프의 담배를 털어낸 석민은 그릴 뚜껑을 닫고는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그날 밤,
석민과 아영 그리고 병사들은 삼겹살 파티를 벌였다.
석민이 사 온 소주 4병이 그들 사이에 친근함이랑 윤활제 역할을 해주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는 건지 병사들은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쩝쩝거리며 고기를 포식했고, 아영은 연신 미간에 주름을 만들면서도 소주를 들이켰다.
대략 한 끼 식비로 35만 원이나 지출해야 했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석민에게 이 정도는 별거 아니었다.
“누가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들 먹어. 너, 잔이 비었군.”
석민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소주병을 들었다.
현재 군은 나라의 녹녹치 않은 사정으로 자율배식에서 정량배식으로, 1식 4찬에서 1식 3찬으로 바뀌었으며, 지급받던 간식이나 부식도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때문에 그들은 항상 배고팠고, 그런 사정은 석민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군인들에겐 좀 더 무른 사람이 되었다.
이런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아영은 석민의 새로운 모습에 살짝 놀랐다. 매번 그를 볼 때마다 새로운 이면을 발견하고 그를 다시 보게 되는 듯했다.
다만, 모두 행복감을 느끼는 이 만찬에서 딱 한 사람만이 불행해하고 있었다.
바로 차를 운전해야 하는 운전병이었다. 유일하게 그의 앞에만 소주잔이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