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9화 (19/226)

[게이트 오브 서울 19화]

서울은 위험했다.

땅엔 드레이크라 불리는 것들이 수십, 수백 마리씩 몰려다니며 서로를 사냥했고, 하늘엔 와이번들이 커다란 몸을 이끌고 날아다니며 불꽃을 내뿜었다.

드레이크들에겐 일반적인 5.56밀리 탄환에 통하지 않았다. 겉면을 뒤덮은 비늘이 단단했고 가죽이 질겨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잡으려면 7.62밀리 나토탄, 그것도 철갑탄으로 수십 발을 갈겨대야만 했다.

와이번은 드레이크에 비하면 가죽이 상대적으로 덜 질겨서 5.56밀리 탄환이 먹히긴 했으나, 순간 비행속도가 최대 700m/s 정도 되었고, 몸체 자체는 드레이크보다 더 단단해서 상대하기보다 차라리 추락할 때 스스로 목이 부러져 죽길 기도하는 게 더 나을 판이었다.

그것들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진짜 드래곤이라 불리는 것들 또한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사냥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서울수복작전 때조차도 말이다.

그런 것들을 피해서 그런 놈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헌터를 찾아 사냥하라니.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아영이 말한 사명이 아니었으면  석민은 서울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추모가 3절을 아십니까?”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자, 대통령이 물었다.

3절? 대통령이 그것을 알고 있었나? 그건 금지곡인데?

“……그건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죠. 원작자는 2절까지만 지었으니까. 3절은 나 같은 생존자들이 지었죠. 어느 원사가 지었다는데, 이름은 왜인지 잊혀 졌죠.”

“불러볼까요?”

갑자기 웬 노래인가? 하지만, 석민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노래 지은 그 원사가 제 친구였습니다. 이석현, 그 친구는 4년 전 서울에서 후퇴할 때 후위대로 남아 있다가 죽었죠.”

‘그래, 그렇군. 그래서 그 가사가 나온 건가?’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러볼까요?”

두 사람은 콧노래로 박자와 가락을 잡은 후 입을 땠다.

“마지막 총성이 울리고

냉혹한 이별의 눈빛만 남는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가족과

애인의 안녕만이 가득하지

아, 신이시여,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의식이 흐릿해져 갈 때

빌딩 위에서 붉은 석양이 비춘다!

피 튀기며, 취한 채로

울부짖어라, 늑대같이!

친애하는 나의 조국이여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피 튀기며, 취한 채로

울부짖어라, 늑대같이!

친애하는 나의 조국이여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3절은 후렴이 2번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석민은 코를 살짝 훌쩍였다.

그 당시 잃었던 전우들과 가족이 생각났던 것이다.

“저는 조국이 국민들에게 무언가 해주길 원합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 있었고 나라가 예전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합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는 목이 마른 지 커피를 마신 후에 다시 말을 했다.

“그래야 희생된 자들에게 최소한의…….”

“그만.”

석민은 손을 뻗어 현제가 그만 말하게 했다.

“……잘 알겠습니다.”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국심이 있어서? 아니다. 그에겐 애국심은 없다.

“그거 아십니까? 전 정부를 아주 불신하고 있습니다.”

“……잘 압니다. 전임자와 행정관, 위정자들이 국민들을 버리고 자기들만 살아서 도망치려고 했었죠. 하지만, 하지만 전 다릅니다.”

하지만, 대통령 성현제의 진심이 빙하 같던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녹게 만들었다.

“…당신을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현제는 두 손으로 석민의 두 손을 잡았다.

“힘든 결정을 하셨습니다. 아영 대위도 말이죠.”

“아영 대위가 무슨 결정을 하였다는 것입니까?”

“대위의 주민등록증과 군적은 삭제될 것입니다. 최석민 씨 혼자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도 같이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의 계획이었죠. 대위는 조국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로 하였습니다.”

석민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대단한 여자군, 그는 아영을 다시 보았다.

“현재 총 12기의 원자로가 드래곤하트를 이용한 발전소로 개조 중입니다. 최소 2달이 걸리는 일이고, 차후엔 전국적으로 확대를 할 예정입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그렇지만, 나라에서 확보 중인 드래곤하트의 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드레이크의 드래곤하트이고 한 달에 30개 정도 확보 중인데 현재 우리가 파악하는 바로는 한 달에 무단으로 방출되는 드래곤하트의 양은 40에서 50개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짓을 하는 자들을 처리하고 방출되는 드래곤하트들을 확보한다면 우리는 매우 안정적인 발전기 연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화석에너지나 원자력에너지보다 훨씬 값싼 이것들로 공장을 돌리고, 조선소를 돌리는 방식으로 우리는 타국보다 더 싼 가격으로 해외에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환율이 너무 많이 오른 상태이기 때문에 수출이 예전처럼 회복된다면, 우리는 선조들 때보다 더 빠르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제 말을 잊지 말아 주세요. 최석민 씨, 앞으로 많이 힘든 싸움이 될 것입니다. 괴롭고 일에 회의적일 때 다시금 오늘의 일을 생각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잠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초반의 암울했던 것과는 달리 이야기 내내 밝은 분위기였고, 헤어질 땐 뜨거운 악수도 하였다.

석민이 라운지에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아영이 그의 옆에 붙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최석민 씨.”

“당신도.”

그의 말투가 상당히 부드러워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석민을 보았다. 그들이 로비로 나오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김현주 소위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석민이 물었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벌써 4시 30분을 지나고 있었고, 샌드위치 몇 개로는 찰 리 없는 배에서 허기를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저기 부대찌개 집에서 같이 식사나 할까요? 제가 사죠,”

석민은 활짝 핀 웃음으로 간만에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

성남시, 판교역 사태 이후.

천국의 문 교단 성남 교구 사무장인 김지형은 시신에게서 얻은 부검결과를 가지고 이발소로 향했다.

이발소 창문엔 불투명한 푸른색 필름이 붙여져 있었고, 문 앞엔 총을 든 남자가 지키고 서 있었다.

그 남자는 김지형을 알아보는지 살짝 고개를 까딱이고는 몸을 비켜 문을 열어주었다.

이발소 안은 어두컴컴했다. 좀 넓은 내부에 비해 천장엔 형광등 하나만이 달려있었고, 천으로 된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칸막이 틈 사이로 서걱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들려왔다.

김지형은 장막을 들추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단 하나 놓여있는 의자 위엔 교구장 박재만이 머리카락 손질을 받고 있었다. 김지형은 짧게 목례를 했다.

천국의 문 교단은 각 시마다 교구를 배치하고, 교구 목사를 임명하고 있었다.

성남교구에선 박재만이 교구목사였고, 이 사태는 성남에서 일어났으니 그의 담당이 맞았다.

김지형은 살짝 짜증에 인상이 찌푸려지려는 것을 다잡았다.

“……확인 결과, 러시아제 9X39MM탄환입니다.”

“그래?”

박재만은 서류를 대충 흘겨본 후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이발 중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가 싶기도 했지만, 머리 자르는 여자 이발사가 매우 가까이 붙어있어서 볼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여자 이발사는 흰색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가운 안에는 아주 짧은 검은색 핫팬츠와 속이 거의 다 비치는 탱크톱 하나만 입고 있었다.

본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화장을 한 그녀는 짝, 짝- 껌을 씹으며 박재만의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새하얗게 날이 선 가위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사각사각거리며 박재만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감과 동시에, 그녀의 가슴이 박재만의 머리를 비비며 지나갔다.

이곳은 일반 이발소가 아닌 퇴폐이발소였다.

천국의 문 교단에겐 유감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박재만은 전형적인 부패한 목사였고 신앙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존재였다.

그가 종교직에 종사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게 돈이 되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교구장 앞에서 사건에 대해 보고하는 김지형은 이 일련의 상황들이 익숙한지, 여자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그저 서류의 내용을 대충 요약해서 전달할 뿐이었다.

“그것은 러시아제 아음속탄환으로, 주로 근거리 혹은 중거리 저격을 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용하는 총기는 VSS나, AS VAL 등 종류가 별로 많진 않습니다.”

“그래? 그럼 찾기 쉽겠군.”

여자가 앞머리를 자르는데 상체를 잔뜩 밀착시킨 덕분에 가슴이 그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교구장의 손이 자연스레 여자의 허벅지에 가더니 이내 둔부를 주물렀다.

“거기에, 지난번에 우리가 대량으로 물건을 주문했던 무기상인 있잖습니까?”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멈칫거리더니 박재만은 여자를 살짝 밀어 물러나게 했다.

“김상덕이었나? 걔가 왜?”

“물건을 납기일이 됐는데도 보내지 않아서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받지 않아서 결국 우리 쪽 교인들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낸 사람을 비롯해서 그들 조직원들 전부, 죽어있었습니다. 죽은 자들에게서 탄환을 빼내서 조사한 결과, 같은 탄환이었습니다. 교구장님, 아무래도 어떤 불신자가 의도적으로 우리의 과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즉, 동일인물로 보입니다.”

등받이에 편히 기대고 앉아있던 박재만은 몸을 일으켜 세워 정면에 배치된 거울을 보았다. 머리카락은 이미 다 잘려 있었다.

“잘 잘랐네. 면도 준비해.”

“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자는 매우 공손하게 대답하고는 칸막이 밖으로 나갔다. 여자가 사라지자 박재만은 김지형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 총탄은 아음속이라 하지 않았나?”

박재만이 손을 내밀자 김지형이 보고서를 건넸다. 그는 서류를 매우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부패한 목사인 그가 교구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무기 조달능력을 교주가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적들이 비밀리에 이리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정부도 군경에 우리 쪽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네 무언가 한 개 빼먹은 것이 있군.”

박재만은 서류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고 김지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어떤 것 말입니까?”

“이 무기상인 같은 경우는 일부 무기를 빼고는 무기와 탄약이 없어졌다고 되어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엔 동업을 하는 경쟁자나 갱들이 강도질한 것 같은데? 아음속탄환이니 소음기를 사용해서 몰래 저격을 했을 테지. 우리 무기공장이나, 무기 보관고의 사건과는 별개 같은데? 이쪽은 용의자가 한, 두 명인데 김상덕 쪽은 한두 명이 일을 벌이기엔 너무 규모가 크지 않나?”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었지만, 김지형은 그 흔하지 않은 그 러시아제 탄환을 갱들이 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동의하진 않았지만, 걸고넘어져 봤자 좋을 것 같지 않았기에 그냥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때 여자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교구장님, 면도하겠습니다.”

박재만은 서류를 다시 김지형에게 건네고는 도로 등받이에 편히 기댔다.

여자가 등받이를 살짝 뒤로 내린 후  뜨거운 물수건을 펴서 그의 얼굴을 덮으려는 순간, 박재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크게 손해를 보았으니 우리 창고와 무기공장을 파괴한 녀석은 가만둬선 안 되겠지. 무기 납품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 교인들에게 다시금 헌금을 내달라고 부탁해야겠어. 자네는 그쪽에만 집중해. 난 제2회 대성전(大聖戰)회의 때문에 바빠. 이번에 교주님께서 오시기로 했으니 더욱 성심성의껏 준비해야지.”

그런 놈이 여기서 노닥거린단 말인가?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인데? 위기의식이라곤 전혀 없군.

탄천의 창고가 폭발하던 당일 박재만은 교구장 전용 개인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일 때문에 바로 보고를 받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상은 이 여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보고받지 못했었다.

판교에서 무기공장이 터질 때는 룸살롱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전화도 안 받는 바람에 2시간이 지나서야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김지형은 속으로 실소를 날렸으나,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 총알을 사용하는 무기가 별로 없다고 했지? 그럼 찾는 것은 쉽겠군. 할 수 있겠지?”

김지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죽은 사람이 꽤 많아서 그런지 교인들이 동요하고 있는 기색입니다.”

“내 이름 써서 공고로 걱정하지들 말라고 해. 그리고 죽은 이들을 위해 명복을 비는 것도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제가 직인을 써도 되겠습니까?”

교구장은 대답 대신 손짓을 까딱이는 걸로 답했다.

교구장이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대자, 그의 얼굴에 뜨거운 수건이 얹어졌다. 여자는 작은 그릇에 면도용 뜨거운 크림을 만들고는, 면도칼도 뜨거운 물속에 담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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