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8화 (18/226)

[게이트 오브 서울 18화]

“이 사람들 말대로 경기도는 다른 동네보다 치안이 개판이니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되죠. 그리고 치안이 그렇게 나쁜 동네 아니잖아요. 남미나 아프리카만큼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도 아닌데.”

석민은 그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당장 그가 청부 일을 하면서 죽인 사람 숫자가 세 자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심지어 앞으로 몇 놈만 더 죽이면 앞자리 수가 2가 되는 고지도 눈앞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자신은 살인을 즐기는 망나니가 아니다. 헛웃음을 흘리며 석민은 창가 근처에 앉아 창밖을 보는 이에게 다가갔다. 솔직히 이 넓은 라운지에 이 남자 말고는 앉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대통령님.”

아영이 경례를 하였다. 대통령이라 불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석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통령 성현제입니다.”

대충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로, 턱살이 쏙 들어가 있어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였지만, 머리숱과 눈썹의 숱이 짙었고 혈색은 좋은 남자였다.

그래,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었다.

“임무를 수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부른 이유가 그것뿐입니까?”

석민은 악수를 받지 않은 채 쌀쌀맞게 대답했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석민에게 그리 유쾌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원래부터 정부 측 사람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탓도 매우 컸다. 물론 배고픔도 그의 까칠함에 한몫했다.

대충 그의 반응을 예상했었는지 성현제는 불쾌한 기색도 없이 손을 치우고는 자리를 권했다.

아영은 그런 두 사람을 잠시 살펴본 후 물러났다.

“물론 그건 아닙니다.”

가식이 섞이지 않은 사람 좋은 미소가 순간 석민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뻔했으나, 석민은 눈에 힘을 주면서 날 선 눈초리를 풀지 않은 채 성현제가 권하는 자리에 조심히 앉았다.

“듣자하니 식사하지 않으신 것으로 압니다. 점심이긴 하지만, 이 호텔의 주방은 문제가 있어서 폐쇄된 상태이기에 자리 특성상 브런치를 대접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커피도 한잔하구요. 카페라테?”

“네, 뭐 좋죠.”

석민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저런 가식 없는 미소를 본 지 얼마 만인가? 한편으론 정치인이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렇게 웃는 얼굴을 향해 계속 침 뱉을 정도로 자신의 낯짝은 두껍지는 않았다.

현제가 종업원에게 카페라테 2잔과 샌드위치 6개를 시키고는 두 손을 깍지 끼며 사뭇 진지한 얼굴로 석민을 보았다.

“이번 일을 맡아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신을 뵙고자 한 이유는, 당신이 앞으로 수행할 임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말이죠. 라고 덧붙이며 현제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만큼 중요한 것입니까?”

“그렇죠. 아주 중요합니다. 이 나라의 백년대계가 걸린 문제입니다.”

백년대계씩이나?

석민은 성현제가 너무 과장되게 말하는 것 아닌가 하고 눈을 찌푸렸다.

석민의 표정을 살피던 현제는 테이블 밑에서 작은 손가방을 들어 올리더니, 거기서 자주색의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꺼냈다. 크기가 사과만한 그것은 마치 고기 덩이처럼 비닐에 진공포장 되어 있었다.

“당신은 서울수복작전에서 살아남았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괴수들에게 있는 거죠. 우리는 드래곤하트라 불렀죠. 용같이 생긴 것들을 잡으면 몸속에서 나왔으니까. 반짝이는 것이 꼭 보석같이 생겼지만, 보석처럼 단단하지 않고 무르며, 공기에 기화되는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이상한 물건이었죠.”

“그리고, 당신은 헌터들에 대해서 아십니까?”

“이런 일 하는 사람인데, 모를 리가요.”

석민이 그렇게 대답하고 성현제를 쳐다보자, 그는 마치 대답을 재촉하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에 나타난 괴수들이 서울 방어선을 뚫지 못 하도록 막기 위해, 예방 차원에서 서울에 들어가 괴수들을 사냥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걔네가 왜요?”

“그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성현제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는 허리를 숙여 석민에게 좀 더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대통령씩이나 되는 자가 저러니 무언가 매우 중요한 말을 들을 것이란 예감에 석민도 약간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지만, 성현제는 석민이 가까이 얼굴을 대기가 무섭게 허리를 도로 폈다.

“아, 커피가 왔군요.”

종업원이 커피와 샌드위치가 담긴 쟁반을 가지고 왔다. 샌드위치는 모서리를 자른 식빵에 얇은 햄과, 슬라이스치즈만이 들어있는 아주 기본적인 모양새라, 석민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제가 6개 시킨 것입니다. 저는 빵 모서리가 좋은데 말이죠. 게다가 빵 껍질에는 항암물질이 풍부하다던데……. 아, 드세요. 커피에 시럽 넣어드릴까요?”

성현제는 시럽이 담긴 작은 주전자를 들었지만,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 호텔은 시럽 넣은 커피가 맛있는데 말이죠.”

작게 중얼거리던 그는 자신의 커피에만 시럽을 넣고는 말을 이었다.

“드시면서 제 말 들으세요. 헌터들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바로 이 드래곤하트를 수집하기 위함입니다.”

“이게 뭐라도 된답니까?”

석민은 시큰둥하게 되물으며 두 번째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지만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엄청난 무언가가 됩니다. 바로 자원이 되죠. 핵조차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한 놈이죠.”

이딴 게? 라고 해석할 정도로 그의 표정이 변했다.

“2년 전에 우리 과학자들이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핵 원자 같은 놈입니다. 적당한 충격을 줘서 깨트리면, 엄청난 고열을 일으키며 타오르죠. 폭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핵분열처럼 고열을 일으키죠. 그렇게 일정한 고열을 내며 오랜 시간동안 타오릅니다. 너무나 안정적이라 마치, 마치……. 뭐랄까, 가스불 같다고 할까요?”

석민은 저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흘렀다.

“핵연료처럼 방사능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제어봉이나 냉각수도 필요 없고요. 이만한 크기의 드래곤하트 하나면 100만킬로와트짜리 증기터빈을 돌릴 수 있습니다. 최고의 차세대 연료라 할 수 있죠.”

“……그렇군요.”

그는 드래곤하트를 다시금 보게 되었다. 현제의 말대로라면 이건 정말 차세대 연료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드레이크, 그러니까 그 네 발 달리고 날개 없는 놈들에게서 추출한 것으로 보통 1주일간 불타오릅니다. 날개 달린 것들은 한 달이나 갈 수 있고요.”

“거대 용들은요?”

그는 손을 저었다.

“그건 잡아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죠. 하지만 우리 과학자들은 더 오래 갈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죠. 예, 그렇죠. 이미 이것을 기반으로 발전기 연구가 상용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는 순간 우리나라는 중동의 산유국들처럼 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경제 또한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껏 들뜬 얼굴로 말하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가라앉더니 내면의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것을 노리는 놈들이 많습니다. 외국 정부들, 기업들, 그리고 그들의 끄나풀인 용병들이 우리의 부를 노리고 있습니다. 정부 속에 있던 매국노들이 알량한 돈에 눈이 멀어 우리 발전기술을 팔아버렸죠.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난 서울에 있는 괴수들을 사냥하는 것과, 이 드래곤하트 채취권을 국유화하고 싶었지만, 도처에 숨은 자들이 서울로 몰래 들어가 괴수들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서울에 생긴 저 가증스런 태풍 때문에 이미 크나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수도를 잃었고 경기도는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장소가 되었죠. 그것은, 아니 이 드래곤하트는 이 나라의 저주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 한강의 기적,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을 뛰어넘는 유사 이래의 가장 큰 부를 거머쥘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약해졌다고 까불고 목에 힘주는 북한 김 씨네를 다시 입 다물게 할 수 있다, 이겁니다.”

“아니, 잠시만.”

석민이 손사래를 쳤다.

“지금 하시는 말씀은…. 이것을 독점하기엔 우리나라는 외국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제2의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며 목에 힘주는 저 오만한 중국과, 북방의 러시아, 전통적 우방국이자 많은 물자지원을 아낌없이 준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그들은 이미 비밀리에 내국인 헌터들을 고용해서 드래곤하트를 모으고 있으며, 우리정부에게 지분을 요구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죠. 외국기업들과, 심지어 국내기업도 비밀리에 드래곤하트를 모으고 있습니다. 허나, 말했듯이 저는 이것을 국유화시킬 것입니다. 서울과 경기지역을 덮고 있는 저 망할 구름은 우리나라에만 있고 우리나라만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힘이 약해졌는지 아시잖습니까? 일개 사이비 교단 따위가 사병조직을 조직할 정도니까요.”

그는 북받쳐오는 감정으로 안면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얼핏 차분해 보이는 눈에도 진실 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현 정부는 허가받지 않은 헌터들이 서울로 진입하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있습니다. 또 채취한 모든 드래곤하트는 대한민국 정부만이 살 수 있도록 제도를 확립해 놓았죠. ……예, 과거 정부의 추곡수매제 같은 거죠. 그러나 잘 지켜지지도 않고, 모든 것들을 막기엔 서울이 너무 넓습니다.”

석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감시를 한다고 해도, 이런 시대에선 부패한 군인에게 돈만 좀 찔러 넣어도 게이트를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게 분명했다.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했고.

그래서 단속이 힘드니까. 처리해 달라는 건가? 서울은 무법지대이니까?

“그러니까.”

석민은 샌드위치를 그만 먹고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내가 국가를 위해서 할 더러운 일이라는 게, 정부 말고 외국 정부나 기업에 고용된 헌터 놈들을 사냥해 달라?”

석민의 말이 도로 반말로 바뀌어 버렸지만 성현제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 정부와 연관성을 없애기 위해 러시아군으로 위장하려는 것이겠군. 아마, 내 신분을 그들이 고용한 헌터쯤으로 하겠지?”

현제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현 정부의 상황을 중국의 불법조업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자면, 중국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조업하거나 국내산 해산물을 돈 주고 사먹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죠.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 정부의 항의 따윈 콧방귀나 끼고 넘겨버리고는 우리 해경의 단속에 대해서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항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무법자죠. 타국정부와 기업들에게 고용된 헌터들도 무법자입니다. 무법자들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직접 나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석민은 여전히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대통령을 보았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는 알았다.

자신이 조금 특별한 힘을 가졌다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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