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6화]
물론 입고 있던 옷에 들어있던 돈들은 다 따로 챙겼다.
보통 상가건물은 철저하게 관리하여 부랑자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편인데, 이 건물은 사전에 조사한바 관리가 부실한 편이었고, 덕분에 문을 쉽게 열 수 있었다.
벗은 옷들은 잘 접어서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운 뒤 가방을 메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경찰들은 아직 따라오지 못한 것 같았다.
석민은 옷들을 메인입구 좌측에 있는 헌옷 수거함에다가 넣고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무인 택배보관함 번호를 눌렀다.
힐끔 시선을 위로 올리자 그의 머리 위에 설치된 CCTV가 보였지만, 그동안 주변을 관찰하면서 미리 가짜로 확인한 것이었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무인 택배보관함 안에는 그가 사전에 미리 넣어두었던 오토바이 헬멧이 들어있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 들었다.
헬멧을 꺼낸 보관함에 헬멧 대신 돈이 든 가방과 가방으로 위장한 저격소총을 넣었다.
석민은 자신의 눈을 살짝 가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제법 흘린 땀에 절어 머리가 떡 져있었고 모자를 쓴 자국까지 나 있었지만, 헬멧을 쓰자 감쪽같이 숨겨졌다.
얼굴도 다 가려져 있었고, 옷도 바뀌었으니 눈썰미가 좋은 경찰이라도 그를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대충 옷매무새 정리가 끝난 석민이 보관함의 문을 닫기 무섭게 뒷문이 열리며 경찰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얼굴 가득 땀으로 가득한 그들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혹시 여기에 파란 모자를 쓰고 재킷을 입고 청바지에 검은 검정 가방을 가진 남자를 못 보았습니까?”
경관의 물음에 석민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뒤따라 들어온 의경 몇몇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꼼꼼히 내부 수색을 진행했으나, 변기 물탱크에 모자를 숨겨놓을 것이라 생각진 못했는지, 그들은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석민은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유유히 밖으로 나왔다.
잠깐 사이 사방에 경찰들이 쫙 깔려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옷을 처리하다가 걸렸을 것이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경찰들은 지나가는 사람마다 일일이 석민의 인상착의를 물으며 수색을 하고 있었고, 그중 일부 인원들은 높은 곳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 사이를 지나 석민은 대로의 신호등 앞에 섰다.
몇몇 경찰들이 석민의 신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키와 체격이 무전기로 전달받은 사항들과 비슷했으나, 인상착의가 전혀 달라 그런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면서도 딱히 석민에게 접근하진 않았다.
그들 중 경관으로서 경험이 많고, 의심 또한 많은 경관 하나가 석민의 신발을 유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신고 있던 신발은 오래된 흰색 농구화였는데, 옷은 갈아입었어도 신발까진 미처 갈아 신지 못했기에 쫄린 석민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오 경위님, 뭐하십니까?”
마침 그 경관을 부르는 다른 경관에게 시선이 돌아갔고, 그 사이 석민은 빠르게 길을 건너 판교역으로 향했다.
그리곤 판교역에 주차한 자신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는 시동을 걸어 출발 준비를 마치고는 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성한, 끝났어.”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아영은 석민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물이요?
뭔 소리인지 몰라 아영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자, 석민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내일 뒤에 다시 보도록 하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새로운 소방차들이 불이 난 빌딩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반대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석민은 자신의 집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
아영은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뭐지? 무슨 선물을 준비했다는 거지?’
그녀는 카페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물론 석민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용했던 주상복합건물까진 보지 못했지만, 석민이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봐서 무언가 필요 이상으로 성공을 한 것 같은데.
아영은 밖으로 나오던 석민의 가방이 들어갈 때에 비해 많이 묵직하던 것을 떠올렸다.
‘설마, 원성한의 재산을 확보한 건가?’
사람이 많고 보안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생각하여 대통령도 아무 말 하지 못 했던 곳인데 그걸 성공했다는 건가?
추리를 마친 아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졌다.
생각보다 잘해주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돈이면 대통령에게 확신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가방의 크기와 무게를 보건데 적진 않겠지.’
임무가 끝나는 대로 보고를 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아영은 이렇게 된 거 내일 석민과 만난 후에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은 커피와 얼음을 전부 씹어 먹은 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할 일이 있었다.
혹여 있을지도 모를 석민에 관한 단서들을 전부 처리해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선 아영의 눈에 경비업체가 사용하는 출동차량 특유의 노란 경광등이 들어왔다.
흰색 상의에 파우치가 달린 바디아머를 두르고 감색 제복 바지를 입은 경비들이 검은색 방탄모를 쓴 채 노란 경광등이 달린 흰색 밴에서 쏟아져 나왔다.
겉으로는 경비업체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아영은 저들이 천국의 문 교단의 행동대인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검은 연기가 나오는 공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을 관찰하던 아영의 눈에 한 사람이 띄었다.
상당히 잘생겼고, 준수했다.
아영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 남자는 고개를 돌려 아영 쪽을 향해 쳐다보았다. 아영은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직감 상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상당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분명했다.
천국의 문 교단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종교인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당연히 그만큼 인재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저 정도로 특출 나 보이는 인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역시 저것들은 그냥 둘 수가 없구나.’
아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할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
다음날 석민은 무인 택배함에 찾아가 총과 돈들을 도로 챙기고는 아영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아직 화재의 영향과 총격사건 때문에 그 일대가 경찰들로 득실거렸지만, 석민은 매우 뻔뻔하게 그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오토바이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간 석민은, 오토바이에 몸을 실고도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고는 아영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움직였다.
이번 만남은 안전가옥으로 분류되는 성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석민은 묵직한 가방을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최대한 가져온 것이고 가져오지 못한 건 전부 불태웠어. 돈 좀 세볼까?”
아영이 살면서 처음 본 액수의 돈이었다. 저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감추지도 못하고는 그것을 하염없이 쏘아보았다.
한 다발에 500만 원씩 해서 총 325다발, 총 16억 2천 500만 원이었다.
거기다 여기에 가져오진 않았지만 사실 석민이 따로 챙긴 돈, 3천 500만 원도 있었다.
“김성태의 재산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성한의 재산 이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 정도면 대통령님께서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실 것입니다.”
아영은 돈들을 전부 다시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오히려 정부입장에선 석민 씨에게 큰 은혜를 받았네요.”
그 말에 석민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긴 했지만 속으로 조금 우쭐해졌다.
“하지만, 아주 완벽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아영의 말에 석민은 허리를 숙이고 긴장을 하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석민은 자신의 일에 자존심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길진 않지만 자신이 알아 온 아영으로선 쓸데없이 기 싸움을 걸거나, 트집 잡을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분명 진짜 어떤 문제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영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품속에서 몇 장의 사진과 함께 USB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무인 택배함에 설치된 CCTV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였습니다.”
‘젠장,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석민은 사진을 들어 보았다.
옷을 갈아입고 택배함에 가방과 헬멧을 꺼내는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게다가 화질도 좋아서 얼굴이 매우 또렷하게 보였다.
자칫 잘못하다가 정체가 탄로 날 뻔했다.
만약에 그랬다면 자신은 여기에 유유자적하게 앉아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원본은 없애 버렸고 USB에 담긴 것은 스캔본입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물론 대통령님에겐 절대로 보고하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 마세요. 석민 씨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 것입니다.”
“고마워. 이거 그러면 서로 쌤쌤이 된 거네.”
석민은 라이터를 꺼내 사진에 불을 붙인 뒤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고는, USB를 들어 손가락 악력으로 박살 내버렸다.
필름이 타들어 가면서 연기와 함께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나자, 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연기를 내보냈다.
“그럼 이제.”
“네, 조만간 우린 서울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건배나 할까요?”
그 말에 석민은 손뼉을 쳤다.
“좋지.”
아영은 부엌 쪽으로 가서 찬장에 구비되어 있는 위스키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는 유리잔을 꺼내서 닦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민 씨.”
그녀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잔에 담은 후 위스키를 따라 석민에게 잔을 건네고는 자신도 잔을 들었다.
“나도 잘 부탁해.”
석민은 잔을 들어 건배를 했다
대통령 성현제
아영의 보고를 독대로 받은 대통령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이 일을 할 정도면 이제 실력을 의심할 필요가 없겠어. 무식하게 총만 쏘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
“그렇습니다. 그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관도 있기 때문에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동의하듯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한번 그를 만나봐야겠군.”
“예?”
대통령이 설마 그를 만난다고 할 줄은 몰랐기에 아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님, 임무의 특성상 그를 만나는 것은 다른 국가나 정보기관의….”
“걱정 말게, 조용히 만날 생각이니까. 보안도 걱정 말고.”
“……알겠습니다.”
“아영 대위가 그를 설득했겠지만,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만나서 몇 가지 동기부여를 더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대통령이 말에 아영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언제 만나시는 게 좋겠습니까?”
“아무래도 내일 바로 만나는 것이 좋겠지. 내일 정오에 보는 것으로 하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가보겠습니다.”
아영이 대통령 집무실을 나와 문을 닫자마자 나이가 많은 초로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영 대위, 나와 이야기 좀 하지.”
“네.”
남자의 뒤를 따르는 아영의 인상이 살풋 찌푸려졌다.
***
남자는 아영을 데리고 호텔에 자신의 집무실로 만든 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앉혔고 그도 맞은편에 앉았다.
“대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난 대위가 마음에 안 들어.”
“안보실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미는….”
안보실장이라 불린 인물, 전진석은 아영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관은 일개 해군대위이지만, 직함이 거창하지.”
안보실장의 말에 아영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