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5화]
연단 바로 옆에 문이 있었는데 아마 원성한 전용 출입구가 분명했다.
석민은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냥 바로 쏘고 치울까, 잠시 생각했었지만, 그가 가진 총알의 개수보다 신도들의 숫자가 더 많았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함부로 사격을 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원성한의 설교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끝으로 성남에서 있을 대회에 모두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제 모두 기도 합시다.”
그들은 ‘오, 주여.’ 하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도문은 마치 방언기도처럼 눈을 감고 자신의 소망을 읊어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서서히 무아지경으로 빠져 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합창하는 모습이 매우 기괴하여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석민 또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의뢰를 진행할 때에는 되도록 침착하고 감정을 숨기려 노력했으나, 이런 장면에선 자신 또한 혐오스러운 감정을 숨기기 힘들었다.
석민은 원성한이 기도를 하면서 너무 심취한 나머지 단상을 일정한 간격으로, 주먹으로 쿵쿵 치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신도들이 빌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 소리가 매우 컸는데, 원성한이 주먹으로 단상을 치는 소리 또한 매우 커, 잘하면 권총 소리가 묻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가진 소음저격총도 나름 총치고는 소리가 작은 편이었으나, 소음기를 낀 권총만큼 작지는 않았다.
잠시 기도소리를 듣고 있던 석민은 결국 일을 진행하기로 결심하고는 문을 조금 더 열어 권총으로 원성한의 관자놀이를 조준했다.
노래에 심취한 그가 다시 주먹을 내리치기 무섭게 방아쇠를 당겼다.
관자놀이에 총을 맞은 원성한이 그대로 총알이 날아온 반대방향으로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단상이 크고 화분으로 가려진 곳이 많았기에 기도에 심취한 신도들은 그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석민은 문도 닫지 않은 채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나오면서 소화전에 있는 경보기의 버튼도 눌렀다.
화재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림과 동시에 석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통로를 꺾어 들어간 석민이 보안카드로 하나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실이었다. 문이 안 열릴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경비의 마스터키는 어디든 문이 열리는 듯했다.
그는 사장실에 있는 전력 차단기의 뚜껑을 열고 차단기를 전부 내렸다.
경보음에 기도를 하다 만 신도들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모든 전등이 꺼지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 사이 석민은 사장실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는 금고를 보고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가방에서 작은 조약돌만 한 작은 폭탄을 꺼냈다. 그것은 너무 작아서 작약보다 타이머와 뇌관이 더 커 보일 정도였다.
금고의 잠금장치에 폭탄을 붙이고 타이머를 20초로 설정한 뒤,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는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비상구를 표시하는 불들조차도 들어오지 않아서, 복도 내부는 완전 암흑이었다.
그 상태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위해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비명을 질러대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 한가운데서 석민은 새삼 자신의 스탯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장실에서 작은 폭발과 섬광이 일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더욱 커졌다.
폭발과 함께 어딘가 불이 붙었는지 사장실 틈 사이로 어둠보다도 더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사람들의 공포는 배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석민은 사장실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폭발에 의해 금고 주변에 있던 서류나 책에 불이 붙어 사방에서 크고 작은 불빛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석민은 낮게 기침을 내뱉으며 금고의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도 5만 원권 특유의 황금빛 지폐 다발이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요즘엔 금괴보다 더 보배인 현금다발이었다.
석민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한 다발에 500만 원인데, 그런 게 금고 가득 쌓여 있었다.
‘이걸 전부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고에 빼곡한 돈을 보며 속으로 한탄을 내뱉었으나, 전부 가져가는 것은 무리였다.
일단 가져갈 수 있는 것만큼이라도 가져가자는 심정으로 석민은 가방에 되는 대로 돈다발을 넣은 후, 자신의 옷에 달려있는 모든 주머니에도 들어갈 수 있는 만큼 돈다발들을 욱여넣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돈은 금고의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일할 땐 감정을 자제하는 사람이라도 욕심이 안 날 수 없었다.
잠시 한숨을 내뱉은 석민은 불붙은 서류철을 집어서 금고 안에 넣었다.
남은 돈들을 밖에서 빽빽 소리 지르고 있는 저들의 손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불이 금방 번지는 확인하고는 사장실에서 나왔다.
돈의 무게 때문인지 가방의 아래쪽이 축 늘어져 둥근 모양을 띠었고, 가방끈을 매고 있는 석민의 어깨도 축 쳐졌다.
복도엔 여전히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로 득실거렸고, 석민은 쉽게 그들 속에 섞여 지하 1층으로 올라온 뒤, 은근슬쩍 탄약고 쪽으로 빠져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옴과 동시에 처음에 자신이 예상한 대로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경보기를 끈 직후 탄약들이 잔뜩 쌓인 상자에 폭탄을 붙였다.
‘무진장 많군.’
생각했던 것보다 탄약이 너무 많았다. 어찌나 많이 쌓여 있는지 그가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지경이었다.
그것 말고도 아직 탄피에 넣지 않은 화약들이 담긴 통들도 아주 많았다.
산탄에 들어간 화약이 얼마나 있는 진 알 수 없었지만, 여기에 쌓인 통들로 보건데 폭발이 일어나면 분명 유폭으로 주변이 전부 망가질 것이 뻔했다.
그는 타이머를 20분으로 맞추고는 다시 재킷을 상의에 걸쳤다. 그리곤 총을 도로 가방처럼 위장해 숨겼다.
“사장님은 어디 가셨지?”
“몰라, 먼저 나가신 거겠지 일단 나가자고.”
석민의 뒤통수 뒤로 신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좀 흐르면서 어느 정도 진정했는지, 목소리들은 차분했으나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다들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사장, 혹은 전도사님이라 부르는 자는 원성한인 것 같았다.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건가?’
잠깐 시간만 끌고 말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잘 속은 모양이었다.
석민은 건물을 빠져나오는 신도들의 마지막 행렬 뒤로 섰다.
건물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화재경보음에 다들 황급히 밖으로 나가느라, 석민이 의도한 대로 불이 꺼진 로비와 바닥에 생긴 핏자국을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았다.
이제 밖으로 나가 그대로 사라지면, 될 것이다.
‘임무도 성공이고.’
하지만, 만사가 모두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석민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맞닥뜨린 것은 경찰차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와 경광등의 불빛들이었다.
‘뭐야? 너무 일찍 왔잖아?’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일찍 온 그들을 보며, 석민의 얼굴이 구겨졌다.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고작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근방에 파출소가 있고 경찰의 순찰 또한 잦다는 것을 감안한다고 쳐도, 이 정도로 신속하게 출동할 줄은 몰랐다.
석민은 불안한 눈으로, 돌돌 말린 소방호스를 앞으로 던져서 피고 있는 소방관들을 보았다.
그런 석민을 의심가득한 눈으로 보는 이가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빌딩 밖으로 나온 신도(공장 노동자)들 중, 눈썰미가 뛰어나고 사교성이 매우 높은 아줌마였다.
평소 100여 명 가까이 되는 신도들의 얼굴을 전부 기억하고 이름까지 외우고 다녔던 아줌마는 신도들 사이에서 매우 낯선 석민을 발견하고 수상하다고 여기던 중이었다.
혐오에 가까운 얼굴로 그녀는 석민을 노려보았다.
‘분명 부랑자나 거지새끼일 거야.’
석민이 잠시 소방관들에게 정신을 판 사이 그녀는 석민을 노려보며 경찰에게 다가갔다.
“네?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네? 예? 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귓등으로 들리는 말에 정신을 차린 석민은 ‘자연스레’ 무리 속에 나와 번화가 쪽으로 걸어가려고 시도했다.
“거기, 잠시 만요!”
소리가 들려왔지만, 주변에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온갖 잡음들로 인해 잘 들리지 않았다.
“정지! 검은 옷 입고 청바지에 가방 멘 남자! 정지!”
뒤에서 거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석민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번화가 쪽 골목을 향해 달렸다.
묵직한 가방이 흔들거리면서 그의 등에 무시 못 할 힘으로 부딪혀왔다.
뒤쪽에 총성이 울리더니 석민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소리가 지나갔다.
‘너무 쉽게 쏘잖아!’
초탄부터 실탄이었다.
큰 총성을 보아 리볼버 권총이 분명했다.
총소리가 울리자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고, 주변사람들을 통제하던 경찰들과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움직이던 소방관들의 시선도 총소리가 난 곳으로 쏠렸다.
초조함에 석민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이고는 권총을 꺼내 뒤쫓아 오는 경관을 겨눠 쏘아버렸다.
경찰모에 권총탄이 맞으면서 모자가 뒤로 튕겨 나갔고, 그에 놀란 경관이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은 채 기어서 몸을 숨겼다.
‘제길, 실수했어.’
석민은 권총을 도로 권총집에 넣었다.
“무기를 가졌다!”
몸을 숨긴 경찰은 뒤따라오던 다른 경관들에게 경고의 말을 던지고는 여전히 도망치고 있는 석민의 뒷모습을 향해 연속으로 3발 더 쏘아댔다.
그러나 경관의 사격술이 그다지 좋지 못한 덕분에 총알은 석민의 주변에 박히거나 바닥에 튕겨 날아갈 뿐이었다.
경관들과 석민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니, 뭐가 저렇게 빨라?”
순식간에 멀어진 석민의 모습을 본 경관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때,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마침,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총성에 몸을 피하고 있었던 소방관들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오는 연기를 확인한 소방관과 경관들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모두 물러나!”
“물러나서야 합니다!”
잠시 후 거대한 불꽃과 폭음이 유리창을 깨고 뿜어져 나왔다.
폭발의 충격에 빌딩이 크게 흔들리며 외부의 마감재가 떨어져 나가고 건물의 유리창들이 박살 났다.
건물 전체의 불이 깜빡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꺼져버렸고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건물이 무너지거나 내력기둥에 금이 갈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맹렬하게 불길이 일어났던 것처럼 순식간에 불길이 사그라들었지만, 주변으로 불이 번져나갔고, 그제야 소방관들은 다시 움직였다.
일단 석민의 임무는 완수했다.
그가 제대로 도망만 쳤다면 말이다.
***
석민은 매우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와 주상복합 건물의 뒤쪽 비상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가건물이라 문이 열리는 곳이 있었고, 마침 1층 로비와 통로엔 CCTV가 없었기 때문에 이곳을 경유해 판교역 쪽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비상문을 닫자 그의 뒤쪽으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이쪽으로 들어올 때 경관들이 보지 못했지만, 골목길에 몇몇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알려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층 화장실로 들어가 재킷을 벗고 라이더 바지로 갈아입은 후, 양변기의 물탱크 덮개를 열어 쓰고 있던 파란색 캡모자를 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