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4화]
완벽한 작전
닷새 후 오후 5시쯤 석민은 다시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그의 소음저격소총(VSS)을 챙겼다.
해당 총기 공장은 성남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재킷 안에 군장을 차려입고 오토바이 헬멧을 챙겼다.
대충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석민은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아영이 준 폭발물은 오토바이의 측면 트렁크에 들어있다.
해당 공장은 판교역 근방 빌딩의 지하에 있었고 원성한은 그 빌딩을 소유하고 있을 만큼 부자였다.
정부에서 준 정보에 따르면 교단에 내는 헌금이 매주 몇 천만 원에 이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빌딩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도 교단에 양도할 만큼 엄청난 극성 신도였다.
거기다 사태로 빈민이 된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유한 빌딩의 격실 일부를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해 주거나, 기부, 무료급식을 하는 등 평판이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겉으로 그렇게 보여도 광신자이자 불법무기를 만드는 안 좋은 부류임은 틀림없었다.
정부에서는 이미 요주 인물로 찍어놓고 여러 번 단속하거나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를 잡아내려 했으나, 정황증거만 나올 뿐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사법부와 행정부 일부에서 불순 세력들이 그의 뒤를 비호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대통령은 매우 화가 난 상태라고 한다.
여하튼, 이번 임무는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 석민은 지도를 꼼꼼히 살피고, 주변 길과 CCTV가 설치된 곳 그리고 가까운 파출소나 경찰서 등을 확인해 놓았다.
물론 너무 자주 확인하거나 살피면 눈썰미 좋은 경찰들에게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석민은 근처 CCTV에 잘 비치지 않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 나갔다.
원성한의 빌딩은, 아니 정확하겐 지하공장은 경비가 삼엄했고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는 딱 2군데밖에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봉쇄당해 잡히기 딱 좋았다.
문들과 유리들은 전부 방탄에 자동장금장치가 설치되어있었고, 지하공장으로 들어갈 땐 직원들이 소유한 보안카드를 찍거나, 공항의 검색대마냥 전체 몸수색을 거쳐야만 출입문을 지날 수 있었다. 그리 생각하니 문을 통과하는 것은 보안카드만 있다면 별로 신경 쓸 필요 없어보였다.
아영은 석민이 침투하기 쉽게 빌딩의 도면을 제공했고, 덕분에 건물 내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경비의 인원수가 얼마인지까진 알 수 없었지만, 입구 쪽에 2명 그리고 경비실에 1명 있었고, 내부에도 분명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내부 전화선이나 인터넷을 차단한다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을 테지만, 끊어버리는 순간 건물 전체에 영향이 미칠 테고, 들킬 가능성이 크게 때문에 포기하기로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석민은 휴대폰을 들어 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지?
석민은 잠시 휴대폰에서 귀를 떼고 그것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지.”
석민이 휴대폰을 닫기 무섭게 아영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자신이 앉아있던 카페의 창가를 통해 원성한의 빌딩 입구를 보았다.
조만간 저기에 석민이 나타날 것이다.
그녀는 신경을 안 쓰려 했으나, 이번 임무만큼은 그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과 자신과 그를 둘러싼 퀘스트 등이 엮여있어서 그런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가 죽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와 자신은 선택받은 사람이니까. 아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불안하게 석민을 기다리는 동안, 석민은 임무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그는 단순히 임무 완수를 넘어 그 이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원성한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보에 따르면 원성한 재산 또한 김성태처럼 은행에 넣어두지 않고, 직접 현금으로 보관한다고 하니 그 돈을 확보한다면 김성태 때 일도 만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판교역 근방에 오토바이를 세운 석민은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울과 가까운 곳임에도 괴수들에게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곳이었기에 옛날의 영화롭던 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거리엔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차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았지만 각 건물들마다 환하게 밝혀진 불빛들로 반짝였다.
근방에 군부대와 임시 파출소가 많은데다가 시간마다 거리를 순찰하는 군, 경들이 있었고, 곳곳에 CCTV가 많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치안이 매우 좋았다.
석민은 길을 건너 빌딩 숲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방으로 위장된 VSS를 어깨에 멘 후, 주머니에 쑤셔 넣어두었던 짙은 파란색 캡모자를 꺼내 꾹 눌러쓰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출입구의 유리는 불투명한 방탄유리였다. 때문에 밖에서는 안을 보기 힘들었으며, 대신 방음이 잘 된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외부의 소리가 차단되었다.
외부인으로 보이는 석민이 8시가 넘은 시간에 지하공장 출입구로 들어오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당직 경비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석민을 바라보았다.
석민은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며 눈으로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보안 검색대에 1명, 당직 카운터에 1명.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장님 안에 계십니까? 예일 총포사에서 왔는데요. 댁에 안 계시고 회사에 계신다고…….”
경비 근처로 다가온 석민이 카운터에 양손을 올렸음에도 경비는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사장님은 여기 계십니다.”
그러면서 경비는 전화를 이해 내선용 전화기를 들었다.
“그래요?”
석민은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새로 정비를 마친 소음저격총이 드러났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대답에 이상함을 느낀 경비가 고개를 들자마자 경악에 가까운 얼굴로 변했고, 검색대에 있던 경비는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얼음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이런, 젠…….”
석민은 경비가 권총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2발을 가슴에 쏘았고 그 뒤, 바로 권총을 급히 꺼내다 안전장치에 걸려 꺼내지도 못하고 끅끅 신음을 내고 있는 검색대 앞의 경비에게도 2발을 쏘았다.
총에 맞은 경비들은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크게 떨다가 쓰러졌다.
석민은 카운터를 넘어 시신의 목에 걸린 보안카드를 꺼내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금속탐지기에서 붉은 등이 켜지더니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석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공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던 경비실로 다가가 보안카드를 인식기에 찍었다.
문이 열리자 내선전화기를 들고 허둥지둥 거리던 경비가 보였다. 석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총을 들어 한 발을 쏴서 무력화시켰다.
다행히 경비가 전화를 걸기도 전에 처리한 듯 보였다.
그는 CCTV와 연결된 컴퓨터를 박살내고 하드디스크에 방아쇠를 몇 발 당겼다.
확실하게 하드가 박살나고 시디롬도 전부 부셔진 것을 확인한 석민은 그제야 죽은 경비의 시신을 경비실 구석으로 끌고 가 던져두고는 밖에 있는 시신들도 경비실 안으로 집에 넣었다.
시신이 끌린 길을 따라 핏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흔적을 지우는 것이 좋겠지만, 자신은 혼자였고 임무를 완수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결국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입구를 잠그고 로비의 불을 껐다. 이것만 보면 공장의 문이 닫힌 것으로 오해하리라.
완벽한 위장은 아닌지라 좀 찜찜했지만 석민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공장은 지하 2층으로 구성된 구조였다.
퇴근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지하복도는 한산했고 공작기계들도 전부 멈춰있었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기도소리인지, 노래 부르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석민은 탄약고 쪽으로 움직였다.
이곳은 총기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알맞은 탄환도 생산했기에 거기에 폭탄을 설치하면 유폭으로 공장 전체가 망가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탄약고는 공장 설비시설과 가까웠고 전자식 장금장치가 달려있었다.
석민은 보안카드를 장금장치에 찍었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석민은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는 열기를 주저했다.
문 위에 보이는 전자식 센서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문을 여는 순간, 경보음이 울릴 것이다.
이런 장치는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본 적 있었는데, 보통 센서 장비가 안쪽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문을 당기면 그대로 들킬 게 분명했다.
‘일을 벌인 다음에 하면 되겠군.’
그는 품속에서 폭탄을 꺼내 문 앞에 둔 채,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구조는 이미 외웠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석민은 긴장과 약간의 흥분으로 몸에 오른 열 때문에 재킷을 벗어서 군장 뒤쪽에 대충 쑤셔 넣었다.
사장실은 지하 2층이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기도소리인지 노랫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소리도 점점 커졌다.
목소리를 보건데 수십, 수백 명이 합창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연스레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노랫소리인 것은 점점 더 분명해졌으나 코를 훌쩍이거나 울고 흐느끼며 애절하게 부르다 보니 가사를 알아듣긴 힘들었다.
석민은 문틈에 몸을 가까이 대고 숙였다.
마침 노래가 끝나고 있었는지 마지막 가사만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경배하라, 장래엔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쉬리니, 천사가 우리를 인도하리라.
석민은 조용히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널찍한 마루에 빼곡히 방석을 깔고 앉아 오열하며 기도하는 수많은 신도들과 연단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 남자가 원성한이었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석민의 눈이 자연스레 가늘어졌다.
연단에 선 원성한 뒤쪽엔 성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십자가를 중심으로 천사의 형상이 마치 지키고 있는 듯 둘러서고 있었으며, 태양의 문양이 십자가 뒤에서 빛을 뿜듯 강렬하게 새겨져 있었다. 번쩍이는 게 분명 금으로 도배한 것 같았다.
빛나는 성상 앞에 서 있는 원성한은 마치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고, 덕분인지 위대한 종교지도자쯤 되는 듯했다.
그는 몸에 딱 맞는 맞춤 양복에 금시계까지 두르고 있었는데 반해, 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는 신도들의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노래가 끝이 나자, 연단에 서서 신도들의 합창을 지켜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교주님께서 어제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중하면서도 묵직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신도들의 오열도 잦아들었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 1년 안에 모든 것이 결정 날 것이다.”
조용한 방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말에 안도의 한숨과 함께 경탄 어린 탄성들이 나왔다.
“정말이지, 오랫동안 기다려오셨습니다. 더 이상 고통 받고 차별받고 가난하게 성도 여러분,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멀지 않았기에 모두들 힘을 내셔야 합니다. 성전군에 필요한…….”
석민은 문을 닫았다.
잠시 살핀 결과, 예배실의 문은 총 2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