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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3화 (13/226)

[게이트 오브 서울 13화]

너무 침착한 반응에 오히려 석민이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내 주머니에 지갑이 있어.”

김성태가 말했다.

그자는 눈알을 굴려 석민의 위아래를 훑고 석민의 권총을 보았다.

“지갑 안에 12만 원쯤 있을 거다. 그걸…….”

어둠 속에서도 김성태는 석민이 가지고 있는 권총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마크 23은 노상강도 따위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권총이 아니었다.

“지갑에 있는 돈은 필요 없어.”

‘역시…. 내 목숨도 여기까지인가?’

김성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때, 석민은 아영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약간의 체념이 얼굴에 맴돌고 있던 김성태에게 석민은 질문을 던졌다.

“네 돈, 어디 있지?”

“돈? 뭔 돈?”

“헌터일 하면서 모은 돈이 있을 거 아냐? 그걸 다 내놓으라고.”

김성태는 양해를 구하고, 지갑을 꺼낸 후 거기서 체크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 다 들어있어. 4억 5천만 원이다. 비밀번호는 4571.”

석민은 그것을 왼손으로 받아 뒤로 던졌다.

“사기 치지 마, 네 통장에 돈 없는 거 알고 있어. 헌터가 은행에 예금을 한다고 들어본 적도 없고.”

‘에이씨.’

그 말에 김성태의 시선이 살짝 내려갔다 올라갔다.

아무리 목숨이 아깝다고는 해도 그의 전 재산과 다름없는 돈을 줄 수는 없었다.

“어디 있어?”

“절대 말 못 해!”

소리가 너무 컸다.

‘이 새끼가?’

석민은 그가 의도적으로 소리친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석민은 만일을 대비해 이자를 납치할까 생각했으나, 저렇게 큰 소리를 내니 일이 틀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주변을 살피며 혹시 이쪽을 보는 사람이 있나 확인하는 순간, 성태가 석민의 권총을 옆으로 쳐냈다.

소음기를 끼고 있었기에 쉽게 쳐낼 수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석민이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그는 성태의 오른손이 재킷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왼손으로 그자의 상박을 잡아챘다.

엄청난 힘이 자신의 팔을 누르며 움직임을 막자, 성태는 놀란 눈으로 석민을 바라보았다.

그 잠깐의 멈칫거림 사이, 성태의 왼손보다 석민의 권총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2발의 총알이 김성태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김성태는 잠깐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뒤로 넘어갔다.

소음기를 꼈지만, 총성은 분명히 울렸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라서 그런지 몰라도 소리는 평소보다 크게 퍼져나갔다.

총성이 들리자, 무슨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살피던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이 얼른 창문에서 멀어지고는 내부의 전등을 껐다.

석민은 분명 김성태가 방탄복을 착용하고 있으리라 예상했다.

석민의 예상이 맞는다는 듯이, 가슴 정중앙에 총알이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김성태는 고개를 들어 품속의 작은 권총을 꺼냈다.

물론 그보다 석민의 손가락이 더 빨랐지만.

미간에 1발을 더 맞은 김성태는 그대로 절명했다.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석민은 김성태의 품을 뒤져 지갑을 꺼내고는 돈만 빼내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강도살인으로 보여야 했다.

대충 상황을 갈무리한 석민은 손전등 불빛을 등지고 달렸다.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 사이로 총성이 석민의 뒤를 따랐으나, 탄환이 그의 주변에 박히거나 하진 않았다.

경비들은 뭐라고 소리쳤지만, 석민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석민은 자신이 뛰어넘었던 울타리를 그대로 뛰어넘었다.

그 상태로 쭉 뛰어서 골목들이 가득한 길로 들어섰고, 더 이상 호루라기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쯤, 가방을 꺼내 옷과 신발을 갈아입었다.

거기다 가방을 뒤집어서 색깔을 바꾸고, 복면과 벗은 옷들을 쑤셔 넣었다.

옷차림을 정리하고 난 뒤 석민은 거리로 나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사이렌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경찰차들과 구급차, 군용차들이 석민의 옆으로 줄줄이 지나갔다.

그들이 지나간 것을 지켜본 직후 석민은 휴대폰을 꺼냈다.

“김성태, 끝났어.”

-자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시 무리더군.”

대답하는 목소리에서 애써 실망감을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석민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되었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타깃도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하게 통화가 끝났고, 석민은 다시 택시를 불렀다.

정부에서 준 정보 때문인지도 몰라도 일이 생각보다 매우 쉽게 처리되었다.

이 정도의 정보를 갖추고 있었으면, 그들이 처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자신에게 시켰어야 했나?

그는 국가의 정보기관이나 특수부대 같은 걸 잘 모르지만, 그들이 분명 있을 텐데.

‘알다가도 모르겠어. 나라가 아무리 어려워지고 치안이 많이 안 좋아졌다지만, 아직은 그렇게까지 나라가 약해진 건 아닌 거 같은데.’

자신에게 배당되는 수고비를 보아, 나라의 재정이 그리 좋지 못한 건 분명했다.

석민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라의 치안이 안 좋은 것을 노리고 청부 짓이나 하는 놈이 생각할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김성태 일로 점수를 잃었으니 원성한 일로 점수를 많이 따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무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석민은 그리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눈을 뜨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저씨, 지금 성남방향이 아니잖아?”

목소리에 불쾌함이 가득 나왔다.

그가 잠시 눈을 감은 사이에 택시는 그의 집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100원도 아까울 정도로 돈이 귀한 이 시기에 심한 정도를 넘어선 행위였다.

석민은 평범해 보이던 택시기사의 얼굴이 세상에 둘도 없이 혐오스럽고 역겨운 생물처럼 보여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아저씨, 멈춰. 내릴 테니까.”

석민은 애써 권총을 꺼내고픈 욕구를 참아야 했다.

이번 임무는 매우 마음에 안 들었다.

***

시신보관실에 들어온 아영은 깨끗하게 머리를 관통한 김성태의 시신을 보았다.

“가슴에 2발, 머리에 한 발 쏘았습니다.”

시신을 부검하는 부검의가 말했다.

“아주 잘 쏘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형사는 인상을 썼고, 부검의는 마스크를 쓴 채로 헛기침을 내뱉었다.

“일단 시신을 보시면 알겠지만, 일반인 솜씨가 아닙니다.”

여전히 곱지 않은 형사의 시선에 부검의는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했다.

“사망자의 시신을 보면, 방탄복을 착용한 덕분에 가슴에 쏜 탄환들은 멍 자국만 만들었지만….”

그는 김성태의 가슴을 고무장갑 낀 손으로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가슴에 멍 자국이 2개 나 있었다.

“정확하게 심장부위 2발”

그는 고인의 유품 중에 총알구멍이 난 방탄복을 꺼내 보여주었다.

“총알자국 사이의 간격이 고작 2mm입니다. 방탄복으로 총알을 막긴 했지만, 지근거리에서 45구경 2발이면, 충분한 저지력이 있지요. 그 충격으로 뒤로 넘어졌고, 그리고 팍!”

부검의는 자신의 손가락을 권총처럼 만들고 김성태의 시신 이마에 쏘는 시늉을 했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에, 이젠 아영의 인상도 찌푸려졌다.

“여하튼, 이 자식, 프로입니다. 일개 강도가 아니란 거죠. 얼굴이나 인상착의는 확인했습니까? 이런 놈이 활동하게 둬선 안 됩니다.”

부검의의 말에 형사는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일반 놈이 아니란 것은 인정해…. CCTV가 그렇게 많은데 찍히지 않은 것을 보면, 확실히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긴 한데.”

지금 경찰들 입장에선 목격자들 말고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심지어 목격자들 또한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본 게 다였기 때문에, 용의자 추정은 거의 불가능했고, 추적 또한 힘든 상태였다.

“지금 강도들 중에 군 출신자들이 많다니까….”

부검의의 말에 형사는 부정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의 한국청년들이 일반 징집병으로 활약한다지만, 일반 병사 출신이 권총을 이렇게 잘 쏘겠나? 아무래도 내가 보기엔 살인 청부업자가….”

“살인청부업자가 남의 지갑을 가져가는 거 봤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아영이 말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낸 뒤 지갑을 버렸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카드는 뒤로 버리고요. 일반적인 강도 패턴이 아닙니까?”

그 말에 형사와 부검의는 서로를 보았다.

“군 정보관인 대위님의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정보관님이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형사가 말했다.

“증거가 별로 없지만, 시신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자가 보통내기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필요이상으로 경찰의 업무에 끼어드는 것입니다. 거기다 김성태, 이 작자는 헌터 일을 하면서 적이나 경쟁자가 많은 사람입니다. 충분한 가능성이….”

“군 출신 중에, 헌터 일을 하는 이들은 많고, 김성태 역시 그런 인물 중에 하나였지만, 청부업자 일을 하는 사람은, 제가 알기론 현재까진 없습니다. 특수부대 출신 제대군인들은 대부분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만약 그들이 그쪽으로 탈선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바로 알 수 있죠.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부에선 군 특수부대 출신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의문을 가지지 말라는 건가?

생각을 마친 형사는 자신의 수첩을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는 제법 애국심이나 정의감이 넘치는 경찰이었으나,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그런 열혈 인물은 아니었다.

형사의 촉으로서 이건 냄새가 났다. 더러운 냄새가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나설 수 없었다. 일개 공무원인 그로서는 뭔가 더 높은 곳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은 그저 아영을 쏘아보는 것뿐이었고, 아영은 그런 형사의 시선을 담담하게 흘려보냈다.

“그렇군요. 그러면, 이것은 강도사건으로 넘어가야겠네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검시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면 저도 가보겠습니다.”

형사와 부검의가 가고 난 후 아영은 시신을 다시 살펴보았다.

‘실력하나는 매우 좋네.’

그녀는 김성태의 시신에서 보이는 총상들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총 쏘는 실력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하지만, 실력이 좋다고 해도 대통령님은 생각이 다르신 것 같던데.’

그 생각이 들자 아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석민의 예상대로, 김성태의 재산을 가로채는 것은 일종의 추가 시험이었다.

천국의 문 교단으로 흐르는 자금줄을 차단함과 동시에, 덤으로 빠듯한 국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보충하려고 한 것이었다.

‘3마리의 토끼를 잡으려고 했으니 이렇게 된 건가?’

아영은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한 사람에게 임무를 주면서 여러 가지 덧붙이는데 그게 될 리가 있나?

‘석민 씨는 진상을 모르겠지만.’

국가가 고작 수백, 수천만 원을 지출하는데도 벌벌 떨 정도로 상황이 안 좋으니 그녀는 한숨밖에 안 나왔다.

이건 정부의 궁핍함이 보이는 임무였고, 예산이 없는 대통령은 분명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덧붙여 석민의 점수는 크게 깎였을 것이고.

몇 분 전, 아영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리자, 긴 한숨을 코로 내뱉은 것으로 보건데, 자신의 예상은 분명했다.

아직 대통령은 석민의 실력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그럭저럭 좋은 실력을 갖춘 것으로 보일 뿐이라면, 대통령은 석민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

‘원성한으로 점수를 따야 할 텐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젠 일반적인 성공으론 대통령에게 인상 깊게 감명을 주기 힘들 것이다

석민이라면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작업을 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한편으론 석민이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게다가 원성한의 일은 그녀가 보기에도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았다.

‘뭐 생각이 있겠지.’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김성태의 시신에 천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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