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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2화 (12/226)

[게이트 오브 서울 12화]

“천국의 문 교단의 무기공장으로 추정되는 총포상의 사장입니다. 이자를 처리하고, 공장을 파괴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다른 하나는 김성태입니다. 몇 장 넘기면 그자의 인적사항이 나와 있습니다.”

“헌터인가 보군.”

석민은 빠르게 종이를 넘기며 대충 훑어보더니 중얼거렸다. 아영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30명 정도 되는 헌터들을 이끄는 사냥장이라고 할까요? 요즘 헌터들은 단독행동보다는 지휘를 하는 사냥장과 함께 활동을 합니다.”

석민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졌다.

사실 그는 되도록 헌터들과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간에는 매우 예의바르고 사용하는 말도 정중한 편이었으나, 무기를 가진 ‘프로’들이 하는 예절일 뿐.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이나 집단에겐 주저 없이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는 부류였다.

돈이 궁해서 절박함에 무기를 든 얼뜨기들도 많았지만, 프로들 또한 많았고 그런 이들과 상대하고 죽이는 일은 매우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가 보기엔 이들은 분명 프로 중에 프로였다.

‘저격으로 처리하면 되겠지만, 그건 오래 걸릴 텐데.’

석민은 분명 이 임무의 시간이 매우 촉박할 것이라 예견했다.

“이 사냥장만 처리하면 되는 건가? 다른 헌터들은 건들 필요 없고?”

“그렇습니다만, 가능하다면 몇 가지 더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 말에 석민의 안면근육이 살짝 꿈틀거렸다.

“어떤 거지?”

“그가 모은 자금들은 부정으로 모인 것이고 그의 재산이자, 헌터들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그자가 죽으면 헌터들은 그의 자금을 회수하려고 할 것입니다. 석민 씨가 그 자금을 대신 회수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은행에 예금해 놓거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찾는데 꽤나 애를 먹을 겁니다. 할 수 있다면 하시고,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하지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석민 씨의 판단에 맞기겠습니다.”

그 말에 석민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단 한 명만 처리하면 되는 임무이고, 다른 일들은 강제성 또한 붙지 않으니 괜한 부담을 질 필요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이번 임무는 그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니, 분명 저거는 그를 평가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시간이 많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문제는 임무의 종료 기간이었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되도록이면 빨리했으면 합니다. 적어도 1주일 이내에 2개의 임무를 하셔야 합니다. 무기공장 파괴를 위한 폭약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묵직한 상자 하나를 꺼내 보이고 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는 지난번처럼 너무 요란하게 일을 벌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민간인의 재산이나 신체에 피해가 없기를 바라세요.”

1주일도 촉박한데 그런 제약까지 걸리니 석민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때에 따라서는 총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방금 드린 서류에 그들의 동선이나 사는 집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저에게 먼저 연락을 해주시고, 일을 끝마친 후에도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물론 알아서 증거물을 남기지 않겠지만, 경찰 쪽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그나마 듣던 중에 가장 반가운 소리군.”

석민은 서류들을 정리해서 품속에 넣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 연락하지.”

“어디부터 하실 생각이신 가요?”

“아무래도 쉬운 것부터 해야겠지.”

그는 말하기 직전에 카페를 둘러보았다.

카페엔 그들 말고 사람이 없었다. 한적한 분위기에 팝음악만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만한 이는 보이지 않았다.

석민의 시선이 카페의 알바생에게 향했다.

알바생은 그의 시선의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고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듣고 있었다.

“먼저 김성태부터. 공장을 부수는 것은 조용히 하기 힘드니 양해를 바라고.”

“일단 대통령님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지역경찰이나 목격자들이 있는 와중에 경기도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런 것만 안 나오면 됩니다.”

“알았어. 그 정도는 가능해.”

그는 묵례로 대충 인사를 하고는 카페를 나왔다.

***

석민이 무기를 챙기고 집 밖으로 나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 밤이었다.

그는 품속에 권총 1자루와 여분의 탄창 2개, 소음기 그리고 상의 팔 안쪽에 단검을 숨긴 채였다.

석민은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김성태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가 이내 다시 내렸다.

첫 번째 목표인 김성태는 수원에서 살았는데, 만약 그곳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걸리는 눈이 많을 게 분명했고, 그러다가 괜히 CCTV에 오토바이 번호판이라도 찍히면 뒷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원 쪽으론 가본 적이 별로 없어서 버스 같은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도 잘 몰랐기에 결국 그는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물가가 많이 오른 통에 기본요금이 6천 원이나 되었지만, 근래 여유가 좀 생긴 석민은 큰 걱정 없이 택시에 올랐다.

차의 유리들이 방탄인데다가, 운전석에도 안전장치가 되어있는 등, 매우 안전해 보였기에 곧 편안한 자세를 잡고 수원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수원으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자, 불만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에 관한 영상을 보았을 테고, 임무도 하나 완수했는데 실력확인에 무슨 추가적인 임무가 필요한 건가.

‘돈 적게 주려고 핑계 대는 게 아닐까.’

나라에 돈이 없으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는 잠깐 이를 갈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원래의 목적을 생각했다.

‘너무 수전노가 됐어.’

그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아영의 말대로 거짓된 전령은 서울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으로는 ‘천국의 문’이란 사이비교단 같은 놈들이 신의 이름을 빙자하며 떠드는 것도 거짓된 전령과 비슷해 보였다. 어차피 천국의 문 교단은 정부가 손보려고 하고 있으니 차후에 탐방을 하면 될 것이다.

석민이 감은 눈을 뜨고 시선을 조수석 쪽 전방유리 창가로 돌리자, 언뜻 비춰지는 모습에서 외투의 앞섬이 안주머니에 넣어둔 권총의 무게로 인해 축 쳐져 있는 게 보였다.

마크 23은 분명 좋은 권총이었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가지고 다니기 힘들었다.

앞으로 계속 이걸 들고 활동하기엔 무리가 따를 것이다.

‘새 걸 장만해야 하나?’

그는 택시기사가 이걸 눈치 채지 않을까 조바심이 들었지만, 다행이 택시기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시사프로그램과 운전에 열중한 나머지 석민에겐 1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길은 막히지 않았지만, 검문소가 많아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다. 덕분에 석민은 택시요금으로 3만 원을 써야 했다.

그가 택시에서 내린 곳은 김성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였다.

석민이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아파트를 지키고 있던 경비들이 그를 향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냈다.

석민은 그들이 접근을 하려고 하자,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돈을 좀 버는 편인 아파트 경비들은 늘 방탄복을 착용하고 권총을 휴대하기 때문에 괜히 분란을 만들었다간, 오히려 자신이 위험해진다.

석민이 아파트 단지와 멀어지자, 그를 쫓아오던 경비들도 곧 돌아갔다.

석민은 아파트단지로 들어가길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는 담벼락이 없고 대신 장미목으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있었다.

나무는 이미 대부분 죽어 갈색으로 변해있었지만, 여전히 단단하고 가시가 많았다.

그러나 석민에겐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석민은 주변을 둘러본 후, 주변에 경비나 CCTV가 없는 것을 확신하고는 1.5미터 높이의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옛날 평화롭던 시절이 그대로 남은 듯 보이는 아파트 단지 내엔, 정원수들이 늘어선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었고 곳곳에 등받이가 있는 벤치도 설치되어있었으며, 심지어 등나무로 만든 정자까지 보였다.

그는 아파트의 4동이 보이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김성태가 사는 곳은 4동의 610호였다.

해당 층의 유리창을 보니 커튼이 쳐져 있어서 안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틈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석민은 벤치 뒤쪽 정원수가 있는 곳으로 가서 몸을 숨겼다.

키 작은 나무뿐 아니라, 큰 나무도 많았기에 들킬 가능성은 없었다.

발걸음 소리는 이내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석민은 고개를 들어 경비원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2명씩 짝을 짓고 도는 것이 아니라 경비원 혼자서 도는 것이었다.

석민은 가만히 앉아서 간간이 손목시계만 힐끔거리며 김성태의 집을 주시했다.

정확하게 40분이 지날 무렵 같은 방향에서 경비가 또 순찰을 돌았다.

석민은 순찰간격이 많이 촘촘하다고 생각했다.

정부에서 준 정보에 따르면 김성태는 매우 가정적인 남자라 집에 있을 때는 집안일을 돕기 위해서 쓰레기를 버리러 자주 나오는 편이라고 한다.

다만, 그는 경쟁자나 적이 많기 때문에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있으므로 주의하라는 말도 함께 적혀 있었다.

분명 싸움에 베테랑일 테니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당할 것이다.

***

시간은 어느덧 2시간이 흘렀다.

석민은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몸을 잔뜩 웅크린 자세로 계속 김성태의 집을 주시했다.

2시간 동안 4동에서 나오고 들어간 사람은 고작 7명이었다.

퇴근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라 당연했다.

치안이 예전과 같지 않아, 사람들은 퇴근하고 난 뒤면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김성태가 오늘 나오지 않는다면, 석민은 내일이고 모레고 여기서 계속 그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10시가 되었고, 서서히 아파트들의 불이 꺼질 무렵, 엘리베이터를 통해 한 사내가 내려왔다.

그 남자는 여러 가지 잡다한 폐지들이 잔뜩 들어있는 종이상자를 든 상태였다.

석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진으로 보았던 그자였다.

석민은 천천히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소음기를 끼웠고, 휴대폰으로 아영에게 연락했다.

“김성태, 시작한다.”

그는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발라크라바를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

김성태는 정보대로 허리띠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는 석민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곤,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석민은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권총을 쥔 오른손을 뒤로 감춘 채 그를 따라 걸어갔다. 석민의 발걸음 소리는 매우 조용했다.

석민과 그자와의 거리는 대략 50미터정도.

쓰레기를 버리는 곳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미행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자가 종이를 버리는 곳으로 들어가자 석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략 10분 전에 경비들이 지나갔기 때문에, 당분간 마주칠 일은 없었다.

이윽고 매우 근접하게 접근한 석민은 깜짝 놀란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이미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상태였기 때문에 김성태는 딱딱하게 몸을 굳히고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들어.”

석민의 말에 그자는 천천히 양손을 들었다.

“무기는 내 쪽으로 던져. 천천히.”

김성태는 매우 침착한 눈으로 석민을 바라보며 허리춤에 찬 권총을 꺼내 석민 쪽으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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