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0화 (10/226)

[게이트 오브 서울 10화]

“조정간이 불편해. M-16은 엄지로 조정간 변경이 가능했는데 말이지. 그리고 수직손잡이도 원해. 수직손잡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더 반동제어가 쉽게 가능할 거야. 그리고 권총손잡이도 그립감이 별로야 좀 더 편한 것으로.”

그녀는 간혹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수첩에 써 내려갔다.

“네 말대로 하려면 일단 총열덮개를 교체하고, 권총손잡이, 그리고 수직손잡이, 개선된 조정간이군.”

그녀는 총을 건네받아 다시 문을 나왔다. 그도 따라 나왔으나, 그녀는 이미 방탄유리로 된 격벽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제야 그녀가 앉은 자리 주변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석민은 시선을 돌리며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그녀의 의자 뒤로 온갖 기계와 부품들이 놓여 있었다. 산소용접기나, 프레스기, 리벳 접합기, 공작기계, 그리고 CNC기계도 보였다.

가만, CNC?

‘저런 것을 어디서 구한 거지?’

그가 의문을 가진 사이 그녀는 줄자를 가지고 왔다.

“손 좀 뻗어봐. 그렇지.”

석민이 카운터의 구멍을 통해 손을 내밀자, 그녀는 석민의 손바닥 가로, 세로 길이를 쟀다.

석민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 약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손 크기를 재고 권총손잡이를 만드는 건가?”

“그럼! 여기 있는 부품들은 대부분 내가 수제작으로 만드는 거야.”

그녀는 엄지손가락 길이도 재며 상업성이 섞인 말을 이어나갔다.

“웬만한 부품은 여기서 내가 다 생산할 수 있어. 물론 총기와 그 안에 드는 내부 부품 같은 것은 대부분 내가 아는 루트-아, 알려고는 하지 말고.-를 통해서 가지고 오지만, 구하기 힘들거나 사소한 것은 전부 여기 있는 기계들로 깎지. 손이 많이 크네? 손이 큰 사람이 총기의 반동을 잘 견뎌서 총을 잘 쏜다고 하던데.”

“글쎄, 그건 잘 모르겠군.”

“그리고 거기도 크다고 하던데.”

“뭐?”

석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 그녀는 낄낄거리며, 이미 선반 쪽으로 걸어갔다.

‘천박하군.’

그가 진심으로 그녀를 혐오하는 동안, 그녀는 석민의 치수에 맞는 손잡이를 가지고 왔다.

표면은 맨들맨들 했으며, 엄지와 검지가 닿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곡선을 이루면서 폭이 좁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다시 폭이 굵어지면서 중지, 약지, 소지 쪽도 총을 잡을 수 있도록 홈이 나 있었다.

“자, 잡아봐.”

석민은 여자가 건네주는 총을 쥐었다.

마치 한 손 권총을 잡을 때처럼 매우 편안했다. 표면이 너무 매끄러워 보여 손에서 미끄러지는 거 아닌가 했는데, 표면에 고무코팅 처리가 되어 있어서 미끄러지는 대신, 오히려 착 감기는 맛이 있었다.

“……괜찮군.”

“그치? 죽이지? 내가 만들었어.”

그녀는 고갯짓으로 뒤쪽에 있는 기계를 보여 주었다.

“이건 항공기용 알루미늄 합금을 깎아서 만든 거야. 이건 큰손전용 권총손잡이고.”

“대단하군.”

석민이 진심으로 한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여자 또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이제 총열덮개 쪽으로 넘어가지, 어떤 것을 원해?”

“수직손잡이만 달아놓을 것이니까. 아래쪽에 피카티니 레일 달린 것만 있으면 되겠군.”

“좋아, 손잡이는?”

“단단한 것으로. 내 손에 감길 정도로 조금 길게.”

“좋아, 달아놓지.”

그 순간 석민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양해를 구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아, 최석민 씨? 전에 보았던 그 김현주 소위입니다.

아, 그때 아영 대위와 같이 있던 그놈.

“무슨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총기를 마련하실 것이면, 5.56밀리나, 7.62밀리 나토탄이 아닌 러시아 탄환으로 부탁드립니다.”

“뭐요?”

그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저희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러시아군으로 위장할 예정이기 때문에, 5.56밀리 탄환을 사용하면 들킬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망할.”

석민은 소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을 닫고는, 그 여자를 보았다.

“저기…….”

[AK-107]

내구도: 100%

품질: 상

탄약: 5.54x39mm

러시아, 칼라시니코프(Калашников)사제 소총, 권총손잡이와, 조정간, 핸드가드가 커스터마이징 된 상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400만 원.”

여자는 쌀쌀한 목소리로 말하며 커스터마이징을 끝낸 AK-107(5.45MM버전)과 대형탄창 9개를 석민의 앞으로 내밀었다.

석민은 결국 현금다발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5만 원짜리 지폐뭉치였다.

“들어봐.”

여자의 말에 따라 석민은 그것을 집어 들어 조준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조정간 부분은 중간부분에 검지로 조절할 수 있게 걸개를 새로 달아놨어. 손잡이를 잡은 상태로 움직여봐.”

그가 검지를 깔딱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빈토레즈의 조정간 역시 짧았기에 검지로 조정간을 조정하는 방식은 이미 익숙했다. 덕분에 이 조정간 또한 그다지 불편한 감은 없었다.

그는 만족스럽게 AK-107을 건케리어에 넣었다.

“그리고 9X39mm 탄환, SP-6으로(고관통 철갑탄) 있나?”

“잠깐, 그거 쓰는 인간은 상덕 말고 본적이 없는데? 혹시 네가 상덕 호……. 아니 고객이었냐?”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웃듯이 눈웃음을 지었다. 석민은 낮게 혀를 찼다.

‘제길, 그러면 여태껏 상덕이 여기서 사가지고 나에게 팔았던 거군.’

“발당 얼마지?”

“기다려봐.”

그녀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대충 발당 700원이군.”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덕은 그에게 발당 1,000원에 팔았으니, 좀 더 싸게 사는 것이었다. 소소하긴 하나, 자신에겐 이득이었다.

“좋아, 1천 발쯤이면 되겠군.”

“안 돼, 상자 하나당 580발이야. 사가려면 1상자 사가던가, 2상자 사가.”

“…그럼, 뭐 2상자 사지.”

여자는 안으로 들어가서 캔으로 진공포장이 된 상자를 가지고 왔다.

“안에 뚜껑으로 따서 열면 되겠지만, 안에 종이갑 하나당, 10발씩 들어있어.”

“아, 그리고 내 VSS를 좀 봐줘.”

석민은 급히 다른 건케리어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자신의 빈토레즈였다.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총을 살펴보았다.

[VSS, Vintorez]

내구도: 88%

품질: 중상

탄약: 9X39mm

러시아제 저격소총, 꽤 오래 사용해서 탄착군이 조금 벌어졌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사실, 이 총은 손볼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단지, 그녀의 양심과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녀는 유심히 살펴보더니 총을 분해하기 시작했고, 이내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문제없는데?”

“그래?”

“탄매가 심한 거야 소음기에 청소 안 해서 그런 것이고, 혹시 삽탄이 잘 안 되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역시 탄창이 문제였나? 그게 오래되긴 했지.”

“그래? 이참에 탄창 새로 장만하는 건 어때? 30발짜리 탄창 있는데.”

석민의 말에 여자는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라 여겼는지 조금 들뜬 어투로 제안을 했고, 석민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30발짜리?”

“그래, 30발짜리.”

그가 가진 VSS는 20발짜리였다. 30발짜리 탄창이 있으면, 그래, 전투를 할 때 편할 것이다.

더불어 빈토레즈의 탄환 특성상, 근접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장탄수가 많으면 좋을 게 분명했다.

구하기 힘들 게 분명한 무기의, 더 구하기 힘든 대용량의 탄창을 있다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석민은 그녀의 말본새는 싫지만, 그녀의 능력은 마음에 들었다.

“그럼 8개만 줘.”

그가 가진 탄입대는 8개만 들어갔기에, 8개면 충분했다. 물론 총에 장착한 것 또한 필요하기에 정확하게는 9개를 썼다.

“아까는 9개 주문하더니?”

“1개는 10발짜리 탄창으로, 엎드려서 저격할 때는 그게 필요하거든.”

탄창까지 야무지게 사서 챙긴 그는 그것들을 건케리어 안에 넣었다. 상덕의 말대로 괜찮은 건스미스였다.

‘천박한 여자 같긴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네. 앞으로 여기만 와야겠어.’

“그러고 보니 우리, 서로 통성명을 하지 못했군.”

짐을 다 챙긴 후 석민이 손을 내밀었다.

“최석민이다. 앞으로 자주 오지.”

“김혜원이야. 너 혹시 킬러냐?”

갑작스런 질문에 석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그녀는 의자에 앉아 상체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주로 파는 것은 아까 것처럼 무기들을 커스텀해서 파는 것이 대부분이거든? 하지만, 지금 팔았던 107은 신품이고 러시아제 정품이라, 비싸서 다들 잘 안 사. 사람 죽이는 건 뭐로 죽여도 죽이는 건데, 돈은 궁핍한 세상이니까. 되도록 싼 총을 사지 그래서 말인데 너 뭔가 의뢰를 수행하다 보면, 상대방의 무기를 가질 때가 있잖아? 그런 중고총기가 있으면 내게 팔아. 상태가 좋으면 30, 별로면 10만 원 선에서 사줄게. 고장 난 거라도 상관없어, 난 수리할 줄 알거든. 총기 종류는 가리지 않고.”

“그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침 좋은 생각이 났던 것이다.

***

석민은 자신의 집 앞에서 파이프를 태우며, 트럭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전 1시, 지금은 1시 20분, 생각보다 늦는 듯했다.

‘돈 벌 생각이 있는 거야, 뭐야.’

그가 전화할까 생각할 무렵, 5톤짜리 중형트럭 하나가 경적을 울리면서 그에게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와 운전자석 창문을 내리자, 용민이 보였다. 석민은 파이프를 뒤집어 재를 버리고는 트럭을 향해 걸어갔다.

“형, 왜 이리 늦었어요?”

“오늘따라 일이 있어서 말이야. 계엄사령부에서 우리 서에게 수사지원을 요청했거든. 탄천 쪽에서 총격전이랑 폭발사건이 터졌는데, 군수품 창고였는지 큰 폭발이 일어나고 주변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 말에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낀 석민은 그냥 늦은 것에 대해서 입을 닫기로 마음먹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러면 별수 없죠. 수원 호수공원 알죠? 거기로 가죠.”

“그래서, 몇 대 몇이야?”

“적당하게 8대 2으로 하죠.”

“겨우 그거밖에 안 돼?”

그 말에 석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형을 끌어들인 건, 서류처리 같은 걸 형한테 맡겨서 빨리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지금 소개비보다 두 배로 주는 거 아시죠?”

“…렌트비도 안 나오기만 해봐.”

“걱정 마요. 엄청 많으니까요.”

그들은 수원에 위치한 호수공원 즉, 얼마 전 석민이 끝장내버렸던 상덕의 아지트로 차를 몰았다. 그때 그들이 팔려고 보관하던 북한제 AK소총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석민은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 근방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무기들이 아직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여기냐?”

“예, 입구에 차 뒤쪽이 오도록 대요. 양 많으니까.”

입구에 널브러진, 석민에게 총 맞고 죽어서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을 트럭은 무자비하게 밟고서 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오세요. 양 많으니까. 한 시간 정도 작업해야 할 겁니다.”

그는 지난번에 자신이 따놓았던 자물쇠를 보고는 무기고의 문을 열었다. 그의 예상은 맞았다. 무기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용민이 그것을 보더니 모자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언제 이렇게…….”

“주인 없는 거 맞아요. 얼른 옮기죠.”

석민이 나서서 먼저 소총들을 총기사물함채로 꺼내서 차 쪽으로 옮겼다.

한 상자마다 10정씩 들어있으니, 상자 무게 포함 대충 45킬로그램 정도 되었다.

그것 말고도, 그는 일정량의 수류탄과, 알피지, 마지막으로 5.45mm 탄환도 가득 챙겼다. 수류탄이나 탄환, 알피지들은 혜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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