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9화]
진열대뿐만 아니라 가벽도 유리였기에, 석민은 숨었지만 여전히 잘 보이는 그녀를 보며 실소를 내뱉고는 총구를 겨눠 2발을 쏘았다. 총알은 정확하게 그녀에게 날아갔으나, 진열대의 유리창만 금이 갔을 뿐,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막혔어?’
석민이 약간의 동요를 보일 때, 여자는 벌떡 일어섰다. 그가 다시 그녀를 노리고 쏘아댔다.
“이거 방탄유리야, 이 새끼야!”
격벽유리 또한 방탄유리였다.
여자는 그렇게 소리치며 구멍에 손만 내밀어 총을 쐈다. 그러나 엉성한 자세에 글록은 33발을 토해냈음에도 각기 다른 곳을 향해 튀기만 했다. 그녀가 얼른 자세를 바로잡아 쏘려고 하자, 석민은 조준을 바로 해 권총을 쏘았다.
그가 쏜 총알이 그녀가 손에 쥔 총에 맞았다. 그녀의 총이 멀리 날아 바닥을 뒹굴었다.
“시발!”
그녀는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격벽 옆으로 붙으면서 카운터의 구멍을 방탄유리로 된 미닫이 덮개로 닫았다. 그녀는 연이어 벽면에 걸린 선반 밑으로 손을 넣어, 100발짜리 탄창을 장전한 MP5K(단축형 기관단총)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석민은 기가 질려버렸다. 그 또한 카운터 진열대 바로 밑으로 숨었다.
“시발 년, 여긴 손님에게 총알부터 안겨주고 물건 파냐?”
그 말에 여자는 키득거리며 맞받아쳤다.
“손님은 무슨 시발 놈이. 그 카드 네 것 아니잖아 새끼야. 이 개새끼, 총 존나 잘 쏘네.”
“그래, 내 건 아니지. 카드 준 새끼가 얼굴 반반하고 엉덩이가 죽여주는 건스미스를 소개해 주겠다며 준거니까.”
“뭐라고?”
여자의 인상이 와그작 무너졌다.
“본인 외에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상덕, 그 새끼는?”
“죽었지.”
내 손에.
석민은 끝말을 흐리며 권총의 탄창을 뺀 뒤 새것을 넣고는 여자를 향해 조준을 마쳤다.
총 쏘는 것은 하나는 자신 있었다. 저 망할 년이 미닫이 덮개를 열면 바로 쏠 생각이었다.
여자는 석민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거렸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의 끝머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올라갔다. 아이라인 때문인지 눈매는 더 사나워 보였고,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배우, 속된 말로 쌍년처럼 보였다.
그녀는 곧 석민을 향해 조준하던 총구를 내려놓았다.
“잘했어. 그 변태새끼 언젠가 죽여 버리고 싶었거든.”
그녀는 카운터로 가서 의자에 앉더니 빨간 담뱃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하지만 긴장한 석민은 그녀를 계속 조준하고 있었다.
“알피지 가지고 와도 이거 못 뚫어. 됐어, 총 내려놔.”
“총알 수십 발 먹여놓고 그런 말이 나오나?”
“새끼야, 위를 봐.”
그는 위를 올려보았고, LED 전등 위로 상당히 위험한 것이 하나 있었다.
“클레이모어.”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앞을 보는 순간, 그녀의 손에 격발기가 쥐어져 있었다.
“원래 너 죽이려고 누르려 했거든? 안 죽일 거니까 이제 안심해, 새끼야.”
그녀는 격발기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입은 생김새와 다르게 매우 거칠었다. 새끼라는 단어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끊임없이 말끝에 따라붙었다. 석민이 그녀의 말투에 조금 짜증이 일 무렵, 그녀는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건물은 생긴 것에 비해 단열이랑 방음도 확실하고 강화철근콘크리트라서 존나 튼튼하거든? 저거 하나 터진다고 아무도 안 와. 쥐도 새도 모르게 네 시체 정돈 처리할 수 있지만, 안 그럴 거야. 왜냐? 넌 내 적이 아니거든.”
그녀는 담배를 맛있게 한 모금 더 빨아 당기더니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 다리에 대충 비벼 껐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미안하다. 그 카드를 쓰면 카드에 등록된 사진과 얼굴이 내 컴퓨터에 나오는데, 얼굴이 다르니까…. 강도나, 뭐 청부업자 같은 걸로 생각했어. 의외로 이쪽 일이 적이 많거든.”
“그랬군.”
왠지 상덕이 순순히 자신에게 이 여자를 소개해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말 마지막까지 비겁한 녀석이었다.
그는 그녀를 깔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클레이모어라…….
아무리 군용품이 구하기 쉬워진 세상이라도, 저런 건 구하기 힘들었다. 저런 게 하나라도 터졌다간 계엄군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경기도가 총기의 합법화 지역이 된 것 자체가 군에서 민간을 100% 지키기 어려워지면서, 자위권 차원으로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뭣 때문에 왔어?”
석민은 권총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의심을 거두지 못한 그는 그녀를 주시하며 말했다.
“내 M16A1에 문제가 생겨서 말이야. 수리 좀 했으면 하는데.”
“가지고 와 봐.”
그는 자신의 M16을 꺼냈지만,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총의 나이가 거의 40이 다되었다. 거기다 많이 쏜 덕분에 곳곳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총을 건넸다. 여자는 카운터의 강화유리 덮개를 열고는 석민의 손에서 총만 쏙 빼갔다.
‘뭐야 저 표정.’
그녀는 마치 혐오스런 벌레를 보듯 총을 만져대더니 곧 빠르게 총을 분해했다.
거리껴 하던 표정과 다르게 분해하는 실력은 아주 능숙했다. 역시 괜히 건스미스가 아니라고 석민이 생각할 때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노리쇠가 많이 닳았네? 공이도 그렇고. 가스튜브에 이렇게 녹이 슬 정도면 정말 오래 썼군. 한국에서 라이선스 생산한 제품, 혹시….”
그녀의 눈길이 많이 누그러졌다.
“서울 수복작전에 참가했었나?”
“그래.”
“그렇군.”
그녀는 다시 인상을 쓰며, 총을 내려놓았다.
“고칠 수는 있지만, 고칠 게 너무 많아서 차라리 새것을 사는 게 나을 거야. 그런데, 아말라이트(AR) 시리즈는 내가 취급을 안 해. 주로 러시아제, 독일제를 취급하지. 정품이니까 믿고 물어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총탄자국에 금이 간 진열대를 보며 물었다.
“그러면, 5.56mm을 사용하는 총기가 있나?”
한국에서 주로 쓰는 자동소총의 경우 5.56mm 탄환을 사용했다. 더불어 민간에 풀린 무기도 같은 구경이 대부분이니 쉽게 구할 수 있는 5.56mm 총알을 원했다.
“보통탄? k100탄?”
“k100탄으로 하지.”
k100탄은 보통탄보다 강한 탄환인데, M16A1에는 사용이 불가능한 종류였다.
“연사력도 보나?”
“연사력이 높으면 좋지.”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녀는 AK소총으로 보이는 총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세세하게 보면 무언가 많이 달랐고, 석민으로선 처음 보는 것이었다.
“AK-108이야. 러시아 애들이 수출하려고 만든 건데 평형반동시스템을 탑재한 놈이지. 그 덕분에 기존 소총의 반동에 비해 30% 낮으면서도 연사력은 분당 900발짜리야. 거기다 5.56mm를 사용하지. 점사, 3점사, 연사기능도 있어. 혹시 도트사이트 필요해? 러시아제 코브라 도트사이트 있는데.”
그런 게 있으면 좋을지 모르지만, 석민은 도트사이트에 대해서 약간 회의적이었다.
물론 총을 조준하기 쉽게 해준다는 점이나 야간에 조준점을 보이게 해준다는 점 등에서 매우 편리한 도구이지만, 눈이 좋은 석민은 그것보다 배율이 있는 스코프를 선호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벼운 ACOG(4x32 망원조준경)를 선호했고.
그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자, 여자가 못마땅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뭘 잘못했나?’
“이 아름다운 러시아 무기에 미제 조준경을 쓰자고?”
그 말에 석민의 얼굴도 찌그러졌다.
설마 이 자식, M-16 같은 것은 취급 안하는 이유가 자기 취향 때문인가?
“뭐야, 없는 거야?”
“그딴 거 취급 안 해. 이건 어때?”
그녀가 꺼낸 것은 러시아제 스코프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자신의 빈토레즈에 달려 있는 놈이었다. 그가 거절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POSP 6x42B라는 조준경이야. 벨라루스에서 직수입한 것이지. 수입하는 데만 150만 원 정도 들었는데, 공짜로 주지.”
“……공짜로?”
“그래, 공짜. 총질했는데, 미안하니 뭐 하나 정도는 딸려줘야지. 내 총에 ACOG 따위가 달리는 것 보는 것보다는 이게 났겠지, 뭐. 무게 같은 거 신경 안 쓰지? 이 건케리어에 있는 탄창들은 60발짜리 대용량 탄창이더군. 너 혹시 헌터냐?”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헌터란, 서울에서 괴수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특수부대, 민간군사기업, 혹은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예방전쟁차원에서 서울로 들어가 괴수들을 처리하는 일을 담당했으며, 임무특성상 최대한 많은 탄수의 총알을 쓰거나, 최대한 큰 총알을 사용하는 편이었다.
“난 헌터가 아니야.”
그는 스코프를 들었다.
[POSP 6x42B]
내구도: 100%
품질: 상
벨라루스 제니트 벨로모(Zenit-BelOMO)사제 스코프, 아직 한 번도 사용 안 한 신품이다.
렌즈 화질도 깨끗하고 밝게 보였다.
세세한 스코프의 십자선을 확인하고는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곧바로 AK-108도 들어보았다.
[AK-108]
내구도: 100%
품질: 상
탄약:5.56mm 나토탄
러시아, 칼라시니코프(Калашников)사제 소총 아직 한 번도 사용 안 한 신품이다.
이미 AK-108에 달린 전용레일로 스코프를 끼운 후 레버를 돌려 고정시켰다.
막상 설치해보니 썩 나쁘지 않았다. 석민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여자도 마치 역시 내 말이 맞았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번 쏴 볼 수 있을까?”
“몇 발?”
“한 탄창에 얼마지?”
그녀는 손가락 5개를 펼쳤다.
“10만 원.”
당연한 수순처럼 석민의 얼굴이 구겨졌으나, 그의 손은 지갑을 열고 있었다.
“더럽게 비싸군. 3탄창만.”
돈을 받은 그녀는 고갯짓을 했다.
“나가서 바로 오른쪽으로 들어가 봐.”
여자가 말한 곳으로 들어서자 문이 보였다.
여자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서자, 긴 직사각모양의 공간이 보였다.
“자, 탄창.”
그 여자가 탄창 3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근처 선반에 놓여 있던 귀마개를 꼈다.
“자살이라던가, 총기 탈취 같은 데도 않는 개짓거리 생각하는 거면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뭐, 하는 거 보니까 그럴 거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녀는 석민에게도 귀마개를 내밀었고, 석민은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그녀의 말에 반응을 보인 후, 그녀의 손에서 귀마개를 낚아채 썼다.
여자는 표적지를 붙인 후 레일을 통해서 사격장 끝으로 보냈다. 그는 조정간을 아래로 내렸다.
‘연사로 쏠 생각인가?’
여자는 석민이 조준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입술을 적시고는 히죽거렸다.
이윽고 석민이 AK-108을 연사로 쏘아댔다.
여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석민의 상체도 반동에 의한 흔들림이 전혀 없는데다가 심지어 총 또한 총은 마치 완충기가 있는 삼각대에 놓고 쏘는 것처럼 반동이 없었다.
‘아무리 반동이 줄어든 물건이라지만 저건 좀….’
“이거 좋군.”
여자가 속으로 놀라는 동안 석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탄창을 빼냈다. 반동이 적다는 점에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어서 영점사격을 시작했다. 영점까지 맞추는 데 한 탄창을 사용했고, 그동안 총의 여러 가지 단점들을 체크했다.
***
총은 대체적으로 좋았지만, 꼭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꼽자면 조정간이었다.
그가 M-16을 사용할 때는 조정간을 엄지로 간단하게 바꿀 수 있었지만, 이 총은 그게 불가능했다.
“커스터마이징을 원하는 거지?”
석민이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총을 보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줄까?”
그녀는 수첩을 꺼내 들고는 볼펜의 단추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