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8화]
건 스미스
“수고하셨습니다. 석민 씨.”
아영이 부르는 호칭이 최석민에서 석민 씨로 바뀌어 있었지만, 석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녀의 뒤로 가방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지난번에 마주쳤던, 소위였다.
그는 석민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성공금과 월급을 포함한 2천 600만 원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야말로.”
석민은 가방을 받았고, 아영은 손을 내밀었다.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석민은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내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한 번이긴 하지만, 같이 작전을 수행한 것 때문인지 처음보다는 조금 믿음이 갔다.
아영이 빠지고 소위가 수첩을 꺼내 들었다.
“혹시 은행 계좌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으로 현금을 전달 드리는 것보다 이게 더 나을 듯싶어서 말입니다.”
석민은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볼일이 끝났음에도 소위가 떠나지 않고 뭔가 더 할 이야기가 있는 듯 우물쭈물하며 석민의 앞에서 뭉그적거렸다.
석민이 왜 그러냐며 입을 열기 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다름이 아니라. 이번 임무는 거의 포섭비도 포함되어 있어 많은 돈을 드렸지만, 다음부터는 아무래도 보상금이 전처럼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은지 조금 망설이듯 말했지만, 석민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부가 돈이 많지 않다는 것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자신이 정부에게 필요한 인물이나, 돈이 많이 들기 시작하면 정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것이다.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는 것이 어디야?’
석민은 욕심을 내기보다, 자신의 안정을 챙기고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그는 그들을 뒤로하고 ‘더 로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최용민이 지난번처럼 바텐더 자리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의 절반 이상이 사람들도 차 있어서 가게 안은 조금 시끄러웠다.
“왔냐?”
“예, 형.”
그는 가방에서 300만 원어치 현금다발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본 일부 손님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냈으나, 용민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에 그 돈을 노리거나 하진 않았다.
“수수료요.”
용민은 그것을 자신의 재킷 주머니 안쪽에 넣었다.
“또 일거리 생기면 연락해줘?”
“아뇨, 됐어요. 당분간은 쉬려고요. 총기 정비도 해야 하니까.”
그는 굳이 그가 정부에 고용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 연락하죠.”
“그래.”
***
계약금 1천만 원에 성공보수 2천만 원, 거기에 수수료 300만 원을 빼면, 2700만 원.
평소 그가 절대 만질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기에, 그로서는 큰돈을 번 것이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지출이 있을 예정이라 자금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가 자주 사용하던 9x39mm탄과 M16A1을 대신할 소총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은 상덕이 주었던 카드를 이용해 건스미스에 가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대충 600만 원쯤이면 구할 수 있으려나.’
공인된 기관에서 사는 총기는 100만 원 선인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반자동무기들이었기에 석민이 그것들을 쓸 순 없었다.
자신에겐 분명 특별한 힘이 있다.
그것은 마치 게임처럼 그의 능력치를 수치화시켜 보여주긴 하지만, RPG게임처럼 스킬이나, 레벨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않았었다. 그러다 어제 아영을 만나며 겨우 레벨만 나타났다.
그에게 이 능력은 마치 FPS게임처럼 증강현실 같은 화면을 보여주었다. 시야에 나타난 십자선이 레이저 사이트처럼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의 조준점을 알려주면서 말이다.
그는 특별한 힘이 생긴 뒤, 안경을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졌고, 밤눈마저도 좋아져서 아무런 장비 없이 한밤중에도 스코프로 목표를 조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어떤 무기든 손을 대면, 그 무기의 이름과 사용할 수 있는 탄종 그리고 총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떠올랐다.
지구력 덕분에 그는 쉽게 지치지 않을 수 있었고, 체력은 그의 근력과 기민함을 향상시켜주었다.
그는 100미터를 9초 만에 주파할 수 있었으며, 100킬로그램짜리 바벨을 아무렇지 않게 한 손으로 들 수도 있었다. 또한 활력은 지친 몸을 금방 회복시켜 주었으며 심지어 심각하지 않은 상처는 바로 다음 날 아물기까지 했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 11
지구력: 7
체력: 5
활력: 7
시력: 6
현재 그의 신체등급은 레벨이 오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도 여러모로 대단한 상태인데, 레벨이 오르고 더 강해진다면 어찌 될지 그는 가늠할 수도 없었다.
스스로 칭하기 민망하지만 자신이 마치 미국 만화의 슈퍼 솔져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약점이 너무나도 명확했다.
바로 본질은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총을 맞으면 다치고, 즉사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으면 결국 죽는다.
그랬기에 석민은 더 좋은 무기를 원했다.
이번에 돈이 제법 들어왔으니, 석민은 큰맘을 먹고 최고의 무기를 살 생각이었다. 그는 몸을 보호해줄 방탄복도 구매할까 잠시 생각했으나, 결국 거추장스러워 쓰지 않을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곧 생각을 접었다.
총기를 챙긴 석민은 오토바이를 타고 성남 쪽으로 갔다. 상덕이 말한 주소가 성남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상덕이 죽기 전 말했던 것을 상기했다.
‘손님을 가려 받는 것은 뭐, 불법행위를 하는 곳이니 당연한 이야기겠고, 얼굴 반반하고 엉덩이가 죽이다는 것은 빼야겠지.’
상덕은 그가 아는 천박한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천박하고 음탕한 인간이었으며, 버는 돈의 상당량을 그의 애인들에게 사용했었다.
미녀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상덕이 그리 말할 정도니, 엄청 예쁜 것은 분명했다.
건스미스란 직업은 나무를 깎거나 쇠를 깎고, 용접이나 도금도 해야만 한다. 상당히 궂은일이며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한 직업인 것이다. 그런데 얼굴이 이쁘다라?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라도 예쁜 사람이 하지 말란 법은 없지.’
그래, 적어도 저기 홍등가보단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곳을 쳐다보았다. 대낮인데도 거기는 이미 영업 중인지, 거리엔 선정적인 옷을 입은 여자들로 넘쳤다.
과거, 이 근방에 있던 학교들은 전부 병영으로 바뀌었고, 주변엔 그런 군인들을 상대하는 이른바 ‘기지촌’ 같은 것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서울 근교는 국군 말고도 다국적군들이 주둔한 상태였고, 기지촌은 이들이 사용하는 달러, 유로, 루블, 위안을 끌어들이는 장소였다.
그렇게라도 벌지 않으면 살기 힘들었다.
순식간에 난민이 되어버린 그 450만 명은,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으로 퍼졌다.
그들은 친척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지내거나, 정부가 지정해준 건물에 사는 것으로 주거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놓고 빈 몸으로 온 상태인지라, 가진 것도, 직업도 있을 리 만무했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거의 특권과 다름이 없었고 막노동도 마다않은 인텔리 출신은 차고 넘쳤으며, 그 덕택에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반면, 정부가 최대한 억제함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래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업소가 많아졌고, 이들은 기복이 큰 한국화폐보다 안정적인 외국의 화폐를 받았다.
그 거리를 지나, 그는 금광 1동 주민센터 앞에 도착했다.
헬멧을 벗고 주변을 살폈으나 거리에는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분명 상덕은 흰 건물이라 하였다. 하지만 근처에 흰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회색빛 민낯을 드러낸 건물이 보일 뿐이었다. 석민은 그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대부분이 떨어지고 약간 남은 페인트의 도색 부분조차도 반쯤 일어난 상태여서 구분하기 힘들었으나, 눈이 좋은 그의 시야에 하얀색 페인트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2층까지 건물이었다. 안이 제법 넓은지 1층은 철물점과 편의점, 중국집이 들어서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외곽계단이 보였다.
그는 오토바이를 주차해 놓고 가방을 챙긴 후 계단으로 향했다. 강철 파이프로 만든 난간이 심하게 녹이 슬어있어 손대기 꺼려질 정도였다.
‘이런 곳에 건스미스가 있다고?’
주변은 전부 상가주택이거나, 다세대 주택들이었다. 게다가 이런 조잡한 건물은 방음은 둘째치더라도, 단열처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생긴 거 보면 무슨 70년대 건물 같잖아.’
그는 계단을 올라가 2층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 강철로 된 문 위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것이 석민의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문 옆 벽면에 카드 긁는 리더기가 보였다.
그는 카드를 꺼내 들었고 카드를 긁었다.
작은 전자음과 함께 찰칵거리는 금속음들이 들려왔다. 그는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었다.
10센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문의 잠금장치가 10개나 달려 있었다.
내부는 종이상자들로 가득했다. 밖에서 보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 창문에 검은 필름을 잔뜩 붙여놓은 덕분에 내부는 어둑어둑했고, 묵은 먼지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가 잠시 내부 전경을 감상하는 사이,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는 잠금장치들이 다시 가동되어 잠겼다.
석민은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상자들을 지나쳐 앞으로 나갔다.
우회로를 지나 대략 10미터 앞, 흰색 칠을 한 나무패널로 된 칸막이와 문이 보였다. 저 안이 분명했다.
틈 사이로 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안에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 석민은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인기척과 함께 익숙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석민은 그대로 몸을 왼쪽으로 던졌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패널에 구멍이 뚫리면서 빛이 나왔다. 그는 짐 가방을 풀고는 권총을 꺼내 패널 너머로 3발을 쏘았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위치만 알려준 꼴이 되어, 총알들이 날아왔다.
석민은 다시 몸을 날려야 했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몸을 날리면서 다시 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를 따라 패널의 총알구멍이 그를 뒤따랐다.
그의 근처에 총알들이 박히면서 튕겨나갔고, 결국 총알의 파편 일부가 그의 발목에 박혀들었다.
“빌어먹을!”
갑작스런 고통에 그는 일어서다가 넘어졌다. 다행이 파편은 신발을 뚫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한, 두 발 더 총알이 발사되었다면, 아마 석민은 죽었을 것이다.
다행히 상대편의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더 이상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 대신 빈 탄창이 울리는 금속음만이 들려왔다.
“젠장!”
짜증이 가득 담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민은 주저앉고 몸을 던져 패널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창 진열대와 그 위를 덮고 있는, 유리로 된 격벽 위에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상당히 마른 체구를 가진 여자였는데, 전차병들이 주로 입는 위장무늬가 그려진 커버올을 입고 있었다. 허리엔 나일론으로 된 군용 허리띠도 차고서.
그 여자는 격벽의 유일한 구멍을 통해 총을 쏘아댔던 것이었다.
여자는 총알이 빈 글록 18권총을 버리고는 새로운 글록을 꺼내고 있던 중이었다. 석민이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얼른 진열대 밑으로 숨었다.
케이크 진열대같이 생긴 그것은 온갖 종류의 총들이 들어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