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7화 (7/226)

[게이트 오브 서울 7화]

“당신을 좀 더 빨리 찾았다면, 그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죽은 대원들이 죽지 않고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서울을 잃고 나라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석민이 말했다. 하지만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이제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어찌 생각해보면 전 당신에게 죄지은 것일지도 몰라요. 당신에 관한 파일은 읽어보았어요. 서울에 가족들이 있었죠? 사실, 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저만 남았죠. 당신도 그렇고요. 상실의 슬픔을 당신도 알겠죠? 정말, 혹시 몰라요. 내가 당신을 일찍 찾아 퀘스트를 성공했다면, 그리고 사명을 완수했다면, 그들이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거.”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죄책감은 그저 산자의 죄책감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도 가족들을 잃은 후 많은 시간을 그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기에, 그 생각이 이해가 갔다.

“이 힘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몰라도 모 영화에서 나온 말처럼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고 하죠. 책임을 지고자 해요. 이 임무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임무의 끝엔 분명 밝은 미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너무 막연하고 낙관적인 생각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 퀘스트라는 임무를 수행할 생각이에요. 그게 죽은 이들을 위한,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 망가진 내 조국의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으니까.”

석민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영은 그가 말없이 고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저와 함께, 그 끝으로 가주실 수 있겠어요?”

석민은 약간 어이없는 눈으로 아영을 응시했다.

그에게 조국애는 없었다. 그것은 이미 4년 전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영을 보자니, 그녀는 자신의 조국에 큰 애정을 가진 듯 보였다.

그래도…….

‘마지막 말만 붙이지 않았어도 조금쯤은 감동받았을 지도 몰랐을 텐데.’

석민은 애써 그녀를 외면했다. 솔직히 바로 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줄 수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운데다가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도 생각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영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답을 재촉하진 않았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 뜨거운 폐허 안에서 벽에 걸어둔 가족사진이 불탄다.”

그는 다시 추모가 2절을 불렀다. 아영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따라 불렀다.

“구조 받지 못해 숨은 이들은

두려움으로 젖어가고

불굴의 투지로 전진하던 그들은

그리고 그들의 전의를 확고히 하여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고통을 끌어안는다.

어제는 잘생긴 청년들이

오늘은 전장의 병사가 되었다.

그들은 조국을 떠난 배신자가 아니며

여전히 조국의 아들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은 떠나갔으며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무지갯빛 하늘 위로

그들의 별이 빛난다.

피 튀기며, 취한 채로

울부짖어라, 늑대같이!

친애하는 나의 조국이여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무지갯빛 하늘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들은 노래를 계속 불렀다.

석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영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

“채널 23번으로 하였다 울프……. 크흠, 울프 1. 수신양호한지?”

석민은 코드네임 같은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어색한 말투로 무전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수신양호, 천천히 익숙해지면 될 것입니다. 울프 2.

아영이 말했다.

-위치 잡았습니까?

“양호.”

-현재 시야에 4명이 보입니다. 입구를 지키는 자 2명과 순찰을 도는 자가 2명입니다.

‘정문에 경비가 있었다고 했었나?’

-정보가 약간 잘못되었군요.

석민이 입을 열기 전에, 그녀가 말했다.

석민은 스코프를 통해 창고 쪽을 보았다. 일반인이라면 밤중에 스코프를 들여 본다고 해서 보일 리 만무했겠지만, 그는 시력 스탯을 올린 덕분에 밤눈이 좋아 볼 수 있었다. 물론 스탯 등급이 그렇게 높지 않아 그렇게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스코프를 통해 반대편에서 소총을 들고 걷는 자들을 확인했다. 40대쯤으로 추정되는 남녀였다. 그런데 하는 행동으로 보건데 부부쯤 되는 듯싶었다.

“순찰조들을 먼저 없애야겠다. 내가 먼저 순찰조들을 없애지. 순찰조를 전부 사살하면, 울프 1이 창고 입구를 지키는 놈들을 처리하도록.”

-수신완료.

두 사람이 부부인 것을 확인한 이후 처리하는데 조금 거리낌이 들었으나, 마음의 정리를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초뿐이었다.

눈빛이 가라않고 타깃에 시선을 고정 한 채, 그는 스코프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는 숨을 들이마셨다. 이런 일은 이미 여러 번 경험했던 덕분에, 매우 익숙했다. 러시아제 스코프 특유의 ㅅ자 모양의 조준선이, 창고 뒤쪽에서 모퉁이를 돌아 좌측으로 빠지는 이들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아까 보이던 부부였다.

그들은 무기를 어깨 뒤로 돌려서 매고, 허리에는 탄입대가 든 군장을 착용하여 무장을 한 상태였다. 서로 팔짱을 낀 채 여자의 손을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의 재킷 주머니 속에 넣고선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고 있었다.

그는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푝하는 소리와 함께 남성의 어깨에 기대로 있던 여성의 머리가 터졌다. 붉은 핏방울과 뇌와 뼛조각이 튀기는 것이, 밤중에도 스코프를 통해 그대로 보였다.

그는 타깃을 바꿨다. 스코프 사이로 남성의 고개가 놀라 돌아가려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는 확인도 없이 바로 오른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약 몇 십초 후, 2명의 남성이 창고 뒤쪽으로 나타났다. 그는 다시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처리했다.”

-알았다. 제거까지 5초.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정말 정묘하게 숨었다.

곧 그녀가 쏜 총에 입구를 지키던 이들이 쓰러졌다. 한 명은 그대로 쓰러졌고 한 명은 발작이 일어나듯 움찔거리더니 몇 걸음 걷다가 쓰러졌다. 둘 다 명치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사살.

“알았다. 목표에 접근하겠다.”

그는 먼저 경비숙소 쪽으로 움직였다. 경비숙소에 있다고는 하나 이들 또한 살려둘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성능 폭약인 C4를 숙소 벽면에 붙였다. 다른 것들보다 조금 큰 것으로 이것만 있어도 이 정도 숙소는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양이었다. 타이머는 5분으로 맞추었다.

일을 마친 후 그는 입구 쪽으로 갔다. 차량들이 오가기 위한 거대한 셔터문과 그 옆에 사람이 오가는 작은 문이 있었다. 다행히 문은 잠겨있지 않아서, 석민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대충 150제곱미터쯤의 넓이로 보일 정도로 넓었고 불을 꺼져있어 어두웠다.

브리핑 때 분명 경비병들이 컨테이너의 문 앞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고 했으나, 정작 그들은 구석진 곳에 위치한 소파와 의자에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보며 잡담을 즐기고 있었다.

진한 담배연기가 컨테이너 안을 가득 메우고 있어 시야가 뿌옜다. 아무리 광신자들이라고 해도 그들 역시 사람이었나 보다.

석민은 희죽 웃으며 허리를 숙인 채,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접근했다.

나이들이 이제 갓 20살쯤 된 남녀들이었다.

석민의 편인 어둠이 그를 완벽하게 가려주었고, 저들은 텔레비전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한 명, 두 명이 쓰러지면서 다른 이들이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어떤 이는 그대로 도망치려고 몸을 돌리다 총알이 등판과 얼굴에 박혔고, 어떤 이는 소파 밑에 있던 북한제 AK소총을 꺼내 장전 손잡이를 당기다가 소파를 뚫고 날아온 빈토레즈의 총알에 몸을 뚫렸다.

애초에 소파가 엄폐물이 될 순 없었다. 그는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여자에게 총알 2발을 더 박아 넣었다.

-울프 1이 울프 2에게, 경비숙소가 소란스러워졌다.

“1분만 저지해라.”

얼마 안 가 총성들이 울려 퍼졌다. 비명소리, 위험을 알리는 다급한 고성들도 함께 들려왔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쳐들어오는 이들이 없는 것 보면, 아영은 확실하게 그놈들이 나오지 못하게 저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잡낭에서 C4를 꺼냈다. 시간은 3분.

그는 컨테이너를 열고 안에 든 무기들을 확인한 후, 폭탄을 한 개씩 집어던졌다.

지난번 상덕 패거리가 모아둔 무기들만큼 상당한 양의 무기들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RPG나 기관총들은 총기사물함으로 보이는 곳에 보기 좋게 모아져 있었지만, 소총과 빈 탄창들은 말 그대로 꽉꽉 채운 그대로 쌓아놓았다.

그는 무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98식 보총 ]

내구도: 84%

품질: 중상

탄약: 5.45x39mm

북한에서 제작한 자동소총. 중고품이다. 너무 오래 사용해서 일부분에 녹이 슬어있고 나무 손잡이는 손때로 반질반질한 상태.

빨갱이 새끼들이 자기들이 쓰던 쓰레기 중고무기를 정 단위가 아니라 무게단위로 판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엄청난 양이군.’

폭탄 설치가 끝나자마자 문가로 가서 몸을 낮췄다.

-울프 1, 빠져나가겠다. 엄호 바란다.

-수신.

그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경비숙소 쪽 창문에서 누군가 그를 보고 총을 겨누었지만, 석민이 먼저 조준해서 쏘았다.

상대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석민은 바로 허리를 숙이며 자신이 처음 왔던 곳으로 달려갔다. 아영의 저격에 경비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던 경비들이 석민을 보고 소총을 난사했지만, 그는 이미 창고의 모퉁이를 돈 상태였다.

그가 달리는 속도는 아영의 말처럼 평범한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울프 1, 이탈에 성공했다.

그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보고했다.

-알았다. 집결지에서 기다리겠다. 울프 2.

***

석민은 그대로 도망쳤다. 아영은 경비들이 나오지 못 하도록 지속적으로 사격을 가하며 그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이윽고, 석민이 맞춰두었던 폭탄의 시간이 지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특히 창고 쪽 폭발은 폭약들이 유폭하면서 거대한 불꽃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갈대숲에 웅크려 자신의 가방에 군장과 총, 헬멧을 집어넣고 있던 석민은 그 장면을 보고는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짐을 다 싼 석민은 갈대숲을 벗어나 둑방 쪽 길에 올라서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눈에 아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봐선, 그녀 또한 후퇴한 듯싶었다.

그렇게 잠시간 석민이 둑방 쪽에 서서 불타는 경비숙소를 바라보고 있을 때, 버려진 산책길을 따라 회색 승합차가 빠른 속도로 창고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곧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며 방탄복에 방탄 헬멧 그리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들 중 일부는 경기관총도 가지고 있었다.

‘미친, 시발 5대기야, 뭐야.’

그는 그들이 교단 병력이란 사실을 단번에 알아챘다.

개 짖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저들은 군견도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석민은 바로 몸을 돌렸다. 마침 걸어가는 길 앞에 물웅덩이가 보이자 그곳에 발을 담가, 한 번 밟고서 지나갔다.

0